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미용재벌-61화 (61/200)

61화. 미용대회에 가다(1)

“아, 그렇군요.”

기자도 소수만 알고 있는 정보, 그걸 알고 있다는 건 정보력이 대단하다는 증거다. 하긴 그러고 보면 마약 사건도 내가 제보해준 사건이다. 양 기자는 박준수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앞으로도 쭉 잘 지내고 싶은 의지가 생길 정도로.

“그 미용실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는가 봐요? 안 그러우?”

양 기자는 나를 보다가 노랑머리를 쳐다보았다. 노랑머리는 양 기자의 칭찬에 한층 업 되어 있던 터라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낼 기세였다. 마침 과거에 박근미 의원이 다녀갔다는 것이 생각난 노랑머리는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박근미 의원도 다녔데요. 우리 샵에.”

“야, 임마. 그건 왜 이야기 해?”

양 기자는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양 기자는 나에게 수시로 연락하며 지냈다. 양 기자의 촉도 좋은 탓이었지만, 노랑머리의 입방정도 양 기자의 마음을 돌리는데 한몫했다. 그날은 그 세 사람이 엄청나게 친해진 날이 되었다.

* * * * *

“야 박준수! 너 당장 좀 올래?”

선정이가 자짜고짜 전화를 해 왔다. 얼마 전에 출산을 하였다는 말을 들었는데, 갑자기 왜 날 부르는지 당황했지만,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서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갔다. 선정이는 나를 보자마자 내 머리카락을 왕창 뽑아버렸다.

“야? 뭐하는 거야?”

“당신 머리카락이 필요해서 그렇지!”

“그니까, 그게 왜 필요해?”

“와서 말 좀 해주시죠? 유 사장님!”

선정이가 화가 난 얼굴로 소리치자, 뒤에 숨어있던 유 사장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아니 난 그게 아니고.”

유 사장은 내가 나타나자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지금 당장 가서 유전자 검사를 하고 오라고요! 머리카락 왕창 있으니까!”

선정이는 내 머리카락을 들고 유 사장에게 흔들어 댔다.

그 말을 들으니 이 사태가 어찌된 건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니라는 거 알았으니까 그만 좀 허드라고. 승철이 온당께?”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고 가서 유전자 검사하고 오라니까요?”

선정이는 한번 화가 나면 끝을 보는 성격이다. 유 사장이 안하면 자신이 직접 가서 검사를 할 거다. 그러고도 남는 성격이니까.

“아니, 이제 괜찮당께?”

“이리 줘. 내가 가서 검사 받을게. 저 그리고 유 사장님, 저 이 여자랑 손도 잡은 적도 없거든요? 저 좋아하는 여자 따로 있어요. 의심할게 따로 있지.”

“그냥 말도 못 허냐? 으구, 징허다.”

유 사장이 밍거적거리자, 내가 나서서 유 사장을 데리고 나갔다. 우리는 같이 가서 검사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친자가 아니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나는 결과지를 받아 들고서, 유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금방 전화를 받았고, 술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드르륵.

오래된 술집, 안주와 술이 싸지만 맛있는 그런 집에 들어서는 나. 유 사장은 벌써부터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있었다. 그동안 비싸고 좋은 음식만 먹던 유 사장의 입맛이 변한건지, 돈이 없어서 변한건지 모르지만 분명 유 사장은 많이 변했다.

“여기.”

나는 일을 이렇게 만든 유 사장을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었지만 그의 몰골을 보고 그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그 화려했던 유 사장이 선술집 한 구석에서 혼자 술을 푸고 있는 것이 불쌍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일을 그렇게 만들고도 술이 넘어가십니까? 덕분에 승철이 얼굴을 못 보게 생겼군요!”

나의 말을 들은 유 사장은 혼자 소주를 들이키더니 껄껄대며 웃었다.

“미안하네, 나가 요새 쪼까 미쳐가는 것 같아.”

유 사장의 말을 들은 나는 조금 미안해졌다. 사실 그에게 처음부터 악감정은 없었는데, 재준과 손을 잡는 것 때문에, 그의 인생을 망친 셈이 되었으니 미안한 마음은 당연했다.

“그래도 그렇지…….”

“나도 하나만 묻지. 자네는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하는 것이여? 내가 뭔 잘못이라도, 아니지. 나도 자네한테 잘못을 안 한 거는 아니구. 잉 그려 그 주차장서 말여, 한 원장님께 나를 그렇게 말한 이유가 뭔지 궁금하당께?”

나는 유 사장의 말이 뭔 뜻인지 모르다가, 조금 생각한 뒤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주차장에서 내가 했던 말을 유 사장이 들은 뒤부터 이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 그때 주차장에서 들은 말 때문에 그동안 나한테 그랬다는 말입니까?”

“긍게, 왜 남을 함부로 판단허냐고?”

유 사장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소주잔을 연거푸 비웠다. 그동안 나에게 수없이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하고 나니, 갑갑했던 마음이 목구멍까지 싹 비워진 것 같았다.

“판단한 게 아니라…….”

판단한 것이 아니다. 유 사장의 썩은 인성을 미리 알고 대처했을 뿐이었다. 한 원장님을 배신하고, 재준과 화장품 회사를 차리면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피고름을 빨아먹었던 그를 미리 막았을 뿐이었다. 판단을 한 게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유 사장에게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유 사장에게 사과는 하는 게 맞는 거다.

“미안합니다. 사과드릴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 사장은 다시 소주잔을 비우고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다행히 주변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글타고 그놈이 나까지 내칠 필요는 없는디, 아니면 아닌 거지 뭐 그게 내탓이라고!”

“당신 잘못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나는 다음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유 사장이 마시던 소주를 들고서 병째로 들이켰다.

“근데, 니놈이 그 선정이를 대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단 말여. 마치 오랜 기간 알고지낸 부부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유 사장이 나와 선정이 사이를 알아차린 셈이 아닌가? 놈을 완전히 적으로 돌린다면, 나중에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전에 좋아하긴 했습니다. 지금은 애인이 있으니 그럴 일은 완벽하게 없구요.”

“그치? 내가 잘못 본거이 아니지? 에휴, 그래봐야 뭐하겠는가. 승철이는 이제 남이 되었어.”

“나중에 꼭 한번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동안의 노여움은 푸시지요.”

나중에 그가 재산을 탕진하게 되면, 다시 일어서게끔 도와줄 것이다. 그게 유 사장의 도발을 막는 비법이니까.

“그래, 꼭 한번은 도와줬으면 쓰겄네. 그럼 나도 노여움을 풀겄어.”

그렇게 유 사장과의 인연이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후에 그와의 약속 때문에 일이 생기긴 하지만, 그를 도발해서 생길 일만큼 큰일은 아닐 것이다.

* * * * *

“오빠, 설아 언니랑 잘 만나고 있는 거지?”

“그건 왜 물어? 공부나 하시지?”

“아이고 네에. 안 그래도 엄청 하는 중이거든?”

준희는 최근 오재훈 검사의 인터뷰를 보았다. 오재훈이 하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고3인 준희까지 그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설아도 오재훈의 고백을 수차례 들어왔고, 주변에서도 설아에게 그 소식을 들려주었다. 원래대로라면 오재훈의 고백을 받아주게 되는데, 나 때문에 설아가 그와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오재훈과 설아가 운명이라고 하지만, 내가 사랑하게 된 이상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조만간 오재훈을 찾아가서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번 찾아가 봐야겠어.”

“뭘?”

“오재훈 말이야. 내가 설아의 남자친구라고 말해주려고.”

“언제 가려고?”

“왜? 너도 같이 가려구?”

“응, 나 오재훈이랑 결혼할거거든.”

“뭐?”

“오빠는 설아언니랑 결혼하고, 나는 오재훈이랑 결혼하면 되는 거잖아?”

“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지금 내 인생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준희가 영부인이 된다? 굳이 말릴 필요는 없는 일이 아닌가? 아니, 그렇게만 된다면 이 대한민국이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 것과 다름없다. 적극 도와줘도 모자른 상황이다.

“그래, 같이 가자.”

“진짜? 언제 갈 건데?”

“곧.”

준희는 조만간 법대에 진학하게 될 것이고, 오재훈의 후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검사까지 된다면, 어차피 오재훈의 동료가 되는 것. 그렇게 준희가 영부인이 되게 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나는 우선 준희의 머리부터 설아와 가장 비슷하게 만들어 주었다. 너무 같으면 작위적이니까, 비슷하게 말이다. 거기다 준희의 피부에 한 듯 안한 듯한 메이크업을 해 주었다. 메이크업 선생까지 불러서 말이다. 그렇게 준희를 한껏 치장시킨 후 오재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뭐 이렇게까지 치장시켜줘? 선보러 가? 좀 오버러스한데?”

“기왕이면 완벽해야지.”

“응.”

준희는 내가 해준 것들이 싫지 않은 듯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오재훈이 있다고 찾아간 곳에는 그가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허탕을 쳤다며 깔깔대고 웃었다. 나는 곧 볼일이 생겨서 미용실에 갔고, 준희는 자기가 있을 곳을 구경한다며 돌아다녔다. 그날, 오재훈과 마주쳤다고 한다. 그리고 별일 없었긴 했지만, 훗날 대학교 근처에서 다시 만났을 때,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고 연인으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그게 내 발목을 잡게 될 줄은 몰랐다.

* * * * *

그 후로도 오재훈이 계속해서 설아에게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매니저와 내가 친해서 그걸 온전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매일 미칠 것 같았다.

그걸 본 한 원장이 갑작스럽게 나를 불러 세웠다.

“미용대회요?”

“그래, 미용 대회를 나가보는 게 어떻노? 지금 니 맴이 딴 데 가 있는 거 같은데, 그거라도 하믄 시간도 잘 보낼 수 있다 아이가?”

한 원장은 임준영이 그만두고 난 뒤, 매일 한숨을 쉬는 나를 보며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그게 아니지만, 설아 때문에 그런다고 말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한 원장이 내 걱정을 하던 중, 곧 미용 경연 대회가 시작된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 곳에 내가 나간다면 집중하는 동안 마음이 편해질 거라는 생각에 추천한 것이다.

“원장님은 안 나가시고요?”

“내는 업스타일로 나가고, 니는 커트 분야로 나가믄 된다 아이가?”

나는 한 원장의 배려를 깨닫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당분간 대회에 집중한다면 시간도 잘 갈 것이고, 잠도 잘 올 것 같았다.

“그렇게 할게요.”

“그래, 잘 생각 했다. 그라믄 지금 당장 접수하러 가자.”

“네.”

한 원장은 나와 노랑머리를 데리고 접수 현장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달갑지 않은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어? 이게 누구셔? 한 원장님이네?”

은서는 한 원장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뒤에 온 나는 노랑머리가 같이 온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어? 박준수 어디가? 도망치는 거야?”

은서는 내가 도망치자 재밌다는 듯 쫓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옛 스승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동안 한 원장이 자기를 신고했다고 매번 원망해왔기 때문에 그런 거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녀는 워낙 제멋대로였다.

“벌써 출소했나보네? 정신을 아직도 못차렸구만.”

한 원장은 은서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한 원장의 앞으로 조 원장과 홍 선생이 다가왔다. 은서와 같이 온 모양이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나는 노랑머리를 찾아서 은서가 있으니 도망치라고 말해놓고 오는 중이었다. 그러다 세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어? 저 두 분이 아는 사이였어?”

회귀해서 미용재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