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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49화 (49/200)

49화. 조금씩 망하게 하는 방법(1)

노랑머리는 내가 부르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왔다. 과거 그와의 악연 따위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그는 나의 진짜 아군이 되어 있으니까.

“부르셨어요, 박 쌤.”

“응, 너 나랑 갈 데가 있어. 아 그리고 유 사장이랑은 아직도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그럼요. 유승철 바로 밑이 난데요? 하하.”

노랑머리는 유 사장의 심부름을 도맡아하며 그의 신뢰를 쌓고 있었다. 순전히 내가 하라고 해서 말이다. 그만큼 내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그래 좋아. 그럼 우리 피씨방이나 가자고.”

“네? 그게 뭔 소립니까? 피씨방에 왜요? 피곤하다니까 나.”

“넌 그냥 내가 하란대로 해줘. 아 그리고 넌 각서를 좀 써줘야겠어.”

“각서요? 아니 왜? 아따 오늘따라 이상하시네, 좀 쉬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노랑머리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내가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서 말했다. 얼마 전까지 경찰서와 장례식장을 왔다 갔다 했으니, 멘탈이 많이 힘들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냥 묻지 말고 좀 따라줬으면 좋겠어.”

“네, 피씨방 가는 건, 저도 찬성이긴 하죠. 허허.”

우리는 꼼짝도 안하고 근 이틀을 피씨방에서 살았다. 나중에는 노랑머리가 집에 가려고 하지 않을 정도로 피씨방에서의 시간이 금방 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미용사로서의 인생이 우선이니, 적당하게 그만 두어야 한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피씨방에서 살았다. 그러다 결국 내가 피씨방을 하나 차려버렸다. 그 시절 피씨방 하나만 차리면 떼돈을 벌었으니, 투자한다는 셈치고 차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 동네에서 2020년까지 쭉 살았으니 가장 장사가 잘 되는 곳을 이미 알고 있었다. 덕분에 절대 망하지 않을 자리에 차려놓고, 매일 저녁마다 거길 출근하였다. 노랑머리는 그때마다 나를 열심히도 쫓아다녔다. 연애도 안하고, 둘이서만 매일 밤을 지샜다. 그걸 거의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했다. 심지어 그렇게 1998년 크리스마스를 보낼 정도였다.

* * * * *

“어 준수야 이쪽이야.”

내가 피씨방에서 나오질 않자, 승철이 직접 근방으로 찾아왔고, 옆에는 희수도 와 있었다. 나는 이틀 동안 씻지도 않고 폐인 같은 몰골로 갔다가 깜짝 놀라서 멈춰 섰다.

“어, 희수도 있었네. 허허.”

두 사람의 눈에는 내가 뭔가를 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러는 것이 희수를 못 잊어서 그런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었다. 희수도 그렇고, 승철이도 아직까지 내게 감정이 좋지 않았다. 납치 사건 이후로 제대로 이야기를 한 적도 없으니 말이다.

“좀 씻고 그러지 그게 뭐야?”

“너 계속 그러고 살건 아니지? 몰골이 그게 뭐냐? 너답지 않게!”

희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 물론 연민이 아닌 동정이었지만.

“폐인처럼 살건 아니지요?”

내가 피씨방에서 사는 건 폐인이 되고자 하는 게 아니지만, 남의 눈에는 그저 폐인으로 보일 뿐이었다. 나중에 어찌어찌 한다는 걸 말할 수도 없고, 특히 유 사장과 절친인 승철의 앞에서는 더욱더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은 희수가 가진 저 동정어린 눈빛을 거두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폐인이 아니고, 돈을 너무 많이 버느라고 그러지. 미용사 하는 것보다 돈을 더 번다니까?”

실제로 피씨방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했다. 미용실에서 버는 돈을 넘어 설 정도로 말이다. 나는 희수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서 전화기를 들었다.

“야, 지금 당장 오늘 매상 들고 여기로 와.”

전화를 하자마자 노랑머리는 돈다발을 들고서 카페에 들어섰다. 그곳에 승철과 희수가 있는 것을 보자, 노랑머리의 눈빛이 촉촉해 졌다. 아마도 그는, 내가 희수를 아직까지 좋아하고 있는 걸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돈 자랑을 하려고 불렀을 거라고 믿고 있는 눈치였다.

“오늘 돈 엄청나게 벌었어요. 박 쌤!”

노랑머리는 승철이 보라는 듯 돈가방을 열어 보여줬다. 큰 가방임에도 만원짜리와 오천원, 천원짜리가 정돈되지 않은 채 가득 들어 있었다. 그걸 보여주면서 희수의 눈치를 살피는 노랑머리. 나는 그 모습이 왠지 너무 재밌었다.

“봐, 나 돈 버느라고 이러는 거니까. 니들은 내 걱정하지 말고 있어.”

승철은 내 돈을 보고 질투에 사로잡혔고, 희수는 그저 부러운 눈빛이었다.

“와, 대단하다. 돈을 쓸어담네.”

“걱정 마.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벌거니까.”

승철은 기분이 나쁘다는 듯 삐죽거렸다. 나는 승철을 이용해서 유 사장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려면, 지금이 가장 적절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돈을 버는 방법이 따로 있더라고. 피씨방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진짜 대단하십니다. 박 쌤.”

“그게 뭔데?”

희수가 묻자, 승철이 희수를 막아섰다.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그건 편법이지. 미용으로 돈을 벌어야 진짜 니돈 아니겠어?”

“그래, 이 짓도 조만간 그만 둘 생각이야.”

“빨리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너답지 않아.”

“응, 걱정해줘서 고맙다.”

사실 승철은 내 꼬라지를 희수에게 보여주려고 온 것이었다. 그게 이런 식으로 달라질 것은 예상하지 못하고 말이다.

내 의도는 단 하나였다. 유 사장이 내가 돈을 아주 많이 만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승철은 내 의도대로 유 사장에게 내 소식을 전했다. 이제 슬슬 유 사장에게 작업을 할 타이밍이 되어가고 있었다.

* * * * *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김설아는 연말 시상식 등으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김설아의 스케줄에 맞춰서 열심히 일을 했다. 우리는 그냥 일만 할 뿐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피씨방에 앉아있는데, 김설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박준수!”

“아, 설아씨?”

“너 빨리 나 데리러 와.”

“네?”

김설아가 술에 잔뜩 취해서는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어여쁜 그녀를 누가 채가기라도 할까봐 미친 듯이 차를 끌고 달려갔다. 원래 평소 3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 20분도 채 안 걸릴 정도로 말이다.

끼이익.

설아씨가 말했던 장소에 급정거를 하고서, 그녀의 흔적을 찾았지만 아무데도 없었다. 혹시나 누가 잡아갔을까봐 무서워서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설아씨! 설아씨!”

분명 김설아가 말했던 장소에 도착했는데, 김설아가 아무데도 없자 나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김설아!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그곳은 이태원이었지만, 골목길 구석으로 들어가면 깜깜해서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골목길 구석구석을 전부 찾아다니며 김설아를 외쳤지만, 어디에도 그녀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꼬박 돌아다니다가, 멈춰 섰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혹시나 잘 못 되었을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어딨는 거냐고…….”

이렇게 그녀가 사라질 줄 알았다면, 붙잡고 뽀뽀라도 할 걸…… 사랑한다고 말이라도 할 걸…… 좋아한다고 고백이라도 할 걸…… 그런 후회의 눈물이었다.

“박준수!”

김설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너무 기쁜 나머지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매니저의 차에서 내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설아씨!”

“이럴 줄 알았어. 나 없이는 못살 것 같은 얼굴로 그렇게…….”

“어디 아픈 거 아니죠? 무슨 일 있던 건 아니죠?”

“당신이 날 자꾸 밀어내서 아픈 거지!”

김설아가 삐진 얼굴로 나를 보며 말한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표정이 자꾸 나를 미치게 만든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대한민국에 잘못하는 건데…….

“사랑해요.”

“칫.”

나도 모르게 그녀를 꼬옥 안아버렸다.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 그녀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해도 되요?”

“응?”

“키스.”

“멍충이.”

나는 그녀의 입술을 훔치고 말았다. 내 이성으로 막을 수 없는 상태였다. 이미 그녀 없이는 못 사는 상태까지 가버렸기에, 더 참을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회귀를 자주 한 덕에 키스도 잘한다는 것이었다.

김설아는 내가 목숨을 걸고 자기를 지켜준 뒤로 내게 향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고 하였다. 세상에 자신을 그토록 사랑해 줄 사람은 둘도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자기를 밀어냈음에도 마음을 거둘 수 없었고, 나를 잡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한 짓이었다고 하였다.

그녀가 그래 준 것이 두고두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가 내 여자친구가 된 것이다. 평생 고마운 일이지. 김태희, 전지현, 김희선 남편이 부럽지 않다구!

그렇게 김설아는 내 여자가 되었다. 회귀하기 전의 나로서는 꿈과 같은 일이었다. 연예인의 연예인이라고 불리는 그 김설아가 내 여자가 되었으니, 세상 모두를 얻은 기분이었다.

다행히 김설아 매니저와 내가 평소 친하게 지냈던 터라,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연애를 할 수 있었다. 행복한 연애 후 피씨방에 가고, 다시 미용실에 가는 일상이 계속되던 중,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저는 김설아씨 팬입니다. 꼭 한번 만나 뵙고 싶네요.”

라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오재훈 검사였다. 그는 2021년 가장 핫한 대선주자가 되는 바로 그 사람이다.

김설아는 내 품에 안겨서 그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불안하다. 이제 김설아를 놓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 되었다. 오재훈 검사에게 그녀를 빼앗길 수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대통령은 하기 힘들 것이니, 재벌이라도 빨리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 사장부터 손봐줘야 하겠다.

* * * * *

댕, 댕, 댕.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1998년이 가고 1999년이 오는 그 순간에도 나와 노랑머리는 피씨방에서 살았다. 한 원장과 이사장이 와서 난리를 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을 계속 했다. 바로 (린easy) 라는 게임을 그토록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알바생까지 동원하여 린easy를 하였고, 결국 게임 속 최고 레벨을 달성했다. 거기다 나는 린easy가 어떤 식으로 업데이트를 하는지 다 알고 있어서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었다. 결국 게임 속 머니가 최고조에 달했고, 그제야 둘은 게임을 접기로 하였다.

“아니, 이럴 거면 왜 그렇게 죽도록 한 거에요? 아니 나는 정모도 나가려고 했는데! 왜 날 이런걸 알려줘서 그래요.”

노랑머리는 게임을 접고 싶지 않은 듯 징징대고 있었다.

“이래서 내가 각서를 받은 거거든.”

노랑머리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인생게임 어쩌고 하며 푹 빠져서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호에게 처음에 각서를 받은 거다. 딱 원하는 만큼만 하고 접기 위해서 말이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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