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아씨(2)
“제가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한 일입니다. 심부름센터라고 하죠. 아마 그 사람들도 어렵게 구했을 겁니다. 누가 일부러 유출하고 그런 거 아닙니다.”
나는 누군가가 잘리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가장 적절한 답변을 생각해내었다며 혼자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니저의 표정을 보고 난 뒤에, 또 잘못 말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니저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질투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니까 박준수씨가 소속사 대표랑 친구인데, 이번에 왕수정씨를 도와주기 위해서 벌인 일이라는 거죠?”
“네, 그렇죠.”
“재밌네. 소속사 대표도 아니고, 그 친구가 왜?”
이 피디는 왕수정의 얼굴을 보고, 나의 얼굴을 번갈이 보며 피식 웃었다. 왕수정은 그 와중에도 정말 예뻤다. 누구라도 반할 만큼 말이다.
“그럴만한 인물이야 왕수정씨.”
나는 이 피디가 하는 말이 뭔지 깨닫지 못하고, 일이 어느 정도 해결 되었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돌렸다. 이 피디의 표정을 봐서는 더 딴지를 걸지 않을 것 같았다.
매니저는 이 피디의 말이 뭔 뜻인지 알아듣고, 얼굴까지 벌개져 있었다. 왕수정은 남자들이 늘 자기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는 일이 익숙하기 때문에, 그들의 미묘한 신경전은 모른 채, 대하드라마 주인공이 될 꿈에 젖어 있었다.
“그니까, 드라마팀 내부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다 저의 불찰이죠.”
나는 이 피디에게 팀원에 대한 불신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야 나중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군요. 그럼 왕수정씨를 은진아씨 역할로 캐스팅하는 걸로 하죠. 물론 연기 테스트를 거치고 나서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나 인사하고, 뒤에 매니저가 일어나 인사하며 왕수정까지 인사했다. 매니저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것이 정말 이상했지만, 일단 이 자리에서는 넘기기로 하고 방긋 웃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다들 카페를 나가고 난 뒤에, 그들의 자리 옆 구석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녹음기가 들려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가 기자였다. 가 기자는 특유의 정성스러운 비웃음을 선보이며, 남은 커피를 비웠다. 쓴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아주 달달한 라떼를 마신 것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말이다.
“박준수는 진짜 금광석이야 흐흐.”
나는 오늘 캐스팅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일단 캐스팅 불발이라도 기사를 내보낸다면, 계약 시 참고 사항이 될 거라고 판단하고, 가 기자를 그 곳에 불렀었다. 하지만 가 기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통보했고, 실제로 나오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기자의 촉이 발동해서 나온 것이다. 또 카페 구석 자리는 나의 시선에 들어오지 않는 자리다. 나는 가 기자가 그 곳에 온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기사거리를 자꾸 갖다 주고, 고맙다 박준수.”
가 기자는 정성스럽게 씨익 웃고는, 내가 나간 곳으로 따라 나갔다. 몰래 뒤를 쫓아가는 것은 가 기자 전문이니까.
* * * * *
“넌 차에 들어가 있어 어서!”
“왜? 나만 들어가 있으라고?”
“그래, 나는 박준수씨랑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응 알았어.”
매니저는 왕수정을 차에 들여보내고,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나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어깨와 목, 등에 힘을 잔뜩 주었는데, 그게 좀 우습게 느껴졌다.
“왜 그러시죠?”
퍼억.
매니저가 다짜고짜 나에게 주먹을 날렸다. 나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하였지만 왜 그런지를 깨닫고 피식 웃었다. 매니저는 강렬하게 질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가 유부남이고 왕수정을 유린한 주제에, 질투까지 느끼고 있는 것을 본 나는, 그의 행동을 가소롭게 쳐다보았다.
“이거 봐요! 다짜고짜 이게 무슨 짓입니까?”
“감히 내 여자를 넘봐?”
매니저의 말을 들은 나는 입에 있던 침을 뿜을 뻔 한다. 매니저는 자신의 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 여자? 뭐? 당신 아내는 넘본 적이 없는데?”
나의 말을 들은 매니저의 얼굴색이 흙빛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유부남인 것을 내가 어찌 알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때는 간통죄가 있어서 바람을 피우는 것을 들키면 감옥에 가곤 했었다.
“내 아내 말고!”
“아내 말고 여자가 또 있다고? 그거 불법이야! 개#식아!”
나는 매니저에게 복수의 주먹을 날렸다.
퍼억.
나의 주먹을 맞고 몸이 밀린 매니저는, 광분하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너 이새#! 오늘 죽고 싶구나?!”
매니저는 나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나는 매니저의 손을 뿌리치며 옷을 털었다. 매니저가 열이 잔뜩 오른 얼굴로 또 덤비는데, 차에 갔던 왕수정이 뛰어와서 매니저를 뒤에서 안았다.
“왜 이래? 이러지마!”
“이 개#식이 너를 넘보잖아!”
“아니야 아니야 나는 자기뿐이야. 걱정하지마.”
“꼴깝들을 떨고 있다.”
나는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되뇌었다. 생각 같아서는 둘에게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극에 맞지 않아 포기하였다. 계약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사장이 그렇게도 좋아하던 것이 생각나서 꾹꾹 눌러 참았다.
“난 그쪽에게 관심 없어요. 이사장을 위해서 한 일인데, 의리로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말한 것뿐이야!”
나는 화가 나는 것을 억지로 참고서,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왕수정이 다가와서 나의 옷을 붙잡았다.
“고맙습니다. 감사해요.”
“됐어요. 계약이나 잘 하시고, 2년 계약으로 꼭 하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찰칵 찰칵.
가 기자는 열심히 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둘의 모습이 아름답게 담기도록 정성스럽게 앵글을 잡아가며 찍어대었다.
“좋았어! 잘 어울리는 한쌍이구만.”
찰칵 찰칵.
가 기자는 신이 나서 셔터를 눌러댔다.
* * * * *
“어유 이거 참. 2년 말고 3년은 안되겠나?”
“3년은 깁니다. 3년 할 테니 금액을 늘려주시던가요.”
“그래요. 2년 동안 열심히 해 봅시다!”
이사장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서류에 사인을 하였다. 왕수정은 매니저의 지시에 따라 사인만 할 뿐이었다.
“잘 해 봅시다, 우리.”
똑똑똑똑. 똑똑똑똑.
계약을 마치고 악수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이사장의 사무실을 급하게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사무실에 들어 온 사람은 이사장의 비서로, 그녀의 손에는 가 기자의 3류 주간신문이 들려 있었다.
“이것 좀 보시죠, 사장님.”
“응? 그래 뭐지?”
신문을 펼쳐 본 이사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사장은 이게 뭐냐는 얼굴로 왕수정을 바라보았다. 이사장의 표정을 본 매니저가 불안한 듯 다가와서 신문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나와 왕수정의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이, 이게 뭡니까? 신인 여배우 킬러라니? 우리 준수가?”
“이자식이 결국 사고를 치는구만!”
“어떡해요? 나?”
“당장 오라고 해야죠! 박준수 자식을 불러요.”
“그래요. 안 그래도 오라고 했는데.”
똑똑똑. 벌컥.
“아, 손님 마무리하고 오느라고.”
마침맞게 내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사장은 인사하는 것도 무시하고, 나에게 신문을 펼쳐 보여주며 다가왔다. 매니저와 왕수정은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보았다. 저들의 표정이 왜 그러는지 알지 못하는 나는 당황스러웠다.
“이거 어쩔 거냐? 이거 가 기자 신문이지? 그 인간은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이사장이 내민 신문을 펼쳐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 기자 이새#가 안 온다더니!”
그날 가 기자가 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가 온 것은 물론, 열애기사까지 내고 만 것이다.
“우리 수정이 잘못되면 어쩔 겁니까? 캐스팅이 완전히 확정된 게 아니라니까요?”
“뭐요? 그럼 완전히 확정되지 않았는데 2년으로 계약한 거야?”
“박준수만 아니면 확정이나 다름없죠 뭐!”
“아니 누구 때문에 캐스팅 된 건데 지금?”
“아우, 다들 왜이래요?”
네 사람이 서로를 탓하며 대치하고 있는데, 나의 전화가 울렸다.
부우우웅.
“여보세요.”
“박준수씨? 나 이 피디인데요.”
“아, 네네 안녕하세요. 이 피디님.”
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놓고 이 피디의 전화에 집중했다. 세 사람도 나의 통화를 들어보려고 귀를 갖다 대고 있었다.
“기사 봤어요? 그 삼류 기자가 그걸 어찌 알았는지 모르지만, 그거 퍼지면 곤란하잖아요?”
“네, 죄송합니다. 일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돈을 먹여서라도 당장 기사 못나가게 조치하겠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요. 박준수씨가 왕수정씨한테 마음이 정말 있다면 공개 연인이 되는 것도 저는 추천하거든요.”
“네? 공개 연인이라뇨? 절대 아닙니다. 제가 그때 사실 우리 이사장님에게 도움이 되고자 그런 건데, 오해가 있을까봐 그렇게 둘러댄 거거든요.”
나의 말에 이사장이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워낙 정의로운 건 알고 있었지만, 자기를 위해서 왕수정을 이 피디에게 소개했다는 말이 아닌가? 2년 계약을 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의 추진력이 다시 한 번 감탄하는 이사장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2년 계약은 두고두고 마음에 담겨 있었다.
“그럼 준수씨가 왕수정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어떤 제스처가 있어야 하겠는데요? 그래야 캐스팅이 완료될 것 같습니다.”
“아 구체적으로 어떤 제스처 말씀이긴가요?”
“예를 들어 다른 여자친구를 만든 뒤에, 인터뷰를 한다 던지 그런?”
“아, 다른 여자친구요……, 알겠습니다. 그런 맥락의 인터뷰 해보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세 사람은 같은 표정을 하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내용의 통화인지 매우 궁금한 모양이었다.
“다른 여자를 만들라네요. 허허.”
“다른 여자를 뚝딱 만들라고? 뭐야 그게? 그 양반도 참 그렇네.”
“내가 소개팅 해줄게요. 아는 텐프로 많으니까.”
“뭐야? 이 사람이 예의가 없으시네?”
이사장은 매니저의 말에 기막혀하며 혀를 찼다. 그는 다영과의 스캔들을 통해서, 내가 텐프로 여자만 좋아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인간이다.
생각도 없고, 배려도 없고, 지만 아는 인간인 듯 싶다.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지닌 인간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 인간보다 더 쓰레기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게 2년이 넘어가야 밝혀지는 것이라 기고만장한 모습을 그냥 두어야 한다는 것이 화가 날 뿐이었다.
“당신은 그냥 저한테 말을 걸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나는 매니저에게 다가가 매섭게 노려보았다. 당장 매니저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 매니저는 순간 쫄아서, 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아니면 무슨 수로 여자를 만들어……요?”
“부탁을 해봐야죠 뭐”
“어? 아……, 그건 내가 좀 그런데?”
이사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김설아와 스캔들 기사를 내면, 당장 왕수정의 이미지가 회복 된다. 하지만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설아의 이미지가 망가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