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박준수에게 반지가 있다고? (3)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오재훈은 고재준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사실 준희도 고재준에 대해 자세히는 모를 것이다. 그저 오빠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인 정도만 알 뿐이었다. 그가 오빠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도.
“아, 그 고재준 씨 아니세요?”
준희가 고재준을 알아보고 말했다.
“네, 실례지만 좀 들어가도 될까요?”
고재준은 사실 이 집에 회귀의 반지가 있는지를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박준수에게 반지가 없다면 최측근인 이 두 사람에게 있겠거니 하고서.
하지만 그건 박준수를 너무 하수로 봐서 한 추측일 것이다. 재준은 어느 순간부터 준수에게 한 수 밀리고 있었다. 해리를 알면서부터 그는 점차 지능이 낮아졌다. 애석한 일이다.
“아, 네 뭐 들어오시죠. 아내와는 안면이 있으신가보네요?”
“안면만 있는 사이야. 오빠랑 인연이 깊은데, 친구는 아니고 원수에 가깝지.”
“원수…… 하하.”
고재준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안을 살폈다. 이 두 사람과 일하는 아주머니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고재준.
오재훈이 고재준을 소파로 안내했다. 내키지는 않지만, 박준수와 아는 사이니 말이다.
“무엇 때문에 오신건지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왜 오셨죠? 저랑은 아예 모르는 사이신데요?”
그러자 고재준이 최대한 평온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사실 고재준은 오재훈을 한 번 죽인 적이 있기 때문에 그와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중이었다.
“제가 뭐 좀 여쭈어볼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오재훈은 고재준의 행동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본 그가 대체 뭘 물어본다는 말인가?
“후, 지금 제가 당신을 여기에 왜 들였는지 모르겠군요. 그 대단한 궁금증이 뭔지 빨리 말하고 나가 주시겠어요?”
그러자 준희가 물을 한 컵 가져와서 고재준에게 건넸다. 얼른 마시라고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는 미지근한 물이었다.
“물이라도 드시고 가시지요. 저희는 그쪽이랑 할 말이 없을 것 같거든요. 얼른 마시고 가세요.”
고재준은 그 사이 준희와 오재훈의 손을 살폈다. 둘 다 회귀의 반지가 없다. 볼일은 다 봤으니 이제 가도 될 거라고 생각한 고재준이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바로 일어났다.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두 분이 제게 적대적인 것을 확인했으니 그만 가보겠습니다.” “이봐요. 이게 대체 무슨 짓이죠? 우리 모처럼 쉬는 날이거든요? 그쪽이 망친 건 알고 있으시죠?”
오재훈이 조금 화가 난 듯 했다. 바쁜 서울시 일정을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서 더욱 그랬다.
준희는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고재준을 밖으로 밀었다.
“그만 가주시죠. 오빠가 왜 싫어하는지 알 것 같네요.”
“네네, 제 발로 갈 테니 이거 놓으세요.”
고재준이 막 집을 나서려는데, 안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
“벌써 깼네. 내가 가볼게요.”
준희가 아이를 안으러 달려가자, 고재준이 뒤를 쫓아갔다.
“아이 한번만 봤으면 하는데요.”
“뭐? 이 사람이 정말 미쳤나?”
오재훈이 고재준의 멱살을 잡았다. 고재준은 오재훈에게 멱살을 잡힌 와중에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기에 바빴다.
“잠깐만 보면 됩니다. 1초만.”
“됐어! 나가 당장!”
오재훈은 화를 내며 고재준을 밖으로 밀쳤다. 고재준이 아이를 보려고 고개를 들었지만, 오재훈이 막아서며 그를 결국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자 고재준이 오재훈을 보며 웃었다. 악마의 미소 같았다.
“아이한테 있군?” “뭐?”
“알겠습니다. 이만 가지요.”
“빨리 썩 꺼져!”
“그러지.”
고재준이 피식 웃으며 집을 나가자, 오재훈은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놈이 진정 미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준희가 아이를 안고 나오자, 그녀를 얼른 방으로 들여보내는 오재훈.
“갔어요?” “어,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뭔가 이상하긴 했어요.” “다음엔 저런 놈 절대 들이지 마.”
“오빠한테 전화 해 봐야겠네요.”
준희는 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같은 시각, 고재준이 이 차장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오재훈 딸에게 있습니다. 반지요.”
“낄낄, 그렇구만.”
* * * * *
고재준은 다음날 오재훈의 집에 있던 도우미에게 연락해서 만났다.
도우미는 큰돈을 주는 고재준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아이의 손가락에 낀 반지를 가져오라고요?” “네, 사례는 아주 크게 할 생각이니 반지만 가져오세요.”
“아이의 손에 아무것도 없는데요?”
“아닙니다. 검은색 반지가 껴져 있을 겁니다. 그냥 그걸 가지고 나오면 제가 받자마자 나머지 돈을 드릴 거예요.”
도우미는 돈이 궁한 상태였다. 그의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집에 가자마자 반지 빼서 나올게요.” “네,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바로 나오세요.”
“휴, 긴장되네요.”
도우미는 재준이 내민 봉투를 받아서 얼른 품안에 넣고는 서둘러 차를 나갔다. 재준은 바로 그 앞에서 도우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우미는 집에 가자마자 서둘러 아이에게 향했다. 아이는 재준의 말대로 검은색 반지를 끼고 있었다. 도우미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뭐하세요?”
준희가 도우미를 부르자, 화들짝 놀라는 도우미.
준희는 피식 웃었다. 도우미가 정말 아이의 반지를 훔치러 오다니. 도우미를 진심으로 믿었는데, 돈 앞에서 무너진 것이 웃기고 또 가슴이 아팠다.
“아니, 잠시만 뭐 놓고 온 게 있어서요.”
“네, 아이는 자니까 다녀오세요.” “네.”
도우미는 준희가 다른 곳을 보는 척을 하자 아이의 손가락에서 얼른 반지를 뺐다. 준희는 그걸 알면서도 그냥 두었다. 오빠가 어제 그럴 거라고 하더니 정말 그러는 것이 신기해서 그저 구경만 할 뿐이었다.
도우미는 반지를 가지고 서둘러 아래로 내려갔다. 준희는 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반지 가지고 갔어.”
도우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에는 재준이 여전히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도우미는 얼른 차에 타서 반지를 내밀었다.
“자요. 이게 있더라구요.”
“오, 정말 있었네.”
재준이 반지를 보며 웃었다. 기괴하다. 그도 반지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하지만, 반지는 회귀의 반지가 아니다. 그냥 철로 된 반지일 뿐이었다. 재준은 반지를 보고 뭔가 이상했지만, 굳이 확인하려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덜컥.
차 문이 열리고 박준수가 경찰과 함께 들이닥쳤다.
“이놈이 남의 물건을 훔쳐간 놈입니다!”
“뭐, 뭐야?”
“깍! 나는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에요.”
경찰들은 고재준과 도우미를 현장에서 체포하였다.
뒤에는 오재훈이 지켜보고 있었다.
준희가 나와서 두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CCTV에 다 찍혔고, 마침 우리도 이 현장을 봤습니다.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아니야. 뭐야 이게?”
“변명 마시고 서로 가시죠.”
경찰이 고재준을 끌고 가려는 그때, 고재준이 소리쳤다.
“젠장, 다 필요 없어!”
고재준은 갑자기 소리 지르더니 들고 있던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며 말했다.
“한 시간 전으로!”
박준수는 그걸 보고 혼자 킥킥대며 웃었다. 사람들은 고재준이 갑자기 하는 짓을 보고는 저마다 혀를 내둘렀다.
“왜 저래?” “미친*이네.”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지도 재준의 손가락에 들어가지 않는다. 재준은 억지로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넣었다.
“한 시간 전으로!”
그러자 박준수가 깔깔대며 웃었다.
“와하하하하. 코미디가 따로 없네.”
재준은 손가락에 반지가 들어가지 않는데다, 박준수가 낄낄대는 모습을 보고 그제야 반지가 가짜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재준이 정말 미친 것 같다고 수근거렸다. 모두가 자기를 보고 손가락질을 하는 그 상황 속.
재준은 그때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아마 그때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놔 이거! 너 이 새*! 사람을 가지고 놀아?” “남의 집에서 뭔가를 들고 나왔으면 벌을 받아야지.” “닥쳐! 이까짓 백 원짜리 반지 하나 들고 나왔다고 절도죄라고?”
그러자 경찰이 다시 재준을 끌고 나왔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현장에서 잡힌 거라 어쩔 수 없습니다. 서로 가시죠.”
경찰이 재준을 끌고 가는 상황, 모두 재준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불쌍하게도.
* * * * *
“고재준 씨, 이래가지고 나랑 손잡고 제대로 할 수나 있겠어?”
이 차장은 재준을 호되게 혼냈다.
재준은 요즘 정신을 좀 놓고 사는 사람 같았다. 해리가 너무 변해서 그런 것이었다. 이제 해리는 재준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재준을 만나면 늘 헤어지자고만 반복할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힘들어서 그럽니다.” “뭐가 힘든데? 회사?”
“아뇨, 해리 때문에…….”
“아…….”
이 차장은 자기가 그렇게 만든 것만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해리가 변한데 한몫 한 것은 맞으니까.
“박준수에게 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야. 반지 있어. 반드시 놈이 가지고 있어.” “하지만 박준수가 아는 사람 모두를 봤는데 반지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 작은 아이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요.”
재준의 말을 들은 이 차장이 웃었다. 반지를 공유할 방법이 또 생각난 것이다.
“하하, 그래 그거 참 좋은 생각 같았어. 아기는 회귀할 줄 모르니 아기한테 반지를 끼워두면 되는 거 아냐? 그 생각을 못했어. 지금이라도 애를 하나 더 만들어?” “애는 혼자 낳나요 뭐.”
이 차장은 그 말을 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재준이 해리에게 아기를 낳자고 졸라댔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반면 해리는 이 차장의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 기왕 낳을 거면 황제의 아이를 낳는다면서 말이다.
“반지가 들어온다면 애를 입양해서라도 그렇게 해야지.”
이 차장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리고 재준의 손에 절대 반지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반지를 어떻게 가져오시게요? 방법이 있을까요?”
“반지를 빼서 손에 끼게 만들어야지. 박준수 손에 말이야.”
박준수를 회귀하게 만들면 반지의 행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준수는 회귀 후 바로 강아지 장군이에게 반지를 끼워둔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심지어 노랑머리도 그것을 모른다.
“그렇죠. 그럼 이번에도 누굴 죽게 하는 겁니까?”
“뭐, 어차피 죽일 놈이니까 미리 연습을 해두어도 되겠지. 반지를 얻고 나서 제대로 죽이면 끝나니까.” “오재훈 말씀이시군요?” “그래, 오재훈을 죽여야겠어. 저번에 그 해결사 말고 제대로 된 사람을 구해봐.”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박준수가 반지를 또 감추어두면 아무 소용없는 거 아닙니까?” “내게 수가 있어.”
“무슨 수요?”
이 차장은 치아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