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두 번째 조력자를 사수하라(2)
“왜 분장팀이 개인 심부름을 하죠?”
“아니, 난 괜찮아요.”
“내가 따로 쓰는 애거든요? 당신이 뭔데 개입이지?”
“따로 쓰는 애? 아니, 이 사람이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인데 당신 심부름이나 하냐구요?”
류사희는 순간 눈물까지 흘릴 뻔 하였다. 지금까지 저런 말을 해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윤호준도 최고라고 해주긴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녀처럼 일만 시키는 중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애인이지만, 시녀 같은 존재로 살아가던 중 나의 말을 들었으니 감동할 수밖에.
“당신 뭔데 나한테 시비야? 사희한테 관심 있어?”
“네, 관심 있다면요?”
물론 사희에게 개인적인 관심은 없지만, 일적인 관심은 아주 많았다. 류사희는 내 말에 가슴이 살짝 떨리긴 했다고 한다. 아주 잠깐으로 끝났었지만.
“관심 꺼, 이 새끼야. 사희는 내거니까.”
“참나, 네네. 연애는 그쪽이랑 하시고요. 나는 류사희님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에 관심이 아주 많거든요.”
류사희에게 연애 어쩌고 들이대는 사람이야 전부터 많았다. 그들을 전부 쳐낸 것이 윤호준이다.
나는 아티스트로서의 류사희에게 관심을 가졌다고 하였고, 그 말은 연애 감정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자존감을 올려주었으니까.
“그래서, 뭐 어쩌라구?”
윤호준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사희는 자기 것이니 건들지 말라는 듯 끌고 갔다.
나는 그녀의 뒤에 대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사실대로 말하고 정식으로 그녀를 스카우트하기 위해서였다.
“류사희씨, 저 사실 여기 온 거 당신 만나러 온 겁니다. 당신을 파트너로 점찍었거든요.”
류사희는 흔들렸다. 내가 류사희의 능력을 인정해 준 뒤부터, 계속 흔들렸다. 윤호준에게 끌려가는 도중에도 몇 번이고 나를 쳐다보는 류사희. 조금만 더 당겨야 한다.
“제가 당신을 영국에 유학 보내드리겠습니다.”
나의 말을 들은 사희는 윤호준의 손을 뿌리치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분명 통했다.
그걸 본 윤호준이 나에게 달려와서 주먹을 날렸다.
“이 새끼가!”
“호준씨!!”
퍽, 퍽.
윤호준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도 같이 팰 수 있었지만 꾹 참고 손으로 그의 주먹을 막았다. 윤호준이 다시 주먹을 날렸지만 데미지가 그렇게 크진 않았다.
“니가 뭔데 내 여자를 보내? 얘는 그냥 내 옆에 있어야 한다고!”
“사희씨의 인생을 당신이 왜 좌지우지 합니까? 결혼할 것도 아니면서!”
“그건 내 마음이지. 결혼 할지 안할지 니가 어떻게 알아?”
“그럼 당장 스캔들 기사 나도 괜찮다는 거죠?”
나의 말을 들은 윤호준이 더 말을 하지 못하고 멈춰 섰다. 윤호준은 그때 당시 대한민국 탑스타였다. 그런 그가 스캔들 기사가 난다는 것은, 인기가 떨어지는 일로 연결 될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일게 분장사와 스캔들이 난다면,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할거라는 그런 거지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류사희는 그냥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그건 당연히 안 되지!”
“왜? 상대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모두가 알게 하는 것이 왜 안 돼! 그게 진정한 사랑이야?”
“그것도 사랑이야!”
나는 윤호준의 진짜 속마음을 류사희가 알게 해서 그녀 스스로 윤호준을 떠나게 하려고 일부러 더 다그쳤다. 윤호준은 나의 유도에 이끌려서 속내를 전부 털어놓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데 그때, 류사희가 윤호준을 끌고 갔다.
“그만해, 됐어. 준수씨도 이제 그만해요.”
“류사희씨, 그 자식은 당신을 진심…….”
“아니, 아니야. 그만해. 당신이 뭘 알아? 난 그냥 이게 좋아요. 그 사람 옆에 있는 게 좋으니까 그만 가주세요.”
“류사희씨.”
류사희는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윤호준을 끌고 그냥 가버렸다. 아마도 윤호준에게 사랑 받는 것이 성공보다 더 좋거나, 아니면 버림받는 것이 두렵거나, 둘 중 하나로 보였다.
“이래서 사귀었구나, 승철이가 일부러 빼앗았네.”
나는 승철이 왜 류사희와 사귀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를 윤호준에게 떼어놓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 마음을 갖고 놀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승철보다 조금 딸리는 외모이니, 그런 식으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넘어야 할 산이 태산이로다.”
그때까지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구석에서 이상궁이 튀어나와서 말을 하였다. 내가 깜짝 놀라서 이상궁을 쳐다보자 이상궁이 피식 웃으며 말을 하였다.
“저 주인공 나부랭이님은 성격이 괴팍하여 얼마 안 되어서 스스로 망할 것이니, 그대는 부디 노여워 마시게나.”
“하하, 다 보셨어요?”
“거의 다 봤지. 드라마보다 더 재밌더만?”
이상궁은 가채를 머리에 올리고, 윗도리는 상궁 옷을 입고, 아랫도리는 아디다승 팬츠를 입고 서있었다. 그녀의 차림새와 말투는 기분이 상해있던 나를 웃게 해주었다.
“하하, 아방가르드한 차림새네요.”
“아방 뭐시기? 암튼 저 커플은 오래 못갈 테니 조금만 참았다가 다시 대시 해 보시구랴.”
“네, 그러죠.”
“저놈은 여자 없으면 못사는 타입이여. 사희 저것은 저놈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너무 몰라. 착해 빠져가지고. 쯧쯧.”
실제로 류사희가 유학을 가고 나서 윤호준의 열애 기사가 났었다. 그 상대는 탑스타로, 두 사람은 공개 연애를 2년 동안 유지했다가 헤어졌다.
막판에 헤어질 때 상대 여배우의 인기가 떨어진 상태였고, 그 때문에 윤호준이 그녀를 버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모두가 충격을 받았었다. 윤호준은 그 이후부터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상대 여배우의 인기는 급상승했었다.
그래. 두 사람을 먼저 만나게 해주면, 윤호준이 사희를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 어차피 둘이 사귈 거면 먼저 만나게 해줘도 되는 거지.”
“혼잣말은 집에 가서나 하시구랴. 그게 뭔 뜻인지 물어봐도 안 알려 줄 거지?”
“헉, 아직 안가셨어요?”
이상궁이 먼저 간 줄 알고 혼잣말을 한 것인데, 이상궁이 다 듣자 난감하여 식은땀이 났다. 이상궁은 그저 재밌다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상대 배우인 송은미와 윤호준을 만나게 할 작전에 들어갔다. 알아 본 바로는 영국의 그 아카데미가 조만간 마감을 할 거다. 한발 늦으면 1년이 밀릴 것이고, 그러면 여러 가지가 밀리면서 차질이 발생할 거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빨리 류사희를 설득해야만 한다.
* * * * *
송은미는 현재 부인천하와 비슷한 사극을 촬영 중에 있었다. 그 작품은 조만간 방송 될 것인데, 첫 장면부터 파격적인 노출을 감행한다고, 벌써부터 소문이 자자한 드라마였다.
송은미와 윤호준이 공개 연애를 할 당시에, 그 장면을 보고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장면을 직접 보게 한다면 어떨까? 아마 그 장면을 직접 본다면 류사희는 금방 잊게 될 것이다. 그 장면은 당시 유부남이었던 나도, 얼굴이 벌게졌을 정도니까.
나는 당장 인맥을 동원해서 그 장면을 촬영하는 날짜를 알아냈다. 그 날짜에 윤호준의 스케줄을 그 장소에서 하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당장 윤호준의 매니저를 섭외해야 한다.
윤호준이 매니저에게,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소리를 하였을 것이다. 덕분에 내가 직접 매니저를 만나는 것은 통하지 않을 것이니 다른 루트가 필요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이사장을 찾아갔다.
“매니저를 스카우트 하라고?”
“네. 그 매니저 능력 있는 매니저거든요. 스카우트 하시고 저랑 따로 좀 만나게 해 주세요.”
그 매니저는 2021년에도 그쪽 방면에서 활동을 하며, 매니저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가끔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다. 20년을 같은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이면 분명 좋은 사람이겠지.
“그래, 니 추천이면 더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지. 알았어, 연락 되는대로 너한테 연락하라고 할게.”
이사장은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매니저에게 윤호준의 정보를 들었다. 매니저는 크게 의심하지 않고 윤호준의 스케줄을 알려주었다.
“그러게 왜 윤호준을 그렇게 화나게 하셨어요. 그 형이 얼마나 질투가 많은데.”
“질투가 많으면 뭐 그런 식으로 여자를 대해도 된답니까? 그 사람은 여잘 너무 함부로 생각해요.”
“맞아요, 질투가 나면 잘해줘야지. 함부로 하긴 해요. 특히 사희씨에게는 더욱 그래요. 질투만 많은가 봐요. 하하.”
매니저가 마지막으로 한 말에 힌트를 얻은 나는 ‘그의 질투를 이용하면 된다.’ 라고 생각 하였다. 바로 류사희를 그 촬영장소에서 데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윤호준이 화를 내며 촬영장소에 쫓아갈 것이고, 그 파격 노출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장면을 찍는 순간은 못 볼 테지만, 가장 이쁜 모습으로 촬영에 임하는 송은미를 볼 것이니, 반하기에 충분하다. 그날에 둘이 서로 반하지 않는다고 해도, 후에 방송될 때 느끼는 감정이 더욱 달아오를 것이다. 유학에 갈 날짜에 맞춰서 헤어지면 된다.
* * * * *
“‘달빛에 가리워’에 합류하라구요?”
“그래요, 조만간 부인천하도 끝날 테니까. 시간 날 때만 와서 좀 봐줘요. 돈은 두 배로 준다니까?”
“아, 두 배나요? 왜 저를 그렇게까지…….”
“류사희씨 일 잘하잖아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뭘.”
“아, 그럼 내일 시간 되는데 그때 잠깐 들리겠습니다.”
“그래요. 2시 안에는 꼭 와야해요!”
내일 3시에는 문제의 그 씬이 촬영되는 날이다. 류사희가 최소 2시까지 그 곳에 오게만 해 준다면, 돈을 주겠다는 말로 드라마 분장팀 팀장을 매수했다. 물론 2배를 준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서면상으로 작성한 일도 없으니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다음날 2시, 류사희가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 촬영 현장에는 소식을 듣고 찾아 온 기자가 몇 명 있었고, 가 기자도 같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노출씬을 찍는다면서 기자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그래야 시청률이 오르니까. 여배우의 의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2021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류사희가 다른 촬영장에 간다는 말을 들은 윤호준은, 쿨하게 그녀를 보내준다고 하면서, 몰래 그 촬영장에 찾아왔다. 오늘 촬영이 없다면서 매니저까지 보내놓고, 혼자 몰래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쓰고 왔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를 알아보고도 아는 척을 안 할 뿐이었다. 결국 촬영장소에 윤호준이 왔다는 소식은 빠르게 전파되었다.
“뭐? 윤호준이 여길 왔다고? 목욕씬을 보러 왔다는 거야?”
“그런가 봐요.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히 변태스럽네요.”
“아니, 그게 뭔 변태야. 보고 싶으면 직접 만나자고 하면 될 것을.”
송은미는 전부터 윤호준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가끔씩 누가 이상형을 물어보면, 늘 윤호준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 말을 누군가 전해주고, 그래서 관심을 갖고 온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송은미의 가슴이 뛰고 있었다.
윤호준은 류사희를 찾으러 돌아다녔지만, 어느 곳에도 찾을 수 없었다. 분장팀 팀장이 류사희를 사무실에서 기다리라고 해놓고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윤호준은 촬영장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다가 결국 송은미의 목욕씬 촬영장까지 들어가게 된다.
“뭐야? 저거 송은미 아냐?”
윤호준은 송은미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