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오재훈을 오재훈스럽게 하려면(1)
오재훈을 정치인으로 다시 만들려면, 우선 사수가 필요하다. 오재훈을 이끌어줄 정치적 사수 말이다. 하지만 나는 정치인을 알지 못한다. 누구를 소개할지 전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눈앞에 가 기자가 나타났다.
“여, 잘 지냈나?”
가 기자는 특유의 재수 없는 표정을 정성스럽게 지어 보였다.
앞서, 그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던 나는, 그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김설아와의 스캔들 기사로 내 뒤통수를 치려했던 그를 생각하니 화가 났지만, 지금은 화를 내고 싶지 않다. 그러자 그가 내 팔을 잡았다.
“삐진 거 오래가네? 내가 발 걸어줘서 빨리 잡았잖아.”
김설아 씨 은퇴 기자 회견에서, 범인에게 발을 건 사람이 바로 가 기자인 것이다. 그는 내게 다시 수작을 걸 요량으로 발을 걸었던 거다.
“그럼 그때?” “그러엄, 내가 발을 걸었지.”
“네, 땡큐요.”
나는 대충 감사하다고 하고 다시 가려고 했다. 그러자 가 기자가 다시 내 팔을 잡았다.
“미안해. 내가 사는 방식이야. 어쩌겠어? 현직 총리한테 찍힌 내가 살아남으려면 독해져야지.”
그때, 비디오 사건에 연류 되었던 그분이 현재 총리가 되었다. 그런 사람의 비디오를 유통하려고 한 가 기자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 용하다.
“지금까지 용케도 살아계시네요.”
“그래서 정면승부를 했지. 그 여배우를 직접 찾아가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어. 캬아. 실물이 정말 예뻐. 그러니 그 양반이 아직도 죽자 살자 하는 거지.”
“둘이 아직도 만납니까?” “둘이 결혼까지 할 기세던데? 아, 물론 세컨드지만 말이지. 낄낄.”
가 기자가 정성스럽게 웃어 제꼈다. 그의 치아마저도 재수 없게 느껴졌다.
“그럼 그 여자가 브로커 역할도 하겠네요?” “어. 자금 세탁도 하고, 때로는 정치인을 소개하기도 하지. 아, 물론 정치인에게 연예인을 대주는 것을 더 많이 하고.”
대준다…… 참으로 역겨운 표현이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가 기자도 역겹다.
“왜? 정치하게?”
“아뇨, 그런 거까지 할 여력이 없네요.”
“그 여자한테 사람 추천권도 있는 모양이야. 대단하지.”
가 기자는 침을 삼켜가며 말했다. 가 기자의 뇌에는 대체 무슨 생각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밥맛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거 참 좋은 정보네요. 땡큐요.”
“그냥 가는 거야? 나랑 한 잔 하자고!”
가 기자와 술을 마시면 내가 먼저 미친놈이 될 것 같다. 그와는 후에도 술 같은 건 마시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이 상책이다.
“그건 노땡큐.”
나는 간단하게 인사하고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갔다. 총리의 여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
가 기자는 내 냉담한 행동에 기분이 상했다. 그가 기분 상한다고 해도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그는 내 인생에 역린 같은 존재이다.
* * * * *
탐스러운 붉은 입술, 굵고 윤기 나는 머릿결, 깊은 속눈썹까지. 당대 최고의 여배우라 불리던 고영아는 40이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고왔다.
김설아라는 최고의 미모를 지닌 여배우가 내 여자인데도, 그녀의 미모는 눈길을 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고혹적인 미모라고 해야 하나.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고요? 왜? 김설아 남편께서 왜 나를?”
고영아는 내가 김설아의 연인이라서 한번 만나보고 싶어 했었다고 한다. “아직 결혼은 안했습니다만.”
“호호, 그렇군요. 아무튼 왜 날 보자고 하셨죠?”
그녀가 웃자 고혹미가 더욱 배가 되었다. 총리가 왜 저 여자에게 꼼짝 못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언제 골프 대접을 하고 싶습니다.”
“누굴? 나를?”
“아시면서.”
“어머? 정치도 하시게?” “저는 정치를 할 여유는 없고요. 대접할 여유는 있습니다.”
총리는 한 번만 상대하면 된다. 조만간 총리직에서 내려와야 할 일이 생기기 때문에 올해 그의 손을 한 번만 잡는다. 그 뒤로는 오재훈 그자가 헤쳐나갈 일이다.
“오, 그럼 제가 이야기를 해 볼게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추천할 친구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러시죠. 우리 오빠가 마음에 드는 분이면 좋겠네요.”
고영아는 치아를 반만 드러내며 웃었다. 평소 영부인이 되는 연습이라도 하는 듯 모든 행동이 고상했지만, 자세히 보면 로봇스러웠다. 연기를 하는 듯 말이다.
그녀는 알까? 총리님이 조만간 정치계에서 쫓겨날 것을, 아내에게도 쫓겨날 것을 말이다. 그래서 본인이 총리님을 평생 먹여 살려야 한다는 걸.
* * * * *
“아…… 인연이 이렇게 되었군요.”
오재훈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또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거기다 여자친구의 오빠라니, 생각도 못 한 듯했다.
“내가 일부러 말 안 했어. 오빠 너무 유명하잖아.”
“그래도 인마. 너무 놀란 것 같잖아.”
“아, 너무는 아닙니다. 그저 인연이 놀라운 거죠.”
오재훈이 허탈하게 웃었다.
나는 갑자기 오재훈의 손을 잡았다.
“기왕 만나기로 했으니, 잘 부탁함세.”
“부탁함세? 아…… 네.”
오재훈이 황당한 표정을 짓자, 준희가 깔깔대며 웃었다.
“아, 표정 너무 귀여워.”
“야, 저게 귀엽냐?”
“오빠만 모르는 귀여움이 있어.”
“우왝.”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식사하고 술을 마셨다. 평소 오재훈의 성격이 괜찮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와 친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후에 김설아와 가족으로 엮이는 것이 걸릴 뿐이었다.
“형님, 형님 참 멋집니다. 내가 양보하길 잘했어요.”
“뭔 소리야? 그 소린 하지 말고.” “왜? 준희도 다 알고 있어요.”
“응, 나 다 알고 있어. 그게 오빠란 것도 알고 들은 이야기고, 이 사람은 그게 내 오빠란 걸 몰라서 한 이야기지만, 하하. 둘이 워낙 잘 어울려서 참고 있는 거야, 내가.”
“으악, 너희 대체 뭐냐? 바퀴벌레 같은 커플이야!”
“응, 나 다 이해하니까. 아무 때나 언니 불러도 돼. 이 사람 언니 다 잊었거든.”
우리는 과거사까지 다 이야기할 정도로 친해졌다. 준희는 2차에서 곯아떨어졌고, 우리는 4차까지 함께 했다.
“아, 이 차장 그 새끼가 내 앞길을 막지 않았다면…….”
오재훈은 급기야 속에 있던 이야기까지 하였다. 나는 그의 말을 하나하나 다 듣기 위해서 중간 중간 술 깨는 약을 먹었다.
“그 자식이 형 앞길을 막았어? 어떻게?”
“중요한 사건들을 하나씩 빼갔어. 내가 맡았으면 하는 그런 사건들을 말이지.”
“그래서? 다 뺏기고 지금 그만둘까 한다고?”
“그러고 싶은데 준희가 한사코 말리네.”
“당연하지! 이 차장은 형 상대가 아니야! 형은 대통령이 될 거라고!”
아차차, 실수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가?
“대통령은 무슨? 난 앞길이 막혔어. 이 차장이 죽지 않는 이상 난 끝이라고.”
이 차장이 오재훈의 인생을 전부 빼앗은 것이다. 왜 하필이면 오재훈인가? 다른 사람도 있을 텐데.
“형 골프 칠 줄 알지?” “그럼, 같이 칠까?”
“조만간 총리님을 만날 거야. 그 자리에서 실력을 좀 보여주라고.” “오, 정말이야? 술이 확 깨네.”
오재훈이 모처럼 웃었다. 술을 먹는 내내 신세 한탄을 했던 터라 그의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나 때문에 그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셈이다. 다시 그의 인생을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재훈을 오재훈스럽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 * * * *
총리를 만난 오재훈은 자신의 포부를 알리는 데 힘썼다.
나는 총리에게 오재훈을 부탁하며 앞으로 정치에 힘쓸 수 있게 도움을 드릴 거라고 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돈이 좀 아깝긴 하지만, 한 번 정도 그에게 주고, 나머지는 모른 척할 것이다. 그의 정치 생명이 조만간 끝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게 막강한 파워가 있다. 오재훈을 정치계에서 주목하도록 만드는 힘 말이다. 그 일 이후, 오재훈이 실제로 총리와 사적으로 친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총리가 직접 낸 소문이었다. 덕분에 오재훈은 굵직한 사건을 맡게 되었고, 그 길로 승진까지 하게 된다. 돈의 힘은 참으로 무섭다. 검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던 사람을 승진하게 만드는 힘.
하지만 이 차장이 그 일로 나를 경계하게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오재훈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면, 이 차장을 밀어내야 한다.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양극의 관계이다.
내가 오재훈의 손을 잡기로 한 이상, 이 차장과는 선을 그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함부로 할 수 없는 사이이다. 내가 2021년에서 회귀한 것을 그도 알고 있다. 그가 회귀의 반지를 가진 것을 나 또한 알고 있다. 둘 다 미래를 손에 쥔 것이다. 서로 적이 된다면, 좋을 게 없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말이다.
* * * * *
“그런 일이 있었군요?”
김설아는 내 이야기를 듣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앞서 스토커 사건을 겪으면서 김설아는 성장했다. 좀 더 강한 사람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괜찮겠어요? 나도 생각지 못한 일이라서.”
“그 사람이랑 나랑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저 내가 자신의 이상형일 뿐이죠. 그것도 과거에.”
김설아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실제로 김설아는 그를 크게 마음에 둔 적이 없었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나만 그와 김설아 사이에서 삼각관계였다.
나는 내 생각이 웃겨서 혼자 피식 웃었다.
“역시, 설아 씨는 최고예요.”
“어머? 고맙네요. 호호.”
그녀와 같이 잠시 웃던 나는, 잠시 우울감에 빠졌다. 얼마 전에 이 차장에게 전화가 왔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 차장은 자신이 준희와 오재훈을 연결해 주었다면서, 그에게 잘해주라고 했다. 그 통화 마지막에 ‘오재훈은 훌륭한 변호사가 될 테니, 변호사 사무실을 꼭 차려주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 말이 그가 전화한 목적이었다. 변호사로 만들어주고 정치계에 입문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그 생각을 하니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우.
“왜요? 무슨 일 있나요?”
김설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오재훈에게 계속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이 차장과의 관계 때문에 쉽지 않아요. 이 차장은 지금 실세라서 함부로 적이 될 수 없거든요.”
“아, 그분 알아요. 지금 그분이 상승세잖아요.”
“네, 그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오재훈을 지원 사격할 방법이 없을까요?” “그걸 직접 지원해야 하나요? 다른 사람을 거치면 될 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에게 오재훈을 지원하게 한다는 말이죠?” “네, 될성부른 정치인을 알아보는 것은 기업가의 숙제니까요. 다른 기업가에게 지원하게 만들면 되죠.”
“맞아요! 좋은 방법이네요.”
“누구 있어요? 그를 지원해줄 만한 사람요.”
“있죠. 아! 원래 그를 지원해주는 운명을 지녔던 사람이 있어요.”
“운명? 그거 재밌네요.”
애초에 오재훈을 지원 사격하여, 그를 정치계에 입문시키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