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회귀의 반지를 사수하라(2)
“뭐야?! 당신 누구야?”
현직 검찰 차장의 납치,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남자는 오늘 중요한 일이 있다며 비서 등을 모두 집에 보낸 상태였다.
남자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조금은 겁을 먹은 듯 했다.
남자들은 이 차장의 몸을 결박하여 끌고 갔다.
마침 잘 만나고 있는지 궁금했던 내가 약속 장소를 찾았다가 그 모습을 보고 쫓아갔다.
“뭐하는 거야?! 거기서!!”
내가 쫓아가자, 상대는 급히 차장을 끌고 가서 차에 가두었다. 이차장은 차속에서 발버둥 쳤지만, 몸이 묶여있고 얼굴에 두건이 씌어져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차장이 갇힌 차를 두드렸다.
“차장님 괜찮으세요?”
퍽.
으악.
놈들이 나를 주먹으로 때려 넘어졌다. 하지만 그대로 이 차장을 보낸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나는 납치범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뭐야? 이 새끼 떼어내!”
“사람 살려요!”
퍽, 퍽, 퍽.
놈들이 구둣발로 나를 사정없이 뭉갰다. 맞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시간을 지체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이놈드을!!”
어디선가 번개가 치는 듯한 고성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공중에서 발이 날아와 두 납치범의 면상을 갈겼다.
퍽, 퍽.
납치범 두 놈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공중을 날던 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 차장의 비서였다.
비서는 쓰러진 나를 잡아 일으켰다.
“괜찮으세요?”
“빨리 이 차장님을 구하세요.” “네?”
놈들이 이 차장을 태운 차에 가서 막 출발하려고 했다.
부릉부릉.
비서는 얼른 뛰어가 놈들이 탄 차에 매달렸다.
“거기서!”
나는 재빨리 달려가서 이 차장이 탄 차의 문을 열었다. 비서가 그 틈을 타서 이 차장을 끌어 내렸다.
끼이익.
차는 문이 열린 채로 달려 나갔다.
비서는 이 차장을 챙기고, 나는 그 틈을 타서 놈들이 탄 차의 넘버를 외웠다.
“7819나! 빨리 적어요!”
그러자, 비서가 재빨리 메모지를 꺼내서 받아 적고는 다시 이 차장을 일으켰다. 이 차장의 두건이 벗겨지고, 겨우 숨을 돌렸다.
“괜찮으십니까?” “이…, 이게 대체.”
나는 겨우 숨을 돌리고서 이 차장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어? 박준수씨.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냥, 잘 되나 싶어서 왔다가…….”
왠지 오고 싶어서 왔는데, 오길 잘한 것 같다.
“이분 아니었으면 벌써 납치되셨을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 대체 어떤 놈이 나를….”
이 차장은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우우웅.
“여보세요. 아 회장님? 아직 안 왔어요? 곧 오실 겁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회장님?”
이 차장은 회장님이라는 말에 조금 놀랐지만,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우선 약속 장소부터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지요.”
우리는 같이 약속 장소로 향했다.
* * * * *
“어? 김주원 회장님 비서 아닌가?”
이 차장은 김주원 회장의 비서를 알아보았다.
비서는 이 차장이 자기를 알아 본 것에 당황하며 땀을 흘렸다.
“아, 그……그러니까.”
“회장님? 여기 오셨습니까? 오셨으면 그냥 나와서 이야기 하시죠.”
이 차장이 호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일식집으로, 바로 옆방과 연결되어있지만 문으로 닫을 수 있는 그런 방이다.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주원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허, 참. 어찌 알았는가?”
김주원의 모습을 본 이 차장이 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저번에 잠깐 뵈었는데, 기억을 못하시는군요.”
“아, 그렇습니까?”
김주원과 이 차장은 오늘 처음 본 거나 마찬가지인데, 어딘가 통하는 모양이었다. 오랜 기간 알고지낸 동지처럼 친숙함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히려 내가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 두 분이서 이야기 하시죠.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굳이 거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나를 말리지 않을 작정인 듯 했다.
“오늘 고마웠습니다. 나중에 한 턱 쏘겠습니다.”
“어, 그래 가봐. 고마워. 얼굴에 약 좀 바르고.”
“네, 이 차장님 가실 때 비서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시구요.”
“네, 고마워요. 들어가세요.”
김주원과 이 차장을 두고 나오는데, 뭔가 싸했다. 둘이 친해지는 것이, 내게는 좋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말이다.
“그나저나, 누가 이 차장을 납치하려 한 건가?”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막 나오는데, 이 차장의 비서와 마주쳤다.
“어? 대기 중이신가 봐요?”
“네, 그래야죠. 같이 식사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 제가 딱히 볼 일이 있는 게 아니라서 그냥 가려구요.”
“아, 그렇군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병원비는 따로 청구하세요.”
“뭘 이정도 가지고.”
“악바리 근성이 있으시더군요. 하하.”
악바리 맞다. 그러니 세 번이나 꾸역꾸역 회귀를 한 것이겠지.
“근데, 그 번호판 주인이 누구인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누가 납치를 했느냐를 알아야 내가 개입할지 무시할지가 정해진다. 내가 생각하는 그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네, 안 그래도 좀 전에 알아봤는데, 유명 용역업체 법인차량이더군요.”
“법인 차량을 가지고 납치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런 무식한 것들이 다 있어?”
“깡패 새끼들이 다 그렇죠. 깡패들이 운영하는 곳이거든요.”
“아, 그럼 누구 사주 받고 그런 건가?”
“그죠. 현직 차장검사를 그렇게 건드리는 건 그들로서도 용기가 필요할겁니다.”
“돈이 곧 용기구요.”
우리는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다 이내 진지해진 얼굴로 말을 잇는 비서.
“누군지 몰라도 각오해야 할 겁니다. 호랑이 코털을 건드렸으니까요.”
“호랑인지 모르고 건들었을지도요.”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사건을 주도한 것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차장 개인의 일이거나, 회귀의 반지를 가지기 위한 일이거나.
이 차장은 현직 검찰 차장이다.
그 말인즉슨,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대낮에 용역업체 직원들이 납치를 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깡패 따위가 검찰 차장을 건드린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들은 이 차장이 누구인지 알고 덤빈 것이 아닐 확률이 컸다.
그렇다면 누가 이 차장을 노린 것인가? 내 생각에는 그레이스가 벌인 일인 것 같았다. 그레이스는 바로 어제 이 차장과 거래를 했었다. 그레이스 입장에서는 단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이 차장이 검찰 차장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을 거란 이야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용역업체를 부른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일개 변호사 따위는 저들로도 충분하니까.
내 추측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레이스가 배후에 있다면 딱히 나쁘지 않다. 내 손에 피 안 묻히고 재준을 혼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여하튼 재준과 그레이스는 사람 잘못 건드린 것이다.
* * * * *
얼마 뒤, 이 차장과 내가 만났다. 이 차장이 내게 급히 할 말이 있다고 전화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범인을 찾으셨다구요?”
“네, 범인은 바로 그레이스정 이더군요.”
이 차장은 현직에 있는 검사이기 때문에 범인을 색출하는 것에 능했다. 게다가 차량의 넘버까지 알고 있으니, 누구라도 빠져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레이스가 이 차장에게는 은인이라는데 있다.
“그렇군요.”
예상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딱히 놀라지 않았다.
이 차장은 내 반응을 보고 피식 웃었다.
“예상 한 일이군요?”
“네, 사실 저도 이 차장님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몰랐잖습니까? 이 차장님이 검찰 차장까지 올라갔다는 것을요.”
“아, 그럼 그레이스도 내가 검찰 차장이라는 걸 몰라서 그런 거다?”
“그죠. 그걸 알고도 덤빌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내 상태가 바뀌지 않았다고 쳐도 납치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일단 잡아서 혼내줘야 할 일이지요.”
이 차장은 과거의 그 남자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치료를 하기 위해서 눈물짓던 그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과거를 다시 살면서, 내면까지 바뀐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남에게 진 신세를 갚는 사람이다. 내 동생을 사법고시 2차까지 합격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다. 처음에 그는 내 말을 듣고서 내 뒤를 조사했다고 했다. 그래서 내게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해에 있는 사법고시 시험지를 직접 가져다 풀고 나서 그걸 토대로 내 동생의 과외를 해주었다고 했다. 그만큼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다. 어찌되었건 그는 그레이스에게 신세를 진 것이 아닌가?
“그치만 그레이스는 당신에게 은인이 아닙니까? 은인을 벌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레이스를 옹호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레이스를 잡아야 재준을 잡는 건데, 대체 왜 이런 말이 튀어나온 건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그레이스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구에게라도 반지를 주었을 겁니다. 그래야 자기에게 반지가 돌아가기 때문이지요.”
“그……그죠.”
그레이스가 이 차장에게 반지를 준 것은 순전히 다시 돌려받기 위함이었다. 그걸 이 차장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내게 반지를 주길 원해서 도와주었죠. 엄밀히 따지면 내게 은인은 당신입니다.”
“네…… 하지만.”
대체 왜 내 생각과 다른 말이 튀어나오는 걸까? 그레이스의 편이 되어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닌데도.
“그럼 제가 묻겠습니다. 내가 그레이스에게 은혜를 갚아야 할까요? 아니면 당신에게 은혜를 갚아야 할까요? 동생은 3차가 남았는데도 말이죠?”
준희는 사법고시 3차 시험을 앞두고 있다. 이 차장의 과외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 그렇죠.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쓸데없는 참견으로 내게 들어 온 복을 걷어찰 이유가 없다. 특히 이것은 내 복이 아닌 준희의 복이다. 내게 선택은 하나다.
“제가 책임지고 3차에 합격하게 하겠습니다. 그건 염려하지 마세요. 보답은 온전히 그쪽에게 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복에 겨워서 오지랖을 떨었네요.”
“그치만 나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레이스에게 직접 복수하지는 않을 겁니다. 납치 건으로 그녀를 입건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죠. 그게 그 여자에게 하는 최소한의 예의구요.”
“네, 감사합니다.”
대체 왜 감사가 나오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럼 제 의견을 충분히 전했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 차장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준의 회사에 검찰이 들이닥쳤다. 그것은 재준의 미용 관련 회사가 아닌, 재준의 부모가 하는 회사였다. 검찰이 들이닥쳐서 탈탈 털면, 없던 죄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게 재준의 아버지 회사는 종잇장을 찢듯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재준이 망해 가는데, 왜 좋지 않은 건가? 내가 직접 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가 왜 의문이 들었는지를.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