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두 번째 조력자를 사수하라(3)
“아우 씨, 대체 어딜 간 거야? 여기 오긴 한 거야?”
나는 그 시각 윤호준이 그곳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촬영장에 들어서자마자 가 기자에게 다가갔다. 가 기자는 작은 신문사라서 몰래 숨어서 보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서 엄청 멀구만. 그게 찍혀요?”
가 기자는 카메라 렌즈를 돌려가며 열심히 목욕 장면을 찍는 중이었다.
“어, 박준수. 나 좀 바쁘네.”
“그거 그만 찍고 윤호준을 찍으셔야지 가 기자님.”
가 기자는 하마터면 카메라가 떨어지는 것을 겨우 붙잡고서,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는 가 기자 특유의 정성스러운 썩은 미소를 흉내 내며, 건너편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는 윤호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물론 다른 기자들은 안보이게 몰래 말이다.
“저거 윤호준이야.”
“진짜지? 거짓말이면 죽는다?”
“진짜야, 나가면 그놈 개인차도 있어.”
가 기자는 정성스럽게 비웃으며 윤호준을 찍기 시작했다. 윤호준의 모습을 찍었으니 이제 그의 개인 차량을 찍으면 게임 오버다. 가 기자는 신이 나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야, 이거 특종인데?”
윤호준은 자신이 사진 찍힌 것도 모르고, 송은미의 자태를 감상하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매력에 풍덩 빠진 듯, 몽롱한 표정을 하고서 말이다.
“이제 원수 갚은 거다? 가 기자님.”
“비켜봐, 사진 좀 찍게.”
나는 가 기자의 활약상을 충분히 감상하고서 촬영장을 빠져나갔다. 가 기자는 정성스러운 썩소를 날려가며 그렇게 미친 듯 찍어대고 있었다.
* * * * *
“이게 뭐야?! 어떤 ### 새끼가 이따위 기사를 냈어?”
“아니 무슨 삼류 주간지가 오버했어요. 말도 안 되잖아 이건.”
가기자의 연예전문 주간지에서 윤호준의 스캔들 기사가 났고, 그걸 본 윤호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씩씩대며 말했다. 윤호준의 매니저도 화가 나서 더 큰 소리로 대꾸했다.
두 사람이 탄 차는 곧 촬영 현장에 도착할 것이다.
“그니까요. 어떻게 류사희씨가 아니고, 송은미씨랑 스캔들이 나냐구요. 정정기사 낼까요? 류사희씨랑 사귄다구요.”
윤호준은 매니저의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류사희와 스캔들이 나는 건 자신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송은미랑 스캔들이 난다면 자신의 이미지에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건 송은미에게 실례되는 일이 될 테니, 둘 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응? 굳이 그럴 필요는 없고.”
“아니, 그러면 거기 간 이유를 대기가 애매하거든요. 거기 왜 왔냐고 난리에요. 변태냐고!”
“뭐? 변태? 야, 내가 뭐 아쉬울 게 있다고 변태짓을 하겠냐?”
“아우, 그럼 어쩌시게요? 그냥 사희씨랑…….”
“야! 걘 그냥 애인 겸 시녀야. 걔가 나한테 가당키나 하냐?”
윤호준은 류사희를 정말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지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성격 파탄자가, 그의 본 모습이다.
“네? 아니 무슨 그런 말이 있어요? 너무하네요.”
“어쭈? 야, 따지고 보면 니도 내 하인이나 다름없어. 하하, 니들 하녀, 하인끼리 서로 편들어주고 그러는 거야? 웃기다.”
“형! 난 진짜 형 좋아했는데!”
“야, 그런 새끼가 날 버리고 다른 데를 가냐? 난 가는 사람 안 말려. 가고나면 어차피 내 하인이었던 거니까 나중에 꼬박꼬박 인사나 똑바로 하라고.”
매니저는 윤호준의 경우 없는 말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 그의 손에는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윤호준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매니저는 내가 윤호준과의 일을 녹음해 달라고 말했을 때, 사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윤호준과 일하면서 정을 쌓고 있었기에, 그를 배신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오늘 녹음한 것은 왠지 나에게 전달하고 싶어졌다.
* * * * *
(윤호준, 촬영 장소에 온 이유가 무엇인가?)
가 기자의 기사를 바탕으로, 다른 매체에서 윤호준의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위의 기사는 아주 신사적인 제목으로, 몇몇 매체에서는 윤호준을 진짜 변태라고 느낄만한 머리기사를 내보냈다.
“윤호준 진짜 변태인가? 거긴 대체 왜 온 걸까요?
“모르지 뭐.”
송은미가 촬영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옆에 온 조연배우가 쫑알대며 떠들었다. 송은미는 사실 윤호준이 자기를 보러 온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연락이 오면 그와 사귀는 것을 고려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졸지에 변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송은미는 윤호준이 망가지는 것이 너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걔랑 나랑 어울리니?”
“윤호준이랑 언니요? 어울리긴 하는데……, 설마? 둘이 진짜 사귀어요?”
“어? 아니, 그게 아니고….”
“만약 언니랑 사귄다고 기사만 나면, 다 해결 되는 건데 말이죠. 윤호준 변태 사건이요.”
“야, 말이 심하다. 변태사건이라니.”
“어머, 둘이 진짜 사귀는 거 아냐?”
그때, 분장실로 일간지 기자가 불쑥 들어왔다. 두 사람이 놀라서 보자, 기자가 송은미에게 녹음기를 내밀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막간 스포츠 오순철 기자입니다. 방금 하신 말씀이 사실인가요?”
“뭐요?”
“아니아니, 그거 제가 말한 건데요? 제가 인터뷰 할까요?”
조연배우가 신이 나서 말했다. 이런 일로 인터뷰하면 유명해질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오 기자는 송은미가 한 말이 아닌 것을 알고 힘이 빠져버렸다. “아, 사실이 아니군요.”
오 기자는 크게 실망하며 녹음기를 치웠다. 송은미는 잠시 생각을 하였다. 윤호준이 정말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고, 그 때문에 이런 고초를 치루는 것이라면, 그를 구해줄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말이다.
“사실입니다. 저랑 사귀는 사이라서, 너무 많이 노출할까봐 걱정되어서 온 것입니다.”
“언니?”
“정말이죠?!”
송은미의 말에 오 기자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특종을 제대로 잡았다는 생각에서였다.
(송은미, 윤호준의 여자였다!)
송은미의 말을 들은 기자는 빛의 속도로 달려가서 기사를 작성하고 내보냈다. 그 기자의 기사를 바탕으로 다른 매체에서도 앞다투어 열애기사를 내보내고, 결국 방송국에서도 송은미를 찾아왔다.
“연예가 소식 홍수발입니다. 윤호준씨와 연인이시라는게 사실인지 인터뷰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뇨, 제가 좀 바빠서 나중에 연락 주세요.”
송은미는 예상보다 빠른 반응에 지레 겁을 먹고, 인터뷰를 피하고 다녔다. 윤호준의 의사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라, 매니저와 회사 사장도 열이 잔뜩 올라 난리를 쳤다.
이 모든 일이 반나절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 * * * *
“송은미, 윤호준 사귄대요!”
노랑머리가 미용실에 있는 나에게 뛰어오며 말했다. 나는 일하는 중이라 노랑머리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화를 냈다.
“야, 왜 뛰어다녀! 손님 있는데.”
노랑머리는 나가 화를 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흥분한 상태를 가라앉히지 못하며 떠들어댔다.
“송은미가 윤호준이 자기 남자라고 선언했다니까요?”
“뭐? 벌써?”
송은미가 워낙 회귀 전에도 먼저 인터뷰하고, 먼저 고백하고 그랬었다. 그런 대담한 성격이니 그럴 거라고 예상을 하고 짠 시나리오지만, 이렇게 빨리 인정(?)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적어도 하루는 지나고 할 줄 알았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송은미랑 윤호준 이야기로 난리잖아요.”
아침부터 난리인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걸 연출한 게 나니까.
“그래서? 윤호준은 뭐라고 하든?”
“윤호준은 아직 아무 이야기가 없던데요?”
윤호준은 지금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변태에서 열애설까지 정신없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걸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맞다고 할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거기다가 가장 중요하고 문제인 건, 그가 류사희에게 어떤 변명을 할 것인가? 그거였다. 그가 하는 변명에 따라 나의 작전도 달려져야 하니까.
“너 촬영장 가고 싶다고 했지?”
“네! 거기 가시게요?”
“어, 오늘은 잠깐 불구경을 하려고.”
“불구경? 와 기대된다.”
“아마 재밌을 거야.”
나는 촬영장에서 펼쳐질 환상의 풍경을 생각하며, 혼자 피식거리고 웃었다.
* * * * *
“아니야 사희야. 그게 아니라니까?”
“뭐가 아니야? 기사도 다 나고,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된 거잖아!”
윤호준은 류사희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었다. 이 일을 핑계로 그냥 끝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아직 류사희를 소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최소 드라마라도 끝내놓고 헤어지려는 게 그의 목적이었고, 또 할 수 있다면 양다리를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는 그냥 일종의 비즈니스고, 니가 진짜 내 여자잖아.”
“그게 뭐야? 양다리잖아!”
“아니지, 사랑은 하나라니까?”
사실 윤호준은, 송은미의 기사가 나오기 전에 그녀의 의중을 이미 전해들은 터였다. 그녀와 사귀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목욕 씬 촬영 날 이미 그녀에게 빠진 상태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녀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하고, 나서서 그를 변태 스캔들에서 구제해 주었는데, 그녀를 마다할 이유가 없질 않은가?
“그렇게 예쁜 여자를 누가 마다하냐고?”
“아니, 그건 기사를 막으려고 그런 거잖아! 넌 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남의 촬영장을 훔쳐보는 변태가 되길 바라니?”
“그건 아니지만, 난 뭐가 되냐고? 불륜 같잖아! 내가 원래 여자친구인데.”
“그래, 니가 원래 여자친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윤호준은 류사희를 놓치기 싫었다. 사랑은 아니고, 마누라가 잘되면 자길 무시할까봐 겁먹는 남편의 심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서 류사희를 유학 보내는 것도 싫었고, 그녀가 잘되는 것은 더 싫었다.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자기가 거두어주었다는 우월감에서 빠져나오기 싫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넌, 내 옆에만 있어.”
나는 분장실 옆에 숨어서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나가서 윤호준을 실컷 패주고 싶었지만, 그건 류사희가 직접 하게 양보하고, 다음 계획부터 짜야했다. 윤호준의 진짜 속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 * * * *
분장실 근처, 윤호준의 차에 우울한 얼굴을 한 매니저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차에 불쑥 들어가 앉았다. 매니저는 윤호준이 들어 온 줄로 알고 냅다 소리 질렀다.
“지금까지 류사희씨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사귄 겁니까? 그럴 거면 그냥 헤어져요!”
“윤호준이 나쁜 놈인 걸 이제 아셨나 보네요.”
“아, 준수씨! 전 그냥 호준씬줄 알고.”
“괜찮아요. 전 그놈이 그런 놈인지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전 몰랐……, 아니 그게 아니고.”
매니저는 끝까지 윤호준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가 어떤 놈이건, 그 놈 때문에 돈을 번건 사실이니까.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녹음 말이에요.”
“녹음하긴 했는데….”
매니저는 바로 전의 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녹음본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걸 들고 전부 들어보았지만, 매니저가 말한 류사희를 그런 식으로 생각했냐? 며 물은 (그런 식으로)에 관한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부분이 따로 있고, 이걸 다 녹음 했다면 그 부분도 녹음이 되었을 거란 걸 짐작하고는 매니저를 다그쳤다.
“다음 부분도 내놓으시죠? 류사희씨가 그놈의 의중을 모르고 계속해서 농락당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실 겁니까?”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