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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75화 (75/200)

75화. 한원장#로맨스#밍기적#(1)

대망의 2000년이 시작 되었다. 지구가 멸망할 것 같았던 세기말이 지나고,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새천년이 밝아왔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예약 손님을 하기 위해 미용실에 나왔다. 밀레니엄 첫 커플이 되겠다고 새해 첫날부터 결혼식이 줄줄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아직 젊으신데, 벌써 사위를 보시네요.”

“오 마이 갓. 베이비까지 생겼어요. 초스피드로 그랜드 마미가 된다니까요 내가. 흑흑.”

이제 갓 40대를 넘긴 손님은 벌써 할머니가 된다는 소식이 부담스러운지 연신 한숨을 쉬어댔다. 손님은 계속해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썼다. 아마 미국에서 온 분 같았다.

“갑자기 내 도터가 웨딩을 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미국에서 정신없이 왔잖아요. 너무 정신이 없어요.”

“그런데 오니까 좋긴 좋네요. 한국은 아직까지 컨츄리 한 부분이 있어서 좋아요. 미국에서 십년 만에 왔잖아요. 도터가 결혼을 하니 왔지. 내가 언제 여길 또 오겠어. 비행기 값이 왓 더 헬이야.”

미국에서 오는 비행기 값은 예나 지금이나, 미래에나 비싸긴 마찬가지다. 그때, 한 원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미국에 아들놈이 있다 아입니까? 그 놈이 비행기 값이 아까워가 여길 안 온다 그카더라구요. 보고 싶은데 부모 맴도 모르고 돈이 뭐라꼬.”

“환갑 때는 오겠죠.”

“환갑 아직도 멀었심더. 그 안에는 안 올 긴데, 내 함 가까 생각 중 입니더.”

나는 한 원장의 아들이 한국에 나올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걸 듣고, 더 큰 고민에 빠졌다. 그러자 미국에서 온 손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 안에 힌트도 섞여 있었다.

“재혼 하시면 되겠네요. 원장님 솔로이시라면서요? 부모 재혼하는데 아메리카 아니고 남극이라도 오겠죠.”

“아이고 마, 아 얼굴 볼라고 재혼을요? 그기 뭔 논립니까? 허허허.”

한 원장은 농담하지 말라면서 허허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가슴이 꽉 박혔다. 한 원장의 아들이 총기 사고로 죽기 전에, 한 원장을 재혼시켜서 한국에 데리고 와야 한다. 그래야 한 원장도 살고, 아들도 살고, 나도 산다.

* * * * *

“한원장님을 결혼 시켜야겠어.”

나는 노랑머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 원장님을 결혼시키는 일은 혼자서 해내기엔 좀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노랑머리가 같이 행동을 해 준다면 일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랑머리가 같이 해주겠다는 말을 해주어야 했다.

“그거 하면 나도 결혼시켜 줍니까?”

노랑머리가 의외의 대답을 하였다. 나는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쉽게 승낙을 해 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조건을 달다니, 노랑머리도 어지간히 결혼이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너도 결혼이 하고 싶은가 보구나? 근데 누구랑? 소개팅 해줘?”

“난…… 난 그게.”

내가 알기로 노랑머리는 아직까지 결혼을 하고 싶은 상대를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결혼을 한다니 도대체 그가 누구란 말인가? 나는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단순한 해프닝일 뿐이라고, 두 사람은 서로를 극도로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바로 은미랑 말이다. 그렇게 둘이 서로를 부정한지 이제 겨우 며칠이 지났을 뿐이다.

“은미씨랑 결혼하고 싶어요.”

“뭐?! 진짜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하였다.

둘이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는 자체도 말이 안 되는 일이고, 두 사람의 집안 차이도 무시 못 할 뿐더러, 둘의 학력 차이와 성격차이, 게다가 노랑머리는 전과기록까지 있는데??

“아니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죠 뭐. 아무튼 시도는 해보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어차피 두 사람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밑져야 본전인데, 내 수족이 되어 준 노랑머리에게, 그 정도는 해 주어야 맞는 일이다. 한번은 도와주어야 후회도 없을 것이다.

“그래. 그러자. 우선 한 원장님 결혼이 확정이 되면 네 일도 도모해보는 걸로 하자.”

“네!!!!!!”

노랑머리는 신이 나서 외쳤다. 당장 사랑이 이루어진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이 분명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이었다.

“근데 누구랑 결혼 시켜요?”

노랑머리가 막상 한 원장을 결혼시키겠다는 결심을 하자, 그 대상이 누구인지 이제야 궁금한 모양이었다. 희한한 것은 노랑머리는 항상 그걸 왜 하는지 묻지 않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하는 일이 항상 옳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 원장, 그 사람이랑은 이미 정이 통한 사이니까.”

나는 조 원장이라면 어렵지 않게 반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조 원장의 취향은 내가 가장 잘 알았으니까.

그러자 노랑머리가 정색을 하며 소리쳤다.

“거기 이은서가 다니는데 미용실 원장님 아니에요?”

“응 거기.”

“아니, 왜 하필 거기 원장님이랑! 다른 아줌마 구해볼게요 내가!”

“아, 그게 넌 좀 그렇겠구나.”

“당연하죠! 걔 얼굴도 보기 싫은데.”

“그래, 그럼 괜찮은 아줌마 있으면 모색해봐.”

“네, 걱정 마요. 금방 찾아올 테니까.”

노랑머리는 한 원장의 결혼은 이미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큰소리쳤다. 나는 일단 노랑머리를 믿어보기로 하고, 조 원장 일은 미뤄두기로 하였다.

* * * **

뚜벅, 뚜벅.

한 원장이 간만에 구두와 정장을 차려입고 호텔에 들어서고 있었다. 한 원장은 내가 그 곳에 자길 왜 불렀는지 모르고 왔다.

“아니 뭔 옷을 차려입고 나오라는 거야?”

한 원장은 호텔로 들어서다가. 쇼윈도에 비췬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영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그런데 마침 그 앞에서 쇼윈도를 바라보며 옷매무새를 고치는 중년 여성이 있었다. 그 여성은 한 원장이 자기를 보고 비웃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한 원장을 째려보았다.

“뭐야, 기분 나쁘게.”

한 원장은 웬 여자가 자기를 기분 나쁘게 쳐다보자 기분이 상했다. 여자에게 답장하듯 같이 째려보는 한 원장. 그러자 그 여자는 어이없다는 듯 보고는 서둘러 호텔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여자가 호텔 문 앞에 손수건을 떨어트리고 갔다. 그 여자의 주머니에서 그게 나온 걸 본 한 원장은 하는 수 없이 그걸 들고 그 여자를 쫓아갔다. 그 여자는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 원장은 그 곳엔 차마 따라 들어갈 수 없어서, 여자 화장실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화장실 안에서는 좀 전의 그 여자가 통화를 하고 있는지, 목소리가 울려댔다. 여자는 밖에 소리가 다 들리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니 난 재혼은 생각도 안했어. 나 좋다는 사람 많은 거 알잖아. 근데 상대 남자가 강남에 건물이 있다는 거야. 집도 두 채나 있고. 돈이 너무 많아서 주체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데 안 나갈 수 있냐고? 나도 말년에 부자집 사모님 소리 좀 들어보자.”

한 원장은 그 여자의 말을 듣다가 기분이 나빠졌다. 마치 자기를 두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듣다가 기분이 상해지자 그 여자에게 손수건을 건네주는 것도 싫어졌다. 그래서 화장실 앞에 손수건을 툭 던져놓고 자신은 약속한 장소로 가버렸다. 화장실 앞이니 나오다가 자기 건 줄 알면 갖고 가겠지 싶어서였다.

한 원장이 호텔 커피숍으로 들어서자, 내가 한 원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는 노랑머리도 있었다.

“원장님 여기요!”

“아니 내를 여기까지 와 불렀노?”

한 원장은 애정하는 제자들을 보고, 기분이 풀려서 빙그레 웃었다.

“원장님 소개팅 해드리려고요.”

나의 말을 들은 한 원장은 뭔가 쎄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좀 전에 그 여자가 바로 소개팅 상대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마침맞게 그 여자가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이쪽입니다!”

노랑머리가 그 여자를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반겼다. 여자는 새침한 얼굴을 하고서 공주처럼 사뿐사뿐 그곳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한 원장을 본 여자는 조금 놀란 듯 보였지만, 애써 침착하게 웃어 보이며 다가왔다.

“설마설마 했는데.”

한 원장은 충격을 받았는지 꼼짝 않고 여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여자는 한눈에 봐도 신경 쓰고 나온 티가 역력했다. 여자의 모습을 본 나와 노랑머리는 만족한 얼굴로 한 원장의 반응을 살폈다. 한 원장은 여자의 본모습을 이미 본 상태라서 인상을 쓰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 거의 조폭 급이라고 해야겠다.

“어? 표정.”

한 원장이 인상을 쓰는 걸 본 나는 일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노랑머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여자에게 달려가서 그녀를 데리고 왔다.

“원장님 우리 동네에서 가장 예쁜 아줌마…….”

그러자, 한 원장이 벌떡 일어나서 노랑머리와 나, 여자를 차례대로 쳐다보더니 냉큼 가버렸다. 여자도 그제야 한 원장이 아까 봤던 그 사람인 것을 깨닫고 당황했다.

“내는 필요읍다.”

“원장님?”

“어머나.”

“뭐야? 무슨 일이야?”

한 원장이 가버리자 여자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까 문 앞에서 잠깐 마주쳤는데.”

“네? 아까 먼저 봤어요? 두 분이?”

“제가 기분 나쁘게 보긴 했는데 그것 때문에 그러나?”

나는 한 원장에게 소개팅은 당분간 불가하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쉬었다.

“휴, 이제 어쩌냐.”

“원래 하려던 대로 해야죠 뭐.”

“괜찮겠어? 이은서를 봐야 하는데?”

“몰래 하면 되지 않을까요?”

나는 퇴근 후에 조 원장이 가는 곳을, 알고 있긴 하다. 일을 마치고 가는 곳이니 이은서가 없이, 한 원장과 조 원장을 우연히 만나게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 * * * *

“뭐고 여긴? 와 여기까지 내를 끌고 왔나?”

한 원장을 태우고 동대문의 한 찜질방 앞에 섰다. 그곳은 최근에 생긴 찜질방으로, 최신 시설이 즐비하고, 마사지 숍도 같이 있어서 피로를 풀기에 제격인 곳이다. 조 원장이 이곳을 자주 애용한다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나는, 이 곳에 한 원장을 데리고 오면 조 원장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여기 시설이 아주 끝내줘요. 특히 마사지샵 원장님이 마사지를 진짜 잘해서, 갔다 오면 피로가 싹 풀리실 거예요.”

“아 맞나? 함 드가 볼까?”

“와 이런 좋은데 있음 진작 나 좀 데리고 오지.”

나는 노랑머리, 한 원장과 함께, 찜질방에 들어갔다.

찜질방은 듣던 대로 정말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나도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가본 적은 처음이었다.

한 원장과 목욕탕까지 같이 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허물없는 사이가 된 것은 정말 좋았다. 어찌되었건 세 사람은 같이 샤워를 한 뒤에, 마사지숍으로 향했다.

“안 그케도 요새 피로가 막 쌓이고 있었는데, 고맙데이.”

“저도 덕분에 마사지 받고 좋죠 뭐.”

“전 마사지는 처음인데, 안 아프겠죠?”

셋이서 그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마사지숍에 들어갔다. 그 곳엔 대기가 꽤 있었다. 우리는 한 원장을 먼저 들여보내고 나머지 계획에 대해 이야기 했다.

“조 원장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어.”

“여기 매일 오는 건 확실하죠?”

“어 초반에는 하루도 안 빠지고 왔을 거야.”

“여기 조 원장이 딱 와서 마주치고 인사하면 좋겠다.”

“그니까요. 우연히 같은 공간에서 딱하고.”

그때, 옆에서 마스크팩을 얼굴에 걸치고 있던 여자가 마스크팩을 떼어냈다. 그 여자는 다름 아닌 이은서였다.

“우리 원장님한테 뭔 짓을 하려는 거야?”

이은서가 표독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우리를 째려보았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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