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회귀 반지의 주인(2)
“김주원 막내딸이 죽었대요!”
노란머리가 소란스럽게 말했다.
이맘때 일어난 일인 걸 알고 있었다. 정확한 날짜를 몰랐을 뿐.
오아영도 김주원과 인연이 있었기에 나름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김주원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유, 안 되었네.”
“지금 만나러 가야겠네요.”
“지금? 김주원을 만난다고? 어머, 그럼 나 머리 좀 해줘요.”
오아영과 김주원이 스캔들이 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둘이 사귀었나보다. 그러니 저런 반응을 보이지.
오아영은 머리를 하면서도 연신 거울을 보기에 바빴다. 워낙 외모에 관심이 많은 분이니까, 그다지 이상하진 않았지만, 내 추측이 맞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드라이만 해드릴게요.”
나는 서둘러서 오아영의 머리를 해주고, 둘이 같이 김주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아영은 어느 때보다 더 예쁘게 꾸민 상태로 나를 따라왔다.
* * * * *
오아영을 태운 채 길 한복판으로 나갔다. 어디로 갈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무작정 출발한 상태였다.
“근데 장례식장에 바로 가? 나 스캔들 난 사이라서 좀 그런데. 기자들도 많이 와 있을 거 아냐?”
오아영은 남의 불행에도 스캔들을 걱정하는 여자였다. 원래 그렇다고는 들었지만, 실제로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
“김주원 바로 만나실 수 있잖습니까? 비서 통해서요.”
“어머, 그거 어떻게 알았어? 아니 근데 지금 애 죽어서 난리인데, 내가 전화한다고 만나주겠어?”
김주원이 힘든 상황에 있지만, 돌파구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만나 줄 것이다.
“반지를 갖고 있다고 하세요.”
“아, 반지? 그럼 괜찮겠네. 알았어.”
“그리고, 김주원이 반지를 갖고 있을 테니까, 그거 달라고 하셔서 회귀하시면 됩니다.”
“아하, 그럼 되겠네. 진작 그렇게 이야기 하지.”
“제가 말할 틈도 주지 않으셨잖아요.”
“어머, 자기는 좀 예민한가봐? 알았어.”
“빨리 전화하세요. 당장 회귀하셔야 하거든요.”
“알았어.”
오아영은 서둘러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주원은 오아영의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는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한자리에 모였다.
“회귀 반지를 주겠다고?”
김주원이 다짜고짜 물었다. 당장 죽은 딸을 살릴 수 있다는데 마다할 가장이 어디 있을까?
그러자 오아영이 김주원의 손에 낀 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나 줘요. 나도 필요하거든.”
“반지를 사실 누구 주기가 아까웠습니다. 다른 사람이 회귀해서 나 같은 부자가 되는 걸 원치 않았거든요.”
“세상에, 그렇게 돈을 벌고도 그런 욕심을 가질 수가 있다니.”
“그래서 나중에 쓰러지시는 겁니다. 반지의 저주를 받는다니까요?”
“그래, 알았어. 대신 나랑 같은 분야의 사람에게는 주지 마요. 최대한 다른 분야의 사람에게 주라고. 알겠어요?”
“어머, 알았어요. 알았어. 걱정 말아요.”
김주원은 반지를 빼려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가진 반지를 달라는 의미였다.
“제가 가진 반지를 드릴 테니, 당장 가서 WO제약에서 임상실험중인 약을 받아오세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임상 실험중인 약?”
“네, 지금 따님에게 가셔도 병을 고칠 방법이 없는 건 아시잖아요.”
맞는 말이다. 막내딸이 걸린 병은 아직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서 회귀를 한다고 해도 다시 죽게 될 것이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제가 회귀하기 전에 주식시장 동향을 많이 알아보고 왔거든요. 그 제약회사에서 치료제를 개발해서 주식이 엄청 뜁니다. 그래서 그 치료제가 개발되는 걸 알고 있는 거구요.”
“그래, 그렇다고 치고, 약은 어찌 가지고 과거로 가냐고? 아무것도 못 가져가는 걸로 아는데?”
“입에 넣어서 가져가시면 됩니다. 방수처리를 제대로 해서 가져가시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아, 그렇군. 고맙네. 정말 고마워.”
나는 얼른 회귀반지를 빼서 김주원에게 건넸다. 김주원도 자신의 반지를 빼서 오아영에게 건넸다.
“자, 받아요. 아영씨.”
“어머, 감사해요. 그럼 전 바빠서 이만.”
오아영은 반지를 받자마자 나가버렸다.
그렇게 회귀반지가 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김주원은 반지를 받아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자네는 원하는 게 뭔가?”
역시 김주원은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반지를 받자마자 가버린 오아영과는 다르게.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봐도 되겠습니까?”
지금은 딱히 바라는 것이 없었다. 가족들도 전부 행복하게 되었고, 내 재산도 이제 제법 되었다.
“그래, 나중에 얼마든지 말만 하게. 비서를 통해서 자네 핫라인 열어둘 테니.”
김주원의 핫라인은 언제든지 도움을 주겠다는 뜻과 같다. 오아영이 힘들 때마다 김주원이 도와준 것처럼 나도 도와주겠다는 뜻이다. 실로 대단한 빽을 얻은 셈이다.
“네, 그럼 다녀오세요. 회귀를 어릴 때로 하셔서 아마 다음번에는 회귀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그래, 내 다녀온 뒤에는 자네에게 반지를 주겠네. 언제든지 원할 때 말만 하게.”
그렇게 김주원과 나의 거래가 성사되었다. 또 한 번의 회귀를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어떤 식으로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아닐 것이다.
* * * * *
오래간만에 멀끔하게 차려입고 출근을 하였다. 한 원장이 나를 보더니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주위를 빙빙 돌았다.
“야야, 니 그동안 뭔 일 있었나? 김설아씨랑 너어무 뜨거운 거 아이가?”
“네? 그럴 리가요. 하하.”
“안 그러믄 와 매일 눈깔이 디비져서 왔는데? 맨날 밤을 새다 온 사람 같았다 아이가?”
“아 그랬어요? 헤헤, 죄송합니다. 게임을 좀 했거든요.”
나는 최근 설아씨의 드라마 촬영이 있을 때마다 촬영장으로 향했다. 머리를 맡아서 해준다는 건 핑계이고, 오재훈 검사가 찝쩍대는 것이 싫어서 그랬다. 설아씨는 정말 좋은 여자였다. 오재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재훈이 가끔 오면 최대한 말을 짧게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칼같이 자르는 성격이 무서울 정도였다. 그래서 요즘 눈에 핏대가 섰다.
“니가 그란 거 할 때가? 지금 내가 을메나 힘든지 아나?”
“왜요? 뭔 일 있으세요?”
“저거 봐라 자 좀 봐.”
한 원장이 턱짓을 한 곳에는 TV가 있는데, 마침 드라마 (토마스)가 나오고 있었다. 드라마 (토마스)는 1999년도에 대히트를 친 드라마다. 시청률 50퍼센트를 넘기며, 많은 사랑을 받았고, 김미선이 하고 나온 곱창 밴드가 대유행을 할 정도였다. 덕분에 김미선이 다니고 있는 미용실도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자가 우리 미용실에서 나간다 캤을 때, 붙잡을 걸 그랬다. 안 그케도 잘 나간 것이 이제는 너무 잘나간다 아이가? 우리도 저런 배우 한명 있음 좋겠는데, 누구 추천할 사람 없나?”
“지금 잘나가는 배우는 데리고 오는 것 자체가 힘들죠. 앞으로 뜰만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우리의 미용기술을 해주고 난 뒤에 떠야 우리도 같이 뜰 테구요.”
“그렇지. 그르니까 누구 없노? 누구 데리고 와봐라. 톱가수랑 배우랑 다 있으믄 좋다 아이가? 거기다 정 실장이 홍대점 가믄서 거기로 옮긴 아들이 많다 아이가? 이제 본점에 오는 연예인들이 별루 읍다.”
“네, 그렇긴 하네요.”
정 실장이 워낙 재주가 있어서, 젝키스 멤버들이 다 거기로 갔고, 핑크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거의 그곳으로 가버렸다. 이제 핑크, 김설아 말고는 탑스타가 없는 셈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사장에게 부탁 했다 아이가? 조만간 탑스타가 될 아들을 선별해서 델구 온다고 하드라.”
“아 그래요?”
부우우웅.
한원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성할만한 남녀 연기자를 포섭했으니 와서 보라는 이야기였다. 이사장은 이제, 연기자든 가수든 데리고 오기 전에, 먼저 나에게 보여주는 것을 습관화하고 있었다.
“나야, 내가 진짜 제대로 된 애들을 보여줄 테니까 바로 와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예약손님 마치면 바로 가겠습니다.”
이사장은 많이 흥분한 목소리였다. 대스타가 될 인물을 만났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거기다 내가 보면 더욱 좋아할 거라는 말도 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을 만났기에 그럴까? 나는 매우 궁금해졌다.
* * * * *
“준수야, 같이 가자.”
이사장은 웬 케이크를 들고서 나를 맞이했다. 원래는 아랫사람에게 사오라고 시키는 물건들을 직접 사들고 오는 것이다.
“그게 다 뭐에요? 이리 주세요.”
그 케이크는, 그때 당시 줄서서 사 먹는다는 케이크였다.
“마침 적당한 때에 오는구나. 내가 이거 살라고 몇 시간을 줄서서.”
“아니 이사장님이 이런 걸 왜 하시냐구요? 다른 사람 시키시지. 아니면 저라도 사올 텐데요.”
“아니 우리 배우님이 먹고 싶다는데, 다른 애들 말고 내가 직접 사다 달라고 어찌나 조르는지,”
나는 기가 막혔다. 어떤 인간이기에 대표이사에게 직접 케이크를 사달라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때 건너편에서 웬 건장한 남자가 오고 있었다. 그 남자는 이사장을 보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와서 90도로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 어서와 장민우군. 여기는 내가 말한 미용사 박준수 군이야. 준수야 인사해.”
헉.
헉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이사님이 말한 그 대단한 배우가 바로 장민우? ‘이사장님 장민우는 트로트 가수가 될 사람이라구요!!!’ 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왔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아는 그 착한 장민우가 케이크를 사달라고 졸랐을 리도 없고, 이사장이 사줄 리도 없질 않은가?
나와 장민우는 서로 어색하게 바라보며 인사 하였다.
“이분에게 케이크를 사주시는 거예요?”
“아니, 너도 그녀를 보면 반할거야.”
이사장은 이미 케이크를 건넬 그녀에게 깊이 빠진 듯 보였다. 나도 반할 정도의 그녀는 누구일까?
“그게 누군데요?”
“응 가서 보면 알아. 이미 데뷔는 했거든.”
이사장은 그녀에 대한 말을 아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장민우씨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피식 웃기만 했다. 나는 장민우씨를 좋게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가 당장 스타가 되지 않을 것을 알지만, 딱히 계약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나저나 영광입니다 박준수씨.”
“아이고, 제가 영광이죠. 티비에서 보고 한번 뵙고 싶었거든요.”
나와 장민우는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며 이사장을 따라 들어갔다. 나는 앞으로 장민우와는 개인적으로 친해지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래야 장민우가 탑스타가 되질 않더라도, 이사장에게 덜 미안할 테니까 말이다. 향후 오랜 기간 무명으로 지낼 거라는 것을 미리 말해주지 않을 거니까. 그게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저, 근데 트로트는 관심 없으시죠?”
“어유, 그건 어른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요?”
“하하, 그렇죠. 맞습니다.”
장민우를 좀 더 빨리 띄우는 것은 아마 힘들 듯 보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이사장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두근두근.
사무실에 앉아있는 그녀는 뒷모습도 어여뻐 보였다.
“어서 들어와.”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