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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69화 (69/200)

69화. 세 번째 조력자(1)

“송애교는 반드시 뜹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어머, 자기가 무슨 도사라도 되나?”

나는 왕수정이 자꾸 끼어들며 말하는 것이 너무 화가 났지만, 이사장을 생각해서 눌러 참았다. 왕수정은 내가 하는 말과 행동 모두 참견할 기세였다.

“야, 너는 매니저가 아니고 미용사야. 참견하는 것도 정도껏이지, 내가 언제까지 니 의견을 전부 들어야 하냐고? 아니면 매니저를 하던지.”

“이사장님! 어떻게 저한테 그러실 수가 있으세요?”

이사장은 내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하자 그제야 자기가 실수한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와 있었던 일들을 잠시 잊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왕수정 때문에 잠시 혼이 나갔던 듯 했다.

그동안 이사장과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이런 일에 무너질 사이었던가? 하는 서운함이 내 얼굴에 고스란히 보였다. 이사장도 내 마음을 어느 정도 깨달은 눈치였다.

“아, 미안하다. 내가 과했어.”

“아무튼 송애교 꼭 데려오세요.”

“니가 책임질 거야?”

“네. 제가 책임집니다.”

나는 자신 있는 얼굴로 답하였다. 송애교가 뜨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가능한 대답이었다. 후에 송애교가 뜬 뒤에는 이사장이 나를 업고 다녀야 할 것이다. 그녀는 한국을 넘어, 일본과 중국까지 사로잡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후에는 미국에서 영화까지 찍는다. 그보다 더 나은 배우가 대체 얼마나 있나? 외모와 연기력까지 갖춘 배우는 흔치 않다.

“그럼, 니가 이미지 메이킹을 해주던지, 아니면 매니저를 하던지 해줘야지. 그래야 책임지는 거야.”

“아, 사장님……, 저는 현업이.”

“그니까 니가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야?”

나는 이사장을 설득하기 위해서, 조금 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왕수정 때문에 이사장이 조금 변한 탓이었다. 왕수정이 본격적으로 진상을 부리기 전까지, 이사장의 삐침은 계속되니, 그때까지는 이사장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 물론 나는 그때까지도 이사장이 풀리지 않는다는 걸 알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매니저 할게요! 퇴근 후에 만이라도 하라면 하겠습니다.”

나는 몸이 부서질 각오를 하며 말했다. 이사장은 그동안 그렇게 매니저를 하라고 해도 안하던 내가 갑자기 매니저를 한다고 나서는 것에 놀라버렸다.

내가 그렇게 꼭 데려오고 싶어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이 또다시 통하는 순간이었다.

“니가 그렇게까지 하는 건 처음 봤다. 그래 내가 졌어. 송애교 데려오기로 하지.”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꼭, 저희 미용실에서 맡게 해 주셔야 하구요!”

“그래, 알았어. 정 원장 쪽은 어차피 꽉 찼어.”

“송애교 너무 짧고 그렇지 않나? 보는 눈이 없으시네, 준수씨는.”

왕수정은 내가 송애교를 너무 아끼는 것이 짜증나는 듯 삐죽거렸다. 그것이 질투인 것은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 뒤, 송애교가 소속사를 바꾸었다. 이사장이 그런 일은 참 잘한다.

* * * * *

“안녕하세요. 송애교라고 합니다.”

송애교는 등장부터 상큼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리고 예쁜데다가 귀엽기까지 한, 신세대 미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송애교의 실물을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더 예뻐서 놀랐다. 이사장은 송애교를 직접 만나보니 생각보다 더 괜찮아 보여서 마음에 든 눈치였다.

“와, 정말 예쁘시네요.”

“어머, 그쪽이 절 그렇게 추천하셨다죠? 박준수씨?”

“네, 하하. 그냥 그렇게 되었네요.”

그런데, 내가 아직까지 착각한 것이 있었으니, 그녀가 주인공으로 활약하게 될 드라마 (가을여행)이 아직 아무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이, 작가가 드라마를 써서 피디에게 보여주고, 그게 편성회의에 들어가고, 캐스팅하고 그렇게 진행이 되는데, 그 첫 과정부터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제 한 달 정도면 완성할 테지만 현재는 작가가 다른 드라마를 집필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니까 지금부터 1년이나 지나야 송애교가 주인공이 되는 건데, 내가 그걸 착각하고 송애교를 벌써 섭외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지금부터 6개월 정도는 아무 성과가 없을 테니, 그동안 이사장의 온갖 구박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 (순산 산부인과)에 출연 중이고, 그것 때문에 CF도 찍게 될 것이고, 다른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연일 뿐이고, 주목을 받기 전까지는 매니저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 말고 전담 매니저가 있긴 하지만, 나도 매니저의 역할을 분담하기로 하였으니, 당장 방송국 쪽에 줄이라도 있어야 할 판이었다. 나는 일단 다영의 드라마 담당 피디와 작가를 만나보기로 하였다. 당장 (가을여행) 작가를 모르는 상태니, 그거부터 알아봐야 했다.

* * * * *

나는 선물을 사들고 피디와 작가를 만나러 갔다. 두 사람은 다행히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야 오랜만이네. 신문에서는 봤는데, 잘 지냈죠?”

“네, 이렇게 나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난 저번에 한번 봤잖아요, 준수씨.”

나가 내민 선물은 값비싼 산삼이었다. 그 귀한 선물을 받아 든 두 사람은 입이 귀에 걸리고 말았다.

“뭐야 뭐야? 이거 산삼이네? 어머 이런 귀한 걸 다.”

“와, 고마워서 어째요?”

“나중에 준수씨 미용실에 손님 모시고 가야겠다.”

“아, 감사하죠. 저 그리고.”

“응 말만 해요 뭐든.”

“아, 제가 잠깐 매니저 비슷하게 해드려야 할 배우님이 계셔서요.”

“어머, 매니저도 해요?”

“아뇨. 정식은 아니고, 회의 같은 거, 의견 내는 그런 부분을 도움 드리려고요.”

나는 이런 식으로 작가와 피디들을 소개 받았고, 결국에는 방송사 책임 피디까지 알게 된다. 다 자본주의의 힘이었고, 엄정희의 도움도 있었다. 엄정희는 내가 히트하는 노래를 미리 잘 알아본다는 말을 은근슬쩍 흘려주었다. 내가 부탁한 탓도 있었지만, 엄정희는 듣던 대로 의리파였다.

나는 대본을 보는 건 싫었지만 내용을 보면 그게 히트 칠 드라마인 걸 알 수 있었다. 선정이가 드라마를 매우 좋아했었기 때문에 히트작은 전부 알고 있던 탓이었다. 중간 정도로 히트하는 작품은 모른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무기를 가진 셈이다.

방송사 책임 피디의 책상에는 무수히 많은 대본이 있었다. 나는 그가 자리에서 잠깐 사라진 틈을 타서 그 속에 있는 대본들을 살펴 보았다. 그러다 결국 그 속에 숨어있던 (가을 여행)의 대본을 발견하게 된다. 책임 피디는 사실, 내가 대본을 한번 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기에 일부러 늦게 왔다. 덕분에 나는 그 많은 대본의 로그라인(한줄 컨셉)을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

“찾았다!”

책임피디가 돌아오자 나는 히트작을 전부 뽑아서 책상에 나열해 두었다. 내가 알고 있는 작품들이니까 아주 잘 된 작품만 모아놓은 것이다.

“이거 잘될 것 같아요. 제가 한번 봤는데 재밌어요.”

책임 피디는 나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그 작품들을 눈여겨보았다. 후에 진짜로 그 작품들이 잘 되자, 놀라며 나에게 가끔씩 편성될 작품 리스트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가을 여행)이었다. 나는 그 작품은 무조건 송애교와 송슨준과, 남빈이 해야 한다고 우겼다. 나의 말을 딱히 들은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나의 노력으로 바뀐 것이 있다면, 드라마 (가을 여행)이 김미선에게 먼저 갔고, 그녀가 그걸 발로 뻥 찬뒤에 송애교에게 가는 건데, 그게 바뀌어서 바로 송애교에게 먼저 간 것 하나 뿐이다. 그렇게 내가 올려준 것은 송애교의 자존심이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거기다 작가들과 피디들이 앞으로 하게 될 작품까지 전부 알게 된 나는 누가 잘 될 작가와 피디인지 알 수가 있었다. 방송국에 몇 달을 드나들며 알게 된 고급 정보였다.

이사장은 내가 직접 발로 뛰며 만들어 온, 잘될 피디와 잘될 작가들 리스트를 토대로, 좀 더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왕수정의 진상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에 대한 삐짐은 다 사그라들었고, 예전의 그 진득한 믿음만 남았다. 전부 나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며 송애교가 캐스팅되기까지의 과정을 진행하고 있던 중간 즈음, 나의 미용실에 그분이 찾아올 시기가 되었다. 바로 화장품 회사 이사로 퇴직을 앞두고 있는 고씨였다.

* * * * *

내가 재준의 옆에서 전해들은 고씨에 대한 정보는 이러했다.

고씨는 중견 화장품 회사의 임원으로 1년 뒤에 퇴직을 앞둔 상태였다. 평소 탈모를 걱정하였기에, 탈모 클리닉을 하러 [스타일 헤어]에 갔다가 유 사장과 만났다고 한다. 그들 사이는 승철이 소개했다.

고씨는 회사 내에서 수많은 일을 해내었고 그가 개발해낸 화장품 레시피가 수천가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제 곧 회사를 나와야 하는 처지였다. 그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도, 굳이 회사를 나가는 것에 불만이 많았고, 그의 야망을 알아 본 승철이 재준과의 사업을 제안하였다.

고씨는 재준과 만나서 사업까지 하게 해 준 승철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부동산 재벌의 외동딸을 소개해주었다. 아내인 은미는 그때 만나게 된 것이다. 물론 현재는 선정이와 결혼했지만, 원래는 은미라는 여자랑 결혼해서 사업을 하게 된다.

사실 고씨는 능력이 좋았지만 인성이 좋지 않았다. 여자를 밝힌다고 해야 하나? 재준은 고씨의 유흥비를 대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내가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분명 변태의 얼굴일 것이다.

고씨를 만나는 일을 조금 생각해 보아야 했다. 중간에 화장품 레시피 때문에 소송이 걸리는 것도 고씨 때문이었고, 그 일로 사업이 부도나는 상황까지 갔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피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던 중, 생각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와, 오랜만에 뵙네요.”

“준수상 오랜만에 뵙스무니다!”

온 사람은 바로 일본 시#이도의 대머리 이사였다.

대머리 이사는(이하, 대이사) 나에게 반가움을 표시하더니 낼름 자신의 모자를 벗어버렸다. 모자 속에 감추어 있던 대머리 이사의 민머리가 번쩍 드러났다. 율브린너처럼 번쩍거리는 대머리와 하얀 치아가 일대를 환하게 비추었다. 나는 순간 눈이 부셔서 눈을 찌푸렸다.

“아예 밀어버렸스무니다. 전구가 필요 업스무니다.”

“으악, 눈부셔.”

“나는 이제 포기했지만, 이 친구는 머리가 조금 있으무니다.”

대이사는 친구의 모자를 벗기고 나에게 보여주었다. 친구는 대머리 이사의 초반 머리처럼 잘만 만지면 풍성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는 자신의 민머리가 드러난 것이 부끄러운지 자꾸만 머리를 손으로 가렸다. 평소에 웬만하면 모자를 벗지 않는 듯, 머리가 모자의 모양에 맞추어서 눌려 있었다.

“이분이 누구신데요?”

“나랑 대학 동기인데 한국서 화장품 회사에 임원을 맡고 있는 조수영이라는 친구 이무니다.”

“안녕하세요. 명의, 아니 명 헤어디자이너라고 들었습니다.”

조수영? 조씨? 나는 그가 바로 조씨임을 깨닫고 놀랐다. 가능하면 만나지 않으려고 했던 조씨를 대머리 이사가 데리고 와버린 것이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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