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꼴통 형사를 만나다(3)
“지양구요?”
“네, 지양구.”
“아는 사람인가본데?”
내가 놀라자, 양 기자가 눈치를 채고 물었다. 지양구는, 이은희씨 아들의 이름이다. 지리산에 살고 있는 자연인이다.
“그 마# 제보자 아들 이름이 지양구입니다.”
“아, 그 지리산 꼭대기에 산다는 그 애?”
“네, 산속에 숨어 사는 애 통장이니 마음대로 사용했나 보군요.”
놈들은 양구와 은희 모자의 집은 물론, 명의까지 빼앗아서 마음껏 쓰고 있었다. 자기들이 잡히더라고 두 사람을 찾아낼 수 없을 테고, 만일 찾아낸다고 해도 양구씨는 지적장애니, 감옥에 넣을 수도 없고 안성맞춤이다.
“지적장애가 있는 애의 통장을 그런 더러운 데에 사용하다니, 정말 개#은 놈들이네요.”
“아우, 탱크로 밀어버릴 새#들.”
“근데, 양구씨 증인보호 프로그램 어쩌구 하지 않았어요? 그럼 못찾는 거 아닌가?”
“아, 그렇지? 어쪄쥬?”
양 기자의 말에 따르면, 은희씨와 양구씨는 나라에서 증인 보호 프로그램 때문에 다른 곳에 보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양구씨를 불러 오는 일에 차질이 생긴다. 금융 실명제 때문에 양구씨가 직접 와야 거래 내역서를 볼 수 있는데 큰일이다.
“그럼 형사님들이 직접 조사해서 수사 지시하면 되지 않아요?”
“그놈들이 여기저기 아는 사람이 많아서 이것 알아내는데도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그 놈들 조만간 진급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우.”
“그런 쓰레기들이 진급하는 더러운 세상이네요.”
“아우, 짜증나서 못 듣겠네. 그냥 총으로 쏴버리죠?”
“지양구씨 있는 곳이 지리산은 아니라는 말인데, 어디 짚이는 데가 있슈?”
“사람 많이 다니는 내장산은 아닐 테구요.”
여형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무릎을 탁 쳤다.
“거기네! 얼마 전에 마약팀 애들이 오대산 갔다 온다고 했는데 거긴가보네.”
“아! 뭔 종 설치한다고 그러던데?”
양구씨와 종은 뗄레야 땔 수 없는 사이다. 나는 그 곳이 바로 양구씨가 있는 곳임을 깨달았다.
“거기 맞습니다. 거기에요!”
“오, 그렇군? 그럼 해결 된 거유?”
“해결은 무슨? 오대산이 뒷산도 아니고 아무데나 막 간다고 갸가 나옵니까?”
“종소리가 날겁니다!”
“종소리?”
“네, 양구씨가 있는 곳에는 종소리를 설치했거든요. 종소리가 들리는 곳 근처에 있을 겁니다.”
“에이 그래도 오대산을 다 뒤질 거유? 그래서 언제 찾아?”
“가자!”
갑자기 강철수가 일어났다. 여형사도 따라 일어났다.
“그래. 까짓 거 갑시다.”
“뭐여? 간다는 거유 지금?”
“몸 뒀다 뭐해? 가서 뛰어댕기다 보면 나오겠지, 종소리.”
“에휴, 몸 쓰는 일이 더 편하긴 해요.”
“난 갈 테니 그쪽은 볼일 보시고, 지리산보다는 편하지 않겄습니까? 하하.”
강철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가버렸다.
그가 멀어져가는 실루엣을 바라보던 나는, 그가 내 눈탱이를 때린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어? 저 사람 내 눈탱이 친 그 사람이랑 비슷한데?”
“어머, 나도 바쁘네!”
내가 여형사를 쳐다보자, 여형사는 도망치듯 가버렸다. 곧 뒤를 쫓아갔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것 봐요!”
“니 눈탱이 때린 사람이 쟤였슈? 하하. 쟤라면 앞뒤 안 가리고 그럴만하지.”
“아우, 사과도 안하고 도망치면 단가?”
“미안하니까 아마 금방 찾아올 거야.”
양 기자의 말대로 강철수는 아주 금방 양구씨를 찾아냈다. 양구씨가 멧돼지인줄 알고 그를 잡으려고 했다는 것만 빼고는 순조롭게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양구씨의 도움으로, 놈들이 그동안 받아 처먹은 뇌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아주 미친 듯이 찾아 다녔다고 한다. 양 기자가 한 말은 진짜였다. 불도저 같은 남자의 뚝심으로, 비리경찰 두 명을 잡아넣고야 만 것이다.
그때, 카페에서 젝키스 노래가 들려왔다. 나는 그들이 조만간 은퇴를 할 것이라고 적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큰일이다. 이사장을 당장 만나야 한다.
* * * * *
“울 애들이 해체한다고? 그걸 믿으라는 거야?”
“네, 소문이 그래요.”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지만, 소문이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됐어. 우리 애들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래도 신경을 좀 써주세요. 애들이 워낙 많으니까.”
내가 이사장을 만나면서 가장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 젝키스와 핑크의 해체를 막는 것 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사장이 믿어주지 않는다. 막아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너 송애교건은 어떻게 된 거야? 가을여행이 김미선에게 넘어갔다고 하는 소문이 있다고!”
이사장은 송애교가 아직 캐스팅 확정이 되지 않은 것 때문에 예민해 있었는데, 가을여행 기획안이 김미선에게도 전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래는 김미선에게 먼저 갔다가 까이고 송애교에게 가는 것인데, 이번에는 송애교와 동시에 김미선에게 갔다고 한다. 송애교에게 먼저 간 것은 사실인데, 김미선이 워낙 스타이다 보니 안 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김미선은 그거 절대 안 할 거니까 걱정 마시고요.”
“야, 넌 뭐든 정해놓은 것처럼 말하더라? 왕수정도 그래. 뭔가 잘못 될 것처럼 말해서 늘 불안했는데, 지금은 우리 회사 대표 스타라고!”
이사장은 아직까지 왕수정 일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이토록 오랜 기간 동안 그럴 줄 알았다면, 그 고생을 해가며 계약서를 고치는 게 아니었다는 후회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건 조만간 풀릴 오해니까, 지금은 참아야 한다.
“죄송합니다. 그냥 촉이 좋지 않아서 그랬어요.”
“그니까 니가 틀렸다는 거야. 우리 애들은 내가 관리할 테니까 넌 송애교 캐스팅 문제나 제대로 완성해놔.”
“네.”
나는 젝키스 일을 더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사무실을 나섰다. 마침 젝키스 일행이 건물에 있었기에 그들을 따로 만났다.
나는 그들 하나하나에게 밥을 사주며 이야기 하였지만, 그들은 이제 예전의 젝키스가 아니었다. 하나하나 탑스타가 된 탓에 설득도 쉽지 않았다. 거기다 정 선생의 미용실에 가고 난 뒤부터는 나와의 사이도 서먹서먹해졌다. 사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지만. 지금 그걸 따질 수는 없다. 나는 그들 하나하나에게 정성스럽게 대화를 시도했지만, 누구도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냥 밥값만 날린 셈이다.
결국 젝키스의 해체는 막지 못할 듯싶었다. 그래도 오늘의 노력 덕분에, 나중에 이사장과의 사이가 좋아지니 헛수고만은 아니었다.
* * * * *
“나도 젝키스 좋아하는데.”
“아, 그래요? 나중에 싸인 받아다 줄게요.”
“아니, 뭐 싸인까지는 괜찮고요.”
젝키스가 해체한다는 말을 전해들은 김설아가 아쉬운 듯 말했다.
“근데 오랜만에 같이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힘든 것도 다 잊게 돼.”
“후후, 나도 그래요.”
김설아는 검사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마치고 모처럼만에 쉬게 되었다. 김설아는 드라마를 하는 내내 오재훈에게 눈길을 받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만큼 철벽을 치고 있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김설아의 소식은 매니저가 계속해서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오재훈이 찝쩍이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김설아가 현명하게 대처해줘서 오히려 오재훈이 그렇게 나와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만큼 김설아가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니까.
“오늘은 그동안 못한 뽀뽀를 다 받아내야겠어요.”
“어머나, 왜 그래요.”
나는 오랜만에 김설아와 함께 있어서 마냥 행복했다. 그렇게 깨를 볶고 있던 중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띵동. 띵동.
“어? 누구지?”
김설아는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누군데 그래요?”
“그게.”
찾아 온 사람은 다름 아닌 오재훈 검사였다. 김설아가 그토록 싫은 티를 냈건만, 그는 자존심을 접어두고서 끝내 집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아니, 저 사람은 정말 끈질기네요.”
오재훈의 운명의 상대가 김설아인 것은 나만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재훈은 김설아가 운명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을 터, 저렇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마지막이라고 하고 들어오라고 해요.”
“왜? 우리 시간이 방해 받잖아요.”
김설아는 오재훈이 집에 들어오는 것조차 싫은 듯 몸서리쳤다. 나도 그가 여기에 들어오는 것이 싫다. 하지만, 얼마 전에 준희가 오재훈과 이야기 했다며 좋아하던 것이 생각났다. 준희를 위해서라도 오재훈을 확실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오재훈이 준희에게 마음을 줄 것이 아닌가. 둘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오재훈이 어떤 인물인지 알기에 둘을 밀어주고 싶었다.
“확실하게 정리를 해줘야 끝날 것 같아요. 저 사람.”
“내가 정리해줄게요. 그래도 되겠죠?”
“아, 그럴 수 있겠어요?”
“그래야죠. 내 여자는 내가 지켜야죠.”
내 말에 김설아가 얼굴을 붉혔다.
나는 핑크빛으로 물든 김설아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대문을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재훈이 집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문을 열어줄 거면서…….”
내가 문을 열어주자, 오재훈이 문 앞에 멈춰 섰다. 내가 같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또 만났군요.”
“우선 들어오시죠.”
나는 최대한 친절한 어조로 그를 안내했지만, 그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대며 안으로 들어왔다.
“날 기분 나쁘게 하려고 들인 건 아니겠죠?”
오재훈이 다짜고짜 물었다.
그가 그러던 말던, 나는 내 할 말을 해야겠기에 그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이거나 드시고 이야기하죠.”
“글쎄요. 이걸 먹을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김설아는 초조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김설아를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하고서 그에게 말했다.
“제가 김설아씨 남자친구인 것은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만?”
오재훈은 당당하게 말했다. 어찌 보면 내가 그의 여자를 빼앗은 셈이니, 그의 당담함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럼 이렇게 나오시는 것이 실례인 것도 아실 테고요?”
“네. 그치만, 나는 당신에게 김설아를 보낼 수 없습니다. 그녀는 좀 더 잘난 사람을 만나야 해요.”
“네, 그녀는 정말 좋은 여자입니다. 그래서 나는 설아씨에 맞는 남자가 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오재훈이 물었다. 내 말뜻이 뭔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는 가지고 왔던 가방 속에 그동안의 매출이 적힌 문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얼른 그걸 들고 왔다.
“이것 좀 보시죠.”
“이게 뭡니까?”
나는 문서 속에 있는 매출 전표를 그에게 잘 보이도록 내밀었다.
오재훈은 문서를 확인하고서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요?”
“그 금액은 읽으실 수 있을 테지요?”
“네, 뭐 중소기업 정도의 매출이네요.”
“그 회사 사장이 접니다.”
“네?”
오재훈은 문서를 황급히 빼앗고는 제대로 살폈다. 문서의 맨 아래에 내 이름이 적힌 걸 확인한 오재훈은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동안 조금 발전하셨군요. 그치만 이걸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네, 저도 이 정도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업계 1위 기업이 되려구요.”
업계 1위는 이미 노랑머리 결혼 때문에 약속해 둔 일이다. 그걸 이런데 써먹을 줄은 몰랐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오재훈은 못미더운 듯 말했다.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사랑하니까 이룰 겁니다. 그녀에게 맞는 남자가 될 거니까요.”
나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오재훈은 내 얼굴을 보고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 정도라면, 나도 물러날 수 있겠군요. 하지만, 설아씨 눈에 눈물 나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겁니다!”
“네, 물론입니다.”
그렇게 오재훈은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 법정에서……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