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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74화 (74/200)

74화. 크리스마스의 황당한 기적

“왜 그러냐고?”

준희의 울음소리에 분노한 내가 소리쳤다.

준희는 울음을 그치고 훌쩍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준희가 웃고 있다? 울면서 웃는다?

“나 합격할 것 같아! 안정권이야!”

“뭐? 정말이야?”

준희는 얼마 전 수능을 치렀다.

수능 점수가 S대 법학과에 안정권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으응! 나 해냈어!”

준희는 그동안 3당4락이라는 말에 걸맞게 피 튀기는 수험생 일기를 써왔다. 나와 아버지가 수시로 과외 선생을 붙여주었고, 엄마는 바쁜 와중에도 준희의 건강식에 힘써왔다. 덕분에 나는 찬밥 신세였지만.

준희를 향한 우리의 서포트는 끝이 없었고, 준희의 노력은 그 이상이었다. 그렇기에 우는 것이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집에 뛰어갔다.

그 시각, 우리 식구들이 한마음으로 집에 달려갔다.

원래 회귀 전에, 1998년도에 우리 집이 끝났었다. IMF로 인한 도산과 그 때문에 격해진 감정싸움, 그로 인한 사고와 끊임없는 고통으로 집이 아작 났었다. 하지만, 회귀를 하고 가족이 각자 이루지 못한 일들을 이루었다. 엄마는 목숨을 건졌고, 아빠는 돈을 건졌으며, 준희는 꿈을 이루었다. 기적이다.

“축하해 준희야.”

“축하축하!”

“장하다. 내 딸.”

“행복해. 죽을 것 같아.”

준희가 눈물을 흘렸다. 이미 한참을 울었는데도 또 울었다. 우리도 같이 울었다. 그렇게 눈물바람을 마치고 엄마가 말했다.

“김설아씨도 불러야지.”

“그래, 김설아씨 덕분이잖아.”

“언니 아니었으면 나 힘들었을 거야.”

설아 덕분에 합격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너무 바쁘다. 드라마를 거의 생방 수준으로 찍고 있어서 잠시의 틈도 없었다.

“지금 바빠서 전화 받을지 모르겠네.”

나는 그녀의 스케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어쩌면 단잠을 깨우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맨날 쪽잠을 자면서 촬영하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랬다.

“아, 설아씨.”

내 목소리를 들은 설아는 내가 흥분한 것을 단박에 깨달았다.

“준수씨, 무슨 일 있어요? 목소리가 달라.”

“우리 준희 대학 합격할 것 같아요.”

“와, 정말 잘 되었네요.”

“지금 다들 설아씨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머니며 아버지가 고맙다고 외쳤다. 준희는 더 크게 고맙다고 소리 질렀다.

설아는 행복한 목소리로 웃었다.

“저 오늘 정말 힘들었는데, 준수씨 가족 덕분에 힘이 나요.”

“촬영이 힘들죠?”

설아는 수험생 못지않게 밤샘을 지속하는 중이었다. 힘든 건 당연했다.

“괜찮아요. 같이 있고 싶은데, 못 갈 것 같아 속상해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한시라도 푹 자요. 고생해서 내가 너무 속상해요.”

우리 통화에 준희가 구역질을 해댔다.

“으, 적당히 좀 해. 오늘 주인공은 나라구.”

“그래, 알았다 녀석.”

그렇게 준희의 축하 파티가 이어졌다.

설아는 그 이후로도 너무 바빠서 잠시의 짬도 내질 못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무렵, 우리 가족은 준희의 대학 근처로 이사 갔다. 나는 집이 팔리지 않아서 홀로 집에 남게 되었다.

* * * * *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

거리에서는 성탄절 노래가 울려 퍼지고, 밀레니엄을 앞둔 마지막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노랑머리는 빅엄마의 지도에 따라, 한식을 배워나가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배우면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할 것이다.

나는 크리스마스에 사업 파트너들을 전부 집으로 초대했다. 물론 요리는 노랑머리가 할 것이다. 대머리 이사와 조씨가 은미를 억지로라도 끌고 오기로 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날이 다가왔다.

너무 큰 집에 나 혼자 있자니 텅빈 집 구석구석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나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 위해서 집에 큰 트리를 놓아두고 꾸미기 시작했다. 사실 설아씨를 초대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크리스마스에도 촬영이 잡혀 있었다. 드라마 방영 바로 몇 시간 전에 촬영을 마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정말 생방송에 가까웠다.

노랑머리가 장을 잔뜩 봐서 집에 들어왔다. 내가 크리스마스 트리장식을 거의 마칠 무렵이었다.

“와 이렇게 큰 집에 혼자 살아요?”

“그러게, 너무 크네. 너라도 여기서 같이 살래? 그럼 덜 외로울 것 같네.”

나는 노랑머리라도 같이 산다면 훨씬 덜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선뜻 말하기가 그랬다. 각자 개인 생활이 있는 거니까.

“어유, 색시를 데리고 사셔야죠. 나도 색시가 더 좋은데?”

“하하, 그래 그게 더 좋지. 그럼 가끔 와서 자고 가.”

“네, 그건 좋죠.”

노랑머리는 오늘따라 더 외로워 보이는 나를 보며, 다음 해에는 나에게 꼭 소개팅이라도 해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설아씨랑 사귀는 일은 노랑머리에게도 비밀이었다.

딩동, 딩동.

곧 손님들이 들이닥치고, 노랑머리는 빅엄마에게서 배운 음식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러 왔으무니다.”

“냄새가 복도까지 퍼졌네요!”

“나 바쁜 사람입니다. 음식만 먹고 갈 거라구요!”

은미는 새침하게 말하고는 주방을 쳐다보았다. 노랑머리가 얌전하게 앞치마까지 두르고서 열심히 음식을 하고 있었다.

“쳇 뭐야? 박준수씨가 하는 거 아니었어요?”

“전 음식 진짜 못합니다. 먹고 토할 수도 있어요.”

“우웩, 그러면 곤란하무니다.”

“에이 설마, 근데 집이 진짜 좋다. 부자는 역시 다르네.”

“준상이 부티가 난 게 이유가 이스무니다.”

조씨와 대머리 이사는 집이 궁금한지 둘러보러 다녔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두 사람을 끌고서 집을 구경시켜주었다. 은미와 노랑머리만 남기려는 수작이었다.

둘이 그러고 있는 사이 할 일이 없어진 은미는 노랑머리가 음식을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느새 노랑머리의 칼질은 가위질처럼 능숙해졌고, 손님 머리를 감겨주던 손으로 음식의 양념을 무쳤다. 그의 손끝 하나하나로 음식을 마무리해가는 모습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순조롭게 이어졌다. 은미는 그 모습을 하나하나 보면서 조금씩 눈빛이 달라져가고 있었다. 노랑머리는 그저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조씨와 대머리 이사를 데리고 아주 늦게늦게 주방에 왔을 무렵, 은미의 눈빛이 아주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노랑머리가 은미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였고, 그걸 은미도 알아채고 있었다.

음식이 거의 될 무렵, 내가 식탁에 음식을 날랐고, 은미도 자연스럽게 음식을 날랐다. 은미는 노랑머리가 전해주는 음식을 받다가, 그와 손이 슬쩍 스쳤는데, 순간 뭔가가 찌릿해 옴을 느꼈다. 하지만 은미는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음식을 다 내어오고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일어나서 외쳤다.

“자, 우리 바꾸다가 한국 최고의 미용브랜드로 자리 잡기 위해서 건배합시다!”

나가 건배를 하자고 하자, 다들 잔을 들었지만 은미는 들지 않았다. 그러자 대머리 이사가 억지로 은미의 잔을 같이 들었다.

“자자, 일단 간바이는 하는거시무니다.”

건배!

다 같이 건배를 하고, 음식을 들었다.

은미는 생각보다 훨씬 맛있는 음식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배운 솜씨치고는 정말 놀라운 맛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스승이 중요한 거란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야, 이친구가 은미씨한테 꼭 맛있는 거 해주겠다고 요리학원을 다니더니, 장난이 아니네!”

“네? 아니 은미씨한테 해주겠다는 건 맞지만, 그걸 대놓고 이야기하면 어째요?”

노랑머리는 은미 앞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 부끄러운지 얼굴까지 벌개졌다. 그건 은미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 부모님이 바쁜 탓에 제대로 된 밥상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었던 은미에게, 오늘의 밥상은 감동 그 자체였다.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요리학원까지 다녀가며 밥상을 차려준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감동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노랑머리가 보여준 섬세함과 겸손한(그건 정말 자신이 없어서 한 행동이었지만 은미의 눈에는 겸손으로 보였다.) 모습은 사람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가져 온 전과자에 대한 편견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시네요?”

소주 몇 잔에 기분이 좋아진 은미는, 노랑머리를 지그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노랑머리는 은미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서 배시시 웃었다. 순간 그 미소를 본 은미는 그가 잘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쌍커풀은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는 분명 잘생긴 얼굴이었다. 노랑머리는 그대로 은미에게 손을 뻗었다. 은미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노랑머리는 피식 웃고는 은미의 볼에 묻은 머리카락을 떼어 주었다. 둘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때, 눈치 없는 대머리 이사가 만취한 얼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본 노래로, 누구도 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대머리 이사 혼자는 내용을 알고 있었다. 노래는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지닌 노래였다.

나는 중간 중간 계속해서 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하는 걸 본 노랑머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머리 이사가 양 볼이 빨개진 얼굴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조씨는 뒤에서 넥타이를 이마에 매고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샐러리맨의 주사였다.

두 사람을 보며 까르르 웃는 은미와 노랑머리,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노랑머리는 갑자기 도시락을 싸더니, 나에게 도시락을 내밀었다.

“누군지 몰라도 잠깐 만나고 오시죠? 도시락 가져가면 좋아할 것 같은데요?”

“어? 어떻게 알았어?”

“아우, 그렇게 티를 내면서 통화하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죠! 어서 다녀와요 이 사람들은 내게 맡기고.”

고주망태가 되어서 흐느적거리는 두 이사님을 쳐다보며, 노랑머리가 말했다.

나는, 슬쩍 뒤로 빠져서는 독한 양주를 가져왔다. 노랑머리가 전부터 노렸던 양주였다.

“고맙다. 저 사람들 자면 둘이 나눠 마시던지 해.”

“헤헤, 고맙습니다.”

도시락을 받아 든 나는,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 마침 설아씨도 식사를 못하고 있던 터라서 내 도시락을 먹고 행복해 했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차 안에서 내 무릎을 베고 잠이 든 설아를 잠이 들 때까지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내가 가져 온 양주를 나눠 마신 두 사람도 조금 더 가까이 앉았다. 자신들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그러더니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대로 잠이 들었다. 설아를 재우고 돌아 온 나는 그들의 사진을 찍을까? 고민하다가 말았다. 참으로 희한한 광경임에 틀림없었다.

새벽, 자신이 한 행동을 깨달은 은미는 깜짝 놀라며 집을 빠져나갔다. 그 이후 은미는 나의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연락조차 받지 않으며 두문불출하던 은미가, 어느 날 미용실에 찾아왔다. 명목상은 투자를 다시 하겠다며 찾아 온 것이지만, 사실은 노랑머리가 보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부동산 재벌의 외동딸과, 전과자 미용사의 어메이징한 러브스토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사태를 보며 진짜 드라마는 따로 없다며 혀를 찼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황당한 커플은 얼마 뒤 내 뒷목을 잡게 하였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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