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미용대회에 가다(2)
조 원장은 한 원장과 반말을 할 정도로 친했던 사이라고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오래전에 홍부자 선생님의 스텝으로 같이 일을 했던 사이였다. 한 원장은 홍부자의 밑에서 더 오래 스텝 생활을 하였고, 조 원장은 조금만 일하다 나갔었다. 조 원장이 나간 것은 한 원장과의 마찰 때문이었다.
나는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내가 조 원장의 밑에 있을 때에, 조 원장이 바로 이 미용대회를 나갔었고, 거기서 스텝시절 원수를 만났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그 원수가 바로 한 원장인 것인가?
전에 홍부자 선생님도 한 원장에 대해 말하다가, 조 원장의 이야기를 언뜻 했었다. 둘이 천생연분이라는 말과 함께.
그렇다면 혹시 둘이 사귀었던 건가?
한 원장이 과거 연인에 대해 언급했던 말 중, 과거 연인이 강북쪽에서 미용실을 크게 한다고 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 설마 둘이 연인이었던가?
나는 속으로 한바탕 웃었다. 조 원장은 한 원장을 원수라고 하고, 한 원장은 조 원장을 옛 연인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아이러니했다.
“그나저나 저러면 우리 원장님이 진다는 소린데, 어쩌지?”
내 기억으로는 조 원장이 대상을 받았다. 그 후 원수라는 원장이 앓아누워서 병문안을 갔다가 실컷 골려주었다는 말도 들었었다. 그렇다면, 그 앓아누운 사람이 한 원장이란 말인데 어쩌나…….
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고 있는데, 조 원장이 한 원장에게 도발을 하였다.
“그렇게 잘나신 양반이 나한테 지면 어쩔 건데?”
“뭐? 내가 와 니한테 지노? 내는 항상 니 보다 잘했다 아이가?”
“지금은 아니야. 내가 너보다 훨씬 잘하거든?”
“뭐라 씨부릿쌓노. 니가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내한테는 안 된다! 그렇게 당해놓고 또 내 한테 시비를 걸어쌓노.”
한 원장이 성질을 내며 가려고 하자, 조 원장이 그 뒤에 대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이기면 어쩔래? 니를 내가 이기면 어쩔거냐고?”
“참나, 그라믄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아이지, 내 니한테 큰절하께.”
“큰절? 그래 좋다! 그거 꼭 해야 한다! 우리 미용실에 와서 우리 애들 보는데서 꼭 해야 해!”
“그래 좋다! 그라믄 니는 뭐할 긴데? 아 그래 내 니가 해준 밥 한번 묵자 그때 헤어지기 전에 해준다고 그래 뻥치고 한 번도 안 해줬다 아이가?”
“좋아! 내가 수라상 차려준다 덤벼!”
두 사람이 그러고 있는 게 드라마보다 재밌다. 간만에 우울증이 가 가실 것만 같았다. 하지만 둘이 대결하게 그냥 두면 안 된다. 한 원장이 질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사람을 말리기 위해 뛰쳐나갔다. 마침 은서가 뒤에 쫓아오고 있었다.
“원장님 업스타일 제가 나가기로 했잖아요!” ”엥? 니가 업스타일을?”
조 원장은 나를 흘끔 쳐다보았다. 전에 나를 처음 봤을 때,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 이유가 원래 자신의 제자여서 그런 것은 상상하지도 못할 테지만.
나는 스승인 조 원장에게 대적하는 것이 싫었지만, 지금은 한 원장의 편에 서야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조 원장님, 저랑 대결하셔야 하겠는데요?”
“넌 또 뭐니?”
그러자 은서가 조 원장의 곁에 서서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제가 말한 그 자식이 저놈이거든요.”
“오 그 기고만장한 놈이 바로 네놈이구나?”
늘 나를 응원해주고 도와주었던 좋은 조 원장이, 나에게 놈이라는 말을 하는 게 싫었다. 한때는 조 원장이 내 자존심이었고, 나의 스승이었고, 나의 우상이었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런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한 원장님을 구해야 하니까.
“저랑 대결을 해 주시죠. 조 원장님.” ”니깐 놈이랑 대결을 하라고? 참네, 기가 막혀서.“ ”아서라 내가 한다고 안하나?”
“아뇨 저도 해야겠습니다.”
“원장님, 저놈이랑 대결해서 저놈 스타일헤어 그만두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 소원인데요.”
“으응? 아 그게…….”
조 원장은 남의 직장을 그만두게 하여, 상처를 주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아무리 은서의 일 때문이라고 해도.
그러자 한 원장이 은서를 째려보며 나섰다.
“이은서 니도 그만 두어야 형평성에 맞는 거 아이가?”
“그래, 그것도 조건으로 하시죠? 조 원장님.”
한 원장은 내가 조 원장을 알고 있는 것이 의아했지만 우선은 그냥 넘겼다. 조 원장은 은서를 그만두게 하자고 하는 조건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은서씨 내가 이길 거란 건 알지?”
“그럼요. 일개 조무래기가 상대할 분이 아니시죠, 우리 원장님은.”
은서는 나를 얕잡아보며 말했다. 멍청한 이은서는 내가 조 원장이 낼 작품이 어떤 건지 다 알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겠지.
“이은서, 니는 쫌 고마 닥치라.”
은서의 깐죽거림에 화가 난 한 원장이, 은서가 더 도발하지 못하게 화를 냈다. 덕분에 은서도 조금 진정했다.
나는 어떻게든 한 원장의 우울증을 막고, 은서가 미쳐 날뛰는 것을 막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을 거다.
그래도 조 원장님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 옛 제자로서 말이다.
“조 원장님 실력은 제가 알죠, 그래서 엄청나게 노력해보겠습니다!”
조 원장은 내가 추켜 세워주자, 조금 으쓱했다.
한 원장이 전화가 와서 다른 곳으로 간 타이밍이 조 원장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조 원장이 강북권 탑5에 드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어머, 기분은 좋네. 고마워요.”
조 원장이 내 말에 매우 기뻐하며 돌아갔다.
나는 조 원장이 무슨 머리로 대상을 받는지 알았고, 조 원장보다 더 나은 작품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 * * * *
“아니 나도 구경 좀 하고 싶었는데 왜 가라해요?”
노랑머리는 내가 다짜고짜 차로 가라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화가 좀 났다. 옛날 같았으면 같이 윽박질렀을 텐데, 참 많이도 변했다.
나는 노랑머리가 삐죽 거리는 게 귀여워서 그의 볼을 꼬집었다. 노랑머리는 정색하며 말했다.
“아우 귀여워, 그래쪄용?”
“쌤이랑 나랑 두 살 차이밖에 안 나거든요? 애 취급 마시죠?”
나는 웃음기를 거두고 노랑머리를 쳐다보았다.
“은서가 왔더라고, 걔가 너 나랑 온 거 보면 눈 뒤집힐 것 같아서 그랬어.”
이은서는 노랑머리가 [스타일 헤어]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성형까지 시켜주며 복수하라고 보낸 노랑머리가, 나의 수족 노릇을 하고 있으니, 눈이 뒤집히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노랑머리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 덤덤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들키겠죠. 그럼 들킨 대로 살면 되는 거고요.”
“이은서도 그렇지만 그 남자친구가 문제잖아. 조폭이라고!”
그러자 노랑머리가 껄껄껄 웃어댔다. 진심으로 웃긴 모양이었다.
“쌤 안 만났으면, 나도 그냥 조폭이라구요!”
“허허, 그런가?”
“물론, 그놈이 훨씬 악질이긴 해요. 나도 그놈이 무섭긴 하거든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내가 선택한 일인데 내가 감당해야죠.”
노랑머리는 애써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가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이상 그를 지켜야 한다. 나라는 남자는 늘 그랬었기에.
“혼자 감당하려고 들지 마. 나랑 같이 해야 해! 니 선택을 내가 유도했으니까!”
“쳇, 멋진 척은.”
둘이 그렇게 꽁냥거리고 있는데, 한 원장이 투덜대며 차에 들어왔다.
“우리 가게에 있을 때는 그렇게 살갑게 굴더니, 싸가지가 없어도 너무 없다 아이가?”
“이중인격 같아요.”
“이중인격? 그게 뭐고?”
그때는 이중인격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았기에 딱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은서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정도는 아니니까, 거기에 비교하는 것도 좀 그랬다. 그냥 다른 말을 하는 수밖에.
“암튼 제가 원장님 대신해서 1등을 하겠습니다!”
“니가 뭔 수로 1등을 하겠노? 그냥 내가 한다 안하나?”
“제가 한다니까요? 제가 하고 싶다구요!”
내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자, 한 원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래 니 해라 해! 니 해 삐라!”
한 원장은 사실 내가 나서준 것이 고마웠다. 과거 스텝시절 조 원장과 대결을 몇 번 했는데, 그 몇 번을 거의 참패했었기 때문에, 은근히 부담스러웠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기왕이면 조 원장을 시원하게 꺾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라믄 홍부자 선생님을 만나서 도와달라고 하믄 어떻노?”
“네? 아 홍부자 쌤요? 그분 요새 바쁘시던데.”
“니가 함 가봐라. 전처럼 도와달라고 부탁하믄 해주지 안 긋나?”
한 원장은 전에 내가 홍부자 선생님을 구워삶았다는 걸 듣고, 다시 한 번 찾아가서 부탁하기를 바랬다. 나도 그러면 좋겠지만, 그게 쉽게 이루어질지가 의문이었다.
* * * * *
"오! 준수!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안녕하세요. 하하, 자주 못 와서 죄송합니다.”
홍부자 선생님은 나를 보고 매우 반가워하였다. 전에 희수의 업스타일을 하려고 배울 때 정이 많이 든 까닭이었다. 홍부자 선생님은 그 와중에도 바쁜지, 연신 뭔가를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찾아와서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물만 들이켰다.
꿀꺽꿀꺽.
원장실에서 내가 물을 마시는 소리만 들리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원장님, 아트홀에서 전화 왔습니다.”
“어! 그래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준수야.”
홍부자 선생님은 나를 기다리게 해놓고, 30분 넘게 통화를 하였다. 영어와 전문 용어까지 써가며 열정적으로 통화를 하다가, 끝내 화를 내며 전화를 끊고 말았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통화 내용을 듣고 있었다. 내용인즉슨, 미용의 예술성을 인정해달라는 이야기였다. 홍부자 선생님은 그 후 1년 만에 호수 아트홀에서 전시회를 열고야 만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은 그걸 이루기 위한 과정에 있는 것이다.
“아우, 머리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비디오는 되고! 머리는 왜 안 돼? 안 그러니?”
통화를 마친 홍부자 선생님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와서, 나를 붙잡고 물었다.
“그니까요. 우리 선생님 실력을 못 알아주고, 예술성도 몰라주고!”
내가 얼씨구나 하고 맞장구 쳐주자, 홍부자 선생님이 갑자기 깔깔 웃으며 나의 등짝을 쳤다.
철썩.
오랜 기간 미용가위와 기계로 단련된 홍부자 선생님의 등짝 스매싱은 아주 강력했다. 나는 등짝이 아파서 펄펄 뛰었고, 홍부자는 그런 나의 등짝을 한대 더 때리며 말했다.
“여기 온 목적이 뭐야? 빨리 말 안해?”
“아야, 아파요. 미용 대회에 나가려구요, 저.”
나의 말을 들은 홍부자는 잠시 멈춰서 고민하였다. 그걸 도와줄 시간이 없는 탓이었다.
“전시회 추진 중이라 바쁜데….”
“제가 도와드리면 되잖아요. 대회 끝나고 도와 드릴게요 1년 안에 전시회 열게요!”
홍부자는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수년간 시도해도 안 되던 것을 나가 1년 만에 해내겠다는 말인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궁금해졌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 거야?”
“네. 가능합니다!”
가능한 일이다. 홍부자 선생님이 1년 뒤에 전시회를 하는 건 곧 일어날 일이고, 나는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일이다. 홍부자는 가뭄에 단비를 만난 농부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좋아, 박준수 합격!!”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