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한류 드라마의 헤어(1)
겨울연정은 가을 여행만큼 대히트를 치는 드라마로, 특히 그 드라마 속 바람머리가 대히트를 친다. 남녀 주인공은 일본에서 사마와 희메로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다. 그런 드라마의 헤어를 맡으면 대박이 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거 괜찮을까요? 가을 여행 따라하는 느낌이라서 저는 별로인데.”
류사희는 사실 가을 여행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그 드라마가 히트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니 망설일 이유도 없다.
“저는 확실히 뜰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주인공들이 너무 이쁘고 잘생겼잖아요. 최지수는 하는 드라마마다 대박을 치는걸요.”
“아 맞네. 그 여자가 주인공이면 뜨긴 하던데.”
그 당시 최지수가 찍은 드라마는 거의 다 히트 했었다. 웃긴 생각이지만, 최지수의 뒤에도 회귀자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럼 여기 투입하는 걸로 하고, 헤어는…….”
그러자 류사희가 끼어들었다. 사실 사희 씨는 조 원장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박준수 선생님이 꼭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아까도 하실 것처럼 말씀하셨거든요.”
“아, 네네. 제가 해야죠. 아까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러자 조 원장이 기분이 상한 얼굴이었다. 사실 조 원장은 이 드라마를 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런데 류사희가 그렇게 나오자 오기가 생겼다.
“그럼 여배우는 박 원장이 하고 나는 남배우를 하면 되겠네. 배형준이라고 했지?”
“네, 배형준 맞아요.”
사실 이 드라마에서 스타일로 뜨는 사람은 배형준이다. 배형준을 맡아야 이 드라마의 타이틀 스타일을 맡는 셈이다. 메인이 되는 거다.
그러자 류사희가 슬쩍 거들고 나섰다.
“스타일 대결을 하는 건 어떨까요? 두 분이 앞서 미용 대회에서 대결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아주 볼만했다고.”
조 원장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억울한 모양이었다. 입을 삐죽거리는 것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내가 대상감이었다고. 준수 씨는 컬러라는 편법을 썼잖아.”
“네, 제가 준비를 더 한 덕이지요.”
“그래, 거기다 스승이 어마어마한 분이었지. 그런 스승에게 배웠는데 어떻게 이겨?”
“그 분은 조 원장님에게도 스승이잖아요.”
사실 홍부자는 모든 미용인에게 스승과 다름없는 분이다.
“저는 그 대단한 대결을 못 봐서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지금 우리 실력을 그쪽이 평가하겠다는 건가요?”
조 원장은 기분이 몹시 상한 듯 말했다. 사실 조 원장도 대한민국 탑급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것이 기분 나쁠 것이다.
그걸로 따지면 나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나는 사실 미용 경력이 35년쯤 되니까. 경력으로 따지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아뇨, 제가 아니고 배우가 해야죠.”
“배우가?”
“저희 메이크업도 시술 뒤 마음에 안 들면 바꾸기도 하고 하잖아요. 본 방송 들어가기 전에 여러 번 맞는 시술을 연습 한 뒤에 하고요.”
“그죠. 그건 헤어도 마찬가지에요.”
“네, 그니까 두 분이 그 드라마에 어울릴만한 스타일을 제시하시면 배우들이 정하도록 하는 거예요.”
나는 앞서 엄정희에게도 그런 식으로 스타일을 제시한 적이 있다. 지금 그런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저번 엄정희 씨 단발머리처럼 그렇게 하라는 뜻인가?” “네, 그 스타일도 박 원장님 작품이죠? 그때 머리를 누군가에게 먼저 시술해서 보여주었다고 들었어요.”
“그랬죠. 재밌는 시간이었습니다.”
“오케이 알아들었어. 드라마 내용이랑 인물의 성격 등을 보고 스타일을 정하여 컨택을 받으라는 거잖아?”
“그래요. 그래야 실수가 적을 테니까요.”
류사희는 우리가 미용 기업에 집중하는 사이, 방송계에서 알아주는 실력자가 되었다. 그녀의 조언은 아주 정확한 조언으로 우리가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었다.
“좋은 생각입니다. 기왕 대박 나는 드라마를 하게 되었는데 망칠 순 없죠.”
“맞아요. 그게 대박이 난다면 지금 우리는 미용 역사를 창조하는 셈이니까요.”
“그럼 각자 배우들 스타일을 생각해 보고 만나죠.”
“네, 저도 감독님이랑 배우들 미팅을 마련하겠습니다.”
우리는 성공적인 미팅을 마치고 헤어졌다. 그 곳에 쥐새끼 한 마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 * * * *
“겨울연정이라고 알아보고, 그 드라마 메이크업이랑 헤어를 맡을 수 있는지 알아봐. 로비를 해서라도 말이야.”
재준은 우리 쪽에 첩자를 심어놓고 있었다. 그레이스가 죽고 난 뒤, 재준의 입지가 작아졌기 때문에 어떻게든 우리 쪽을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취한 조치였다. 덕분에 놈은 고급 정보를 얻은 셈이다.
“그레이스가 없어서 드라마 쪽 의뢰가 안 들어옵니다. 최근 거의 전무하다시피…….”
그러자 재준이 화를 벌컥 내며 말했다. 자기가 얼마나 공을 들여서 죽였는데, 다들 그녀가 없다고 찡찡대니 화가 날만도 했다.
“닥쳐.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그만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얼마든지 있어. 니들이 찾아보지 않은 것뿐이라고!”
재준은 요즘 부척 예민해져 있었다. 그레이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선 한 시간도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자기가 만든 일이기에 그 화가 더 컸다. 일종의 화풀이를 직원에게 하는 셈이다.
직원들도 재준의 상태를 알기 때문에 더 대들지 않았다. 그들은 재준이 아내를 잃은 슬픔에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재준 쪽에서 로비가 들어가고,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미팅 준비에 한창이었다.
* * * * *
“남자 배우의 스타일은 정하셨어요?”
류사희가 내게 물었다. 그녀는 조 원장이 이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네, 세련된 남자를 표현해야 하니까. 갈색 머리에 물결 같은 웨이브를 줄 생각입니다.”
배형준의 바람머리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눈만 돌리면 그의 머리를 한 사람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여배우는요? 청순하지만 귀여운 그런 스타일인데.”
“네, 기존의 긴 생머리에서 벗어나서 좀 더 산뜻한 커트 스타일을 해 볼 생각이에요. 두 캐릭터가 처음과 다른 머리를 해야 하니까. 그런 디테일한 부분도 생각해야 하고요.”
배형준 못지않게 최지수의 스타일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 기존에는 청순가련한 여주인공들이 긴 생머리를 고집했었는데, 나중에는 짧으면서도 청순하고 귀여운 스타일을 한다. 최지수의 스타일은 배형준 스타일을 한번 거치고 나면 보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배형준3에 최지수2 정도의 인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타일을 정했으면 슬슬 샘플을 만들어야겠죠. 모델은 정하셨어요?”
“모델은 배우들과 비슷한 사람들로 포섭해야 하는데, 이 사장님께 부탁해야죠.”
“아, 그 분. 배우 지망생 중 한 분을 포섭하면 되겠네요.”
“그럼 나는? 나도 배우 지망생으로 구해줘요.”
우리 말을 엿들은 조 원장이 끼어들었다. 조 원장은 부쩍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중이다. 내가 무슨 머리를 할지 알아야 자기도 어떻게 할지 정하기가 쉬우니까.
듣자하니 조 원장은 남자 머리는 짧고, 여자 머리는 길게 가는 걸로 정했다고 했는데, 어찌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네, D미디어에 잘생기고 예쁜 친구들 많으니까 제가 알아봐 드릴게요.”
대결은 정정당당해야 하니까, 조 원장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맞다.
* * * * *
“배형준이랑 최지수랑 비슷한 애들로 두 명씩?”
이 사장은 내 말에 의아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헤어 모델을 네 명이나 구하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궁금한 것이다.
“겨울 연정이라는 드라마에 헤어로 들어가려고요. 모델에게 먼저 시술한 뒤에 배우에게 직접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러자 이 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그거 다른 데서도 헤어를 하겠다고 한다던데? 직접 의뢰를 받은 건가?”
“네, 류사희 씨에게 의뢰가 온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한 거거든요. 보통 메이크업이랑 헤어랑 같이 하니까요.”
“아, 그래. 알았어. 우리 애들 안 그래도 머리하고 싶어하는 애들 많으니까 네 명 금방 구하지 뭐.”
“감사합니다.”
“근데 너 요즘 너무 바쁜 거 아니냐? 우리 쪽에도 좀 신경써줘. 요즘 인물이 없어.”
“제가 요즘 바쁘긴 해요. 복잡한 일이 자꾸 생기네요.”
“너는 간단한 것도 복잡하게 만들더라. 그거 니 캐릭터가 그래서 그런 거야. 신세는 니가 만든 거란다.”
“네, 그런 것 같아요. 하하.”
그렇게 이 사장에게 부탁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헤어 모델이 가게에 왔다.
* * * * *
“여러분들 머리는 앞으로 유행을 하게 될 머리에요. 그니까 조금 파격적이거나 생각지 못했던 머리가 나올지라도 덤덤하게 생각을 해 주세요.”
조 원장이 나서서 모델들을 설득했다. 사실 조 원장이 해주는 머리는 그다지 파격적이지 않다. 잘생겨 보이는 머리, 예뻐 보이는 머리이긴 하지만, 각자 개성을 살려주진 못한다. 거기에 반해 내가 해주는 머리는 각자 캐릭터를 살린 스타일이다. 그래서 좀 더 파격적일 수 있겠다. 그런 설명을 조 원장이 해주니, 나는 고마울 따름이다.
“무슨 머리를 해도 지금보다는 낫겠죠.”
한 폭탄 머리를 한 여배우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다들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의 폭탄 머리보다야 당연히 예쁠 것이다.
“그럼 각자 시술을 해 보죠.”
조 원장과 나는 각자 배우들의 머리를 시술하기 시작했다. 조 원장은 짧지만 세련되고 도시적으로 보이는 머리를 했다. 여배우의 머리는 긴 생머리면서 가벼운 층 머리로 발랄해 보이는 스타일이다.
나는 원 드라마 속 모습처럼 똑같이 스타일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내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그 드라마에는 꼭 이 스타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우와, 정말 멋지다.”
조 원장이 해 준 모델이 만족감을 표시했다. 다른 미용사가 봐도 그 머리는 멋지다. 다만 드라마 속 따뜻하면서 때로는 도시적인 그런 남자의 스타일이라기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제 머리도 정말 마음에 들어요. 너무 예뻐요.”
조 원장이 해 준 여배우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지금 가장 예쁜 샤기커트에 가까운 레이어드에 밝은 머리, 전체 브릿지는 배우의 세련미를 더욱 올려주었다. 하지만 청순하지는 않다. 거기다 귀엽지도 않다. 그저 예쁜 머리였다.
그것에 반해 내가 해준 배우들은 둘 다 울상이 되어 있었다. 남자 배우는 전체 브릿지와 웨이브를 했기에, 평상시 머리보다 부자연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한마디로 평소 해보지 못한 스타일에 부담을 느낀 것이다.
거기다 여배우는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머리를 자르는데 배우가 울어서 눈물을 닦느라고 혼났다. 머리를 그렇게 자를 것 같았으면 안 왔다는 말도 연신 하였다. 그러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겨우 눈물을 멈추었다. 자기가 봐도 큐티하고 청순하니까.
그렇게 배우들 세팅을 마친 우리는 그들을 데리고 방송사로 향했다. 머리 스타일을 소화할 당사자들에게 선택을 받아야 하니까.
그런데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죄송하지만 다른 헤어숍과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