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한 원장 은퇴작전(2)
다솜이가 시집을 가서 애를 낳았고, 그 돌잔치에 우리 미용실 식구들이 전부 가서 축하해 주었다.
조 원장은 거기에 가지 않겠다며 버텼지만, 한 원장과 내가 설득해서 같이 갔다. 남의 아기 돌잔치에 간 한 원장과 조 원장의 반응을 보게 위해서였다.
마침 다솜이 아이가 너무 예쁘고 귀여웠다. 누가 봐도 부러울 정도였다.
“내는 이제 다 이루었다 아이가? 하나만 더 있으믄 마 후회 없이 미용실도 내놓을 수 있다.”
“뭔데요?”
한 원장은 다솜이의 아이를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딸! 딸 하나만 낳아도. 내 아를 낳아도!”
한 원장이 조 원장의 두 손을 잡고서 애원하듯 말했다.
조 원장은 한 원장의 손을 뿌리치고는 쏘아보았다.
“이양반이 미쳤어? 내가 애를 낳으면 애 학교갈 때 할미야! 애한테 죄짓는 거라고!”
“나 돈 많다 아이가? 70 넘어서 쓸 돈 다 있다!”
“웃기시네, 애 낳는 건 그렇다 치고! 키우는 거도 일이야! 당신 은퇴하고 도와줄 거야? 나는 은퇴할 생각이 없거든?”
오, 조 원장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하고 있다.
“그래, 마 은퇴하고 아 키워 줌 낳아줄기가?”
“그래! 나는 일할 테니 아는 당신이 키우시구랴!”
“좋아 약속한기다?”
“알았어, 알았어!”
둘이 애 문제로 투닥 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다. 한 원장은 조 원장이 아이를 낳게 된다면, 누구보다 잘 키워줄 것 같았다.
그런데 잠시 뒤, 한 원장이 나를 조용한데로 불렀다.
“무슨 일이세요?”
“어, 아까 말 다 들었재?”
“아, 아기요?”
“그래, 내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딸 하나만 있음 소원이 없을 기다.”
“정말 은퇴까지 고려하고 계세요?”
꿀꺽.
한 원장이 스스로 은퇴해 준다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제발, 제발.
“그래, 요새 쫌 지치긴 했다 아이가? 돈은 다 못쓰고 죽을 만큼 있으니, 고마 은퇴하는 것도 괜찮은데…….”
한 원장이 말끝을 흐린다.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건가?
“근데 아를 낳으려면 많이 해야 하지 않긋나?”
“네?”
으음?
“뱀술이 그래 좋다 카든데, 니 산에 아는 사람 있다꼬 하지 않았나? 쪼매 구해주었음 좋겠는데?”
“아, 네네. 제가 얼른 구해드릴게요!”
마침, 양구씨의 집에 뱀술이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은희씨는 뱀술과 야관문, 온갖 약초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는 말을 했었다. 병원에 있던 사람들 말로는 그 효능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기왕이면 은희씨의 물건을 팔아줘야겠다.
* * * * *
“어이쿠, 오랜만이네?”
경찰서 앞에서 만난 강철수는 여전했다.
“잘 지내셨죠?”
“그러엄, 잘 지냈지. 누구 때문에 미친 듯이 지냈어.”
강철수는 마약 수사 때문에 엄청 바쁘게 지냈다. 거기다 그가 설치고 다니는 것이 못마땅했던 윗놈들이 강철수에게 힘든 지역구만 돌렸고, 수시로 일을 맡겨서 눈코 뜰 새 없이 지냈다.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아는 척을 하기가 그랬다. 그에게 은혜를 갚을 길이 있다면 갚으리라고 생각만 하고 있던 터였다.
“그건 그렇고, 용건이 뭐지? 나 바빠서 말이야.”
“그 양구씨 사는데 좀 알려 달라구요.”
“에엥? 거길 또 가라고? 나는 절대 못가니까 알아서 가.”
강철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철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하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강철수를 붙잡았다.
“거참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보셔야 하잖아요!”
“뭐? 뭘 들어 보라는 거야? 들어봤자 같은 말이지!”
강철수는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가려고 했다.
나는 강철수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이판사판, 아무 말이나 던져보자.
“연쇄살인범! 잡게 해줄게요!”
그러자, 강철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다가와서 내 멱살을 잡았다.
“장난 하지 마. 웬만하면 내게 장난치지 않는 게 좋아. 나는 한번 물면 안 놓는 미친놈이거든.”
강철수의 눈빛에 살기가 느껴졌다. 나도 그의 그런 면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장난칠 의향은 없었다. 내 말은 진심이었다. 희대의 미제사건인 화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화순 연쇄 살인사건의 힌트를 알고 있거든요.”
“뭐?”
강철수는 있는 대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곧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암튼, 같이 가주시면 제가 있는 힘껏 도와줄게요. 그럼 지금까지 형사님 괴롭히는 인간들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지 않습니까?”
화순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는다면, 대한민국 최고의 형사가 되는 것이다. 진급은 당연할 테고, 누구도 강철수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 당장 불 생각은 없나?”
강철수가 거의 협박조로 말했다. 눈빛만 보면 연쇄살인범이나 진배없다.
“양구씨를 만나게 해주면 바로 불겠습니다.”
“만약 헛소리면 너부터 죽일 줄 알아.”
누가 강철수에게 사기를 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못한다. 그냥 야관문을 안 받고 말지.
“진짜 맞습니다. 저 거짓말은 안하는 사람이에요.”
강철수에게는 누구도 거짓말을 할 수 없지. 눈만 봐도 맞을 것 같으니까.
“좋아, 그럼 당장 가자.”
“네? 지금 당장?”
“그래, 당장! 빨리 그 새끼 면상을 조져놓고 싶으니까!”
아, 화순 연쇄살인범의 면상을 조질 생각을 하니 속이 시원하다. 이번 일은 모두를 위해 잘 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 오늘은 그랬다.
* * * * *
“빨리 빨리 튀어와! 헛둘 헛둘 동작 봐라!”
강철수는 거의 기계급의 운동신경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높은 산을 오르는데도 힘든 기색이 전혀 없었다. 가끔 사람이 맞나? 싶다.
헉헉.
반면 나는 양철로봇처럼 계속해서 삐그덕 거렸다. 앞서 지리산을 오를 때는 내 페이스대로 가서 괜찮았는데, 이 양반 뒤를 쫓아가는 게 여간 고된 게 아니었다. 같이 다니는 여형사의 능력이 세삼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무슨 기계도 아니고 뭐 그렇게 빨리 가냐고요?”
내 볼멘소리에 강철수가 다가와서는 내 손을 휙 잡고는 끌고 갔다.
“자, 잡고 따라와!”
“헉, 괜찮은데.”
강철수의 체력은 천하장사를 하고도 남을 체력이었다. 이런 대단한 형사가 아직도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것은 국민적 손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다 왔어.”
“네네.”
그렇게 조금 더 올라가고 있는데, 그 소리가 들려왔다.
띠링.
종소리다! 이제 다 왔네.
“아우 젠장, 종소리 울리면 엿 되는데.”
“네? 왜요?”
강철수는 조금 겁을 먹은 듯 보였다. 그를 만나고 나서 처음 보는 겁먹은 표정이었다.
두두두두.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소리, 양구씨가 분명하다.
그러자 강철수가 내 손을 잡고 뛰었다.
“야, 일단 도망쳐 빨리!”
“네?”
나는 강철수의 손에 이끌려 산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멧돼지에게 쫓길 때보다 더 미친 듯이 말이다.
“이요옷!”
양구씨가 커다란 야구방망이를 우리에게 휘둘렀다.
휘익.
“으악, 나야 나라고!”
“양구씨 왜이래요?”
“어? 형아.”
양구는 그제야 나를 확인하고는 방망이를 거두었다. 양구의 방망이는 강철수의 눈앞을 스쳤다. 한 발짝만 더 왔으면 사망했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아니, 나를 또 잡으려고!”
강철수가 양구의 손을 잡아 꺾었다. 그러자 양구씨가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이거 놔라! 깡패는 때려잡아야 한다. 멧돼지도 잡아야 한다!”
“나 깡패 아니라고! 멧돼지도 아니라고!”
“괜찮아요. 양구씨! 이사람 깡패 아니야.”
양구씨는 강철수를 물끄러미 보더니 방망이를 내렸다.
“어? 저번에 온 아저씨다.”
“그래, 새꺄 나를 이제 알아보냐? 저번에는 멧돼지라고 하드니”
“하하, 그랬어요? 양구씨, 이 사람은 형사야. 나쁜 깡패 잡는 형사.”
“나쁜 놈 같이 생겼다. 알고 보니 착하다고 은희씨가 그랬다.”
양구씨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우리 주변을 마구 뛰어다녔다. 강철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 질렀다.
“으아, 뭐하는 거야? 정신 사납다구!”
“예쁜 형사님 안 왔다. 그때 온 예쁜 누나 안 왔다.”
양구씨는 지치지도 않고 전속력으로 주위를 돌았다.
“걔가 이쁘냐? 아, 안경을 사줘야겠구만.”
“아, 그 형사님 말하는 건가 봐요?”
“그래, 그니까 저놈에게 안경을 사줘야겠어.”
강철수는 갑자기 달려가서 양구를 붙잡고 눈을 까뒤집었다.
양구는 강철수의 손아귀에 잡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얌마 눈을 떠! 정신 차리란 말야. 너 임마 여자 보는 눈을 높여야지!”
“으아악, 이거 놔라!”
양구씨는 강철수의 완력에 잠시 주춤했지만, 몸을 뒤로 꺾어서 교묘하게 강철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러더니 강철수의 엉덩이를 뒤에서 발로 후려쳤다.
퍼억.
웩.
정확하게 가운데로 명중……
“아이고, 나죽네.”
“형사님!”
강철수는 중요 부위에 강력한 한방을 맞고서 미친 듯이 굴러다녔다.
그 모습이 다람쥐 같았다.
그걸 본 양구씨는 좋다고 손뼉을 쳤다.
“와아, 다람쥐다.”
강철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양구씨의 멱살을 쥐었다.
“이 새끼, 나를 고자로 만들 셈이냐?”
“고자가 뭔지 모른다. 다람쥐 더 해라.”
양구씨는 강철수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갔다. 가면서도 연신 박수를 치는데, 내가 봐도 얄미울 정도였다.
강철수는 씩씩대며 양구씨를 잡으러 쫓아갔다.
둘이 그러는 걸 보니 내 머리가 뜯어질 것만 같았다.
“으악! 그만 좀 해요! 그만! 그만!”
나는 왼손으로는 양구씨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강철수를 잡아서 둘을 떼어놓았다.
둘이는 서로를 때리려고 손을 휘둘렀다.
퍽.
으악!
둘의 주먹 중 하나가 결국 내 면상을 날리고서야 끝이 났다.
“제발 그만하고, 엄마에게 가자고!”
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둘도 발광을 멈췄다.
“응응, 은희씨에게 가자.”
양구씨는 갑자기 우리를 팽개치고 뛰어갔다.
“같이 좀 가!”
“야, 이 젠장할 놈아! 거기서!”
우리는 양구씨 꽁무니를 미친 듯이 쫓아갔다.
* * * * *
“어머,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아, 전화기가 여기서는 안 되어서 직접 오셨구나?”
은희씨가 우리를 보고 뛰쳐나왔다.
양구씨는 이미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우리는 뒤늦게 뛰어와서 헥헥대고 있었다.
“오랜만…… 헉헉…… 이에요.”
“두 분이서 같이 오셨네요? 무슨 일이 생겼나요?”
은희씨는 약간 불안한 듯 말했다.
“아, 일이 아니고요 야관문이랑 뱀술 좀 사려고요.”
내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강철수.
“아, 안 그래도 그거 파는 게 어려워져서 고민이었는데……, 지금 엄청 많거든요.”
“야관문? 어린놈의 자슥이 벌써?”
강철수가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강철수의 야릇한 미소를 보고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나는 아니거든요! 난 필요 없다구!”
“응응, 누가 뭐래냐? 그렇구나 그랬어.”
“아니, 이러기에요? 아니라니까!”
“그거 다 가져와요. 다 팔아줄 테니까.”
강철수도 주위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아준다고 선뜻 말하였다. 그렇게 은희씨가 가지고 있던 야관문과 뱀술이 전부 동이 났다.
내가 이곳에서 산 것들은 전부 한 원장에게 날랐고, 한 원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임신 소식을 알렸다. 약발이 정말 죽여줬다.
산에서 내려간 후에 나는 강철수를 피해 다녔다. 막상 생각하려고 하니 그 연쇄살인범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괜히 엉뚱한 사람을 잡을 수는 없었기에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그러다 결국 강철수와 마주쳤다.
“이것 봐, 우리 결산할 것이 남았잖아?”
강철수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