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회귀 반지의 역습(2)
회귀의 반지는 남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갖고 있는 주인을 죽게 만드는 반지다. 그만큼 막강한 힘을 가졌다. 거기다 인간의 손을 타고 다녀야하는 숙명을 가진 반지다. 그런 반지가 손에서 벗어났다? 그럼 반지의 숙명이 다한 것이다.
“스스로 사라진 게 아닐까 합니다.”
“뭐?”
“반지는 살아있습니다. 그건 인정하시죠?”
“그래, 그 반지를 보고 있으면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아. 반지의 빛깔은 세상 어느 반지에서도 볼 수 없는 빛깔이야. 가끔씩 빛깔이 변하기도 하지. 그땐 정말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김주원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표현하듯이 회귀의 반지를 표현하고 있었다. 정말 골룸처럼 진심으로 반지를 사랑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반지를 정말 아끼시는군요.”
“자네라면 반지를 아끼지 않겠는가? 인생을 바꿔준 반지잖아.”
“글쎄요. 고마운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혼자 독차지할 수는 없죠. 세상엔 억울한 사람이 많으니까요.”
본의 아니게 김주원을 저격한 꼴이 되었다.
김주원은 자신이 반지에 집착하는 것 때문에 반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이제야 인지한 듯 보였다.
“독차지해서 사라진 것이다? 그런 뜻으로 들리는군.”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김주원은 반지가 사라진 상자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반지가 사라진 것에 대한 묵념을 하듯이 말이다.
“그래, 그런 것 같네. 내가 실수했어.”
한숨을 푹 쉬고 나서 김주원이 말했다.
“하, 그나저나 저는 덕분에 어쩔 수 없이 검찰에 출두해야겠군요.”
“검찰? 그게 무슨 말이지?”
“저희 아버님이 피자 사업을 하시거든요.”
“그래, 알고 있어.”
김주원은 내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계속해서 감시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피자 가게를 포함해서 내 모든 상황을 누군가에게 보고받고 있었다.
“하, 회장님은 제 뒷조사도 잊지 않고 하고 계셨군요.”
“그래.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뭐든 알아야 하니까. 물론 다른 회장님을 만나러 다니는 것도 알고 있어. 괴상한 복장을 하고 다닌다고 하더군.”
나는 김주원이 전부 알고 있다는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 회귀를 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성공했을 인물이다. 회귀를 했기 때문에 일류 회장님이 된 것이고.
“아, 알고 계셨네요. 그분 사업과 회장님 사업이 겹치는 일은 없는 걸로 압니다.”
“그래, 만약 겹쳤다면 자네를 소환했을 걸세.”
“네, 아무튼 아버님의 피자 레시피가 웬 여자의 레시피를 도용했다는 고소장이 날아왔습니다.”
“그래? 하하 그거 참 웃긴 일이군. 그런 걸로 회귀까지 하려 했단 말이야? 하하 거 참.”
김주원은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나는 나름 심각한 상황을 이야기 한 것인데, 그는 내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저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회장님 도움을 주지 않으실 거면 그만 웃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주원의 웃음을 십 분이나 허용한 끝에 한 말이었다.
김주원은 내 말에 웃음을 그치고서 사뭇 진지한 얼굴로 바뀌었다.
“도움을 줘야지. 반지도 사라지고 아무 방법도 없질 않은가?”
“그렇습니다. 아직까지는 방법이 없죠.”
“내가 피자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그럼요. 대한민국 1위 피자잖습니까?”
“안 그래도 자네 아버님이 피자 가게를 차렸다는 것을 알고 그걸 사서 먹어봤거든.”
김주원은 아버지의 가게에서 팔리는 피자를 다 사서 먹어 보았다고 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왜 그러신 건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내 레시피를 훔쳐갔나 해서 그랬지.”
“네?”
김주원은 다시 또 한참을 웃었다.
나는 아까 웃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웃는 것이 기분 나빴지만 참았다. 그가 웃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가장 기본인 그 피자가 우리 피자랑 비슷하더군. 아니 거의 똑같았어.”
“네? 아닌데요? 우린 전혀 그런 짓을…….”
“알아.”
김주원이 내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나는 피자 사업을 구상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레시피를 등록했어. 내가 언제 피자집을 차릴지는 몰라도 차릴 것이기 때문이었지.”
“아, 그럼 회귀하시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군요?”
“그래, 그렇게 모든 아이템과 레시피, 돈이 될 만한 것은 전부 내 것으로 등록을 마쳤어. 아마 그게 그 고소인의 것보다 훨씬 전일 테고 말이야.”
“네? 그럼 역전이네요?”
“그래, 자네 아버님은 내 레시피를 받아서 가게를 한 걸로 하면 끝나는 거지.”
그렇다. 아버지가 만든 피자의 레시피는 상표 등록을 안 한 것이지만, 그게 김주원의 피자의 레시피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표가 이미 한참 전에 등록 된 피자가 되는 것.
“우와, 정말 그렇네요. 모든게 해결되겠어요.”
“거기다 내가 자네에게 어차피 도움을 주기로 하지 않았나?”
“네, 그랬죠.”
“그럼 자네 아버지의 가게를 우리 회사의 분점으로 하는 것이 어떤가? 명의는 자네 아버님 걸로 하고 말이야. 그리고 원한다면 회사 내에 직함을 줄 수도 있어. 중요한 지역에 분점을 세 개나 갖고 있으니 자격은 충분해.”
“정말이에요? 그럼 저는 너무 감사하죠.”
“난 손해 보는 짓은 안 해. 자네 아버지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노력해야 할 거야.”
“물론입니다! 제가 뒤에서 서포트 할겁니다.”
“그럼, 어서 가서 일을 추진해!”
“네! 감사합니다. 정말.”
나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내가 인사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김주원이 나를 불렀다.
“아참, 그러고 보니 내가 그 여자를 고소할 수 있겠어. 남의 레시피를 훔쳐간 걸로 말이지.”
“아! 그렇네요. 저도 무고죄로 고소할까 합니다.”
“그래? 그럼 우리 법정에서 볼 수 있겠네.”
“그럴까요! 하하.”
나는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회장실을 나섰다.
* * * * *
“야, 이것들아! 그거 내 레시피가 맞다고!!!”
근영엄마, 아니 양순자는 법정이 떠나가도록 소리 질렀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법적 절차까지 다 마친 레시피였기에 양순자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김주원 쪽 검사가 오재훈이었다. 나는 법정에 선 그를 보며 처음으로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김설아를 깨끗하게 포기 한 뒤부터는 그가 너무 좋았다. 그가 대통령이 되게끔 밀어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재훈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주었다. 복도에서 만났을 때는 김설아를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하였다. 그는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준희와 정말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양순자를 혼내주었다. 양순자가 친 사기 때문에 자살까지 하려던 사람들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 * * *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손님이 소리를 질렀다. 손님은 스포츠 신문을 보고 있던 참이었다.
“젝키스 해체! 젝키스가 해체 했어?”
올 것이 왔다.
젝키스가 만들어질 무렵 회귀를 하였는데, 벌써 그들이 해체를 선언하다니.
“그렇군요. 벌써 그때가 되었네요.”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때, 기다리기라도 한 듯 나의 전화기가 울려댔다.
부우우웅.
나는 그게 누구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사장의 전화를 받기 위해 전화기를 손에 드는데, 그때 또 미용실로 전화가 왔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나는 그게 또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아마도 양 기자일 것이다. 회장님의 전화를 받고 전화 했다가, 전화가 통화중이라서 미용실로 했겠지.
“박 선생님 전화 왔어요. 양 기자라는데요?”
“어, 이따가 다시 전화한다고 해줘.”
“네.”
나는 일단 이사장을 만나러 갔다. 이사장은 예상대로 아주 흥분한 목소리였다.
“어서와 준수야.”
이사장은 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나를 대했다. 아무래도 나의 말을 흘려들은 것이 후회가 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진작에 젝키스 해체 소식을 알렸는데, 그걸 무시했으니 후회가 되는 게 당연하다.
“괜찮으세요?”
나는 그동안 이사장이 차갑게 굴긴 했지만, 그동안의 정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섰다. 예전 판교결의처럼 진득한 우정을 갖고 있던 사이가 아닌가? 아무리 왕수정의 일로 화가 났다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끊어질 사이가 아니었다.
이사장도 나의 말을 무시하고 화를 냈던 지난 시간이 많이도 미안했기에, 나를 당장 불러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찔렸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니가 그 이야기 할 때, 말을 들을걸 그랬어. 니가 애들 따로 만나서 회유한 것도 다 들었다. 내가 너같이 좋은 아군을 놔두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럴 수 있죠.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요새 왕수정도 좀 변했고…….”
내 생각엔 이사장이 왕수정을 흠모하였던 듯 했다. 적어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를 좋아했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요즘 돌변하고 있었다. 저번에 나에게 짧게 고백했던 이후부터 변한 것 같았다. 워낙 그런 여자이니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이사장은 갑자기 왕수정이 변하자 당황한 눈치였다. 왕수정이 사실 본색을 드러낸 것뿐인데.
거기다 요즘 송애교가 가을여행에 캐스팅 확정되고, 그녀의 주가가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사장은 왕수정보다 훨씬 착하고 배려심 있는 송애교 덕분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래서 나에게 마음이 풀린 것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니. 개들이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
“그건.”
나는 이사장이 젝키스와 불공정 거래를 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때는 어린 애들이 가수가 되기 위해서 노예 계약도 마다하지 않는 시기였다. 소속사를 차리면 갑이 되는 시기였다. 2021년에는 그런 게 좀 덜하긴 했지만, 소속사가 갑인 것은 변함이 없다.
이사장이 악의적으로 그랬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그때는 다들 그런 계약을 했으니) 잘못을 한 것은 맞다. 나는 이사장이 그런 잘못을 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제 겨우 다시 친해진 마당에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그냥 이사장의 고통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이다.
“어쩔 수 없는 일 같습니다. 그 애들을 다시 붙이는 일은 불가능할거예요. 내부적인 분열도 있구요.”
“이제 어쩌니, 당장 대표 가수가 빠져 나갔으니.”
이사장은 회사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대표가수가 빠져나가는 바람에 생기는 이미지 타격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에 다른 가수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이 사건이 계속해서 입방아에 오를 테니 말이다.
“그럼 분야를 좀 트는 건 어떨까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가수 중심 엔터테인먼트에서 배우 중심으로 바꾸는 거죠.”
이사장이 잠깐 삐끗하게 된 이 시점에서, 다른 가수를 키우는데 혼을 쏟는다면 에너지 소모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모로 손실을 얻을 것이니, 잠깐 방향을 틀었다가 잠잠해지면 가수 쪽으로 돌아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건 곤란해. 내 네트워크도 가수 중심이라서, 탤런트도 여자 탤런트는 괜찮은데, 남자는 실패했잖아.”
“아.”
이사장이 누굴 이야기하는지 깨달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송애교 급의 미모를 가진 탈랜트가 또 있을 리도 없고 말이야.”
있다. 그보다 더 예쁘다고 할 수 있는 이가 있다.
“있을 걸요?”
“송애교 만큼 이쁜 여자가 또 있다고?”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