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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89화 (89/200)

89화. 회장님을 속여라(1)

양 기자는 우리를 번갈아 보며 웃었다.

“가위바위보로 정하슈.”

“네? 아 형님 이게 장난도 아니고 가위바위보라뇨.”

“왜? 난 좋은데요?”

노랑머리는 이 상황에서 그냥 있으면 영락없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가위바위보를 하면 확률이 반으로 줄어드니 그저 좋았다.

나는 아이디어를 냈고, 지휘도 해야 하니 당연히 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도 사회적 지휘(?)라는 게 있는데, 내게 그런 걸 시키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분장사는 내가 붙여줄 테니까 걱정 말고, 가서 마음껏 무당놀이를 해 보슈. 하하.”

양 기자는 노랑머리가 해주었으면 하는 듯 그를 보며 말했다.

“아니 난 그럴 용기가 없는데?”

내가 어물쩡거리는 사이에 갑자기 노랑머리가 치고 들어왔다. 이런 데는 누구보다 빠른 그다.

“가위바위보!”

노랑머리는 신이 나서 보자기를 펼치고, 나는 얼떨결에 바위를 냈다. 평소 내가 바위를 잘 내는 것을 알고 있었던 노랑머리는 일부러 보자기를 낸 것이다. 진 것을 안 나는 괴성을 질렀다.

“아으으. 이게 뭐야.”

“박 쌤 당첨!”

노랑머리는 신나서 소주병을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왜 하필 보를 택했니. 그 많은 가위, 바위 중에서 그냥 스친 보자기 한 번도 이긴 적 없어~”

“야, 너!”

노랑머리가 나를 놀려대자 짜증이 났다.

나는 분장도 무섭고, 연기하는 것도 무서워서 머리를 싸매고 앉았다.

노랑머리는 아직까지도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냥 회장 만나서 이야기는 할 수 있는데, 무당 연기는 좀.”

“니가 꺼낸 아이디어유. 하기 싫음 그냥 가는 거고.”

“하, 하긴 해야 해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하기는 해야 한다. 그게 자신이 되는 게 두려울 뿐이지.

“연기 자신 없으면 말 안하면 되는 거 아뉴?”

“말을 하지 말라고요?”

“필담을 해. 말 못한다면서 눈 뒤집어 까고 벙어리 신이 들어왔다고 하면 되잖유?”

“오, 좋다 그거.”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다. 역시 다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잠복을 밥 먹듯이 한 기자의 방법은 달랐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다.

“그래, 알았어요. 해보지 뭐. 언제 만납니까? 회장님.”

“내가 회장님 자주 가는 식당을 아니까, 거기 밥 먹다가 만나는 걸로 하면 되겄네.”

그러자 노랑머리가 노래를 멈추고, 다가왔다.

“맛있는 집에 갑니까?”

“넌 노래나 해라.”

“쳇 댕기동자 분장하고 먹으면 체할라.”

“아오, 이게 진짜.”

노랑머리는 나를 약올리고는, 다시 하던 노래를 이어 했다. 양 기자도 그런 노랑머리가 귀여운지 피식 웃었다.

나는 결심한 듯 주먹을 쥐고 일어났다.

“좋습니다. 그럼 세팅 되는대로 시작하죠.”

“옆에서 보조하는 사람은 연기자로 구해놓을 테니까. 연기는 그 분이 하는 걸로 하면 문제 없을 거유.”

나는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양 기자가 무조건 하자는 식으로 나오니 이상했다.

“근데, 내가 회장님을 어떻게 구워삶을 건지 모르고 그냥 하자고? 괜찮겠어요?”

“넌 뭔가 다르잖유. 넌 그냥 일반적이지가 않아. 뭔가 다 자기 뜻대로 할 재주를 지녔다고나 할까. 안그류?”

“맞아요. 박 쌤은 믿어줘야지.”

나를 이토록 믿어주는 두 사람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얼마 뒤, 디데이가 다가왔다.

* * * * *

디데이 날, 댕기동자 분장을 한 나는, 거울속의 모습을 보고 눈물까지 흘렸다.

“으아, 이래서 머리발 머리발 하는 거야.”

노랑머리는 나를 보자마자 빵 터져서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너무 귀엽다 정말.”

“웃지 마! 웃지 말라고! 너는 웃지 말아야지 임마.”

“네 흡흡.”

“아으, 이 꼴을 하고 밥까지 먹어야 한다니.”

그러자 노랑머리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가 참았다. 이번에는 웃지 않으려고 자신의 얼굴을 때려가며 웃음을 참는 노랑머리.

짝짝짝.

“참자 참아. 으흐흐.”

“이게 대체 뭐냐 정말.”

내가 툴툴거리고 있는데, 양 기자가 아줌마 연기자와 함께 다가왔다. 양 기자는 나를 보자마자 빵 터져서 낄낄대고 웃었다. 아줌마 연기자는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안녕하세요 흡.”

“크헉, 너 너무 귀엽다 진짜.”

나는 두 사람마저 웃자 울상을 하고 앉아서 다리를 동동거렸다. 영락없는 아기동자의 모습이었다.

그걸 보고 노랑머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 깨물어주고 싶네.”

“아우, 진짜 왜들 그러냐고!”

양 기자는 겨우 웃음을 참아내고, 로봇처럼 굳은 얼굴로 말했다. 웃음을 참는 모습이 그랬다.

“이제 곧 회장님 오신다니까, 준비 하슈.”

“식당이 어디에요?”

“가시죠.”

양 기자가 가려다가 나를 다시 보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 너만 믿는다. 준비한대로 잘 할 수 있지?”

“네, 물론입니다.”

나는 장난기를 거두고,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 * * * *

드르륵.

회장님이 드나든다는 식당은 오래된 식당이었다. 대를 이어 온 맛집의 모습.

나와 연기자는 긴장한 얼굴로 그곳에 들어섰다. 식당 아줌마는 나를 보고 피식 웃었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어서오세요. 그쪽으로 앉으세요. 옆에는 지정석이라.”

아줌마가 말한 지정석에 회장님이 앉는다고 들었다. 나는 그 자리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뭐? 저기에 뭐가 보이는 감? 돈 좀 묻어 있는가? 뭐 드실라우?”

“백반 둘이요.”

나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말을 절대 하지 않아야 하기에.

드르륵.

“어서오세요.”

아줌마가 가고, 곧 회장님이 들어왔다. 옆에는 비서를 대동하고서 지정석에 앉는 회장님.

회장님과 내가 눈이 마주쳤다. 회장님은 내가 무당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채고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회장님을 계속해서 바라보다가 공책을 꺼내서 글씨를 적었다.

[돈 냄새가 난다]

나의 글을 받은 연기자가, 그걸 회장님 앞에 있는 비서에게 건넸다. 나는 아닌 척 밥을 먹기 시작했다.

“우리 동자님께서 말을 못하십니다. 그쪽 분을 보고 이렇게 적으셨어요.”

연기자가 건넨 글을 본 회장님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이야. 돈 냄새 허허.”

회장님은 호탕하게 웃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회장의 반응을 살피고는 다시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지금 며느리에게는 아기를 얻을 수 없다.]

나는 그걸 연기자에게 전하고는 다시 밥을 먹었다.

회장님은 현재 아들이 하나 있는데, 결혼한지 오 년이 지나도록 아이 소식이 없었다. 며느리는 임신 클리닉에 다니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는 상태였다. 그건 대대적으로도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걸 받아 든 회장님은 기분이 몹시 상한 듯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종이를 박박 찢고는 다시 밥을 먹었다.

그가 그렇게 나온다고 포기 할 내가 아니었다. 마지막 한방을 꼭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공책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장님도 내가 무슨 글을 적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회장님은 끝까지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탈랜트 황미소가 당신 아들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나는 이렇게 적고는 연기자에게 건넸다. 연기자도 이건 처음 보는지 당황한 눈치였다. 이 회장님의 아들에게는 아이가 끝까지 없었고, 회장님이 회장직을 내려놓기 전까지도 아기가 없었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황미소가 아이를 내어주는 조건으로 회장님의 은퇴를 요구했다고 한다. 본처를 밀어내고 자기가 집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회장님이 가장 걸림돌이 되었으니.

그게 10년이 지났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모든 국민이 다 아는 이야기. 2000년대에는 까맣게 모르고 있는 이야기.

연기자는 그 종이를 건네면서 손을 떨었다. 아무래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연기자가 손을 떠는 것을 본 회장님이 비서의 손을 거치지 않고, 종이를 낚아챘다.

“뭔데 그래?”

나의 종이를 본 회장님도, 비서도 적지 않게 놀라는 눈치였다.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얻어낸 것이다. 회장님은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박력 있는 회장님의 기에 조금 눌리는 느낌이었지만, 당당하게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이 아닐시 각오는 했겠지?”

따닥따다다다다.

연기자가 먹던 물컵을 내려놓는데, 너무 떨어서 나는 소리였다. 반면 나는 전혀 떨지 않는 얼굴로 회장님을 쳐다보았다.

하마터면 입을 열고 말을 할뻔 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처를 주시오.”

회장님은 직접 나에게 연락처를 적어달라고 공책을 내밀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책에 연락처를 적었다. 남의 명의로 미리 만들어 둔 핸드폰 번호였다.

쫘아악.

회장님은 내가 적은 종이를, 공책에서 쫙 찢어서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나는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님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바라보았다.

회장님은 그런 나의 눈빛을 보고는 의심을 거두고 다시 식탁에 앉았다. 남은 밥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은 뒤 밥그릇을 내려놓는 회장님.

탁.

꺼억. 꿀꺽꿀꺽.

트림을 거창하게 한 회장님은 물을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도 굉장히 빠르게 먹은 회장님은, 나에게 눈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갔다.

저벅저벅, 드르륵.

식당 아줌마도 오늘의 사태에 놀란 듯, 인사를 한 발짝 늦게 하였다.

“안녕히 가세요!”

회장님이 나가자 한숨을 푹 쉬는 연기자, 엄청나게 긴장을 한 모양이었다.

휴우우.

하지만 나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사실이니까.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남은 밥을 다 먹었다. 회장님이 이곳을 왜 오는지 알 것 같았다. 엄마가 해 준 밥맛이 나는 그런 백반집이었다.

태연하게 밥을 먹는 나를 본 연기자는, 엄지를 치켜 올렸다.

“와, 대단하세요.”

나는 식당 아줌마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턱으로 가리키며 조심하라고 입모양을 보여주었다. 연기자는 그제야 아줌마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 * * * *

따르르릉.

늦은 밤, 나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막 잠이 들려고 있던 내가 비몽사몽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준수씨! 전화왔슈! 회장님이 만나재!”

전화기 너머로도 느껴지는 흥분. 양 기자는 작전이 성공한 것에 매우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성공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덤덤했다.

“사실이라고 말했잖아요. 미용실에 연예인이 얼마나 많이 오는데.”

“넌 정말 사랑스러운 놈이야! 거 딱 기다리슈. 내가 데리러 갈게.”

“분장 해야죠.”

“지금 다 데리고 가는 거유.”

양 기자는 엄청나게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으으으. 또 댕기동자 노릇을 해야 하네.”

나는 옷장 속에 곱게 모셔두었던 한복을 꺼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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