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가 기자를 잡아라(1)
김설아가 준희를 쫓아갔다. 준희는 화장실에서 연신 구토를 해댔다. 김설아가 등을 두드려주며 물었다. 드라마 속 전개가 그러하듯 당연히 물을 수밖에.
“혹시, 임신하셨어요?”
“네?”
준희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당황하였다. 21살의 어린 나이에 임신이라니,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러니 의심하는 게 맞다.
“설마요?” “혹시 모르니까 테스트를 해보는 게 좋겠어요.”
준희는 원래 회귀하기 전에도 그 무렵 임신을 했었다. 그때는 준희를 구타하던 그 썩을 놈의 아이를 가졌었다. 아버지는 다리를 저는 준희가 시집도 못 갈 줄 알았는데 잘 되었다고 했다. 잔인하게도.
준희는 어쩔 수 없이 놈과 결혼을 했고, 오랜 기간 구타를 감내해야 했다. 그래서 결국은 아이도 잘못되고, 그 때문에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된다. 그게 준희의 원래 인생이었다. 만약 임신을 했다면, 아기를 꼭 살려야 한다. 아이가 잘못되면 준희는 또 평생 임신을 할 수 없을 테니까. 나는 임신 여부가 너무 궁금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좀만 기다려, 금방 시약을 사올 테니까.”
나는 준희가 원래 인생을 조금씩 따라가고 있다는 판단을 하였다. 그래서 얼른 가서 임신 진단시약을 사온 것이다. 그때 약사가 나를 알아 본 것이 문제가 되었지만, 그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결과는 임신이었다. 남의 상견례에서 이게 뭔 짓인가 싶었지만, 상대 남자가 그 썩을 놈이 아닌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것 참 황당할 노릇입니다. 죄송해서 어쩝니까?”
아버지는 김설아의 부모님에게 미안한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준희를 다그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나는 아버지가 회귀 전 준희를 그 미친놈에게 버리듯 시집보냈던 기억을 떠올리며 화가 났다.
“죄송하긴 하지만, 그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준희 입장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오재훈 그 사람이라면 아버님도 찬성하지 않습니까?”
“야, 그래도 김설아 씨 부모님이 당황한 것이 안보이니?”
“그 점은 정말 사과드립니다. 정말 죄송해요.”
내가 두 분께 고개를 숙이자, 준희도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죄송해요. 제가 일을 망쳤네요.”
그러자 김설아의 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었다. 설아의 어머니도 크게 마음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너무 좋은 어른들 같았다.
“오재훈이면 검사 오재훈 말씀이시죠? 허허 그 사람 저도 좋게 봤습니다. 그분이라면 따님을 맡겨도 될 것 같네요. 오재훈 씨 나이가 저희보다 많으니 우리가 1년 양보하죠.”
“오재훈 저도 참 좋아하는 분이에요. 좋은 사위를 보셨네요.”
두 분이 축복 어린 말씀을 해주자, 다들 이 사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김설아의 부모님은 정말 좋은 분이다. 그러니 김설아 같은 딸을 낳았을 테지.
“허허, 그렇게 봐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거 참 우리 상견례에서 다른 결혼을 축하해주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우리 준희가 정말 잘 살려나 봐요. 어른들이 다 축복해주니까요.”
준희는 정말 잘 살아야 한다. 그게 내가 회귀한 이유 중 하나였으니까. 덕분에 우리 결혼은 좀 더 미뤄졌지만, 준희의 영부인 코스는 더 빨라질 것이다.
* * * * *
“뭐야? 김설아 임신했어?”
사람들이 김설아가 임신을 했다고 떠들어댔다. 단 하루 만에 터진 기사였다. 약국에서 나를 알아 본 사람이 임신테스트기를 사가는 것을 제보한 모양이었다.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이번엔 가 기자가 아니다. 가 기자는 지금 내 눈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여, 벌써 임신을 하고 그래? 급하기도 하지.”
가 기자는 썩은 미소를 정성스럽게 지어보이며 말했다. 지금까지도 그의 미소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김설아가 아닙니다. 제 동생이에요.”
“워, 미스코리아? 거 참 인생 급하게 사네?”
가 기자가 비아냥거리자 화가 난 내가 그를 몰아붙였다.
“비아냥거리지 마시죠?”
“워워, 흥분하지 말고 자세히 이야기를 해봐. 내가 잘 써서 내보내 줄 테니.”
“오재훈 검사라고 아시죠? 그 사람이랑 준희랑 사귑니다. 아이는 그 사람 아이구요.”
“워, 동생이 미스코리아에 이어 정치인의 아내가 되겠네? 오재훈이 정치 쪽에 줄을 대고 있는 거 알고 그런 건가?”
그걸 내가 만들어 준거다 이 사람아.
“그게 무슨 말이죠? 그래서 어쩌란 거죠? 우리가 무슨 공작이라도 한 겁니까?”
공작을 한 셈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비밀이니 시치미를 떼면 된다.
“워워, 진정하고. 그래서 둘이 언제 결혼 하는 거지?”
“조만간 식을 올려야죠. 그쪽 부모님과는 내일 만나기로 했습니다.”
임신을 했으니 최대한 빨리 결혼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다.
“뭔가 대단한 패밀리가 되는 느낌이야? 아버지 사업도 잘 되고, 자네 사업도 잘 되고, 동생도 시집을 잘 가네? 내가 알던 그 미용사 나부랭이가 거물이 되고 있어?” “닥치시죠. 그렇게 비아냥거리지 않고는 말이 안 나옵니까?” “응, 내가 사는 방식이야. 이렇게 살다 그냥 죽을 거야.”
“쳇, 그러시던지요. 아무튼 쓸데없는 사족은 접어두고, 준희와 오재훈이 사법고시 연수원에서 사수 사이로 만나서 연인이 되었다. 그렇게 간략하게 기사 작성해 주세요.”
“그건 내 마음이지. 그 내용은 꼭 넣어줄 테니 걱정 마시고.”
가 기자는 콧노래를 부르며 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가 기자가 발행한 주간지가 전국에 뿌려졌다.
그 타이틀에는 (오재훈, 짝사랑했던 김설아와 결국 친인척이 되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신문을 받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가 기자에게 찾아갔다. 가 기자는 기다렸다는 듯 나왔다.
나는 가 기자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이 개*식아! 기사 타이틀 이게 뭐야? 정말 죽고 싶어?”
“워워, 신문은 말이야. 타이틀이 가장 중요하거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하려면 어쩔 수 없어.”
나는 가 기자의 몸뚱이를 들어서 흔들고는 그를 내동댕이쳤다. 구석에 널브러진 가 기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털고 일어났다.
“오늘 팔린 부수값 치고는 싼 값이군.”
“너 내가 후회하게 해줄 거야. 알아?”
“응, 그렇게 해줘. 기대하고 있을게.”
놈을 패주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나섰다.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리라고 마음먹고서.
* * * * *
“개*식을 어떻게 혼내주지?”
내가 혼자 씩씩대고 있는 것을 본 김설아가 다가왔다. 그녀도 분명 기사를 봤을 것이다.
“그 가 기자를 혼내주고 싶은 거죠?”
“네. 그놈을 혼내줘서 기자 짓을 못하게 해주고 싶어요.” “나도 이번 기사는 아주 기분 나빴어요.”
우리 둘이 그러고 있는데 준희와 오재훈이 찾아왔다. 내가 불렀다.
“안녕하세요, 형님.”
“네, 안녕하세요.”
“언니, 약들 챙겨줘서 고마워요.”
김설아가 준희에게 임신 중 먹어야 할 약들을 챙겨준 모양이었다. 김설아는 여러모로 정말 좋은 배우자이다.
오재훈과 김설아가 몇 년 만에 만났다. 어색한 사이인 것은 맞지만 앞으로도 쭉 만나야 할 사이니까, 자연스럽게 지내야 했기에 내가 불렀다.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는 여럿이서 고민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오빠, 그 미친놈 저번부터 오빠 괴롭히던 그놈이지?”
“응, 정말 구제불능인 놈이야.”
“저도 웬만하면 이해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용서하기 힘들 것 같아요.”
그 착한 김설아도 이번 일은 화가 난 듯 했다.
그러자 오재훈이 주먹을 쥐며 말했다. 이번 일로 가장 화가 난 것이 오재훈이다.
“어떻게든 놈을 재기불능상태로 만들어 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습니까?”
“우선 그놈이 그동안 발행한 기사들을 살펴봐야 해. 기자는 기사로 심판 받아야지.”
“맞아요. 기사로 만행을 저질렀으니 그 사람이 저지른 짓을 모두 살펴보고 그중 가장 입맛에 맞는 것을 발췌해야 해요.”
“최근 기사들도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이 있긴 한데, 이게 딱 잡아넣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법적인 것도 한계가 있는 거니까요.” “이니셜 넣어서 한 기사라고 해도 충분히 문제 될 만한 것이 많아. 여기 이 기사를 보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는 거니까.”
가 기자는 여러 연예인들을 돌려 까고 또 깠다. 그가 건드리지 않은 연예인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모든 연예인들의 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자도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있고, 그 수준의 정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 기사나 다 문제 삼으면 나중에 연예인 활동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을 거구요. 저도 정치 활동하는 것에 문제가 있을 겁니다. 신중하게 접근해서 심장을 찔러야 해요.”
“그래, 신중하게 접근해서 심장을 도려낼만한 기사를 찾아봐야겠어요.”
“그래서 여기 그간의 모든 기사들을 가져왔어요. 사회 초년생은 발로 일하잖아요.”
준희가 가 기자의 신문을 모두 가져왔다. 우리는 4명이서 나눠서 신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 기자가 실수한 부분을 정확하게 찾아내기 위해 몇 시간을 뚫어져라 신문을 보았다.
“문제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 애매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기사가 많아.”
“네, 정말 이상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썼어요. 알고 쓴 것 같은데?”
가 기자는 앞서 큰 신문사에 있었다. 그 곳에는 법률 팀도 있어서 디테일한 보정을 해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런 문제에 걸리지 않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놈이 워낙 얍삽한 놈이라서 이런 문제에 대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놨을 거야. 아주 얍삽해.”
“그럼 무슨 수로 놈을 잡아넣지? 딱히 문제 될 만한 것이 없는데? 설사 있다고 해도 크게 데미지를 주지 못할 것 같은데?”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놈의 기사에 조금씩 문제 될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큰 사건으로 진행되지 않고 작은 소송으로 끝날 것이 많다. 정말 뱀 같은 머리를 지닌 놈이었다.
“아주 머리가 좋은 놈이네. 이런 부분은 배우고 싶을 정도에요.”
오재훈은 가 기자의 비상한 머리를 칭찬하고 있었다. 그만큼 남보다 뛰어난 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그 사단을 겪고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이겠지.
“법을 너무 많이 알아서 지나치는 부분이 있지 않나?”
김설아가 말했다. 그녀의 말이 왠지 맞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긴 해. 뭔가 구멍이 있을 거야 놈도 피해가지 못할 그런 구멍이.”
오재훈과 준희는 법적인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못 보는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기사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눈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꼭 살아있는 사람만 소송을 걸 수 있나?”
“네?”
김설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재훈과 준희는 내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렇지!” “맞아!”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