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매직의 신(2)
매직은 손가락의 힘과 모발이 상한 정도에 따른 텐션 조절이 관건이다. 사실 나와 남 선생이 이 작업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둘 다 머리를 다루는 것은 프로다. 둘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머리를 피는 작업만큼은.
한 시간 넘어, 두 시간 가까이 작업이 이어졌다. 머리를 피는 속도도 거의 같았다. 사실 서로가 눈치를 보며 누가 먼저 앞서나가면 속도를 내고, 더 잘 피면 신경을 쓰고, 그런 식으로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머리를 피고 난 뒤, 중화제도 사실상 차이가 없다. 중화제는 골고루 잘 발라주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기술의 차이는 없다.
그렇게 중화제까지 마치고 머리를 감고나왔다.
두근두근.
이제 매직의 결과가 눈앞에 펼쳐진다.
남 선생과 내가 동시에 침을 삼켰다.
꿀꺽.
위이잉.
드라이가 시작되고, 두 모발이 동시에 말려지고 있었다.
“드디어 결말이구만?”
김성순 여사가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지켜보며, 나름 우리를 심사하는 중이었다.
“아니, 괜찮으니까 가라고!”
다른 스텝이 남 선생을 도와주려고 하자, 남 선생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남 선생의 말에 모두 황당해서 쳐다보았다.
남 선생은 이번 일에 목숨은 건 듯 보였다. 평소 내게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었던 듯 보였다. 머리를 말리는 것도 사실 잘 말려야 하기에 보인 반응이었지만, 너무 과도한 정색이었다.
“머리도 각자 말리는 걸로 하죠.”
내가 말했다. 매직을 한 모발을 잘 말리는 것도 펌의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발을 말리는데, 두 모발의 차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노랑머리는 그 차이를 파악하고 내게 속삭였다.
“끝머리가 조금 달라요.”
“그래, 그렇네.”
남 선생이 핀 모발은 PH발란스가 발라지지 않은 상태라서 끝머리에 차이가 났다. 엄청나게 차이나진 않지만, 끝머리가 날리느냐 안 날리느냐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머리가 완전히 마르자 또 다른 차이가 드러났다.
“아래쪽 머리가 더 상했다 아이가?”
한 원장이 남 선생이 핀 모발을 들춰보며 말했다. 아까 머리에 약액을 바르는 과정에서 남 선생이 늦게 한 탓이었다. 즉 위의 모발에 약액을 바를 때, 아래쪽 머리가 이미 상해가고 있었다는 뜻이다.
“판가름 났네. 남 선생이 졌어.”
김성순 여사가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아우, 처음부터 불공평 했다구요!”
“남 선생!”
남 선생은 화를 내며 미용실을 박차고 나갔다. 실력은 출중할지 몰라도 인성, 모발을 대하는 자세가 좋지 않았다. 그 자세가 실력을 가른 시간이 되었다. 김성순 여사는 남 선생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저런 인성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네. 나한테는 잘했는데 말이야.”
김성순 여사는 돈을 많이 주고 팁도 충분히 주는 분이라서, 남 선생은 그것 때문에 잘한 거다. 그거 말고 다른 책임감은 없었다.
“제가 그쪽 마무리 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다른 쌍둥이의 머리를 잡고 헤어 매니큐어를 시술했다. 투명이라서 간단하게 해 주었지만 덕분에 모발이 날리는 것은 잡을 수 있었다.
김성순 여사는 내가 아무리 바빠도, 남 선생에게는 절대 머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사실 남 선생도 김여사 머리를 해 주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매직의 신 탄생!”
김성순 여사가 내게 손뼉을 쳐주며 말했다.
“아이고, 무슨 그런.”
“잘한 건 맞재. 인정할건 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내게 매직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나는 자꾸 그런 말을 하면 매직을 안 하겠다고 했고, 그제야 사람들이 멈추었다.
* * * * *
남북 정상 회담이 성사되었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회장님께 전화가 불같이 왔지만, 나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동자 분장을 하는 것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지금으로선 회장님께 부탁할 일도 없었다.
회장님만 위해서 만나는 일은 이제 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만남은 없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조용히 지내던 중, 재준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어,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재준이 밝은 목소리, 왠지 껄끄럽다. 저 목소리는 일이 아주 잘 풀리고 있을 때 나는 목소리였다. 그에게 좋은 일이 생긴 건가?
“어, 무슨 일이야?”
재준이 내게 전화를 걸 일은 딱히 없었기에,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너 미용 전문회사 차렸더라?”
“어, 들었구나.”
“야, 그럼 내게 연락했어야지. 나도 관심 많은데.”
재준에게 알리지 않은 건, 그가 자극받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가 미용 관련 회사에 관심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어, 미안. 엄청 바빴네.”
나는 최대한 빨리 통화를 마치고 싶어서 기회를 살폈다.
“그래서 나도 회사를 차렸어. 너랑 동종업계라서 연락했어. 선의의 경쟁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재준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힘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도 회사를 차렸다. 이제 우리의 대결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구나. 축하해.”
“그러니까. 니가 우리 창립 기념행사에 참석을 해주었으면 좋겠어. 올 수 있겠지? 경쟁자로서 말이야.”
재준은 내게 자신의 회사를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흔쾌히 재준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보다 내가 먼저니까, 승자의 여유라고 해야겠다.
“알았어. 가도록 하지.”
“그래, 그럼 그때 보자고.”
재준과의 통화를 마치고, 나는 뭔가 께름직한 것을 느꼈다. 그가 회사를 차릴 수 없게끔 내가 손을 써두었는데, 결국 회사를 차렸다. 그가 나를 쥐고 흔드는 것은 결국 정해진 운명이라는 건가? 내가 그보다 훨씬 나은 인생을 사는 것이 진정 꿈이란 말인가? 잠시 동안 그런 물음에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었다.
* * * * *
“여기야!”
공항이다.
내가 공항에 간 것은 바로 류사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짧지만 굻은 유학생활을 마친 류사희가 서울에 온 것이다. 그녀가 오는 것을 맞이하기 위해 손꼽아 기다렸다. 미용 관련 사업을 시작했으니, 그녀의 도움이 절실한 까닭이었다.
“이야, 이거 몰라보겠네?”
류사희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세련됨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다. 화장은 두말할 것도 없고, 패션이 끝내줬다. 유학기간 동안 정말 많은 공부를 한 모양이었다.
“오빠도 그 사이 더 멋있어졌어요!”
류사희가 답하듯 말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동창처럼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자, 한국에 왔으니 한식부터 먹으러 가야지?”
“좋죠! 한국 음식은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류사희는 그동안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가 있었던 듯 입맛을 다셨다. 나는 류사희를 데리고 고급 한정식 집에 갔다.
류사희는 오랜만에 먹은 한식을 보고는 숨도 쉬지 않고 먹어댔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상을 다 먹은 류사희가 정적을 깨고서 말했다.
“나 어디서 일해요?”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지금 있는 스타일헤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상주해 있다. 연예인들의 메이크업을 도맡아하며 인지도도 있는 편이라 쉽게 내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녀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미용실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 미용실의 원장이 나고, 부원장이 류사희여야 내 계획에도 부합된다.
“아,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내가 너무 빨리 왔죠?”
류사희가 생각보다 조금 일찍 온 탓도 있었다.
그치만, 지금쯤은 그녀의 거취를 정했어야 했다. 내가 실수한 것이다.
“미안해. 조만간 정식으로 시작하자.”
“괜찮아요. 좀 쉬지 뭐.”
그렇게 류사희는 서울에 왔다. 이제 미용실 사업을 더는 미뤄둘 수 없게 되었다.
* * * * *
재준 회사의 창립 기념일.
재준이 재벌의 아들인 것 때문인가? 일개 작은 회사의 기념식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특히 미용 관련된 유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을 보자 기분이 묘해졌다.
“화려하구나.”
나도 이제는 재준만큼 아는 미용인들이 많은데, 왜 창립 기념식을 크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겉치레에 불과한 것이 부럽다는 내 졸렬한 마음이, 순간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 가장 옳다. 너를 부러워하지 말고, 나를 부러워하게 만들자. 그러려고 회귀한 것이니.
“어서와 박준수. 와줘서 고맙다.”
“어, 그래 축하한다. 생각보다 회사 규모가 큰가보지?”
“어, 내 아내, 아니 아내 될 사람 덕분에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었어.”
“아내?”
“어, 조만간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야.”
재준의 아내는 형식상의 아내이긴 하지만, 재벌 3세다. 그녀가 도와줬으면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재준의 웬수나 다름없었다. 재준은 그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소리까지 했었다. 할 수만 있다면 킬러를 고용하고 싶다고 했을 정도니까. 그 말이 생각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도 초반에는 호감을 갖고 결혼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결혼 하는구나? 부럽네.”
“너도 얼른 설아씨랑 결혼해.”
“어? 야 무슨 소리야.”
설아씨와 내가 사귀는 건 아직까지 비밀로 하고 있었다. 톱스타의 연애는 인기 하락의 원인이 되니까. 재준이 그걸 어찌 아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아는 것은 아닐 테니 시치미를 떼야겠다.
“둘이 사귀잖아? 아니야?”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건 맞고.”
나는 김설아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져서 배시시 웃었다. 마음까지 숨길 이유는 없으니까.
“그래, 그럼 나중에 결혼할 가능성이 있는 거지.”
재준이 자신의 피앙새를 떠올리며 웃었다.
나는 재준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웃는다? 자신의 결혼을 떠올리며 웃는다고? 말이 안 되는 게 아닌가? 결혼식을 할 때 억지로 했다는 말을 했던 그가, 상대를 떠올리며 웃는다고?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대체 왜?
“오늘 오신거야? 그분?”
나는 김설아에 대한 관심을 거두기 위해 서둘려 재준의 피앙새에 대해 물었다. 이미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만, 지금은 모르는 연기를 해야 한다.
“어, 왔지. 당연히.”
재준은 행사장 가장 중심에 서있는 여자를 턱짓했다. 그녀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서 모든 행사를 전두지휘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재준의 아내는 저 모습보다 조금 뚱뚱하고, 분위기도 조금 달랐다. 성형이라도 시킨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재준도 나의 뒤를 따라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우리가 다가오는 것을 본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응? 그녀가 아니다? 누구지?
“저분은?”
“인사해, 내 아내 될 사람이야. 내가 말한 미용하는 그 친구야.”
“어머, 안녕하세요.”
그녀는 재준의 아내가 아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재준의 원래 아내 될 사람은 어디에 갔는가? 하는 의문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준수씨. 약혼자 그레이스정이에요.”
그녀는 악수를 하기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때, 내 눈에 그녀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저건 회귀 반지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