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광화문역 방화사건(2)
그 남자는 언젠가 뉴스에서 본 그남자였다. 바로 광화문역 방화사건의 진범인 김 씨였다. 나는 빨리 오재훈과 여자들을 대피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이 여자들을 데리고 가요. 빨리.”
“네, 왜요 왜?” “빨리 잔말 말고.”
“알았어요. 가요.”
김설아는 내가 보는 시선을 같이 바라보고 내가 왜 그러는지 금방 깨달았다. 남자가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이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었다.
“이쪽으로 가시죠.”
오재훈은 참모진과 함께 두 여자들을 데리고 얼른 뛰어갔다. 나는 순간, 이 상황에서 내가 슈퍼맨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슈퍼맨이 되는 것은 내가 아닌 오재훈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유리하다. 거기다 그는 이 위험한 상황을 보고도 도망치는 꼴이다. 그런 자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까? 거기까지 생각이 든 나는 오재훈을 크게 불렀다.
“오재훈 씨! 이리 좀 오시죠.”
“네?”
“오재훈 씨 한분만 오라고요.”
“네.”
오재훈이 여자들을 얼른 보내놓고 나를 따라왔다. 휘발유를 든 남자가 벌써 안으로 들어갔다. 빨리 쫓아가야 한다. 나는 오재훈을 잡고 뛰었다.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서 그와 내가 나누어 끼며 달렸다.
“우리 둘이서 저 사람을 막는 겁니다. 아시겠죠?”
“네, 그래야죠. 그럼 저 사람 저거 불 지르려고?” “네, 빨리 가죠.”
우리는 뛸 수 있는 최대치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놈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선 119에 신고부터 하라고 하세요.”
“김설아 씨가 벌써 신고하던데요?”
역시 김설아는 정말 난 여자다. 그녀가 사실상 대통령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두 사람이 열심히 남자를 쫓아갔지만, 남자는 벌써 열차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려서 겨우 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이봐요!”
남자가 바로 앞에서 휘발유 통을 열더니 그걸 열차 안으로 뿌렸다.
아아악!
“그만둬!”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와 오재훈이 달려들어서 놈을 붙잡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내 몸에 휘발유가 조금 뿌려졌다. 남자는 우리를 뿌리치고는 열차 안에 지포라이터를 던졌다.
“다 죽어버려!”
활활.
지포라이터의 불은 금세 열차 안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남자는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하고는 열차 밖으로 나갔다. 그의 표정은 악마 그 자체였다.
“아아악! 사람 살려!”
“불을 꺼, 소화기 어딨어!”
“다들 입을 막으세요. 연기를 먹지 말고 다른 칸으로 도망가세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열차를 메웠다. 나는 품에서 얼른 헤어스프레이를 꺼냈다. 그것은 사실 스프레이가 아닌 망치였다. 유세장에 망치를 들고 가는 것이 좀 그래서 겉에 스프레이 모양 같이 꾸민 것이다. 나는 그걸 들고 얼른 소화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소화기 여깄어요!”
사실 이 장소에 유세를 오게 된 것을 알고 미리 열차에 타서 위치를 알아내었다. 열차 곳곳을 다니면서 위치 등을 전부 알아내고 여는 방법 등을 조사했다.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하니까.
쨍그랑.
“다들 비켜!”
망치로 소화기를 꺼낸 내가 소화기를 들고서 불을 진화하려 했지만, 지금 슈퍼맨이 될 사람은 무조건 오재훈이어야 했다. 나는 소화기의 핀을 뽑고 손잡는 위치와 손잡이 등을 제대로 잡아서 오재훈에게 건넸다. 그는 침착하게 소화기를 뿜었다.
치이익.
우와아.
소화기로 금방 불을 끌 수 있었다. 소화기를 손에 든 오재훈의 모습은 사람들의 손에 든 휴대폰에 고스란히 찍혔다.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열차에 불이 난 것을 안 시민들이 급히 열차를 멈추었고, 출발 하려다 말고 열차가 어중간한 위치에 서 있었다. 불을 지른 그놈이 우리가 불에 타죽나 안 죽나 하며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진짜 악마였다.
* * * * *
열차에 난 불을 끄긴 했지만 안에 사람들은 연기를 다 마시고 있었다. 나는 스프레이 통을 다시 오재훈에게 건넸다.
“빨리 창문을 다 깨요.”
“네.”
오재훈은 스프레이 망치를 들고서 그 곳 창문을 전부 깨고 나섰다.
쨍그랑. 쨍그랑.
창문이 깨지는 것을 보는 시민들이 박수를 쳐댔다.
짝짝짝짝.
시민들은 오재훈의 행동을 하나하나 가슴에 담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오재훈당의 열성 당원이 될 듯 했다.
“이제 조심스럽게 열차 문을 엽시다.”
나는 오재훈과 함께 열차 문을 열었다. 이미 어떻게 여는지 확인하였기에 어렵지 않게 열 수 있었다.
기이잉.
열차 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저들을 하나하나 밖으로 내어주는 오재훈의 모습은 진정한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오재훈 씨도 빨리 내리세요.”
“저는 마스크를 썼으니, 다른 사람들 먼저 내리게 하겠습니다.”
“네, 마침 미용실용 마스크를 가지고 다녀서요.”
우리는 마스크를 쓴 채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그 칸의 문을 손수 여는 오재훈, 그의 모습을 보는 시민들은 감동하고 있었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119에 대원들이 출동했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오재훈을 쳐다보며 박수를 쳐댔다. 인간 오재훈이 진짜 대통령 감으로 거듭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오재훈! 오재훈! 서울시장 오재훈!”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지하철에서 만큼은 오재훈이 시장이었다.
* * * * *
지하철 밖에서는 안에서 나는 연기 때문에 난리가 났다.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죽었을 거라는 수근거림이 들려왔지만, 김설아는 의연하게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은 그녀가 괜찮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너무 하얗게 질려버린 그녀의 얼굴, 입술은 바짝 말라서 허옇게 떴다. 곧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그녀의 표정과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살아나올 거예요. 그래야 아빠가 되고, 서울 시장이 되죠.”
“어흑흑.”
불안해서 우는 준희에 비해, 김설아의 자세는 진짜 성인의 자세였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도 의연하게 있는 김설아를 보며, 사람들은 연신 엄지를 치켜세웠다.
“김설아 씨 연기 마시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아기에게 안 좋아요.”
사람들이 김설아를 걱정하며 들어가라고 하자, 김설아는 가지고 있는 손수건에 먹던 물을 적셔서 입에 갖다 댔다. 연기를 차단할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순간순간 아주 현명한 대처법을 알고 있는 그녀였다.
“괜찮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어요.”
그렇게 한참을 서있는데, 119 대원들이 서둘러 지하철로 들어갔다.
우르르.
‘서둘러’, ‘빨리 가’, ‘1번 출구 쪽이야’ 등등을 외치며 들어가는 대원들.
그들의 모습을 본 김설아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너무 늦는데, 너무 늦는데.”
“아까 신고했는데 왜 저렇게 늦어요.”
“이 일대가 너무 막혀서 그래요. 이제 구급대원들이 들어갔으니 곧 수습될 거예요.”
“그럼 우선 저쪽에 가서 쉬어요. 언니 너무 힘들잖아요. 홀몸도 아니고.”
“나는 괜찮아…….”
김설아는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임산부가 너무 과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이었다. 사실 아까부터 쓰러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틴 김설아였다.
“악! 언니 정신 차려요.”
“빨리 구급차에 태워요.”
사람들이 여럿 달려들어서 김설아를 잡았다. 다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마침 구급차가 근처에 많이 와 있어서, 김설아가 빨리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녀가 끔찍한 광경을 보지 않아서.
* * * * *
“서울시장 오재훈!”
“오재훈! 오재훈!”
사람들이 오재훈을 둘러싸고 행진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연기를 마신 탓에 실려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작은 화상을 입어서 고통 속에서 신음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 와중에도 오재훈을 향해 소리쳤다. 고맙다고. 꼭 투표하겠다고.
나는 저들의 외침 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오재훈이 서울 시장이 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이 차장이 오재훈의 지지율을 상승하게 만든 것이다. 그가 하는 짓은 오히려 자기를 망하게 하였다. 정말 어리석게도.
그리고 범인, 그가 잡히지 않았다. 뭔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 * * * *
이 차장은 사실 이 사건을 먼저 겪었었다. 오재훈에게 선거에서 지고 나서 회귀를 하였으니 이 일을 전부 알고 있었다.
그는 광화문역에서 사건이 나는 그 시각에 오재훈을 거기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앞서 회귀 전 이 차장이 그 시각 광화문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비록 지하철에서 거리가 있는 곳에서 선거 유세를 했지만, 그가 연설을 하는 도중에 사고가 났다. 때문에 그는 아무 죄도 없이 비난의 화살을 받아야 했다. 그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그의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이 차장이 연설을 하다말고 구하러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선거에 지고 나서 그는 생각했다. 오재훈을 거기에 보낸다면 자기가 이기겠다고. 그래서 오재훈을 죽이지 않고 기다린 것이었다. 그를 이길 방법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어차피 박준수가 한 번 살렸으니 그 수고를 굳이 막지 않는 여유를 부렸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런데 박준수가 그걸 막고 나섰다. 시간대를 오전으로 옮긴 것이다. 사실 퇴근시간에 맞춰서 연설해야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는데, 굳이 그걸 마다하고 오전으로 옮겼다. 이 차장은 그제야 박준수도 회귀자인 것을 기억해 내었다. 똑똑한 자임에도 실수는 하기 마련이었다.
이 차장은 그길로 방화범을 수소문했다. 앞서 그가 어떤 놈인지 직접 보았기 때문에 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좀 더 일찍 일어나게 만들었고 그가 좀 더 서두르게 만들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유세 시간과 비슷하게 해야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을 거라는 말도 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 방화범이 실제 범죄 시간보다 좀 더 일찍 그 장소에 간 것이었다. 결국 방화범이 범죄를 저지르지만, 미리 알고 있던 내가 많은 준비를 해 두었다. 그 덕에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 사건의 슈퍼맨이 된 우리 쪽 지지율만 끝없이 올라갔다.
이 차장은 이 일로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모든 것을 되돌리면 그만이지만 일단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선거일까지 두고 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이 사건을 보며 자기가 오재훈이 한 일을 하면 당선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어떤 선거운동보다 극적인 방법인 것이다.
그렇게 이 차장이 다음 회귀를 준비하고 있는데 일이 터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 * * * *
광화문역에서 다치거나 연기를 마신 사람들이 하나둘씩 구급차에 실려 가고, 오재훈과 내가 마지막으로 차에 탈 요량이었다. 그때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 당신은”
“왜 일을 망치고 난리야! 너부터 죽어봐!”
방화범이 화를 내며 오재훈에게 지포라이터를 던졌다. 그때, 라이터가 궤도를 달리하며 내 쪽으로 던져졌고, 결국 내 옷에 불길이 솟아올랐다. 아까 묻은 휘발유 덕분에 불길을 잡을 수가 없었다.
으아악.
나 이대로 죽는 건가?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