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광화문역 방화사건(4)
“으아악 살려줘.”
이 차장은 몸에 불이 붙은 상태로 착한 참모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착한 참모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거기다 119 신고를 늦게 한 덕에 그를 구해줄 사람은 없어 보였다. 사람들이 그를 구하려고 하긴 하였지만, 휘발유가 너무 많이 묻어서 구해줄 수 없었다.
이 차장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너무 아파서.
이 차장이 죽고 오재훈은 부전승으로 시장에 당선되었다. 그게 운명인 것이다. 이 차장이 이길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게임이었다. 박준수가 그를 살릴 확률은 그냥 제로이다. 김주원은 1초도 회귀할 상황이 아니었다.
* * * * *
재준은 이 차장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뒤 바로 김주원을 찾아갔다.
김주원은 요 며칠 사이 10년은 더 늙은 듯 눈가가 퀭했다.
“이 차장 그냥 죽게 두실 겁니까?”
“휴, 그게.”
다행(?)인 것은 김주원이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이었다. 이 차장의 손에 반지가 있었다면 영원히 그를 살릴 수 없는데다, 회귀의 반지도 없어지는 거니까.
“살리고 봐야하기 않겠습니까?”
“내가 회귀할 시간이 없어. 만약 그냥 회귀했다가는 어찌될지 장담을 못하겠네.”
“아.”
재준은 이 차장이 자신에게 너무 잘해주는데다, 사업까지 도와주고 있어서 그가 필요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가서 돌려드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휴, 그게 이 차장이 좋아하지 않을 거야.”
“하하, 그는 죽고 없는데요? 그를 살려줘야 좋아하든 싫어하든 할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하지만…… 콜록콜록.”
재준은 문득 김주원을 쳐다보았다. 병이 든 사람처럼 보이는 김주원, 자신의 원래 나이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 것이 여간 불쌍한 게 아니었다. 대체 그 잘난 김주원이 왜 저렇게 되었을까? 기력은 어디에 다 쏟아 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이 차장에게 주어야 해.”
“걱정 마세요. 우리는 이제 한배를 탄 건데요. 뭘.”
“그럼, 믿겠네. 하긴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도 하고.”
“네, 일단 살려야 합니다. 지금 이 차장 없이는 다 소용없잖아요.”
“그래 알겠어. 이것 받게나.”
김주원은 회귀의 반지를 빼서 재준에게 건넸다.
반지를 받아 든 재준의 눈빛이 순간 반짝거렸다. 그동안 반지에 욕심내지 않으려 했건만, 반지를 받는 순간 욕심이 꿈틀거렸다. 어쨌든 반지가 재준의 손에 들어갔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서 반지를 손에 끼웠다.
* * * * *
우우웅.
익숙한 고통, 누군가 또 회귀를 한 것인가?
“재준이 회귀를 한 건가?”
이 차장이 사망하였다. 그가 죽었다는 것은 저들의 힘이 더 빠졌다는 소리가 된다. 김주원은 몇 달을 회귀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 그렇다면 재준이 회귀를 하였을 것이다. 재준도 이 차장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으니까. 자기 마누라가 이 차장과 놀아나고 있는 것을 안다면 절대 회귀하지 않았을 테지.
그가 그렇게 했다면, 내 쪽에서도 회귀를 해야 한다. 그가 과거에 가서 무슨 짓을 하는지 지켜보고 막아야 하니까.
멍멍.
강아지가 이제 제법 커서 나를 잘 따랐다. 녀석은 알까? 자기가 주인을 죽인 거란 걸.
“자, 이제 네 반지가 필요하구나. 이리와 장군아.”
강아지의 다리에 걸린 반지를 빼자, 반지 크기가 저절로 작아졌다.
멍멍.
강아지가 반지를 보며 짓는다. 그걸 보니 자기 주인이 떠올라서 그렇겠지. 나는 강아지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반지를 손에 끼웠다. 이 차장이 있었다면 누군가 회귀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챘겠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자유롭게 회귀할 수 있었다.
위이잉.
세상이 돌아간다.
선거 초창기에 돌아간 나는 우선 방화범을 찾아갔다. 그에게 사람을 붙여놓는다면 일이 더 수월하게 돌아갈 테니까. 그렇게 얼마 시간이 지났다.
* * * * *
“살려줘.”
이 차장이 다시 살아나자마자 한 말이었다. 이 차장의 앞에 있던 참모진들이 깜짝 놀라서 그를 붙잡았다.
“괜찮으세요?” “어, 꿈을 꿨나봐.”
이 차장은 죽던 순간 뼈까지 타들어가던 고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기가 죽더라도 화장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회귀한 것을 보니, 김주원이나 고재준이 회귀를 한 듯 했다. 이 차장은 자신의 살을 만져보았다. 불길 속에서 흐물거리는 그 살이 아닌 것에 세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휴.”
이 차장은 광화문역 화재 사건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 일인지 계속해서 자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그 방화범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 어쨌거나 자기를 죽게 만들었던 놈이니까, 가만두면 두고두고 화가 날 것 같았다.
“그 새끼를 잡아서.”
“네?”
참모진들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이차장을 보자, 그가 입을 닫았다. 죽이는 것은 이 녀석들에게 시킬 일이 아니니까.
“아, 아니야. 오늘 일정 접어둬. 내가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아 저, 그리고 말씀하신 가난한 참모진 면접은 보셔야 하는데요?”
“뭐?”
이 차장은 자신이 죽어가는 데도 보고만 있었던 그놈을 기억하며 진저리를 쳤다.
“어디에 있지?”
“저기요.”
참모진이 손짓하는 곳에 그 가난한 참모가 앉아있었다. 이 차장은 당장 녀석의 뒤통수를 갈기고 싶었지만, 애써 참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 앉아서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녀석이 싱긋 웃자, 화가 더욱 치밀었다.
“너 마음에 들지 않아. 이런 녀석밖에 없어? 네놈 얼굴도 보기 싫으니까 썩 꺼져.”
이 차장은 마음 같아서는 욕을 실컷 해주고 싶었지만, 놈이 자기에게 했던 일은 이미 없던 일이 되었다. 상식적으로 화를 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냥 놈을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착한 참모는 이 차장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 울상을 하고 일어섰다.
“네, 알겠습니다. 시장에 당선되시나 두고 보겠습니다.” “뭐? 이 새끼가 안 꺼져?”
이 차장은 그가 가고 나서도 계속해서 씩씩거렸다. 더 혼 줄을 내주지 못한 것이 억울한 듯 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분을 삭이고 일어서는 이 차장.
“나 개인 스케줄을 갈 테니까. 다들 퇴근해.”
이 차장은 서둘러 해결사를 찾아갔다.
* * * * *
앞서 김설아 때 사건은 회귀해서 이미 없는 일이 되었기에 해결사의 해결 능력은 100퍼센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차장은 재준에게 그에 대해서 듣고 있었다. 그가 김설아 사건 말고는 100퍼센트의 해결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도.
어느 한강 다리 밑, 이 차장과 해결사가 등을 대고 서 있었다. 서로 얼굴을 보지 말아야 하니까.
“노숙자를 죽이라고요?”
해결사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이런 일을 거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안됩니까?” “아뇨, 그건 정말 쉬운 일이죠.”
노숙자 하나를 죽이는 일만큼 쉬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는 사실을. “돈은 섭섭하지 않게 줄 테니 일만 해결해주시죠.”
“네, 알겠습니다.”
“되도록 빨리 부탁드립니다.”
“네, 내일 당장 움직이도록 하죠.”
이 차장은 그 자리에서 계약금을 건네주었다.
해결사는 돈을 받아들고서 바로 노숙자가 있다는 그곳으로 향했다.
“저놈인가?”
해결사는 오늘 하루 동안 방화범의 행동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가 어떤 패턴으로 움직이고 누가 그를 알고 있고, 어떻게 해야 그를 소리 소문 없이 죽일 수 있는가를 연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해결사는 알지 못했다. 그 시각 건너편에서 자기를 관찰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 * * * *
“그 노숙자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회귀 후 방화범을 감시하러 보낸 사람이 사진을 내밀었다. 나는 사진 속 인물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어? 이 사람?”
“아는 사람인가요? 제가 봤을 때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는 카멜레온처럼 숨는 것에 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절대 숨겨지지 않았다.
“아, 아는 사람은 아니고요.”
그는 나를 잡아서 죽이려던 그놈, 그는 전문 해결사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었다. 후에 내가 알아보았는데, 생각보다 유명한 놈이었다. 내게 당한 것이 희한할 정도로 그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런 자가 방화범을 지켜본다는 것은 죽인다는 뜻이다.
“이자가 왜 노숙자를 감시했는지 몰라도, 그냥 보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목적이 분명해 보였어요.”
만만해 보이지 않는 자가 만만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그 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뭔가가 있어 보였다. 거기다 그자는 목적이 없이 움직이는 자가 아니니까.
“그렇겠죠.”
“제가 알아보았는데, 이자가 그곳에서 하루 잘 거라고 하더군요. 침낭까지 가져와서 자고 떠날 거라고 했습니다.”
해결사는 방화범의 하루 일과를 전부 알아내는 중이었다. 아마도 죽이기 바로 전까지는 감시를 할 테지.
“그럼 내일 아침까지는 상부에 보고하지 않겠네요?” “네? 상부에요? 무슨 상부요?”
“아니, 이 사람이 만약 목적이 있다면 윗사람에게 보고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내일 아침까지는 보류가 된다는 거죠.”
“아, 그럴 수 있겠네요. 사실 저도 감시하다가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서 보고를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그자를 보냈다는 것은 방화범을 죽이기 위해서 보냈다는 것이다. 사실 노숙자 따위를 죽이는데 전문 해결사를 쓴다? 그건 돈을 버리는 것과 같다. 그 말은 돈이 많은 사람이 해결사를 보냈다는 것이고, 방화범에게 그런 증오를 가질 사람은 이 차장 밖에 없다. 자기를 죽게 했으니까. 나도 사실 방화범을 죽이고 싶었다. 그만큼 고통이 상당했었다.
즉, 이 차장이 해결사를 보낸 것이고, 해결사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니 내일 이 노숙자는 죽는다는 이야기다. 그럼 광화문역 방화 사건은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 사건이 이 차장에게 두 번 연속 악재로 작용했으니, 화재 자체를 없애려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려는 시도는 물론 아니겠지. 선거에서 이기려고 하는 행위이다.
“결국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럼 저는 가서 놈을 감시…….”
“아니, 그만 두세요. 이제 더 안하셔도 됩니다.”
방화범이 사고를 치지 못하게 감시한 것인데, 그가 죽는다니 감시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네? 그럼 아까 그 수상한 놈이 뭔 수를 쓸지도 모르는데요?”
“네,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만 두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비는 바로 드리겠습니다.”
“네, 저야 일찍 끝나면 좋죠.”
나는 곧바로 돈을 가져와서 그에게 건넸다. 그는 살짝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별말 하지 않고 갔다. 방화범은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나쁜 놈이다. 그가 죽던 말던 내 알바 아니었다.
* * * * *
소주를 먹지 않으려고 했건만, 오늘 이걸 마시고 내일까지 푹 자고 싶었다. 누가 죽는 줄 알면서도 그냥 두는 것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일인가 싶었다. 그치만 취하지 않는다. 정신이 더 또렷해진다. 내 내면에서 자꾸 말을 시킨다.
‘그냥 두고 보지 말아라. 가서 왜 사람들을 죽이려 했는가를 한번만 물어봐라.’ 라고.
꿀꺽꿀꺽.
소주를 두 병이나 마셨음에도 정신은 더 또렷해진다.
“휴, 그래 가서 한번 물어나 보자.”
나는 다시 회귀의 반지를 꺼내 들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