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난 소중하니까요(2)
“아 제 프랑스 이름이 프레데릭입니다.”
“울라라, 난 뭐하지?”
나와 김 실장은 이다두씨를 부르려고 쓴 돈이 갑자기 아까워졌다. 거기다 꼴을 보아하니 이다두씨가 중간 중간 계속 이야기에 끼어들 것 같았다.
프레데릭은 이다두씨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이다두씨도 오셨네요! 팬이에요!”
“울라라, 싸인 백장 해드릴까? 이거 꼭 계약해야 한다고 내가 왔는데, 나 뭐하지? 노래라도 하까?”
김 실장이 인상을 팍 쓰며 이다두씨를 쳐다보았지만, 이다두씨는 전혀 개의치 않고 떠들었다. 그러자 프레데릭이 바쁜 척을 하며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제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어느 분이 사장님이시죠?”
프레데릭의 말에 내가 김 실장의 등을 떠밀었다. 김 실장은 얼떨결에 프레데릭의 코앞에 서서는 악수를 청했다.
“저, 접니다. 반갑습니다. 광명사 김영주 입니다.”
“네, 전에 전화 통화하신 분이군요? 그때 직원이 충분히 설명을 한 걸로 아는데요.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는지요?”
“아니 저희가 전국적으로 유통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고.”
“그래서 싫다는 것입니다.”
“네?”
프레데릭의 말에 나와 김 실장은 물론 이다두씨까지 놀라버렸다.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저희 제품은 전국의 미용실에서 누구나 사용하는 제품이 아닙니다. 가장 최상의 기술을 가진 디자이너에게 선택적으로 사용하게 하여, 제품의 질을 떨어지지 않게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저희와 거래를 하셔야죠.”
나는 로#얄 측의 반응을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당당하게 대답했다. 프레데릭 측도 나의 답변이 흥미로운 듯 쳐다보았다.
“그 근거는요?”
“울라라, 재밌어지네.”
“당신들이 원하는 컬러를 가장 잘 구현해내는 사람이 바로 저니까요.”
“자신 있습니까? 우리는 어설픈 건 인정하지 않습니다.”
“네, 자신 있습니다.”
프레데릭은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으로는 거래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내가 김 실장의 손을 꼭 잡고, 물었다.
“저 믿으시죠?”
“그럼, 믿지.”
김 실장의 대답을 들은 나는 숨을 크게 쉬고는 프레데릭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또 전국적으로 가장 헤어컬러를 잘하는 미용실을 찾아드리겠습니다.”
김 실장은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좀 전에 나를 믿는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걸 하실 수 있으신가요?”
“네. 그건 저희만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게 무엇인지 알려줄 수는 없고요. 일주일 내로 염색을 가장 잘하는 미용실의 통계를 작성해서 드릴 수 있습니다.”
2021년이야 인터넷에 검색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겠지만, 1999년은 집에 컴퓨터 하나도 구비하기 어렵던 시절이었고, 컴퓨터가 집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데이터가 검색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정보가 재산이 되던 그런 시대인 것이다.
“가져오신 통계가 정확한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가져온 통계에 해당하는 미용실에 직접 가서 확인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본인이나 다른 사람의 머리를 맡겨본다던지 그런 것 말이죠.”
나는 자신 있는 말투로 말을 하였다. 프레데릭은 나의 말투와 표정 등에서 확신에 찬 감정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를 믿어보기로 하였다.
“그럼, 그럽시다. 일주일 후 통계를 가져오시면 계약을 하는 걸로 하죠. 만약 통계에 정확도가 떨어진다면 계약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그쪽이랑은 거래를 하지 않을 겁니다. 아시겠죠?”
“그럼, 저도 통계가 맞는다는 가정 하에 조건을 제시하겠습니다.”
프레데릭은 나의 배짱에 감탄하며 웃었다. 김 실장과 이다두도 나의 배짱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울라라, 저분 좀 멋지네요.”
“하하, 말씀하시죠.”
“만약에 제가 가져온 통계가 맞는다면, 계약 시 제게 유리한 조건을 하나 추가하는 걸로 하죠.”
프레데릭은 잠시 망설였지만, 내가 정말 맞는 통계를 가져올지도 미지수고, 또한 이 거래가 서면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기에 걱정을 접어두고 말했다. 나중에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하면 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하죠.”
그렇게 프레데릭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는데, 이다두씨가 주머니에서 카세트를 꺼내들었다.
“울라라, 내가 한쿡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가끔 녹음하는 게 습관인데요. 오늘 대화도 녹음했거든요.”
이다두씨는 그 테이프를 꺼내서 건넸다. 나는 뜻밖의 수확에 기뻐하며 테이프를 받아 들었다. 프레데릭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오늘 나 부른 돈은 그걸로 해도 되죠?”
“물론입니다, 이다두씨.”
“울랄라, 울랄라.”
나와 이다두씨, 김 실장은 환하게 웃으며 그곳을 나갔고, 프레데릭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그곳을 빠져나갔다.
* * * * *
“염색을 잘하는 미용실을 일주일 안에 무슨 수로 찾아낸다는 거야?”
김 실장은 사무실을 나와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참아왔던 질문을 쏟아내었다. 나는 예상을 한 듯 덤덤하게 듣고만 있었다. 이다두씨도 나의 의중이 궁금한지 수다를 떨지 않고 있었다.
“전국에 있는 미용실을 전부 다녀오라는 말은 아니겠지??”
“울랄라, 발에 땀이 나겠네.”
“어느 정도는 돌아다녀야겠죠. 하지만 전국을 들쑤시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그 이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김 실장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지만 참고 따라왔다.
띵동.
“울랄라, 저는 이만 바빠서 갈게요.”
“네, 가보세요.”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이다두씨가 인사를 하고 가자, 그제야 내가 입을 열었다.
“염색을 잘하는 미용실이라면 염색약을 엄청 소비 하겠죠?”
염색을 잘하는 미용실은 많은 염색약을 소비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약이 많이 소모되는 미용실이라면 최소 염색을 잘한다는 반증이고, 또 잘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앞으로 잘 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미용실이라고 하겠다.
“그렇지. 오, 그럼 그 수많은 염색약의 유통을 알아봐야 하는 거야? 일주일 만에? 나보고? 세상에나….”
“염색약이 종류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알아보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니까…, 나한테 너무 많은걸 시키면 곤란하다고.”
“염색약은 종류가 많지만 탈색약은 종류나, 생산, 유통하는 데가 많지 않다고 들었는데 맞죠?”
“그렇지, 공장 하나랑 유통 하나만 알아내면 전국적인 소비 형태를 알 수 있을 테지만, 염색이 아닌 탈색인데?”
“염색을 잘 하려면 탈색을 마스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블루블랙 때문에 탈색의 중요성을 다들 알고 깨달았을 테고요.”
그때, 전국적으로 블루블랙이라는 컬러가 유행하면서 검은색으로 염색하는 사람이 많았었다. 그 전까지는 헤어칼라가 유행을 하는 일이 많지 않았었다. 그냥 자연스러운 컬러만 하던 시절이 끝나고, 처음으로 전국적인 유행을 한 컬러가 바로 블루블랙이고 그 후유증이 탈색이다.
“블루블랙에서 다른 색으로 변하려면 무조건 거쳐야 하는 게 탈색이죠. 즉 탈색약이 염색의 가장 기본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면 염색약의 유통과 탈색약의 유통은 같은 길을 가는 거고요.”
“오, 그렇구만. 탈색약의 유통만 캐내면 염색약을 따로 알아내지 않아도 되겠어.”
“알았으면 움직이자구요. 지금!”
“그래, 가보자.”
김 실장은 막혔던 변기가 뚫린 것 마냥, 시원하다는 표정을 하고서 서둘러 뛰어갔다. 나는 웃으며 쫓아가다가, 경비실에서 경비가 보고 있는 드라마를 보고 멈춰 섰다. 마침 다영이 나오는 드라마를 경비가 열심히 보는 중이었다. 드라마 속 다영이 꼭 나를 보며 말하는 것 같았다.
“가지 마. 가지 말라고!”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드라마 속 다영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나를 덮쳐왔지만, 늦었다.
“준수씨. 뭐해? 빨리 오라고!”
“아, 네!”
내가 뛰어가자, 브라운관 안에 있는 다영이 마치 나를 바라보며 울고 있는 것 같았다.
* * * * *
“여기야,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이 전국적으로 직접 배달되고 있어.”
공장은 꽤 큰 규모로, 제법 많은 직원들이 있었다. 나와 김 실장이 공장에 차를 대는데, 그 근처에 있는 검은색 봉고차량 앞에서 공장장으로 보이는 남자와 봉고차 안에 있는 놈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이상한 거 부탁하시면 못 들어 줍니다. 우리를 그런 이상한 일에 말려들게 하지 말아주시죠.”
공장장은 단호한 얼굴로 봉고차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봉고차 내부에서 웬 커다란 덩치의 소유자가 나와서 공장장의 멱살을 쥐었다. 덩치의 몸에는 괴상한 모양의 문신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그냥 공장 문 닫으면, 우리 애들이 작업한다니까? 뭐가 문제야? 돈 많이 준다고!”
“그니까 다른데 가서 알아보세요! 우리는 정상적인 일들만 하겠습니다.”
퍽, 퍼벅.
덩치는 공장장의 말에 발끈하여 그를 주먹으로 때렸다.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무마시키려고 전화기를 들고 119를 누르며 쫓아갔다.
“저 119죠! 여기 사람이 맞고 있어서요!”
내가 큰 소리를 내며 나가자, 놈들이 눈치를 보더니 황급히 차에 탔다.
“내일 다시 올 테니까 두고 보자고.”
문신 덩치가 봉고차를 타자마자 얼른 뛰어가서 공장장을 일으켰다. 김 실장은 겁을 먹고서 차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봉고차 속 덩치가 나를 섬뜩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다행히 모자를 쓰고 있어서 내 얼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괜찮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근데 누구시죠?”
“네, 전화 드린 미용 재료상이요.”
공장장은 애써 웃으면서 나를 맞아주었다. 김 실장은 봉고차가 간 것을 확인하고는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전국 유통망이랑 연락처만 알려드리면 되는 거죠?”
“네, 지금 가능하신가요?”
“네, 근데 보시다시피 제가 좋지 않은 일에 휘말려서 그런데…, 혹시 그쪽도 좋지 않은 일과 관련되거나 그렇지는 않으시죠? 아…, 너무 힘이 드네요.”
“저놈들이 대체 뭘 원하는 건가요?”
공장장은 나에게 뭔 말을 하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괜히 떠들었다가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건 알려드릴 수가 없어요. 저놈들에게 직접 물으시던가요.”
“아, 네. 그건 그렇고 신고를 하지 그러세요? 왜 가만히 있으시는 건가요?”
“가족을 죽인다네요. 허허.”
“아…….”
그 시절은 조폭이 활개를 치던 시절이었다. 범죄 같은 걸 청탁으로 쉽게 해결하고, 사람을 죽이고도 알게 모르게 해결되던 무서운 시절. 그저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와, 저놈 문신이 너무 무서워서 혼났네.”
나는 뒤늦게 나와서 뻘쭘하게 서있는 김 실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사실상 배포라고는 없는 사람인데, 나를 만나서 잘 된 김 실장. 착하지만 전부 맡겨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나는 이번에 계약을 하게 되면, 내가 직접 우선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배달하고 있는 전국의 주소와 연락처입니다. 이 이상은 우리도 알 수 없어요.”
“네, 이걸로 충분합니다.”
“근데 아까 그 사람들이 찾아오면, 이것도 알려줬다고 하지 말아주세요.”
“왜요? 아 물론 알려주지 않을 겁니다.”
“우리 제품 통에 라벨을 하나 붙여서 전국 유통과 동시에 수출을 한다고 하는데, 뭔지 깨름직해요. 거기까지만 알려드리죠.”
공장장의 말을 듣고 떠오른 것……, 설마?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