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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135화 (135/200)

135화. 조셉을 구하라(2)

“우리나라는 9월 11일인데, 거긴 10일이잖아요. 몰랐어요? 바보 아냐?”

은서가 깔깔대며 웃었다. 하긴 온갖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했는데, 시차를 모른다니 우습겠지.

“에이 씨, 그걸 왜 이제 말해!”

나는 괜히 은서에게 화를 냈다.

“그걸 이제 안 박 쌤이 비정상이라고오! 미국 가는 동안 그런 생각도 못했어?”

“아니 잠이 잘 오더라고, 비즈니스 클래스 좋네.”

미국에 가는 내내 아주 편안하게 잠을 푹 잤다. 자고 일어났으니 하루 지났다고 생각한 거고.

이래저래 부끄러운 짓을 했다. 일정이 틀어질 수밖에 없겠다.

“에이 씨, 하루 더 있다가 가야겠네.”

“뭐어? 내일 예약은 어쩌려고요?”

“니가 잘 하잖아. 네 선에서 해야지 뭐.”

은서도 내 옆에서 기술을 많이 습득해서 이제 웬만한 미용사를 능가하게 되었다.

“박 쌤 손님이 얼마나 까탈스러운데? 으, 나 죽었다.”

“잘 부탁한다. 네가 있어서 여기 올 수 있던 거야.”

“아이고 닭살이야. 나 피곤하니 그만 끊읍시다. 여기 한밤중인거 몰라요?”

“어, 그래 알았어. 나중에 보자.”

그렇게 하루를 더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게 그토록 귀하게 쓰여 질 줄은 몰랐다.

* * * * *

“헤이! 여기야.”

조셉이 내 숙소 앞에서 차를 대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받았던 은혜를 갚는다며 열심이었다.

“여기까지 올 것 없는데.”

“미국말도 잘 못하잖아. 가다 길 잃어버린다고.” “쳇, 고맙다.”

조셉은 세계무역센터에서 제법 많이 떨어진 곳으로 차를 몰았다.

“여기야. 여기 스테이크가 베리 굿이야.”

조셉이 안내한 곳은 제법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사람도 많고 전망도 좋았다.

“어, 그렇구만. 근데 사장은 안 왔어?”

“사장은 형네 사업에 관심이 없다는데? 나보고 놀아주다가 오라고 했어.”

“엥? 아 그거 참 곤란한데. 왜 관심이 없다는데?”

사장이 관심을 가져야 내일 또 조셉을 부를 수 있다. 사장이 조셉을 회사로 부르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정식으로 브리핑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말만 전하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데?”

“아…….”

사실 정말 사업을 진행하는 거면 진작에 사람을 데리고 와서 브리핑을 했겠지만, 지금은 조셉 한 명을 살리려고 온 것이기에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일 또 조셉을 만나야 한다. 그러려면 브리핑을 지금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그냥 나랑 실컷 놀다 가자. 내가 다 사줄 수 있어.”

조셉이 카드를 보여주며 배시시 웃었다.

나는 조셉의 카드를 다시 조셉의 품에 넣고 일어섰다.

“가자.”

“왓?”

“너희 회사에 브리핑 하러.”

“진짜? 리얼리?” “그래, 정식으로 브리핑을 하고 싶어. 지금 당장 말이야.” “오우, 우리 사장 바쁜데 안 한다고 하면 어쩌려고?”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좀 그렇지만, 다른 방도가 없다.

조셉은 황당하지만, 내게 워낙 호의적이라 반발 없이 들어주었다. 고맙게도.

“니가 좀 해줘야지. 내 소원인데?”

“왓 더? 나 힘이 없어. 나는 그냥 직원일 뿐이라고!”

“그래도 좀 노오력을 해봐. 내가 진심으로 부탁할게.”

“오케이, 알았어요. 내가 설득 해볼게.”

조셉이 나가려는데, 내가 조셉을 잡았다.

조셉이 왜?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하라는 대로 한다는데 뭐가 문제냐? 하는 듯 했다.

“근데 자료가 없네?” “왓?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브리핑 자료가 없다고. 당장 팩스로 받아봐야 할 것 같은데 좀 도와주겠어?”

사실 이 곳에 온 것은 사업이 아닌 조셉을 구하기 위함이니, 브리핑 자료가 있을 턱이 없다. 조셉은 내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아니, 여기 대체 왜 온 거야? 나 보러? 사업차 온 거라면서 자료도 안 가져와? 아유 크레이지?” “하하, 아임 낫 크레이지.”

“왓 더…… 알겠어. 오케이. 서울에는 자료가 있겠지? 그걸 받아서 여기서 틀기만 하면 되겠지?” “음, 아마도?” “휴, 그럼 서울에 빨리 전화해 봐. 나는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볼게.”

“응, 알았어.”

조셉은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셉은 사장과 장장 한 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대충 듣기로는 사정사정 하는 것 같았다.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목숨이 걸린 일에 자존심 따위는 잠시 미뤄두어도 된다.

나도 서울에 전화를 걸었다. 이은미는 내가 미국에 간다는 말을 듣고 미리 자료를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그걸 조셉의 이메일로 받았다. 아무 준비도 하고 오지 않았지만, 꽤 괜찮은 브리핑 준비가 완료 되었다. 모두 조셉과 이은미 덕이다.

“휴, 사장이 한 시간만 시간을 내어보겠다고 했어. 정말 잘 할 수 있는 거지?”

“그래, 니가 통역만 잘 해주면 될 거야.” “오케이, 그건 걱정 말고.”

그렇게 조셉과 나는 사장실로 향했다.

* * * * *

이은미는 정말 완벽하게 브리핑 준비를 해 주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직원들을 달달 볶아서 완벽하게 브리핑 자료를 만들었는데, 내가 혼자 달랑 가버리자 황당했다고 한다.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이은미가 준비 한 일이 완벽하게 허사가 될 뻔하였다.

“딱 한 시간만 듣고 가겠습니다. 듣다가 가치가 없다고 여기면 중도에 그냥 갈 수도 있으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사장은 냉정한 표정으로 말을 하였다. 조셉이 통역하다가 무안해 할 정도였다. 나는 너무 과하지 않게 브리핑에 임했다. 사실 평소 같으면 조금 떨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그저 시간 때우는 개념으로 임했기 때문에 떨지도 않았다. 나중에 안 이야긴데, 사장이 그 점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저희 탈모 샴푸는 임상 실험에서 꽤 좋은 성과를 얻었습니다. 100퍼센트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재구매율도 업계 1위를 달성했습니다.”

“알아본 바로는 다른 제품이 1위를 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재준이 실리콘 범벅 샴푸를 출시하고 그게 아주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 상태이다. 반박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저희 제품과 같은 선상에서 두고 보면 안 됩니다. 그 제품은 머릿결에 초점을 맞춘 거고, 저희 제품은 머릿속, 즉 두피에 초점을 맞춘 것 입니다. 즉 타깃이 다르다는 이야기죠.”

“재구매율 1위라는 것도 두피 샴푸에 한한 것이고요?” “네, 물론 그렇긴 하지만, 현 시점은 탈모에 관한 관심이 적은 시점입니다. 향후 고객이 늘어날 수 있다는 반증이지요.”

미국의 상황이 어떤지는 정확하게 몰라도 대한민국보다 탈모에 관심이 더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나는 자신감을 찾고서 다음 이야기를 이어서 하였다.

“그것에 비해 머릿결에 초점을 맞춘 샴푸는 재구매율이 점점 줄어들 겁니다. 그 무렵이면 비슷하고 저렴한 제품이 많이 출시 될 것이기 때문이죠. 저희는 저희 같은 제품을 또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연구비도 상당히 들기 때문에 저희를 따라잡는 일도 꽤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저희가 당분간 탈모 샴푸 분야를 독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탈모 샴푸는 연구와 실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한 제품을 만들고 상용화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우리 제품이 유통되어 고객에게 각인될 시간이 충분한 것이다.

“그건 그렇겠네요. 왠지 신뢰가 가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 동안 쌓아 온 실험 과정을 이렇게 준비 해 왔습니다.”

“오, 좀 봅시다.”

나는 조셉의 도움을 받아서 가져 온 자료를 사장에게 보여주었다. 사장은 초반 시큰둥한 반응에서 점점 좋은 반응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이미 실험으로 입증해 보였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모발의 변화가 눈에 보이자 사장은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일단 사장의 관심을 받기만 하면 된다. 내일 911 테러가 일어나는 시각에 저들을 불러내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사장이 내 손을 덥썩 잡았다.

“계약 합시다. 우리 회사랑 거래를 합시다.”

“네? 벌써요?”

큰일이다. 계약을 바라고 온 것이 아닌데, 갑자기 계약을 하자고 하자 황당했다. 거기다 이들의 회사는 내일 폭삭 무너질 것인데, 어쩌면 망할지도 모르는 사람과 계약하자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걸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 일단 내일로 미루자. 사장과 조셉은 일단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걸로 다행이다.

“내일 그 레스토랑에서 만나주시겠습니까? 사실 아까 갔는데 먹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브리핑 준비를 해야 했거든요.”

“오 그렇습니까? 그럼 내일은 제가 사겠습니다.”

사장이 기분 좋게 말했다.

일단 내일이 되어야 하겠다.

* * * * *

대망의 9월 11일이 되었다. 언제 그 요망한 비행기가 다가올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용기를 내서 빌딩에 들어갔다. 내가 빌딩에 들어간 이유는 하나였다. 데니스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어제의 일 때문이었다. 조셉의 숙소에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웬 미국인이 초인종을 눌렀다. 조셉의 직장 동료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내게 음식을 대접해 주었다. 아주 극진한 대접이었다. 그의 이름은 데니스, 딸만 셋을 둔 가장이라고 했다. 그에게 신세를 졌기 때문에 그를 구하고 싶었다. 거기다 사랑스러운 딸을 두고 그가 죽는 것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그처럼 좋은 가장을 잃는 아이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나는 조셉에게 데니스를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직접 하고 싶다고 했고, 그가 내게 친히 한글로 영어를 적어주었다. 나는 조셉이 적어 준 쪽지를 품에 고이 안고서 빌딩으로 향했다.

빌딩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전부 이슬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온 몸에서 기가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때, 내 눈에 화재경보기가 보였다. 저것을 누른다면 사람들이 건물을 빠져나갈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일단 데니스를 만나고 나서 저걸 눌러야겠다.

“헤이, 여긴 왜 왔어?”

데니스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정말 좋은 사람이다. 나는 가져 온 종이를 꺼내서 또박또박 읽었다. 데니스는 내 발음에 피식피식 웃었지만 끝까지 경청해 주었다. 내 말을 듣건 데니스가 되물었다.

“리얼리?”

“예스! 플리즈! 플리즈!”

나는 연신 플리즈를 외쳤다. 그러자 데니스 주변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영어로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안 이야긴데 내가 데니스에게 ‘당신들’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곳에 있는 모든 직원들의 브런치를 사주겠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내 호의를 무르려고 했지만, 내가 플리즈를 계속 외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왔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사무실 사람 90퍼센트를 데리고 건물을 나왔다.

저들이 내게 엄지를 치켜세우고 건물을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얼른 가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건물 내에 있는 화재경보기를 눌러버렸다.

삐용삐용!

경보기가 울리고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웬 덩치 큰 외국인들이 나를 붙잡았다. 경비원들이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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