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사랑했네, 했어(3)
이 차장은 해리의 손이 반지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취기가 아무리 가득 찼다고 해도 반지를 향한 욕망을 넘진 못했다. 늘 그 손가락의 레이더는 만땅이었다.
“뭐야!”
이 차장은 해리의 손을 잡아서 꺾었다.
“아악.”
이 차장은 흥분한 나머지 해리의 목을 졸랐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걸 보고 놀랐지만 누구도 선뜻 이 차장을 말리지 않았다. 그는 살아있는 권력이고, 그를 막는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윽, 사……살려.”
이 차장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손에 힘을 뺐다. 해리는 콜록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 차장은 다시 해리를 몰아붙였다.
“너 뭐야? 뭐하려는 거지?”
“그 반지, 회귀의…….”
그러자 이 차장이 해리의 입을 막고 소리쳤다.
“다 나가!”
이 차장은 해리의 입을 완벽하게 봉쇄하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나가자 손을 푸는 이 차장.
해리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소리쳤다.
“반지, 회귀의 반지 좀 달라구요!”
이 차장은 황당한 얼굴로 해리를 보았다. 그제야 해리를 어디선가 본 것이 생각나는 듯 했다.
“너? 너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나 고재준이랑 결혼한 사람이에요.”
“아, 네가 그 여자구나?”
이 차장은 해리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목숨 바칠만 하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고재준이 널 위해 한 것들, 그걸 할 만하다고.”
“칭찬이죠?”
“그게 칭찬이지 뭐야? 너 머리는 나쁜가 보구나? 하긴 그러니 내게 이렇게 들이대는 거겠지?”
해리는 이 차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까 분명 자기에게 넘어왔던 이 차장이다. 지금도 외모에 대해 칭찬을 하고 있다. 아직 기회는 있다고 생각했다.
해리는 입에 침을 바르고 고혹적인 표정으로 이 차장을 바라보았다.
이 차장도 해리의 표정을 보며 침을 삼켰다. 이 차장은 사실 해리를 원하고 있었다. 오늘 당장 해리와 하룻밤을 보낸다고 해도, 반지를 이용해서 없던 일로 하면 된다. 그러니 지금 욕망을 거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해리의 얼굴을 뜨겁게 쳐다보던 이 차장은 결국 그녀에게 키스를 한다. 해리는 그가 하는 대로 모든 것을 받아 줄 용의가 있었다. 그러면 반지를 얻을 수 있으니까. 어떤 짓도 용납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이 있었다. 마담이다. 그녀는 해리가 이 차장을 만나려 하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정치계 입문을 앞두고 있는 이 차장과 재벌 사모님이 몰래 만나는 것이 아닌가? 이 장면을 찍어두면 두고두고 써먹을 일이 많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였다. 하지만 당장 카메라가 없다. 그래서 부랴부랴 일회용 카메라를 가져와서 찍었다.
찰칵찰칵.
카메라에 찍히는 줄도 모르고 키스에 몰입한 두 사람은, 곧 근처 호텔로 향했다.
두 사람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서로를 탐했다. 그렇게 뜨거운 시간이 지나고 새벽, 이 차장의 품에 안긴 해리가 그의 손가락에 껴져있는 반지를 건드렸다.
“이게 정말 회귀의 반지인거지?”
“그래, 이게 그거야.”
해리는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반지를 쳐다보았다. 이제 반지를 얻을 수 있는 건가? 하는 기대와 함께.
이 차장은 해리를 보고 또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애교도 넘치고, 매력적이다. 그녀를 가진 재준이 부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반지를 넘겨줄 수는 없다. 반지는 온전히 이 차장 본인의 것이니까. 해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나서, 회귀 버스에 태워줄 의향이 있었다.
“네가 회귀를 하려는 이유가 뭐지?” “그것 말하면 회귀하게 해줄 거야?”
“그래, 뭔지 알아야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나 김설아처럼 살고 싶어. 아니 김설아 인생은 원래부터 내 거였어.”
“뭐? 박준수 아내로 산다는 건가, 지금?”
“그래, 김설아처럼 재벌 사모님에 탑스타로 살고 싶어.”
이 차장은 해리의 말을 듣고 큰소리로 웃었다. 정말 어이가 없는 것이다.
“박준수가 너를 재준에게 추천하면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 날 추천해? 박준수가?”
“그래, 박준수는 너를 애초부터 알고 있었어.” “맞아. 고등학교 때랑 스무살 때 잠깐 봤거든.”
“잠깐? 잠깐 본거라고?”
“응, 잠깐만. 합쳐도 한 시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 차장은 생각했다. 박준수는 분명 해리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는데 대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걸까? 그러다 박준수가 회귀를 하였고 먼 미래에서 회귀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었다. 박준수가 회귀 전부터 해리를 알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준수가 너를 아주 잘 알고 있었어. 네가 재준을 망가트릴 수 있는 여자라고 했어. 그 말은 네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가지게 하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내가 누구 인생을 망하게 해? 우리 가게 손님? 누구? 대체 무슨 뜻이야?”
이 차장은 다시 한바탕 웃었다. 해리가 인생을 망가지게 한 사람은 바로 박준수인 것이다. 박준수의 인생이 망가졌기 때문에 회귀를 한 것은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 인생을 망가지게 한 사람이 해리라는 것,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박준수가 회귀자인건 아나?” “그 사람도 회귀자야?” “그놈은 좀 먼 미래에서 회귀하였어. 너도 알겠지만 회귀자는 인생이 망가졌을 때 하게 되지. 잘 살고 있는 사람이 회귀를 하진 않잖아.”
“그래, 나도 지금 내 인생이 너무 불행해.”
해리는 진심으로 불행하다고 느꼈다. 자기 인생을 도둑맞은 기분이랄까.
“네가 바로 박준수 인생을 망친 장본인인거야. 그래서 박준수가 너 때문에 회귀를 한 거고.”
“뭐? 그게 무슨 말이지? 이해가 되질 않는데?” “네가 원래 박준수의 여자라는 이야기야. 박준수는 너를 떼어내려고 회귀해서 다른 여자랑 만난 거라고.”
해리는 이 황당한 말을 듣고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이 말의 뜻을 이해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래서 박준수가 나한테 차가웠던 거야?” “그래, 달리 말하면 네가 아무리 박준수에게 회귀해서 다가간다고 해도 그는 너를 멀리할 거란 이야기야. 회귀해봐야 소용없다는 뜻이지.”
해리는 절망했다. 박준수의 아내가 되어 탑스타의 길을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버텼는데, 그게 모두 거짓말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아니야! 분명 점쟁이가 그랬어. 박준수는 나를 사랑한다고!”
“하하하하하하하, 그랬을 테지. 정말 그랬을 거야. 사랑했어, 너를.”
“그런데 그걸 내가 찬 거란 이야기인 거지?”
“그래, 네가 남의 인생을 망가지게 하는 여자라고 했다니까? 너를 증오하는 거야. 그토록 너한테 당했다는 뜻이지.”
해리는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자기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도 모른 채, 그 행위를 후회하며 우는 꼴이라니.
“그럼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이 아무 소용 없는 거잖아. 이게 뭐야.”
“네게는 고재준이 딱이야. 그 새끼만큼 널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 그놈이 너를 몇 번이나 살린 줄 아나?”
“날 몇 번이나 살렸어?” “그래, 소름끼칠 정도로 널 사랑하고 있는 놈이야. 그런 놈을 두고 너는 바람을 피우고 있지.”
“아니야. 바람은 아니야. 당신에게는 몸만 줬지.”
“하하하하, 그래 알았어. 다음에는 또 만날 수 없다는 뜻인가?”
“그래, 반지 아니었으면 당신과 만날 일 따위는 없어.”
해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 차장은 해리가 가는 것을 보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갈게. 오늘일은 비밀로 해줘.”
“그래, 나야 고맙지.”
이 차장은 매우 아쉬웠다. 해리가 옷을 다 입고 나가는 것을 보면서 더욱 그랬다.
“한번만 더 만나고 싶은데.”
이 차장은 단순히 해리를 만나기 위해서 회귀 반지를 썼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갈 때마다 다른 옷을 입고 갔다. 한 번, 두 번…… 스무 번 넘게 해리를 만나기 위해 반지를 돌렸다.
그때마다 마담이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사진이 찍히지 않았다. 필름이 다 한 것이다. 방금 사온 일회용 카메라인데, 사진이 다 찍혔다?
“뭐지? 이거 불량품 아냐?”
마담은 카메라를 이리저리 흔드는데, 일회용 카메라가 다 돌아간 듯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지이잉.
일회용 카메라는 다 쓰면 필름이 자동으로 돌아간다. 그 말은 안에 든 필름에 사진이 다 찍혀있다는 소리다.
“뭐 이딴 게 다 있지?”
마담은 카메라는 버리고 필름은 일단 챙겼다. 좀 전에 찍힌 사진은 일단 두어야 하니까.
그 일회용 카메라는 나중에 큰 파장을 가져온다. 두 사람의 키스 사진이 여러 개 찍혀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같은 포즈, 다른 옷으로.
* * * * *
“아 씨*, 자꾸 생각나 그년이.”
이 차장은 이미 해리에게 빠져들었다. 그래서 반지를 돌리고 돌린 것이 수십 번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해리가 눈앞에서 맴돈다. 도무지 지울 수 없는 여자다. 남자를 미치게 만드는 여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박준수가 그년에게서 빠져나온 것이겠지.
“내 걸로 만들어야겠어.”
이 차장은 결국 해리와 재준이 헤어지게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재준이 해리를 스스로 버리게 만들어야 뒤탈이 없다. 그러려면 해리가 박준수와 결혼하고 싶다고 한 장면을 그 놈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와 해리가 여러 번(?) 밤을 지샌 것을 감추고, 해리가 박준수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 말하게 하면 된다. 결국 또 반지를 돌리는 이 차장.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번에는 해리의 유혹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이 차장은 자신을 유혹하려는 해리를 데리고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그 카페에는 카메라가 세팅되어 있었다.
“나 김설아처럼 살고 싶어요. 아니, 김설아 인생은 원래부터 내 거였어요.”
“뭐? 박준수 아내로 산다는 건가, 지금?”
“그래요, 김설아처럼 재벌 사모님에 탑스타로 살고 싶어요.”
“고재준도 재벌이잖아. 개도 돈은 얼마든지 주잖아.”
“아니, 고재준은 내가 스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내가 조용히 사는 것을 원해요.”
“그래서, 회귀하면 박준수의 아내가 될 수는 있고? 자신 있어?” “네, 난 어떤 남자도 꼬실 수 있어요.”
“음, 그래 그건 맞…….”
이 차장은 얼떨결에 해리의 말이 맞다고 할 뻔하였다. 본인도 해리에게 넘어갔으니 정말 맞는 말이니까.
그렇게 해리의 말을 몰래 카메라에 담은 이 차장은 그걸 가지고 고재준에게 갔다.
* * * * *
영상을 본 고재준은 분노로 치를 떨었다.
“정말 이게 사실입니까? 내가 지한테 어떻게 했는데!”
“그니까, 그 여자랑 헤어져. 자네를 망칠 여자야.”
“안됩니다. 그러면 박준수에게 갈 거 아닙니까?”
이 차장은 고재준이 헤어진다고 할 때까지 계속해서 회귀를 했지만, 고재준은 끝까지 해리를 놓지 않았다. 결국 이 차장은 해리를 포기한다. 그리고 고재준과 박준수가 서로 죽자 살자 싸우게 만들기로 한다. 운 좋으면 고재준이 죽어서 해리를 얻게 될 것이고, 운 나빠도 눈엣가시 같은 박준수가 죽게 될 것이다. 그렇게 다시 해리의 영상을 박준수가 해리를 꼬시려 한 걸로 바꾸는 이 차장. 결국 고재준이 이 차장의 계략에 넘어갔다.
“나 좀 도와주세요.”
“그래, 어쩌려고?”
“박준수를 죽이겠습니다.”
고재준의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