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미용재벌-40화 (40/200)

40화. 업스타일의 대모 홍부자(2)

“약속은 지켜야겠지. 내가 당장 홍부자 선생님 찾아가볼게.”

“괜찮겠어?”

“응, 안 괜찮으면 어쩌겠어.”

나는 한 원장에게 찾아가서 홍부자 선생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워낙 바쁜 분이니, 만나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 원장은 갑작스러운 부탁을 하는 건 안 된다고 하였지만, 승철이 곧 결혼한다는 말에 태도를 달리 하였다.

“아이고야, 니 그 똑단발한 여자친구랑 결혼한다는 거가?”

“네, 그렇게 되었네요.”

“내 야그 쪼매 해 놓을테니까, 가서 직접 만나 뵙고 부탁하그라.”

“감사합니다.”

한 원장은 바로 홍부자 선생님께 전화를 하여 주었다.

가서 홍부자를 만날 일만 남았다.

* * * * *

홍부자 선생님의 미용실은 의외로 대형 미용실이 아니었다. 적당하게 크고 오래된 느낌이 나는, 그런 미용실이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미용실에 들어섰다. 아직 오픈 전이라서 손님은 없었지만, 직원들은 이미 전부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리 약속한 사람인데요.”

“아, 그 스타일 헤어?”

“네네. 선생님 지금 있으신가요?”

“네, 이쪽으로 오세요.”

직원은 나를 원장실로 안내했다. 원장실은 오래되었지만 기품 있는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어서 와요, 준수씨.”

“안녕하세요. 원장님.”

“이야, 이거 허우대도 멀쩡하시네?”

“아, 아닙니다. 하하.”

“나 스케줄 꽉 찬 거, 알고 있어요?”

“네 뭐, 바쁘신 거야 알고 있죠.”

홍부자 선생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미용사 탑텐에 들 정도로 바쁘다고 보면 된다. 이분에게 시간은 돈이었다. 그런 귀중한 시간을 내어준 것이다.

“내가 그 분 머리를 직접 해줄 수는 없어요. 스케줄 조정이 안 되거든.”

“아…, 그렇군요.”

“대신 내가 준수씨에게 단발 업스타일을 알려줄 수는 있거든요.”

“아, 그렇다면?”

“네, 준수씨가 나한테 배워서 직접 해주는 게 어때요? 친한 친구라매?”

친한 친구 맞다. 친한 친구와 나의 전 마누라가 결혼하는데, 그 업스타일을 직접 해주라는 이야기다 지금.

“왜? 싫어? 내 기술 아무나 안 가르쳐주는데?”

맞는 말이다. 홍부자 선생님은 제자도 아주 까다롭게 뽑는 걸로 유명하다. 그런 일생일대의 기회를 그냥 날린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딜레마는 넣어두고, 일단 홍부자 선생님의 기술을 배워야겠다.

“하겠습니다. 할게요.”

“한 원장이 하도 자랑을 해서 내가 함 볼라고 그래. 미용사 과정을 1년 만에 마스터 했다면서?”

“아, 네. 원장님이 정말 열심히 알려주신 덕분이죠.”

“게다가 인성도 좋고. 합격이야.”

“네?”

“암튼 한 원장이 허락했으니까. 당분간 우리 샵에 출근해.”

나는 덕분에 새로운 곳에 출근을 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인사를 마치고 미용실에 나오는데, 그곳에 있는 직원들의 표정이 상당히 사나운 것이 느껴졌다. 기분 탓인가 싶어서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데, 그 사람도 굉장히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다른 데로 얼굴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잠시 출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일단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람들은 어색한 얼굴로 나에게 답인사를 건넸지만, 진심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은 미용실에 매일 나오고 노력해서 겨우 조금씩 배우는 중인데, 웬 다른 미용실 직원이 대뜸 업스타일을 배운다고 왔으니.

“네, 잘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보죠.”

미용실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 여자 디자이너가 쌩긋 웃으며 말했다. 친절하지만 절제된 말투와 표정에서 그녀만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녀는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시간이 길어지거나 짧아질 겁니다.”

“네, 최대한 짧아지게 노력하겠습니다.”

고민아 실장, 깐깐해 보이지만 잘 지낸다면 분명 나쁘지 않을 사람처럼 보였다.

* * * * *

홍부자가 원장실에서 나오더니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나를 포함한 직원들이 모인 가운데, 홍부자가 웬 긴 머리 여성을 데리고 들어왔다.

직원들이 궁금한 얼굴로 그녀를 보자, 긴 머리 여성을 의자에 앉히는 홍부자.

“준수군이 간단한 업스타일은 할 수 있다고 해서, 오늘 온 김에 좀 보려고 하는데 다들 어때?”

“네? 갑자기요?”

“왜? 설마 안 되는 건 아니지?”

“아뇨, 해야죠. 손님은 갑자기 오는 거니까요.”

당황할 줄 알았던 내가 하겠다고 나서자, 그 모습마저 흥미로운 홍부자. 다른 직원들도 나의 실력이 꽤나 궁금했는지 더 가까이 몰려들었다.

나는 몰려드는 직원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 더 좋은 걸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여자의 머리 앞에 섰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시작이 가장 어려운 법이지.”

나는 긴 머리 여성의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업스타일의 기본은 단단한 고정력과 전체적인 볼륨감, 웨이브의 자연스러운 연결에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도 세련됨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모델의 얼굴에 맞는 스타일링이 우선이다.

“올리비아 핫세 같은 스타일로 하겠습니다.”

나는 신중하게 여성의 얼굴을 살폈다. 갸름한 달걀형의 여성이다. 외모도 괜찮은 편이니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올리비아 핫세의 스타일을 해주면 어울릴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청순하고 갸름한 얼굴의 대명사인 올리비아 핫세의 스타일은 굉장히 차분하면서도 세련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뽐낸다.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스타일이 그 스타일이다. 나는 신중하게 머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점점 머리가 완성되어가자, 나를 달리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

나는 올림머리의 대모인 홍부자의 앞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스타일을 완성해 나갔다. 사실은 이 스타일을 선정이 가장 좋아했었다. 그래서 매번 해주고 또 해주었던 것. 그렇기에 막힘없이 할 수 있었다. 선정이랑 살면서 가장 잘한 것이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마저 드는 순간이었다.

“천재가 맞네, 맞아.”

한 스텝이 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다른 사람도 그 말에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

누군가는 수긍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나의 실력에 엄청난 질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민아 실장의 표정은 포커페이스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실력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홍부자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마치 로봇처럼 착착 움직이는 모습이 엄청난 습득을 거친 것 같은, 그래서 어쩌면 더 배울게 없는 느낌의 손놀림, 가르치는 사람의 의욕을 조금 꺾이게 하는 그런 의도치 않은 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업스타일이 끝나고, 모두 금방이라도 박수를 칠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홍부자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미용이 뭐라고 생각하나?”

미용은 기술, 기능의 산물이다. 하지만 홍부자는 그것보다 한 발 더 앞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미용인 최초로 헤어 작품전을 한 사람, 헤어쇼를 누구보다 멋지게 해낸 사람, 그 사람이 원하는 대답은 기술과 기능이 아니리라.

“기술이죠.”

한 직원이 말했다. 그러자 홍부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홍부자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답을 하였다.

“기술에서 발전한 예술입니다.”

“그렇지. 미용은 예술로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어. 기술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돼. 바로 그 부분이 일류와 삼류를 가르는 부분인거야.”

“네.”

“그치만, 너는 기술만 가지고 있어. 예술적인 부분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는 거지. 창의력이 없어.”

나는 뜻밖의 대답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칭찬을 해줄 줄 알았는데, 나의 단점인 창의력을 단번에 캐치한 홍부자.

“내가 놀란 건 말이야. 남들이 10년에 걸쳐서 습득하는 기술을 어떻게 1년 만에 습득할 수가 있지?”

홍부자 선생님은 나에 대해 단번에 모두 알아챘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미용사의 눈길 앞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최대한 그럴싸한 답변을 내놓아야, 그녀의 눈 밖에 나지 않는다. 홍부자 선생님은 만만한 분이 아니었다. 기술을 어느 정도 습득한 상태였다는 것을 말해야 이해할 분위기다.

“사실은 제가, 고등학교 때 미용실에 다녔습니다. 그 이후에도 쭉 조금씩 다녔구요. 자격증만 그때 딴 것이죠.”

홍부자 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사실대로 말 안했으면 너 오늘부로 쫓겨날 뻔 했어.”

나는 홍부자 선생님에 대해 이미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속이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알고 있었다. 그저 만만하게 봤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그런 분이었다.

다만 한 원장님을 속인 셈이 되었으니, 그것은 막아야 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이걸 미리 말 안해서요. 한 원장님 말이에요.”

“그래, 알아. 사실대로 말했으니 비밀은 지켜줄게.”

“감사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분인데 속인걸 알면, 너무 죄송해서요.”

홍부자가 나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선한 마음씨. 비록 경력을 속이긴 했지만 그걸 커버하고도 남는 그런 마음 덕분에 나는 좋은 기술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홍부자는 많은 세미나를 다니며 강의를 했다. 물론 가게에서도 손님을 하였지만 강의 일정도 만만치가 않았다. 나는 홍부자의 강의를 쫓아다니며 그녀의 모든 기술의 핵심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홍부자 선생님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천재이며, 그녀의 기술과 예술성은 단연 으뜸이다.

가끔씩 업스타일 말고도 웨이브 드라이에 관해서도 강의를 하는데, 그 강의도 정말 좋았다. 마치 미용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단발머리 업스타일은 특별히 개인 교습을 해 주었는데,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커버할 수 있게 알려주었다. 진정 알차고 대단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고 결국엔 그날이 다가왔다. 선정의 결혼식이.

* * * * *

새벽, 선정이 업스타일을 하기 위해서 미용실에 들어와 앉았다. 미용실에는 나와 노랑머리만 나와서 선정을 맞이했다. 두 사람의 사이를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있던 노랑머리는, 둘의 눈치를 보다가 분위기 반전을 위해 라디오를 틀었다.

[몰랐었어. 니가 그렇게 예쁜지 웨딩드레스 하얀 네 손엔 서글픈 ]

얄궂게도 라디오에서는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랑머리는 허둥지둥 다시 가서 그걸 끄려다가, 볼륨만 더 높이고 만다. 겨우 라디오를 끈 노랑머리. 멋쩍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도 내가 선정이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다.

“빨리 와서 보조나 해.”

“네네.”

노랑머리는 광대처럼 어색하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이 웃겨서 피식 웃고, 선정이도 웃긴지 따라 웃었다. 세 사람은 갑자기 서로를 쳐다보며 박장대소를 했다. 누구는 정말 웃겨서, 누구는 어색해서, 누구는 미안해서 그렇게 웃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