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아씨(1)
이사장은 즐거운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왕수정이 새침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와……왕수정? 저분이랑 계약하신다고요?”
“응 그래, 말리지마라. 계약 할 거니까! 나는 확신이 든다. 왕수정은 반드시 뜰 거야.”
왕수정은 반드시 뜰 것이다. 그녀는 조만간 방송될 드라마 (허의원)에 캐스팅 될 것이고, 거기서 은진 아씨 캐릭터로 전국적인 사랑을 받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녀와 계약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사장은 두고두고 원망을 할 것이 분명했다. 마약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버텨야 하는데, 그 전에 이사장과 의절을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일단 반대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네, 좋은 배우 모셔오셨네요.”
나는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잘했다고 박수를 칠 수도, 하지 말라고 뜯어말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너도 좋아할 줄 알았어. 인사해 왕수정씨. 여긴 내가 말한 박준수 헤어디자이너.”
왕수정은 자신이 일개 헤어디자이너에게 면접을 봐야 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해 있었다. 거기다 내가 왕수정을 영 달갑지 않게 보는 것이 느껴졌다. 왕수정은 짧은 목례를 하였고, 나도 간단한 목례를 했다. 둘이 말도 없이 그러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이사장은 어색하게 웃어댔다.
“우리 장민우씨도 잘 생겼고, 헤어디자이너 박준수도 잘 생겼죠?”
“저분은 연예인 급으로 잘생긴 건 아닌데요? 이사님.”
“아, 그래? 그런가? 하하.”
왕수정은 새침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중간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연예인 장민우가 한마디 하였다.
“미용사 중에선 최고로 잘생겼는데요? 하하.”
연예인 장민우의 노력에도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때 왕수정의 매니저가 들어왔다.
“아, 오셨네. 왕수정씨 매니저는 이분이 계속 맡게 해달라고요?”
“네. 회사가 바뀌어도 저는 저 오빠랑 할 거예요.”
나는 매니저를 흘끔 쳐다보았다. 저 사람이 바로 그 매니저인 것 같았다. 나는 이 계약을 말리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렇다면 왕수정이 사건에 휘말리기 바로 전까지만, 계약을 하게 하면 될 것이다.
“계약 기간은 얼마나 하시게요?”
“난 4년을 말했는데, 왕수정씨는 3년으로 하고 싶다고 하네?”
3년도, 4년도 너무 길다. 사건이 2년 지나서 발생하니 딱 2년만 계약하게 하면 될 것 같았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왕수정이 나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왕수정이 가장 말을 잘 듣는다는 매니저를 포섭해야 하겠다. 매니저는 나를 유심히 살펴보는 중이었다. 나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표정으로.
“혹시 안다영씨 남자친구 아니세요?”
“아, 남자친구는 아니고요 그냥 지인…….”
“아이고 진짜 평생을 따라다닐 것 같네.”
이사장은 속이 상한 듯 한숨을 쉬었다. 다영이 죽은 지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으니, 앞으로도 이런 일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다영씨 이야기는 앞으로 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덤덤한 말투로 말하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슬퍼 보였다. 매니저도 나의 마음을 아는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왕수정도 왠지 나를 동정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매니저님은 저랑 말 잘 통하실 것 같네요.”
“그럴 것 같네요.”
매니저는 나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의 반응이 가소롭게 느껴졌지만, 애써 눌러 참고 말했다.
“같이 술 한 잔 했으면 좋겠는데, 괜찮으신가요?”
“네, 그러죠.”
그러자 연예인 장민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전 고기가 좋습니다.”
“아, 그게.”
나는 연예인 장민우가 따라오는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나의 가족이 전부 좋아했던, 2021년에 장민우를 생각하며,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자 했다.
“가시죠. 소고기 사드릴게요.”
“오 좋습니다!”
“그럼 이사장님도 가시나요?”
매니저가 왕수정을 놓고 가는 것이 미안한지, 왕수정과 이사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왕수정은 잔뜩 삐진 얼굴을 하고서 매니저를 째려보았다.
나는 왕수정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사장을 왕수정 앞에 앉혔다.
“이사장님은 왕수정님 스테이크 사드리시고요.”
“그래. 그게 좋겠네.”
세 사람은 오랜 기간 만난 동무처럼 사이좋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 * * *
소고기집, 사람이 많진 않아서 그렇게 시끄럽지 않은 곳, 가장 조용한 구석에 앉은 세 사람.
“왕수정씨 다른 기획사에서 러브콜을 하지 않았나요?”
왕수정은 (허의원) 이전에도 연기 활동을 했고, 반응도 꽤 괜찮았었다. 다른 기획사에서도 왕수정을 탐내 했기에, 내가 슬쩍 떠보았다. 그러자 연예인 장민우가 끼어들며 말했다.
“전 다른데 한군데 있었는데, 여기가 가족적이고 좋더라구요!”
“네, 왕수정씨는요?”
매니저는 나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말을 아꼈다. 남자로서는 별로지만 매니저로서는 괜찮은 사람인 듯 보였다.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이곳과 하기로 한 거구요.”
“근데 4년은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3년도 사실 많다고 생각이 드네요.”
“뭐, 핑크나 젝키스는 5년을 했다면서요?”
“그거야 연습생 기간을 합친 거니까.”
연예인 장민우도 보이그룹 데뷔를 하였으니, 그것에 대한 이해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2년을 이야기해야 하는 판인데 5년으로 넘어가다니…….
“2년이 가장 적절하죠. 왕수정 측 입장에서는 말이죠.”
매니저는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2년을 제시하자 놀라는 눈치였다. 신인급은 오랜 기간 싼 가격에 붙잡아두려고 하는 회사가 많기 때문이었다.
“2년 좋죠. 하지만 우리 애가 드라마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것도 아니고. 아직까지 배짱 튕기는 것은 좀 그래요.”
“그럼 어딘가에 캐스팅 되었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2년으로 줄이고 싶다는 말인가요?”
“아유, 그냥 그렇다는 말이죠. 캐스팅 되면 좋죠!”
“고기 타요! 자자, 드시면서 하시죠.”
“네네. 하하.”
저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이사장의 측근이니, 2년 운운하며 물어보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고기만 먹었다. 계약하기 전에 왕수정이 드라마에 캐스팅 된다면, 나의 의도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기 때문이다.
* * * **
나는 전에 류사희 때문에 알게 된, 분장팀에 전화를 걸었다. 사극 분장팀이니까 (허의원)의 피디인 이동운 피디의 연락처를 알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다행히도 이동운 피디의 연락처를 전달받은 나는, 그길로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가 류사희의 유학비용을 대고 있다는 말을 같이 전해들은 이 피디는 나를 순순히 만나주었다.
“저희 형님 회사에 오게 된 친구인데, 좀 보시고 말씀 좀 해주세요.”
이 피디는 왕수정의 사진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왕수정에게, 사극 속 의녀의 옷을 구해다가 입혀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아, 제가 찾던 이미지의 여성이네요.”
이 피디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왕수정의 사진을 살폈다.
“제가 직접 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아 물론이죠! 당장 데리고 오겠습니다.”
“아, 어떻게 이렇게 딱 맞는 이미지의 여성을 데려오셨는지요? 혹시 우리 시놉시스 보셨습니까?”
드라마의 전체 내용을 설명한 것이 시놉시스인데, 그걸 보았다면 아씨의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사실 내가 그걸 본적은 없었지만, 그걸 보지 않았다고 하는 것 보다는 보고 알아서 이런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네, 얼핏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미지를 생각해 낸 거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그의 말을 들은 이 피디는 화가 나고 있었다. 이 피디 측에서는 시놉시스를 유통 시킨 적이 없으니, 최형민 작가 측에서 시놉시스가 새어나갔을 거란 판단이 들어서였다.
이 피디는 깐깐하기로 유명한 분이라 이런 사실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그런 디테일한 것은 모르니, 후에 벌어질 사건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그렇군요. 아무튼 왕수정씨 오시면 다시 이야기 하죠.”
이 피디는 친절한 어조로 나를 대했다. 나는 모든 것이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쾌재를 불렀다.
* * * * *
한 시간 뒤, 왕수정이 매니저와 함께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고, 나는 잠시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주차장에서 이 피디와 최 작가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이 피디의 앞에 있는 사람이 최 작가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뉴스에서 얼굴을 보았던 기억이 있는 작가기 때문이었다.
“어?”
나가 두 사람에게 다가가려다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은 아주 심각한 내용의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 작가 그렇게 안 봤는데, 시놉시스를 그렇게 유출시키고 말이야!”
“아니 내가 안 그랬다니까요? 지금 마감치느라고 정신없는데, 그걸 어떻게 유출합니까? 나는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고요 지금.”
최 작가는 (허의원)의 분량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그걸 미리 쓰느라고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사극의 특징상 미리 찍고 가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대본이 먼저 많이 나와야만 했다. 특히나 이 피디는 대충대충 하는 부분이 없는 분이라, 더 제대로 된 대본을 원했고, 그에 맞추느라고 지금 죽을 맛인 것이다.
“그럼 누가 유출을 했다는 거야? 나도 아니고 최 작가도 아니면 누가?”
이 피디는 화가 나서 발을 굴렀다. 그건 최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하시죠. 당사자에게 직접 들어보면 알겠네요.”
“그래. 그러자고.”
이 피디와 최 작가는 대본 유출자를 반드시 색출하겠다는 자세로, 당당하게 카페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본 나는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아무 말이나 막 던진 대가가 크게 한 방을 먹이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작가님.”
왕수정은 이 피디를 보고 깍듯한 자세로 일어나 90도로 인사를 했다. 그 옆의 매니저도 같이 일어나서 인사를 하였다. 이 피디는 왕수정의 실물을 보고, 더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것은 최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왕수정씨 맞으시죠?”
“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미인이시네.”
“그러게요. 우리 은진아씨랑 아주 잘 어울리겠어요.”
네 사람이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본 나는, 지금 들어가면 자신의 잘못이 묻혀질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카페로 들어섰다.
“어, 박준수씨 이리 빨리 와봐요.”
“네, 안녕하세요.”
“왕수정씨 캐스팅 하고 싶은데, 박준수씨가 시놉시스를 어디에서 구했는지, 그게 누군지 밝혀내고 난 뒤에 합니다.”
“네?”
우리는 셋 다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박준수씨가 우리 드라마 시놉시스를 어떻게 구해서 봤는지 알려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네 사람이 한꺼번에 나를 쳐다보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다급해졌다. 나의 한마디에 누군가가 희생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 말이나 막하면 누군가는 직장을 잃을 테니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만 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