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한방 샴푸를 만들다(1)
“가꾸다에서 내일 어성초 샴푸를 출시한대요! 내일부터는 CF도 나온다고 해요!”
“네?”
가꾸다는 재준의 회사인데, 거기서 어성초 샴푸가 출시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에요? 설마 저놈들이 우리 샴푸가 뭔지 알아내고 베껴갔다는 이야긴가요?”
“그런 것 같아요.”
재준이 그런 짓까지 하다니,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원래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처한 상황 앞에서 변한 듯 했다.
“우리 샴푸를 훔쳐갔으무니까?”
“양아치다 양아치.”
“그 새끼들 다 죽여버려야지!”
노랑머리가 벌떡 일어나서 근방에 있던 우산을 집어 들었다.
“그만 둬. 그런 걸로 죽을 놈도 아니야.”
재준은 그따위 걸로 죽을 놈이 아니다. 오히려 그걸 빼앗아 노랑머리를 칠 놈이다. 놈을 다루는 것이 조금 쉬워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는 호랑이처럼 넘을 수 없는 상대였지만, 어느 순간 쉬운 상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승냥이처럼 질긴 놈이 되었다. 어쩌면 호랑이보다 더 상대하기 어려운 놈이 된 건지도 모른다.
“그럼 이대로 당하고 있어요?”
“그러지 말고 기다려, 내가 청부업자를 알아볼게.”
이은미가 깜짝 놀랄 말을 하였다. 그녀는 갈수록 노랑머리처럼 변해간다.
다들 이은미의 말에 놀라서 쳐다보았다. 그건 노랑머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이은미가 피식 웃었다.
“농담이에요.”
“어이구 무서워. 농담인데 무서워.”
“그럼 어쩌무니까? 내가 아는 야쿠자를 부……….”
그도 농담이지만, 아는 야쿠자는 진짜로 부를 수 있다.
“그냥 두세요. 지금 당장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냥 두다뇨?”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그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어요!”
다들 한 목소리로 분노를 표하였다. 나도 분노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당장 내일 CF까지 나오는 것을 어찌 바꿀 수 있을까? 바꾸지 못한다고 해도, 이대로 당할 내가 아니다.
“어성초 관련해서는 이미 상표 등록을 해두었습니다. 아시죠? 아울러 한방 샴푸도 먼저 등록해 두었잖아요?”
“그렇죠. 어성초를 전면으로 내세운 광고를 할 순 없을 겁니다. 한방 샴푸 개발도 우리 측의 허락 없이는 안 됩니다.”
“네, 그래서 그들은 아마 우리와는 다른 식으로 할 겁니다.”
“그렇다고 우리 걸 훔쳐가지 않은 게 아닌데요?”
“그러무니다. 도둑놈들이무니다.”
“네, 그걸 이용해서 우리 측에 있는 성분을 좀 더 고급화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요즘 허의원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한방에 대한 관심이 많잖습니까?”
“아, 요즘 붐이죠.”
“네, 그걸 이용해서 우리 제품의 고급화를 할 겁니다. 사실 그건 다음에 하려고 개발 중이었는데, 좀 더 서둘러야겠네요.”
한방샴푸는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출시될 것이다. 그걸 우리 측에서 만들면 된다.
“한방 샴푸라,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은미의 아버지가 한마디 하였다. 그는 요즘 들어 우리 회사의 회의에 자주 참석하였다. 딸이 한 회사의 창립 멤버가 되고 그 회사가 날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정말 좋은 생각일까요?”
“한방 냄새가 나는 그런 샴푸이무니까?”
“으윽 그거는 좀 별로인데?”
“네, 하지만 그 제품은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겁니다. 소비자들이 한번 듣고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맞는 말이다. 댕기모발 이라는 샴푸가 첫 출시되었을 때,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그런 샴푸가 있다는 소문은 정말 빨리 퍼졌으니까.
“그렇겠네요. 친구 머리에서 한방 냄새가 나면 무슨 샴푸냐고 물어볼 것 같아요.”
실제로 댕기모발에 대한 소문은 목욕탕에서 퍼져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으윽, 머리에서 한방 냄새가 나무니까? 뭔가 역하무니다.”
“네, 호불호가 갈립니다. 누구는 역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구는 그걸 약효과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한방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도 은근히 많았다. 그게 부자의 냄새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 그렇겠네요. 한국 사람은 눈에 확 보이고 코에 확 들이미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청국장이나 홍어처럼요.”
“네, 한약에서 한약냄새가 나야 진짜 한약인 것처럼요.”
“오, 그건 왠지 좋은 약을 먹은 느낌이 들 수도 있겠어요!”
맞다. 한약을 먹고 입에서 한약 냄새가 나면 건강해 질 거란 느낌이 드는 것처럼, 한약을 바르면 두피가 건강하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아하. 한방 샴푸의 특징이 각인되는 거군요.”
“네, 그니까 골자는 한방 샴푸로 전환하자는 말이에요. 우리 샴푸의 질은 이미 이분들을 통해서 증명되었잖아요. 거기에 한방 향기만 넣지는 겁니다.”
“오, 그럼 손안대고 코푸는 격이네요!”
“코를 뭘 풀고 으 드럽스무니다.”
“그리고 한방버전이 자리 잡으면, 기존의 향기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출시하고요.”
아, 그럼 한방냄새 싫어하는 사람에게 팔리겠네요.
한방 샴푸로 쌓은 이미지를 업고 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네, 대신 한방 샴푸로 이미지를 각인 시킨 뒤에 출시해야 먹힙니다. 고급스러운 제품이란 걸 먼저 알리는 거죠.”
“그럼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거네요!”
“오호 뽕!뽕!”
“그래서 이 제품은 제품 자체의 효과를 알리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걸 두 분이 증명해주셨으면 해요.”
나는 두 대머리 이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두 대머리 이사는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귀엽게 웃었다. 어쩜 웃는 것도 닮아있는지.
“증명은 내 머리가 하고 있스무니다.”
“맞아요. 내 머리가 증거.”
둘 다 자신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서 두 분이 모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사진으로 남겨두었잖아요. 그게 다 증거가 되었으니 그냥 두 분이서 모델을 해 주시면 됩니다.”
“오, 그거슨 재밌는 거시 되겠스무니다. 모델비는 올마나 주실 거시무니까?”
“아…….”
대머리 이사 중 한명인 조 이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다.
“뭐야? 나만 혼자 하라는 거시무니까? 그러면 곤란하무니다. 같이 하지 않으문 나도 안하겠스무니다.”
“아니, 그게 좀…….”
“빨리 결정하시무 조케스무니다.”
“그래, 하지 뭐. 네…… 알겠습니다…… 하지요.”
조 이사는 끝까지 찜찜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왠지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무슨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뭐가 걸리는 부분이라도 있으신지?”
내 말을 들은 조 이사는 뭔가를 이야기하려다 말았다. 그런 것을 보아하니, 분명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말이다.
조 이사는 이후로도 계속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회의가 끝나고 조용히 조 이사를 따라 나섰다.
* * * * *
조 이사는 회의를 마치고 조용히 차를 몰아서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조이사의 뒤를 소리 없이 쫓아갔다.
조 이사는 어느 한적한 동네로 차를 몰더니 웬 꽃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조 이사의 차를 본 가게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뛰어나왔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빨리 준비하고 나올게요.”
여자는 30대쯤으로 보이는 고운 미소를 지닌 여자였다. 다행스럽게 조 이사에게 여자가 생긴 모양이었다. 모태솔로라고 했으니, 저 여자가 처음 만난 여자겠지. 나이 차이는 엄청 나보여서 좀 그렇긴 하지만, 자기들끼리 좋으면 그만이니까.
두 사람은 한눈에 봐도 서로 좋아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멀리서 떨어진 곳에서 봐도 그러했다. 조이사가 탈모 샴푸의 모델을 거부한 것은 저 여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대머리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려야 하는데, 여자가 떠나가기라도 할까봐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남자가 대머리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면 충격이 클 것이다. 그 때문에 헤어지는 커플도 종종 있는 걸로 안다. 그러니 조이사가 망설이는 것이겠지.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조금 있다가 돌아갔다. 나도 데이트를 해야 하니까.
* * * * *
오랜만에 김설아를 만난 나는 우리 사랑에 좀 더 집중하고 싶었지만, 김설아는 늘 내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조 이사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조 이사님이 곤란하시게 생겼네요.” “그러게요. 그치만 꼭 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의 사활이 걸렸어요.”
“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김설아가 갑자기 내게 다가왔다. 그녀가 부족한 키스라도 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슬쩍 눈을 감았다.
그러자 김설아가 내 머리에서 흰머리 한 가닥을 뽑았다.
“아야.”
“흰머리가 있어요. 아직 젊은데 호호.”
“헉, 그게 왜 있죠? 으.”
나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김설아가 웃으며 내 볼에 키스해 주었다.
“고생하는 거 알아요.”
“고마워요.”
그러던 김설아가, 갑자기 눈을 커다랗게 뜨며 말했다.
“이런 게 보이거든요!”
“네?”
“사랑하는 사이라면 분명히 보여요. 아주 작은 새치 한 가닥도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니까, 그 많은 머리카락 속에 있는 한 가닥 새치도 보이는데, 가발이 보이지 않을까요?”
“아!”
“알고 있을 거예요. 그 여자 분이요.”
사랑하는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보이게 마련이다. 그 여자는 조이사의 머리가 가발인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말하지 않을 뿐이다. 조 이사는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조 이사의 가발까지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 여자 분을 만나봐야겠어요.”
“네, 그렇게 해요.”
김설아와 데이트를 마친 나는, 그 여자가 하고 있는 꽃가게를 찾아갔다.
* * * * *
꽃집 여자는 가까이서 봐도 단아하고 예뻤다. 모태솔로인 조 이사가 제대로 잘 고른 것 같아서 뿌듯할 지경이었다.
“우리 오빠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꽃집 여자는 직장 상사인 내가 찾아 온 것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아뇨, 제가 여쭤볼 일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뭘 물어보시려구요?”
여자는 다소 긴장한 듯 물었다.
나는 무조건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애썼지만, 이 상황에서 자연스러움이 나올 리가 없다.
“조 이사님… 머리 말이에요.”
내 말을 들은 꽃집여자는 엷게 웃었다.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도 될 것 같았다.
“조 이사님 머리 상태에 대해서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어요. 오빠는 제가 아는 걸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럼 그렇지. 사랑하는 사람 머리가 가발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때는 2021년처럼 자연스러운 가발이 별로 없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딱 봐도 티가 나는데 모르는 것이 이상하다.
“그렇군요. 그럼 정말 잘 되었네요.”
“뭐가 잘 되었다는 건지요?”
“그게…….”
하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누가 뛰어 들어왔다.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오빠!”
“조 이사님!”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