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열애설(1)
이 차장은 정계 입문의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최근 그의 활동을 신문에서 자주 접한 것도, 정계입문을 위한 포석일 것이다. 사실 그는 검사에서 내려와 변호사로 살다가 죽는 인물일 가능성이 많았다. 2021년까지 신문매체에서 그의 이름을 본적이 없었다. 평범하게 살았다는 뜻이다. 내가 뉴스를 자주보지 않은 탓도 있지만, 평범한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지금,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확실하다. 그는 남의 인생 하나를 자기 걸로 만든 셈이다. 내가 이은미의 손을 잡아서 승철의 인생을 빼앗은 것처럼 말이다. 그게 정말 오재훈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일까? 궁금증이 커져갔다. 그렇다면 오재훈의 상태를 알아보면 될 것이다.
알아본 바로는, 오재훈은 평검사로 늘상 같은 생활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누구의 관심도 없는 그저 그런 인물. 정계입문은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혹시나 싶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았지만, 그를 주목하는 정치인은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TV에 나오는 횟수도 줄었다. 회귀하기 전 그는 뻔질나게 TV에 출연하였는데, 지금은 왠지 안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대체 왜? 그의 인생이 바뀐 건가?
나는 다시 그의 뒷조사를 했다. 이번에는 그의 금융거래까지 포함이었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강철수 형사에게 부탁했다.
“이거 불법이야! 이 자슥이 날 뭘로 보고?”
강철수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내 덕에 승진도 하고, 위기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주었다.
“미안해요. 한번만 부탁드려요.”
내가 없는 애교를 끌어올려 말하자, 강철수가 구역질을 하며 말했다.
“아, 그런 거 하지 마. 토 나와.”
“네에에!”
“오재훈 통장에 아는 이름이 찍혔어.”
“아는 이름?”
“양구씨! 지양구 말이야.”
“네에?”
양구씨에게 돈을 받았다는 건, 마약을 만들던 집단에서 돈을 줬다는 이야기다. 즉, 마약 집단의 뒤를 봐주던 인물들이 그의 뒷배에 있었다는 것. 그런데 그들의 손과 발을 끊어놓은 것이 나다.
그를 정치계에 입문하게 만든 세력이 죽었으니, 그의 인생도 바뀐 것이다. 결국 나 때문에 출셋길도 막힌 셈이다.
“근데 그때 안 잡혔어요?”
“어, 누락되었더라고, 누가 의도적으로 했겠지.”
그때는 오재훈을 비호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벌써 우리에게 그의 통장이 털린 것을 보면 말이다.
“그를 잡으려고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이것 말고는 깨끗하더라고. 내가 봤을 때는 그래. 게다가 현직 검사라 잘못 건드리면 큰일날거야.”
강철수도 승진을 하더니, 눈을 감아주기도 하는군. 뭔가 씁쓸하다.
“네, 그럼 그 기록을 삭제해줘요.”
“응? 그건 내 몫이 아니야. 은행 기록은 더욱 그렇지.”
“그럼 나중에라도 문제 제기 안하기로 약속해주세요.”
“응? 뭐지? 너희 가족이라도 되나?”
“암튼 약속해요?”
“그래, 그러지.”
가족? 가족이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오재훈이 이 차장에게 밀린걸 알았을 때, 나는 그를 내 동생의 배우자로 염두에 둔 마음을 접었었다.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탓이 컸다. 게다가 동생도 이제 그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스타 검사에서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기에, 동생의 마음도 내려올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동생은 사법연수원에서 본 오재훈에게 달려들었다.
동생은 오재훈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아마 회귀하기 전에도 그를 짝사랑했을 것이다. 지금 행동을 보니 정말 그렇게 보인다. 그런 사랑, 나도 했다. 내가 김설아에게 가졌던 마음이 지금까지 진심인 것처럼, 동생의 사랑도 진심인 것이다. 그걸 알기에, 동생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내 동생에 대해 이토록 몰랐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안 이상, 나는 철저하게 동생 편이고, 철저하게 오재훈 편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재훈에게 김설아를 빼앗았는데, 이제 그의 인생도 빼앗는 셈이다. 내가 이 차장에게 회귀의 반지를 주었기 때문에, 그가 오재훈의 인생을 빼앗은 것이다. 내 탓이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0퍼센트도 아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김주원이 이 차장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였다고 했다. 김주원과 이 차장은 손을 잡고서 회귀의 반지를 돌려 끼는 걸로 합의를 했다고 한다. 나를 두고서 둘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 기분 나빴지만, 저들이 반지로 인해 당하는 사건을 생각한다면 기분 나빠할 일도 아니다.
회귀의 반지는 살아있다. 소유하고자 욕심을 부리는 사람에게 반항하는 반지다. 그걸 김주원에게 알려주었고, 그도 반지가 사라지는 것을 목도했음에도 또다시 욕심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내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어쨌든, 오재훈의 인생이 나 때문에 망가지게 놔둘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를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그를 내 동생의 남편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 이후부터 그를 도울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둘을 붙여놓을 생각은 없다. 그건 잠시나마 김설아와 삼각관계에 놓였던 것에 대한 내 자존심이다. 내 동생이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그때부터 그를 도울 것이다.
* * * * *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의 어느 날, 김설아와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김설아는 2001년 불나방처럼 혼을 태우는 연기를 하다가, 돌연 은퇴선언을 한다. 2001년이 김설아가 배우로 보내는 마지막 해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그렇게 만들지 못한다. 그녀가 연기를 하지 않는 것이 너무 속상했었다. 그녀 연기를 보고 싶던 진짜 팬으로서 은퇴를 막을 것이다.
“무슨 생각해요?”
“혹시 결혼하면 은퇴할건가요?”
“네에? 아니요? 절대 안 할 건데요?”
지금 반응으로 봐서는 김설아가 은퇴한 것이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본인도 은퇴를 고려했을 거다. 너무 힘들게 달려왔으니까. 하지만 후에 그녀의 컴백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그녀 본인이 아닌 오재훈이 나섰었다. 김설아는 컴백을 원하였지만, 오재훈이 막은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절대 은퇴하면 안 된다. 나를 포함해서, 그녀를 사랑한 수많은 팬들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늘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회귀해도 막을 수 없는 부분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부우우웅.
새벽, 한참 잠이 든 시각에 예의 없이 울리는 전화기.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너 열애기사 나온단다!”
이 사장의 흥분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잠이 확 달아났다.
“저요? 설아씨랑?”
“그래, 내일 1월 1일에 맞춰서 나온대!”
“아, 어떻게든 막아야죠!”
“안 그래도 연락 했는데 절대 양보 못한대. 자기 신문사 확장기념 첫 기사라고 하면서, 수십억을 줘도 소용없단다.”
“누군데요?”
“가 기자!”
이 개*식, 새해 첫날부터 내게 엿을 먹이겠다고?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 없다!
* * * * *
가 기자의 사무실에 고함소리가 울렸다.
“야이, 가 기자 *자식아!”
“뭐야?”
퍽.
노랑머리가 결국 가 기자의 면상에 발길질을 했다.
갑자기 회사의 제품 출하에 문제가 생겨서, 그를 먼저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가 기자는 노랑머리의 발길질에 보기 좋게 나가떨어졌다.
“열애기사 당장 그만 둬!”
가 기자는 여유롭게 일어났다. 노랑머리에게 맞은 부분을 만지며 썩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재수 없음이 참으로 정성스럽게 얼굴을 채웠다.
그걸 본 노랑머리는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주먹을 날렸다. 파이터의 본능이 남아있는 탓이었다.
퍽.
“하하하하하하.”
가 기자가 갑자기 미친놈처럼 웃어댔다. 맞을 때마다 받는 금액이 늘어난다는 생각에서 웃는 것이다.
그걸 본 노랑머리가 또다시 주먹을 들었다. 뒤늦게 그 곳에 간 내가 노랑머리의 손을 막았다. 이번 주먹은 좀 전보다 더 셌다. 막지 않았다면 이빨 한두 개 정도는 날아갔을 것이다.
“그만 둬!”
“저 새끼! 내가 죽이고 감방 갑니다!”
노랑머리가 흥분하여 가 기자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노랑머리가 정신을 차리도록 그의 따귀를 갈겼다.
쫘악.
“너 정말 이럴 거야?”
내게 따귀를 맞은 노랑머리가 너무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할 말도 잊은 채 멍하게.
가 기자는 특유의 정성스럽게 재수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돈이 날아간 것이 안타깝다는 듯이.
“너 이제 우리 회사의 중역이야. 게다가 결혼도 할 거야. 그런 식으로 절제를 못하면 니 인생은 또 망하는 거야! 또 그렇게 살래?”
“아…….”
노랑머리가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의 숨소리도 차츰 잦아들었다.
가 기자를 보아하니, 얼굴은 한쪽이 부어있고, 배 쪽엔 옷이 흐트러져 있었다. 이미 두 대정도 맞은 것 같았다. 기왕 때릴 거 코피나 좀 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얄미웠다.
가 기자는 내게 보란 듯이 면상을 내밀었다. 한손으로는 돈을 의미하는 손 모양을 보여주었다. 합의금을 달라는 소리다.
나는 이미 그에게 줄 요량으로 현금을 가져왔다. 합의금 정도야 일도 아니다. 문제는 열애기사를 막는 게 조금 더 어려워졌다는데 있다. 노랑머리가 합의금을 불려준 것보다, 가 기자의 사기를 더 올려준 것이 문제다.
“돈을 벌어주러 오셨나?”
“닥쳐.”
놈이 깐죽거리는 것을 보니 속에서 뭉쳐있던 분노가 끓어오른다. 이대로 돈을 퍼주고 나면 그 분노가 더 커질 것이다. 지금까지 놈에게 나름 잘했건만, 놈은 늘 내 뒤통수를 갈긴다. 엿을 먹이고 싶다. 아주 빅엿을 말이다.
어떻게 하면 엿을 먹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반드시 뭔가를 떠올려야만 한다.
“합의금 100억은 줘야 할 거야. 그보다 적으면 소용없어. 아, 물론 저 새끼 합의금은 선물이고.”
가 기자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쥐는 노랑머리. 하지만 그는 참고 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그때,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이 있었다. 방법이 있다!
그러자 좀 전까지 화로 차있던 머릿속이 시원하게 비워졌다. 그 상황은 표정으로도 드러나고 있었다. 내 여유로운 표정을 본 가 기자는 의아했지만, 크게 괘념치 않았다. 놈은 이 싸움에서 이미 승자라고 여기는 중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돈다발을 꺼내서 노랑머리의 손에 쥐어줬다. 돈을 받아 든 노랑머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합의금이야. 놈에게 전하고 각서를 받아.”
“네.”
노랑머리가 돈을 들고 가 기자에게 다가가자, 가 기자가 두 손을 저었다.
“아니, 걔는 보너스라니까?”
“됐어. 합의금 안 줘. 폭행 합의금만 받아.”
“뭐? 그래? 그럼 나야 좋지. 내일 넌 유명인사가 될 거야.”
가 기자가 돈을 받아들고 재수 없게 웃었다. 놈의 입을 귀까지 찢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를 웃지 못하게 해 줄 것이다.
“고마워. 꼭 그렇게 해줘.”
“고마울 것까지야?”
가 기자가 돈다발을 쥐고 흔들어대며 답했다.
지금 상황을 보며 혼란스러운 노랑머리가 내 옷을 붙잡았다. 아무것도 모르니 답답할 테지.
“그냥 가려구요? 합의 안 해요?”
“어, 그냥 가자.”
“어쩌려고요?”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나갔다.
뒤따라 나오는 노랑머리만 애가타서 씩씩대고 있었다.
“뭘 어쩌려고 그러냐구요? 방법이 있어요?”
“방법이 있어. 놈이 뒷목잡고 쓰러질 방법이.”
놈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겨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당한 걸 잊을 정도로 시원하게!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