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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54화 (54/200)

54화. 난 소중하니까요(1)

“아니, 제가 그쪽 회사로 옮기기 전이니까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한 여자를 농락하는 걸 두고 보는 게 유종의 미랍니까?”

나는 매니저가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그의 측은지심을 자극하기 위해 더 크게 소리쳤다.

* * * * *

철썩.

류사희가 촬영을 마치고 차에 다가오던 윤호준의 따귀를 사정없이 갈겼다.

매니저가 녹음한 부분을 듣고 난 뒤,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있다가, 윤호준을 보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어쩔 수 없이 손이 먼저 나간 것이다.

“*같은 자식! 애인겸 시녀라고?”

“뭐? 이게 겁도 없이!”

윤호준이 놀라며 류사희를 쳐다보더니, 급기야 자신의 손을 들어 류사희의 따귀를 휘갈겼다.

턱.

나는 윤호준의 나쁜 손을 잡아채서는 팔을 꺾어 버렸다.

“아악, 놔 이 새끼야.”

“여자를! 그것도 따귀를 함부로 때리고! 너 안 되겠다!”

나는 윤호준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철썩.

그때, 류사희가 자신의 따귀를 갈기려던 윤호준에게 화가 난 나머지, 그의 양쪽 얼굴을 번갈아가며 갈겨댔다. 윤호준은 나에게 잡혀서 힘없이 그대로 맞아야만 했다.

“이건 애인이 주는 따귀고.”

철썩.

“이건 시녀가 주는 거다!”

“야, 미쳤어?”

“그래, 미쳤다. 미쳤어!”

“너 가만 안 둬! 매니저! 매니저 어디 갔어?”

윤호준이 혼자 열받아서 발광을 하자, 지켜보고만 있던 노랑머리가 슬쩍 다가와서 윤호준의 멱살을 쥐었다. 매니저는 그걸 뒤에서 보고도 슬그머니 뒤로 빠지더니 급기야 촬영장을 빠져나갔다. 다행인지 그 근방에 있던 촬영팀도 이미 철수하고 없었다.

“여자는 나도 안 때린다, 양아치 새끼야.”

윤호준은 노랑머리의 섬뜩한 눈빛을 보고서, 발광을 멈추고 얌전한 강아지가 되었다. 노랑머리가 윤호준의 멱살을 좀 더 세게 쥐고, 나는 윤호준의 머리를 움켜쥐고 흔들었다. 윤호준은 남자 두 명의 손길에 놀라서 눈을 감았다.

“사, 살려줘.”

나는 윤호준의 머리를 때리려다가, 꾹 참고서 주먹을 펴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하게 살자 응?”

갑작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자, 윤호준이 실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도망을 치려고 주변을 살피다 뒤에 떡하니 버티고 선 노랑머리를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으고 싹싹 빌었다.

“네, 착……착하게 살게요.”

류사희는 그 모습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멋지다고 생각했던 그의 눈이 비겁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시원하게 뻗은 그의 콧대가 살기 위해 헐떡이며 벌렁대고 있었다. 류사희를 만지던 그의 손은 파리처럼 싹싹 빌고 있었고, 사랑한다고 말하던 입술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바보 같다.”

류사희는 그의 진짜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말했다. 한때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자신이 너무 싫어서.

나가 윤호준을 곱게 집에 보내고 류사희의 앞에 섰다. 류사희는 나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똥물에서 꺼내준 셈이니, 생명의 은인과도 같이 느껴졌다.

“고마워요. 정말.”

류사희는 잠시 생각을 정리 하였다. 갑작스럽게 만난 박준수라는 남자가 제의한 유학길, 남자친구의 반대와 바람, 이별 등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온 지난 며칠은 그녀 인생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이제는 결정을 해야만 한다. 안주할 것인가? 도전할 것인가?

“힘들죠?”

나는 류사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모든 건 그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하였지만, 지금 가장 상처받은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그녀다. 사실상 이 일은 류사희를 위한 일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던 것을 깨달았다. 판은 내가 깔았지만 결정은 류사희가 해야 하고, 강요는 하지 말아야 한다. 어디까지나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니까.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좀 쉬어요.”

나는 류사희의 선택을 기다려주기로 하고서 돌아섰다. 언젠가는 내가 내민 손을 잡아 주리라고 믿으며 말이다.

“저… 유학 보내주기로 한 거, 아직까지 유효한가요?”

류사희는 지금 모든 것을 잊기 위해서는, 유학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하였다. 당장 다른 것에 몰두하고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오늘의 일을 생각하며 웃게 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지금까지 보아 온 박준수라는 사람은 믿어도 될 사람으로 보였으니, 믿자’ 그렇게.

“당연히 유효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보내주세요! 당장.”

이제 되었다! 그녀만 얻으면 미용실은 문제없다. 그녀에게 맡기고 사업을 시작해도 될 것이다. 그만큼 믿을만한 존재니까.

이제 곧 오재훈 검사가 나의 그녀인 김설아에게 찾아 갈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몇 달 지나지 않아서 열애 기사가 났으니 말이다.

급하다. 오재훈 검사를 이길 수 있는 남자가 되어야 한다.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든 이상 뺏기지 않을 것이다.

* * * * *

“근데 말이죠. 나는 류사희 남자친구가 바람을 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저런 싸가지가 재수는 없긴 해도 막 함부로 바람피지는 않던데.”

“글쎄 간접적인 바람도 바람이기는 하지. 난 그렇게 생각해.”

노랑머리는 잠시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과거 자신을 감옥에 보냈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내가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일도 어쩌면 조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내가 머리는 그렇게 좋지 않아도 촉은 좋거든요. 전에 여자친구 아시죠? 그 싸가지.”

“아, 은서.”

나는 이은서가 떠오르자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남자친구까지 이용해서 자신을 혼내주려고 했던 이은서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걔가 그랬거든요. 박 쌤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보통사람이 아닐 수가 있나.”

나는 뜨끔했다. 보통 사람이 아님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먼 미래에서 과거로 회귀한 것 자체가 일단은 보통 사람이 아니니 이은서의 촉도 보통은 아니다.

“내 생각이긴 한데, 쌤이 어떤 응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박 쌤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잖아요. 나한테도 그랬고, 유 사장에게도 그랬고.”

노랑머리는 내가 능력을 이용해서 몇 명을 혼내주는 모습을 직접 목도했고, 그 때문에 더 나를 신뢰하기도 했지만 무섭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특히 그렇게 막강해 보였던 유 사장이 망가지는 꼴을 보고, 느낀 바가 적지 않았다.

“난 진짜 쓰레기에게만 그렇게 해. 너는 절대 그런 놈이 아닌 걸 알았으니까 내가 믿는 거고, 난 한번 믿은 사람은 두 번 다시 의심하지 않아. 앞으로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난 그걸 한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도 그럴 거거든요. 나도 한번 믿은 사람은 절대 의심하지 않아요. 무식한 만큼 변하지 않거든요, 나란 놈은. 그니까 류사희 남자친구 말이죠. 공작 한 거 맞죠?”

“그래, 사실대로 말할게. 공작한 거 맞고, 내 의지대로 모든 일이 진행된 것도 맞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안심이네요.”

“응?”

노랑머리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노랑머리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두려움이 눈빛에 어려 있었다. 노랑머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노랑머리가 떨고 있는 것을 눈치 채고 대체 왜 그러는지 궁금해졌다.

“이은서가 조만간 출소 할 거라고 하더라구요. 걔 엄청 많이 변했어요. 아마 보면 못 알아볼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구요.”

“아, 그렇구나.”

노랑머리가 떨고 있다. 그 대찬 놈이 무엇이 두려운지 떨고 있다. 나는 그의 두려움이 나와도 직결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좀 더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 * * * *

쨍.

나와 김 실장의 소주잔이 맑은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류사희 말야. 정말 그렇게 큰돈을 주고 보내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거지?”

“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두고 보시라니까요.”

“그래, 후회해봐야 뭐하겠어. 이미 보내버렸는데 말이지.”

“돈은 잘 벌리고 있죠?”

“응, 덕분에 내가 재벌이 될 것 같다니까? 돈이 돈 같지가 않아. 휴지로 써도 아깝지 않을 정도야.”

김 실장의 사업은 나의 조언에 따라 그 해 나온 가장 좋은 물건을 선점하고 있었다. 1999년도에는 작년에 유행했던 블루블랙을 한 모발이 하나둘 밝은 갈색을 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블랙빼기 열풍이 부는 한 해였다. 그를 대비해서 나는 로#알의 염색약을 선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로#얄 회사에는 연락을 해보셨어요?”

“어. 해봤는데, 우리랑은 손을 안 잡겠다던데?”

“아니, 왜? 우리가 가장 크잖아요.”

“우리가 시#이도랑 독점 계약한 걸 알고 안 좋아하는 거 같더라구.”

로#얄은 당시 최고의 헤어제품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들의 뒤를 바짝 쫓아가는 것이 시#이도였다. 그 시#이도랑 독점 계약을 한 곳이니,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계약도 안한다고 하는 것은 거대 기업이 할 짓이 아니었다. 아마도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른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런 걸로 계약을 안 하고 그럴 회사가 아니잖아요.”

“그래, 근데 그게 뭔지 알 수 있어야지.”

김 실장은 이번에도 나의 조언을 바라는 눈치였다. 사실상 내가 없었다면 동네 작은 재료상에 그칠 거였으니, 내가 회사의 9할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 기술적인 문제였을 겁니다. 로#얄은 헤어를 통합적으로 하는 국내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아요. 염색은 염색 전문가가 있어야 하고, 커트는 커트를 끝내주게 하는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게, 외국 기업들의 생각이니까요.”

외국 기업은 물론, 외국 헤어 전문가들은 향후 각 기술의 전문가를 분업해서 관리하고 성장시키는 시스템으로 변할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미용사가 헤어는 물론 피부와 손톱까지 전부 맡아서 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어 하는 외국인들이 많았으니까. 향후에는 이런 부분이 전부 독립되긴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전부 미용사의 몫이었다.

“그럼 기술로 어필하는 게 가장 우선이어야겠네. 전에 매직 기술처럼 말이야.”

“네, 조만간 그쪽 관계자와 만나봐야겠어요. 프랑스어 통역사도 좀 구해주시구요.”

“어? 아 그러네. 근데 프랑스어 전문가는 진짜 구하기가 어려울 텐데.”

“이다두씨 있잖아요.”

당시에는 영어 통역사를 구하는 것에 비해 프랑스어 통역사를 구하는 것이 조금 어려운 시기였다. 마침 이다두라는 프랑스 여자가 한국말을 아주 잘 하니 그 사람을 만나서 부탁하면 될 것 같았다.

“아, 근데 너무 시끄럽지 않을까?”

“통역만 하면 되는데요, 뭘.”

“그래, 한번 연락해 볼게.”

김 실장은 그길로 이다두씨의 연락처를 알아보고 그녀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그쪽 사정을 모르는 김 실장이 너무 큰돈을 제시했기 때문에 이다두씨는 두말 않고 김 실장의 제의를 승낙했다.

* * * * *

“울라라, 최선을 다해 볼게요.”

“네, 하하. 목소리만 쪼금 줄여주시면 될 겁니다.”

“울랄라, 그게 가장 어려훈거야요.”

이다두씨는 특유의 오버스러운 표정을 하며 앉아있고, 나와 김 실장은 조금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똑똑.

잠시 후, 웬 한국인 남성이 들어왔다. 우리는 프랑스인이 아닌 한국 사람이 들어온 것을 보고 놀랐다.

“안녕하세요. 로#얄 한국지사 담당을 맡고 있는 황영호라고 합니다. 절 찾으셨다고요?”

“프레데릭씨가 아니고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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