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광화문역 방화사건(5)
위이잉.
이 차장은 익숙한 고통에 잠에서 깨었다. 분명 김주원이 반지를 낄 때 느꼈던 느낌이다. 잠을 깨운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고통이 대체 왜 일어났는지가 문제였다.
“뭐지? 김주원이 그런 건가? 아니면 고재준이?”
이 차장은 잠을 자다가 말고 바로 고재준을 찾아갔다. 어떻게든 이 현상에 대해 알아내야 잠이 올 것 같았다.
고재준도 막 잠을 자려다가 나와서 이 차장을 맞이했다. 고재준의 입장에서는 이 차장이 뭔 짓을 시켜도 다 해야 했다. 그게 현 상황이니까.
해리는 화장기가 없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예뻤다. 하긴 이 차장의 눈에는 해리의 눈곱도 보석으로 보일 것이다. 해리는 이 차장을 보자마자 기뻐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고재준은 아직도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는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이 밤중에 어쩐 일이세요?” “어, 내 반지가 잘 있는지 확인하러 왔어.”
이 차장이 재준의 손가락을 살폈다. 아직 재준의 손에 반지가 잘 끼워져 있다. 그렇다면 그가 반지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하긴, 재준이 반지를 사용하려면 남의 손을 거쳐야 하는데, 그걸 대 줄 사람이 없다. 반지를 공유하면 모든 독점이 끝난다. 그야말로 세상이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여기저기 회귀자가 넘쳐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수라장일 테니까.
해리는 이 차장의 눈길을 보고서 그제야 재준의 손가락을 보았다. 그 반지가 회귀의 반지임을 깨달았지만, 그게 왜 재준의 손에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어, 반가워요 제수 씨.”
해리가 이 차장을 보며 싱긋 웃었다. 이 차장은 좋아서 입이 벌어지려고 하는 것을 겨우 참았다.
이 차장이 오늘 온 목적 중 하나는 해리를 한 번 보고 가려는 것도 포함이다.
“보시다시피 반지는 잘 있습니다.”
“어, 나중에 찾으러 오겠어.”
“네네, 그러세요.”
어차피 반지로 회귀를 하려면 남의 손을 한 번 거쳐야 한다. 그때까지는 재준의 손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김주원의 손은 이미 더 쓸 수 없을 지경이니까.
“밤중에 미안해. 내가 뭔가 확인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랬어.”
이 차장은 재준의 손에 반지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반지가 그에게 있다면 대체 누가 회귀를 한 것인가? 아니면 단순 두통인건가? 확실한 것은 고재준이 회귀한 것은 아니라는 것, 그거 하나만 확인하고 말았다.
* * * * *
며칠 전으로 돌아간 나는 방화범을 찾아갔다. 그는 노숙자들 사이에서 아주 조용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에게 당해서 불에 고통 받았던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고통이다. 방화범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런 사람이 대체 왜 그랬을까?
“저 아저씨. 식사는 하셨어요?”
“식사? 밥 먹은 지 한참 되었어.”
방화범은 내게 식사에 대해 묻자 반색하며 말했다. 저렇게 물어본다는 것은 밥을 사준다는 뜻이니까.
나는 방화범을 데리고 근처 목욕탕부터 찾았다. 식사를 시켜주려면 먼저 씻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아니, 나는 밥만 줘.”
“밥을 먹으려면 씻어야 해요.”
방화범은 내 손에 억지로 이끌려서 목욕탕에 들어갔다. 목욕탕 주인이 아주 싫어라 했지만, 돈을 많이 주니 아무 소리도 안하였다.
쓱쓱싹싹.
아저씨의 몸의 때는 대패를 밀 듯 계속해서 나왔다. 정말 더러움의 극치였다.
“대체 언제부터 안 씻은 겁니까?” “몰라, 밥이나 줘.” “후, 알겠습니다. 빨리 씻죠.”
아저씨에게 말끔한 옷을 입혀놓으니, 다른 사람 같았다. 사람이 다 비슷비슷한데, 옷차림만으로도 이렇게 바뀐다는 것을 세삼 깨달았다.
후루륵, 쩝쩝.
방화범은 며칠은 굶은 듯 밥을 아주 잘 먹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날 죽게 만든 기억이 사그라들 정도였다. 그만큼 힘들었겠거니 생각하니 그냥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밥을 먹던 중, 방화범이 갑자기 귀를 막으며 소리 질렀다.
“그만, 그만해 다 죽여버릴 거야!”
“왜 그러세요?” “사람들이 다 악마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악마라고!”
방화범은 그렇게 말하더니 내게 달려들어 목을 졸랐다. 악마의 눈빛을 하고서.
사람들이 그를 겨우 떼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미 나를 죽였을 정도로 무서운 상황이었다.
“미친놈이네요. 빨리 정신병원에 넣으세요.”
“이 아저씨 또 그러네. 저번에도 악마라고 옆의 사람 목을 졸랐어요.”
식당 사람들도 이 방화범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정신이 아주 이상한 상태로 보였다.
나는 방화범을 데리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방화범은 자리를 벗어나서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악마들이 천지에 넘쳐나고 있어. 다 죽여 버려야 해. 최대한 많이 죽여야 해.”
“그래서 사람들을 죽이려 한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 되죠! 정신 차리세요!”
내가 방화범의 몸을 흔들며 깨웠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돌아오길 바리는 마음이었다. 그러자 방화범이 조금 정신이 드는 듯 눈빛이 바뀌었다.
“날 병원에 데려다줘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또 눈빛이 변하는 방화범, 이번에는 좀 더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살려주세요. 난 힘이 없어요. 사람들이 날 미워해요. 나는 배가 고팠을 뿐이라고요.”
좀 전과는 달리 힘이 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는 방화범.
그는 분명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었다. 이자를 이대로 둔다면 반드시 또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일단 병원으로 갑시다.”
“살려줘. 살려줘.”
* * * * *
방화범을 본 정신과 의사는 혀를 내둘렀다.
“다중인격, 피해망상, 환청 등 정신과적 문제를 총망라한 상태네요. 이 정도면 거의 회생 불가에요. 당장 입원시켜야 합니다. 가족이세요? 당장 서류 작성하시고 입원 시키세요.”
“가족이 아니라서요. 가족 아니면 입원을 못시키는 거죠?” “그렇죠. 가족이 어딨는지 좀 알아내서 빨리 데리고 오세요. 여기서 지금 나가면 안 될 사람이에요.”
내 생각에도 그랬다. 여기서 나가자마자 방화를 저지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방화범을 다시 만났다. 가족을 데리고 와야 그를 입원시키니까.
“자진 입원 하시겠어요? 치료비는 제가 다 지불할거니까 걱정 마시고요.”
“그럼 먹을 거 입을 거는 해결 된 거네요?” “그죠. 설마 감옥 가고 싶어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무슨 짓요?” “아닙니다. 암튼 가족이 한 명이라도 동의를 해야 해서요. 어딨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네, 주소를 적어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주소를 받아서 그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그의 소식을 듣자마자 진저리를 쳤다.
“옴마, 그 쌍것이 어데 가서 또 사고를 친겨?”
어머니의 말투로 봐서 그는 집에서 내놓은 상태였다.
“동의서만 작성해주시면 제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그려, 고맙구먼. 원래 착한 놈이었는디 워쩌다가 그리 된겨.”
“착한 놈 만들라고 그러는 거니까 서류만 작성해주세요.” “알겄구먼.”
어머님께 동의서를 받아와서 제출하고, 방화범은 그대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덕분에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으니, 병원비 따위 아깝지 않았다. 사람 죽이는데 쓰는 돈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정말 맞는 행동이었다.
* * * * *
“그놈이 없다고?” “네, 계약을 이행하고 싶어도 못하겠습니다. 사람 죽이는 건 쉬워도 사람 찾는 것은 제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건 다른 사람을 시켜서 찾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알겠어. 가봐.”
이 차장은 해결사를 하대하며 말했다. 앞서 만났을 때는 존대하였지만, 일이 틀어지자 막대하는 것이다. 그게 원래 그의 모습이지만 말이다.
해결사는 이 차장의 태도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누구인지 슬쩍 쳐다보았다. 서로를 보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워낙 싸가지가 없게 구니까 괘씸해서 본 것이었다. 그렇게 해결사는 이 차장의 얼굴을 기억에 새겨두었다.
이 차장은 생각했다. 놈을 대체 누가 숨겼을까? 아니면 누가 없애기라도 한 건가? 자기가 할 일을 누군가 해준 것은 나쁘지 않지만, 누가 어떤 의도로 숨긴 건지 몰라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차장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선거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차장과 오재훈은 정면승부다. 누가 더 좋은 공약을 했는가? 누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가 관건이다. 이제부터는 진짜 전쟁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선거 준비를 하고, 어떤 변수도 없이 진짜 승부를 겨누었다. 결과는 오재훈이 단발의 차로 이겼다. 이 차장이 아무리 애를 써도 오재훈을 이길 수 없었다. 이 차장은 그걸 깨달았다.
“오재훈이 죽지 않으면 내 앞길도 열리지 않겠어.”
이 차장은 다시 오재훈을 죽여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이번 선거는 임기도 짧으니 그냥 두고, 다음 선거를 하기 전에.
* * * * *
가족들이 모여서 축하 파티를 하였다.
“축하하네 사위.”
“축하해.”
“대단하십니다!”
“이제 시작인데요, 뭘. 더 대단한 사람이 될 겁니다.”
가족들은 모두 행복해하였다. 그동안 오재훈의 선거 때문에 마음고생들을 많이도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들 모두 한 마음이었다. 오재훈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서로가 서로에게 진짜 가족이 되어 격려해주고 위로해주었던 지난 순간들이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였다.
나는 손에 낀 회귀의 반지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진짜 힘든 일이 많았지만, 이 반지 덕분에 이룰 수 있는 순간이었다. 고맙다. 반지가 내 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제 계획한 것들을 다 이루었다. 이제 하나만 남았다. 이 차장의 손에서 반지를 뺏는 것, 그래서 그가 훗날 대한민국을 망치게 하지 않는 것.
그의 자리에 원래 주인인 오재훈을 넣어 두는 것.
* * * * *
재준이 잠이 들고, 해리가 몰래 일어났다. 그리고 재준의 손에 있는 반지를 보았다. 저 반지를 얻기 위해서 한 짓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미친…….”
반지를 얻어내려고 이 차장을 만났지만, 어느 샌가 이 차장을 사랑하게 된 해리. 원래는 박준수를 원했었지만, 이제는 이 차장의 여자가 되고 싶었다. 이 차장의 아내가 되고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최고의 배우이면서 퍼스트레이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해리가 원하는 삶은 원래 김설아의 삶인 것이다. 욕심이 과하다. 그만한 감이 되지 않는 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었다.
“반지만 내 손에 들어오면…….”
해리는 조심스럽게 재준에게 다가갔다. 반지를 끼고 있는 재준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설마 해리가 반지를 노릴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해리는 반지를 낀 재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과감하게 반지를 뺐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해리 자신도 너무 쉬워서 놀랄 정도로.
그렇게 해리가 반지를 자기의 손에 끼우려는 찰나.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