39화. 업스타일의 대모 홍부자(1)
덩치들이 유사장을 폐공장에 던져놓았다.
“그놈이 한 말을 고대로 해주자면, 범인은 자기가 범죄를 저지른 장소를 찾아온다고 하니 범인을 그 장소에 갖다 놓아주시면 됩니다. 다만 신발 한 짝은 좀 멀리 갖다놓고, 휴대폰만 그 사람 사무실에 가져다주면 되는 거지요.”
유 사장이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내며 소리 질렀다.
“야, 이 새끼들아 니들 납치한 거여! 경찰에 신고당할 생각 하랑게!”
유 사장이 소리 지르자, 덩치가 유 사장의 어깨를 꽉 쥐었다. 어깨가 너무 세게 잡히자 통증을 느낀 유 사장이 몸을 빼고 뒤로 도망쳤다.
“니가 경찰서에 간다면, 니가 거길 왜 갔는지 경찰들에게 말해야 할 거고, 그러면 우리보다 니가 더 큰 형량을 받게 될 거라고 하더군. 그래도 할 거면 해보시든가.”
“휴대폰, 휴대폰만 놓고 가라고!”
“그거 진작에 너희 사무실에 갖다 놓았어. 우리는 도둑질 같은 건 안한다.”
덩치와 일행은 그렇게 말해놓고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신발은 길에다 던져 놓을 테니 잘 찾아보시고.”
유 사장은 신발 한 짝을 찾으러 한참동안 걸어가야 했고, 겨우 신발을 찾아 신었을 때, 다시 온 길로 돌아가야 전화를 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가는 동안 내내 욕설과 고성을 질러댔지만, 사람 한 명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박준수 개새끼,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 * * * *
“선정이는 괜찮은 거지?”
아파서 나오지도 못한다는 놈이 다짜고짜 전화해서 선정의 안부를 묻자, 승철의 기분이 매우 심란해졌다. 유 사장의 말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너 근데 많이 다쳤냐?”
“그거 어떻게 아냐?”
“그니까 괜찮냐고?”
승철이 나에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선정에게 나의 감정이 남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였다. 그걸 알 턱이 없는 나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약이나 좀 사주고 물어봐. 온 몸이 다 멍들었어.”
“대체 니가 왜 선정을 구하려고 거길 가냐?”
나는 그제야 승철이 화가 난 걸 깨달았다. 자신의 여자를 구하려다 맞은 남자가 곱게 보일 리는 없을 테니, 화가 날만도 하였다.
“날 오라고 하는데, 어떻게 안가냐? 난 걔가 좋아서 간 게 아니고 전우애로 간 거야, 동기잖아 우리.”
“전우애? 하하. 암튼 선정은 괜찮으니까 넌 걱정 말고 쉬기나 해.”
승철은 화를 누르고 최대한 좋은 말투로 나에게 말을 하였다. 어쨌거나 그를 계속해서 봐야 하니까. 승철에게도 목적이 있으니까, 조력자에게 잘못 보일 필요는 없었다. 하
“전우애…… 쳇. 개자식.”
전화를 끊고 난 승철의 차가운 표정과 말투.
노랑머리는 그런 승철의 모습을 보고, 그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고, 언젠가는 나와 나쁜 관계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잠시였지만.
* * * * *
경찰서를 거쳐서 꾸역꾸역 돌아온 유 사장은 아직까지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대고 있었다. 길바닥을 맨발로 돌아다닌 것도 억울한데, 경찰서에서도 그를 미친놈 취급하니 화가 안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유 사장은, 나를 어떻게 하면 죽고 싶게 만들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사장님 몰골이 왜 그래요?”
“가서 신발이랑 옷이나 사와.”
유 사장은 직원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또 혼자서 씩씩대고 있다가 문득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너 말이야, 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의 여자야.”
“네? 갑자기 그기 무슨?”
“만약에 말이야. 그럼 말이야, 그 여자가 어찌되면 가슴이 찢어지겠냐?”
정확히는 나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이지만, 어쨌든.
“뭐, 죽거나 아프거나.”
“그런 거 말고 죽거나 아픈 거 말고 말이야.”
“그럼 유부녀가 된다던지, 남편새끼한테 쳐 맞는다던지.”
“그렇지 맞네, 좋았어. 가봐.”
“네? 대체 왜 그러세요?”
“신발이나 빨리 사와.”
“네, 알았어요.”
유 사장은 일단 승철과 선정을 먼저 결혼시키고, 그 뒤에 의처증을 만들면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려면 빠른 시일 내에 두 사람을 결혼시켜야 한다. 급하다.
* * * * *
“결혼을 하라구요?”
유 사장이 승철을 대뜸 불러내서 말하였다.
“그래, 나 때문에 니 애인이 납치까지 당하고, 내가 너무 미안해서 긍께. 둘이 합쳐야 그런 일도 안당할거 아녀.”
승철은 순간 주먹을 들어 유 사장을 팰 뻔했다. 지가 납치하라고 시킨 일이 아닌가? 선정이 워낙 당차서 그렇지 웬만한 여자애들은 그런 일 당하면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다. 아무리 준수가 미워도 그렇지 아끼는 후배의 여자친구를 납치하라고 하는 게 정상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유 사장을 대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전 조금 섭섭했어요. 걔도 많이 놀랬구요.”
아주 미약하게나마 섭섭한 마음을 보여주긴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 말이었다.
“그래서 말여, 나가 호텔식으로다가 호화 결혼식을 해줄라고 그란디 뭐 워쩌?”
“네? 아 그건 너무 부담스러워서…. 선정이가 청혼을 정식으로 해달라고 하긴 했는데.”
“나가 미안해서 그런당께? 청혼? 그것도 이벤트를 해줘야 받아준당께?”
“이벤트요? 아 생각도 못했는데.”
“최수종 못 봤는가? 사랑을 받을라믄 정성을 쏟아야재.”
“아…….”
“오늘 당장 해보드라고 이벤트말여.”
유 사장은 승철을 끌고서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노래까지 연습시켰다. 그 시절은 이벤트를 하는 남자가 드물어서, 웬만하면 여자들이 받아주곤 했다. 게다가 납치사건까지 같이 겪고, 또 구해주었기에 두 사람의 사이가 많이 가까워진 후였다.
“나랑 결혼해 주겠어?”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멋진 노래 후 이어진 프러포즈는 선정의 마음을 흔들어놓기 충분했다. 선정은 승철이 내민 다이아 반지를 바라보았다. 순간 승철의 얼굴이 내 얼굴로 바뀌었다. 어쩌면 회귀 전의 기억이 잔상이 되어 그녀의 뇌리를 잠시 스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선정은 놀라서 뒷걸음쳤다.
“아, 뭐지.”
승철은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여겼다가 뒷걸음치는 선정을 보며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선정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데자뷰를 애써 부인하고서 승철에게 다가갔다. 승철은 선정이 미소를 띄며 다가오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받아줄게 그 청혼.”
승철은 너무 기쁜 나머지 선정을 번쩍 들어 올리고선 마구 뛰어다녔다. 선정도 자신을 이리도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난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지켜보는 또 한사람의 남자, 유 사장. 그는 두 사람의 결혼식을 치르면서, 어떻게 해야 나의 염장을 지를 수 있는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 * * * *
유 사장은 두 사람에게 웨딩플레너까지 붙여주었다. 웨딩플레너는 두 사람을 데리고 이것저것 알려주고 고민하며, 가장 좋은 조건으로 결혼하는 방법을 만들어 갔다. 그러다 담당 미용사가, 선정의 머리를 보게 되었다.
“와, 저런 머리를 어떻게 올려요. 난 절대 못해.”
“자기 올림머리 전문이라면서. 저것도 못해?”
“저거는 홍부자 선생님이 와도 못 올려요. 단발에 매직까지 한 머리잖아요.”
“홍부자고 뭐고 어쨌든 올리긴 해야 해.”
웨딩플레너와 담당 미용사가 선정의 머리를 두고 티격태격하다가 홍부자 이야기가 나왔다. 선정은 그 말을 듣고 내가 한 말이 떠올랐다.
[너 혹시 업스타일 때문에 이러는 거면, 내가 홍부자 쌤한테라도 찾아가 볼 테니까 제발 도와주라.]
“저기 저 홍부자 선생님한테 직접 가서 받을게요.”
“네? 강부자 아니고 홍부자에요. 우리나라 최고의 업스타일 장인.”
“네, 알아요. 이 머리 잘라준 사람이 홍부자 선생님한테 업스타일 받게 해 준다고 약속 했다니깐요.”
“야 그건, 그냥 한소리겠지.”
승철의 말대로 그냥 한 소리가 맞다. 하지만 선정은 그냥 받아들이는 법이 없다. 선정에게 약속한 이상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이 된다. 나도 그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냥 던진 말이긴 하지만, 금방 결혼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한 말이었다.
“그냥 한 말도 가끔씩은 지켜야 할 때가 있거든. 지금이 그때 같은데?”
“어? 그, 그래 그렇긴 하네.”
선정은 단호한 어조로 말하였다. 사실상 이렇게 만든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건 당연한 말이었다.
승철이 마음에 걸리는 것은, 홍부자의 의중이 아니었다. 내가 선정에 대한 마음을 아주 접은 게 아닌데, 선정의 결혼식까지 도와줘야 한다는 게 보통 잔인한 일이 아닐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유 사장은 뛸 듯이 기뻐하고 있었다.
“그놈이 제수씨의 업스타일을 하게 도와줘불면, 아주 끝내주는 복수가 되겠구만, 하하. 아주 좋네 좋아.”
“준수에게 너무 잔인한 것 같아서 저는 걸리네요.”
“그런 새끼한테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면 곤란해불지. 평생 너의 적이 될 놈이여.”
“친구인데 어떻게 적이 됩니까.”
“두고보드라고. 적이 되는지 아닌지 말여.”
승철은 끝까지 나에게 말할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유 사장의 적극적인 권유와 선정의 단호함 때문에 나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 * * * *
“박 쌤, 손님 왔습니다.”
“쌤이라니? 아직 인턴인데 뭔 쌤?”
그 시각, 노랑머리가 나에게 박 쌤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은 송은석이 발끈해 하며 나섰다. 송은석은 나보다 몇 개월 먼저 시작한 친구인데, 내가 먼저 미용사가 된 일로 예민해져 있었다. 송은석을 포함한 몇 명이 내게 그런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네, 알겠어요.”
나는 두 사람이 싸울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지만, 일단 손님을 하러 갔다. 그게 먼저니까.
“그럼 박 인턴 이래? 굳이? 송선배님 인턴되면 꼬옥 그렇게 불러줄 테니 걱정 마시고요.”
노랑머리가 송은석에게 도발하자, 송은석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인턴 4개월은 지나야 승급시험 보는 거 몰라? 아직 더 있어야 한다고!”
그러자, 노랑머리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이, 송은석을 노려보았다.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면서.
“여기 어떤 디자이너보다 잘하잖아. 그럼 쌤이지 뭐가 문제야?”
“올림머리는 못하잖아! 올림머리를 해야 진짜 디자이너라고!”
송은석의 말은 맞는 말이다. 그 과정까지 마스터를 해야 정식으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하긴, 지금까지 내가 올림머리를 받아서 한 적이 없으니, 내가 당연히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당장 보여주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잠시 뒤, 승철이가 미용실에 들어와서 내게 다가왔다. 마침 손님의 머리를 다 해준 뒤였다.
“너 우리랑 한 약속을 지켜줘야 할 것 같은데.”
“뭘 말이야?”
“우리 선정이 머리 자르면서 홍부자 선생님에게 업스타일 받게 해준다고 했잖아.”
“홍부자 선생님?”
“어, 선정이 약속한 건 지키라고 하네. 업스타일 말이야.”
“아, 그럼 결혼 날짜라도 잡힌 거야?”
“어, 조만간 할 것 같아.”
“그렇구나……, 축하해 정말.”
나는 애써 덤덤하게 웃으며 승철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전 마누라이긴 하지만, 승철과 천생연분인 것은 인정하는 바이다.
어쨌거나, 예정에도 없던 홍부자를 만나러 가야겠네. 그 분을 만나는 것은 나로서도 영광스러운 일이니까 좋다. 거기다 홍부자를 만나고 나면 송은석에게도 확인이란 걸 시켜줄 수 있다.
하지만, 그분이 나를 만나줄지가 의문이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