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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77화 (77/200)

77화. 날 구해줘(2)

“잘 갔겠죠?”

노랑머리가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계속 생각에 잠겨있던 탓이었다.

노랑머리는 더 묻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 하였다. 나는 일을 하러 나온 건지, 생각을 하러 나온 건지 모르게 계속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노랑머리는 그게 답답한지 나를 잡고서 물었다.

“왜 그러는 건데요?”

나는 갑자기 초점 없던 눈을 또렷하게 뜨며 말했다. 깊은 생각에서 빠져나온 탓이었다.

“구해줘야겠어.”

“네? 무슨 소리에요?”

“이은서, 걜 구해주자!”

“이은서를 어떻게 구해요? 걘 그냥 그렇게 사는 애잖아.”

내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하자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 노랑머리. 은서는 누가 구해줄 정도로 나약해 보이지 않는 탓도 있었다.

“걔가 그렇게 된 데는 내 탓도 있잖아.”

나는 이은서와 며칠 동안 같이 있으면서 그녀의 삶이 매우 망가져 있다는 걸 깨닫고 마음이 아팠었다. 거기다 은서가 농담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했었다. 그녀의 그 말이 자꾸만 뇌리에 남아서 괴로웠기에 끝내 그녀를 구하는 것을 결심한 것이다.

“걔가 어떤 놈들의 손아귀에 있는지 아는 거죠? 개는 그 조폭들 말고도 뒤에 연결된 수많은 인간들 틈에 있는 거에요. 걔 하나 구하자고 나섰다가 우리 목숨이 위험해 질수도 있는 거라고요!”

이은서는 문신조폭의 애인이다. 문신조폭은 마약 관련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죄 값을 받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갈 정도의 능력을 갖춘 놈이다. 그런 놈의 애인을 구한다는 것은 문신 조폭의 부하들은 물론, 그의 뒤에서 그를 지원하는 경찰과 정치인, 재벌 등에게 맞서는 일이 될 것이다. 너무 확대 해석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앞서 양 기자 사건을 스틸해서 그 대신 죽어간 기자의 이야기만 보더라도, 함부로 취급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그럼, 얘가 그렇게 망가지는 걸 그냥 두고보라구?”

나는 은서가 망가진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녀가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나에게 구해달라고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가 박 쌤한테 한 짓을 벌써 잊었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이은서를 그냥 두고 나만 잘 산다면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가슴이 커다란 돌덩이를 박아두고 살 것 같아서 그러지.”

나는 은서를 사랑한다던지 그런 마음이 아니라, 은서가 불행해지지 않아야 자신도 떳떳하게 행복할 것 같아서 그런 거였다. 은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걸 오해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좋아하거나 그런 거 아니라면 더욱 이해가 안 되거든요. 박 쌤이 걔 몸조리 해준 것만 해도 사실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병원비 내준 것만으로도 충분한 대가였다구요.”

“그래, 그런데 난 한번은 해주고 싶다. 노력이란 걸 말이야.”

“후, 알았어요. 나도 걔가 망가진 건 보기 좀 그랬긴 했으니까.”

“좋아, 그래 한번 해보긴 하자. 하지만 당장은 아니야. 그놈의 뒤에서 놈의 뒷배를 봐주는 세력이 약해지는 때를 기다려야 해. 그래야 뒤탈 없이 그녀를 구할 수 있을 거야.”

문신조폭과 거래를 하고 있는 재벌, 언론인, 형사, 검사 등의 모든 관계도는 이미 파악이 된 상태였다. 누군가의 희생이 가져온 뜻밖의 수확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들을 잡아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다치거나 약해진다면 새로운 세력이 개입 될 수도 있는 일이니, 그들 중 두 세력 이상이 한꺼번에 흔들릴 때를 이용해야만 한다. 나는 그게 어느 때인지 대충 알고 있다. 그게 다가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 세력이 붕괴되는 사건이 조만간 일어나게 될 거야. 그때까지는 조용히 그들의 약점을 잡아 쥘 증거만 모아두면 될 일이고. 그건 아마도 양 기자님이 도와주실 것이고.”

“그럼 무슨 방법이 있긴 있는 거죠?”

“어.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 그동안 은서는 힘들겠네요.”

“그건 그 애가 감당할 몫이야.”

역린, 그게 어떤 곳에 있는지, 어느 때에 잡아 쥘 수 있는지, 나는 계속해서 찾아낼 것이다.

* * * * *

“안 그래도 그 집단의 가계도를 그리고 있슈.”

양 기자는 이미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던 중이었다. 죽은 기자는 얄미운 사람이었지만, 자기를 구해주고 그 때문에 죽기까지 하였기에, 미안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뒷배가 너무 대단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함부로 건드릴 사람들이 아니유. 내가 그들을 조사하고 있는 것도 사실 목숨 걸고 하는 거고.”

“기업은 주식 폭락 같은 거 오면 무너지겠죠?”

“그렇겠지. 그게 언제인지 아슈?”

“아뇨 허허. 그걸 어찌 알겠어요.”

4월 즈음, 주식 폭락이 있을 것이다. 이건 주식 리스트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주 작고 얇은 종이었지만, 큰 도움이 되는 한 줄이다. 거기다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잡혀있다. 여러모로 정신없는 틈이 그쯤인 것이다.

“4월에 하는 걸로 하죠.”

“그래 선거 때, 네거티브 타고 터트릴 수 있을 것 같슈.”

“근데 뭐가 있긴 합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양기자의 계획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만 했다. 그맘때 뒷배의 정치인이 터트리는 뭔가가 있긴 한데, 그게 뭔지 가물가물한 까닭이었다.

“아들 군대 비리 건이 있슈, 아들이 면제인데 뭔가 구려 아주 구려.”

나의 생각과 양기자의 생각은 일치했다. 이제 양기자만 믿고, 다른 일을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그 정치인은 그걸로 혼을 빼놓고, 기업은 주식 폭락으로 얼이 빠질 테고, 그때 마약사건까지 터진다면, 그들은 전부 블랙홀에 빠질 것이다. 그 정신없는 틈을 타서 은서의 남자친구를 감옥에 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은서를 구하게 된다.

노랑머리는 그때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듣다가 한마디 했다.

“그럼 우리는 뭘 하면 됩니까?”

노랑머리의 말에 양 기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모든 건 내가 알아서 하우. 넌 이은선지 뭔지가 남자친구 잡혀갈 때 안 딸려 들어가게 막고, 할 수 있다면 이은서를 구슬려서 마약 제조하는 장소를 알아내슈.”

“우린 우리 나름대로 그들의 꼬리를 잡는 거지. 나머지는 형님이 전부 계획하고 있고, 우린 따라 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아.”

“제조 장소라…… 그런 건 형사들이 하는 거 아닌가?”

“그렇지. 그니까 우리는 그걸 알아낼 수 있다면 알아내는 거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암튼 은서는 4월까지는 당하고 있어야 하는 거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들을 잡을 계획을 짜는 일도 아다리가 딱딱 맞지 않으면 수포로 돌아갈 거야.”

“아우, 그거는 어째 남자친구를 만나도 그런 놈을 만나가지고.”

은서를 구하여 낼 계획은 구상되었고, 이제 한 원장을 결혼시킬 비책을 마련하러 은서를 만나러 가야 한다.

* * * * *

“일은 안하고 맨날 싸돌아다니냐 둘은.”

은서는 예전의 그 싸가지 없으면서 친근한 화법으로 노랑머리와 나를 맞았다. 은서의 다크서클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지만, 그녀의 그늘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넌 밥은 먹고 다니냐?”

“너나 처먹고 다녀라.”

“흠흠, 둘이 나중에 따로 만나서 이야기 하고 일단 우린 한 원장님 이야기를 해야지.”

한 원장님과 조 원장님은 그 후로도 계속 같은 사우나를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갔음에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어쩜 그렇게 안 마주치는지 신기할 정도였어.”

“그럼 또 마주칠 기회를 만들어야겠네.”

“그래, 그럼 이번에는 조 원장님을 우리 쪽으로 데리고 와야겠지? 홍부자 선생님 연락 받으셨지?”

나는 저번에 홍부자 선생님의 (아트홀 전시회를 위한 밤)을 열자고 제안했었는데, 그걸 마음에 들어하던 홍부자 선생님이 바로 추진을 하였고, 며칠 뒤면 열게 된다는 말을 하였다.

“안 그래도 거기 간다고 했어……요. 우리 원장님도 홍부자 선생님 제자니까……요.”

“그럼 거기에서 둘이 자연스럽게 만나겠네. 그럼 그냥 두고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지, 그때 넌 너희 원장님을 최고로 이쁘게 해서 모셔오고, 난 우리 원장님을 최고로 멋지게 해서 모셔가고, 그럼 되겠네.”

그러자 은서가 피식 웃더니 혼자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와하하. 너무 웃겨.”

은서가 갑자기 그러자 나는 물론 노랑머리도 황당해 하며 쳐다보았다.

“뭐야? 미친 거야?”

“원래 미쳤지.”

“아니 한 원장님이 잔뜩 꾸민 걸 생각하니 너무 웃기잖아.”

은서의 말을 들은 두 사람도, 같이 웃기 시작했다. 사실 한 원장님은 거기서 더 꾸미면 너무 과하다. 그걸 생각하니 웃긴 것이다.

“아, 나 상상하니 웃기네.”

“아, 그러면 거기서 과한 걸 빼면 되겠네. 좀 더 심플하게 꾸며드리면 더 멋질 것 같아.”

그러자 은서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맞아! 우리 원장님이 전에 그 헤어 대회에서 그랬거든. 한 원장님은 너무 과하게 꾸며서 싫다고.”

“오, 그러고 보니 우리 원장님도 조 원장님에 대해 말했었거든. 머리가 마이크 같다고 막 혼자 킥킥대면서.”

“마이크?”

“어 노래방 마이크 말이야.”

나는 노랑머리의 말을 듣고 그게 너무 딱 맞는 것 같아서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조 원장님은 머리를 마이크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동그란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다 몸은 말라서 정말 마이크처럼 보이는 것이다.

세 사람은 마이크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생머리로 펴드려. 아…… 내가 직접 머리를 해드렸으면 좋겠는데.”

그러자 은서가 가슴을 쭉 펴고서 말했다. 자신이 있다는 제스처였다.

“나한테 알려주면 내가 해낼 수 있는데……요?”

“정말 잘 할 수 있어?”

“내가 너, 아니 그쪽보다 미용을 먼저 했거든……요?”

“그래, 그럼 당장 너 머리를 가지고 우리 집에 가서 해줘 볼게.”

나는 당장 은서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노랑머리도 같이 배운다는 핑계로 집에 따라 들어갔다.

나는 은서에게 뿌리를 잘 살리면서 완벽하게 드라이를 해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노랑머리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방법이라며 하품을 해댔다. 은서는 사실 누구에게 뭘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동안 누구도 은서에게 이런 걸 알려주지 않았다. 조 원장만이 유일하게 은서를 챙기곤 했다.

은서는 조 원장이 아니었다면 미용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은서가 처음 미용실에 들어가고, 며칠이 되지 않아 힘들어 하자, 조 원장이 직접 은서를 데려다 이것저것 알려주며 그녀에게 미용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칭찬을 했었다. 은서는 그것 때문에 미용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나는 빽콤이 아닌 드라이로 완벽한 볼륨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아주 세밀하게 은서에게 설명해 주었고, 은서도 그걸 금방 받아들였다. 조 원장이 마이크 머리를 하지 않고, 은서가 해 준 머리를 하고 나갔을 때, 한 원장이 놀란 얼굴로 바라볼 것을 생각하니, 세 사람 다 기분이 좋아지는 하루였다.

* * * * *

며칠이 지나고, (아트홀 전시회를 위한 밤)이 오픈되었다. 그날은 홍부자의 제자들은 물론, 미용계의 유명 인사들이 모였다. 다들 홍부자가 아트홀에서 전시회를 무사히 해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인 것이다.

나는 그 행사의 사회자를 직접 섭외하였다. 다들 그 사람을 왜 섭외하냐고 물었지만, 나는 단호하게 그만이 가장 사회를 잘 볼 것이라고 우겼다. 그는 바로 유재섭이었다.

“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오늘 사회를 맡게 된 꼴뚜기 유재섭입니다.”

유재섭은 꼴뚜기 탈을 쓰고서 재주를 부리며 분위기를 띄웠다. 2021년에는 유재섭이 국민 MC이지만, 그때는 고작 꼴뚜기 탈을 쓴 개그맨일 뿐인데, 내가 유재섭을 꼭 데려와야 한다고 우겨서 데리고 온 것이다. 유재섭은 내가 그렇게 해준 것을 끝까지 잊지 않고 있었다. 유재섭은 조만간 토요일 프로그램을 맡으며 승승장구할 것이다.

그렇게 행사가 시작되고,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들어오는데, 모두의 이목이 집중 되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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