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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126화 (126/200)

126화. 은퇴 기자회견

“그놈이야? 통화를 좀 더 길게 하라구.”

강철수가 주변 형사들을 불러 모았고, 나는 최대한 침착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비디오를 언급하는 놈에게 좋은 말을 해줄 수 없었다.

“개자식아!”

뚝.

전화는 그냥 끊겨버렸다.

“야, 좀 더 끌었어야 위치를 추적하지!”

강철수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벽을 쳤다.

퍽.

주먹이 찡하게 아파져 왔지만, 분노를 잊을 정도는 아니었다.

강철수가 다가와서 내 어깨를 감싸주었다.

“흥분해봤자 얻는 건 없어. 놈이 찍힌 CCTV를 봐서는 신원 파악이 좀 힘들 것 같긴 한데 어쩌냐?”

“놈은 전부터 우리 설아 씨를 따라다니며 스토커 짓을 했어요.”

“그래? 설아 씨 스케줄을 전부 쫓아다녔어?” “네, 거의…….”

나는 놈이 설아 씨의 스케줄을 쫓아다녔다는 것에 힌트를 얻었다. 스케줄에는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 있지만, 연락처나 신원 파악을 해야 올 수 있는 스케줄이 있기 때문이었다. 놈이 매번 찾아왔다면, 분명 연락처를 적어두었을 것이다. 그 연락처가 여러 번 겹쳐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놈일 확률이 높다.

“일단 내가 잡아 오면 구속해 줄 겁니까?”

“그래, 주거침입으로 일단 넣어두고, 뭐든 접목시켜 보자구.”

“오케이, 금방 잡아 올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서둘러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지금 설아 씨 스케줄표 좀.”

“준수야, 큰일 났어!”

이사장이 다짜고짜 말했다. 다급하고, 흥분한 목소리였다.

“왜요? 왜?” “김설아 씨가 지금 은퇴 기자회견을 하러 간다고 갔어.”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 스토커가 은퇴하면 동영상을 파기하겠다고 해서.” “아니, 그런다고 무슨 은퇴를 해요!”

“나도 미치겠다고!”

“일단 저는 기자회견장으로 가볼 테니까, 사장님은 김설아 씨 스케줄 중에 참석자들 명단을 보시고 거기서 겹쳐지는 사람을 추려주세요. 그중에 놈이 있을 겁니다.”

“어, 그래. 알았어.”

설아 씨가 은퇴하게 그냥 둘 순 없다. 놈이 설아 씨를 짓밟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잡아서 벌을 받게 할 것이다!

* * * * *

기자회견장 앞, 김설아는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그래, 힘들었어. 그런 비디오를 유통하게 두는 것보다는 은퇴하는 것이 나을 거야.”

기자회견장에는 기자들이 빽빽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가 은퇴하는 것이니 당연했다.

김설아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다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대로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건가? 하는 생각에 목덜미가 뻐근해진다.

“휴우, 됐어. 시간 더 보내봤자.”

하며, 김설아가 나가려는 찰나였다.

“설아 씨!”

“…. 준수 씨!”

김설아는 나를 보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혼자서 버티기 힘들었던 것이다. 누구라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혼자 감당하지 말랬잖아요!”

“아니, 달리 무슨 방도가 있겠어요? 나라고 은퇴하고 싶겠냐구요….”

김설아는 커다란 눈에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그녀가 우니 나도 울고 싶어졌지만, 울지 않을 것이다. 지금 놈이 어디선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테니, 절대 약해져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에도 아마 와있을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놈에게 놀아날 순 없습니다. 놈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려구요? 비디오는 절대 싫어요.”

나는 침착하게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놈은 집의 장롱 안에 숨어있었다. 그런데, 내가 갔을 때 장롱이 전부 닫혀 있었다. 그렇다면 놈은 제대로 된 영상을 찍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장롱과 우리의 거리가 꽤 있다. 놈이 아무리 카메라를 굴려댔어도 영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거다.

“놈이 있던 곳과 우리가 있던 곳의 거리가 꽤나 길었던 건 알죠?”

“네, 그랬죠.”

“거기다 놈이 있던 장롱은 닫혀 있었고요.”

“그랬죠…… 아!”

“네, 놈은 제대로 된 영상이 없습니다. 기자들에게 영상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마세요.”

기자들에게 영상에 관하여 이야기하면, 괜히 기삿거리만 주는 격이다. 이런 영상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없던 영상까지 만들어서 유통할 것이다. 저들의 먹잇감이 될 필요는 없다. “네, 그래야겠어요. 근데, 그러면 은퇴는 취소하는 건가요?”

“아뇨, 은퇴는 한다고 하긴 해야 할 거예요.”

“아.”

“은퇴하는 이유가 누군가의 협박 때문이라고 하면 됩니다. 비디오는 제대로 된 게 없을 테니, 놈만 위태로워지는 거죠. 은퇴하고 싶지 않으니 도와달라고 하세요.”

“그럼 제가 은퇴하는 것이 어떤 인간 때문이니, 잡아달라고 호소하면 되겠군요.”

“네, 그렇게 하는 거죠. 놈이 원하는 대로 해주시면 안 됩니다. 놈은 이제 주거침입죄와 협박죄까지 더해서 징역살이를 꽤 하게 될 거예요.”

“근데, 놈이 누구인지를 모르니까…….”

원래 노랑머리의 결혼식 때 그놈이 등판하여 난리를 치는데, 지금은 과거를 바꾼 상태니, 놈의 정체를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놈의 모습을 대충 본 기억이 있다. 노랑머리의 회귀로 모든 게 바뀌었지만, 내 기억만큼은 남아 있으니까.

“내가 알 수 있을 겁니다. 기억이 나요.”

그때, 내 휴대전화기로 전화가 왔다. 이사장이었다.

“번호가 겹치는 게 몇 개 나왔는데, 기자들이 대부분이야. 한 명이 기자가 아닌데 좀…….”

“좀 뭐요?”

“내가 데리고 있던 놈이야. 왜 너도 봤잖아? 보름 동안 일하고 그만둔 애. 김설아 매니저 하게 해주면 그만두지 않겠다고 했던 놈 말이야.”

“아! 그 미친놈?”

“지금 놈의 전화번호를 보낼 테니까 빨리 잡아.”

“네, 제가 해결할 테니까 걱정 마시고 계세요.”

“그래, 내가 십년감수했다.”

이사장은 곧 문자로 놈의 전화번호를 보내주었다. 나는 곧바로 강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놈이 지금 기자회견장에 왔을 겁니다. 빨리 와서 잡아가세요.” “오케이, 기다려!”

강철수도 이제 곧 출동할 것이고, 놈의 전화번호도 내 손에 있다.

“이제 나가셔서 내가 말한 대로 기자회견을 하세요.”

“괜찮을까요? 놈이 여기 와 있는 거예요?”

“놈이 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최대한 침착하게 행동해요. 강철수 형님이 도착했을 때, 놈에게 전화를 걸어서 잡아낼 거니까요.”

“네, 준수 씨만 믿을게요.”

김설아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아무 일이 없던 사람 마냥 침착하게 일어섰다.

* * * * *

김설아가 무대로 나아가자,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정말 은퇴하시는 겁니까?],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등등 여러 말들이 쏟아지고, 김설아가 무대 가운데에 섰다.

“제가 이렇게 기자회견을 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럼 본인 의사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누가 시킨 겁니까?] 등등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김설아가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나는 뒤에서 저들 사이에 숨어있는 놈을 찾아내고 있었다. 역광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때, 경찰이 출동했다는 것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이제 전화를 걸어봐야겠네.”

나는 전화기를 꺼내서 놈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기자들 사이, 한 곳에서 놈의 전화가 울렸다. 잡았다!

나는 기자들을 제치고 놈에게 달려갔다. 놈은 내가 오는 것을 깨닫지 못하다가 뒤늦게 알고 도망쳤다.

“잡아! 잡아!”

그때, 누군가가 슬쩍 발을 내놓았다.

으악.

꽈당.

누군가가 내민 발에 걸린 놈은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 개**!”

나는 얼른 달려가서 놈의 몸 위로 몸을 날렸다.

으아악.

퍽.

놈의 몸을 타고 올라간 나는 주먹을 날렸다.

파박. 파바박.

기자들이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나는 놈을 꽉 붙잡고 기자들에게 소리쳤다.

“이놈이 협박범입니다! 이놈 때문에 우리 설아 씨가 고통 받았다구요.”

놈의 모습은 생중계로 전국에 방송되고 있었다. 쌤통이다.

놈은 내 말에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다.

“내게 뭐가 있…….”

나는 얼른 양말을 벗어서 놈의 입에 처넣었다.

“닥치고 있어라.”

그때, 강철수의 부하들이 기자회견장으로 들이닥쳤다.

두두두두.

경찰들이 놈을 붙잡고 끌고 가고,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저 사람이 뭘 갖고 협박한 겁니까?]. [저 사람은 왜 김설아 씨를 협박한 겁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나는 더 대꾸할 힘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힘이 빠져서 나중에 알려드리죠.”

나는 기자들을 뒤로하고 김설아를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김설아는 은퇴를 하는 것이 운명인가? 내가 억지로 운명을 바꾼 건가? 설마 후유증은 없겠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지만, 일단 쉬어야겠다.

* * * * *

김설아의 은퇴 기자회견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협박한 사람이 은퇴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해서, 목숨이 위험해서 그런 것으로 다들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김설아의 일이 마무리되고, 모처럼 집에서 쉬는 날이었다.

“아으, 늦잠을 잔 것도 오랜만이네.”

재준이 회귀를 하게 된 그 시점을 넘어간 뒤부터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재준보다 한 템포씩 빨리해야 했기에 엄청나게 힘든 시간이었다. 재준은 내 템포가 이상하게 빨라졌다는 것을 깨닫긴 했지만, 그가 회귀한 목적은 이미 달성했고, 게다가 업계 1위까지 탈환하였기에 내 행동을 의식하지 않았다. 덕분에 재준의 회사 턱밑까지 쫓아갈 수 있었다.

“일어났네?”

준희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좀처럼 내 방에 들어오지 않는 애가 왜 들어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뭔 고민 있냐?”

“히히, 오빠는 눈치가 정말 빨라.”

준희는 실실 웃으며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준희가 실실 웃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 기분이 매우 좋은 것 같았다.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 “응, 나 연애 시작했어.” “설마?”

“응, 오재훈 선배님이랑.”

“야, 너 나이차 괜찮겠어?”

오재훈과 준희는 자그마치 12살 차이가 난다.

“내가 정말 좋아해서 만나는 거야. 나이가 뭔 상관이야.”

준희는 섭섭한 듯 말했다. 하긴 준희가 영부인만 된다면야 나이 차이가 뭔 상관이 있으랴. 하지만 오재훈은 지금 끈이 떨어진 상태다. 영부인은커녕 동네 변호사로 하락할 가능성이 많은 그에게 너무 아깝다.

“다른 사람은 눈에 안 들어오냐?” “어, 다른 사람은 내게 없어. 그분 아니면 아무 의미도 없어.”

“그래, 알겠어. 어머니나 아버지를 잘 설득해봐.”

“응, 문제없어.”

준희는 그러는 와중에도 연신 싱글벙글하였다. 나이가 나보다도 많은 놈이 뭐 그리 좋은지, 하지만 준희가 웃는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좋다.

“그래, 네가 좋으면 됐지.”

준희가 좋으면 그걸로 됐다. 하지만, 기왕이면 준희가 영부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가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그 사람을 만나봐야겠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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