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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169화 (169/200)

169화. 만족을 모르는 여자(1)

“왜 그래요? 꿈꿨어요?”

준희가 오재훈을 안아주자 오재훈은 그제야 진정했다.

“내가 죽었는데, 그 기억이 너무 생생했어. 너무 아팠어. 사고가 나서 피가 터지고 차가 찌그러지며 내 몸도…….”

“그만, 지금 당신은 살아있는데요. 당신은 죽지 않았잖아요. 당신 죽으면, 당신 없으면 우리 아기와 나는 살 수 없어요.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 아내로 살 거야.”

“응, 그래. 나도 그럴 거야. 나도 당신 남편으로 살 거야.”

두 사람은 꼭 끌어안고 사랑을 확인했다. 사실 둘이 정해진 운명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운명보다 더 깊게 서로를 사랑했다. 인위적인 어떤 것도 둘을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두 사람의 딸, 그 딸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지금 두 사람은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딸을 사랑한다. 특히 오재훈은 딸에 대한 사랑이 극에 달해 있다. 사랑을 넘어선 사랑이 아닐까 싶다.

* * * * *

“여보, 나 진통 온 것 같아요. 배가 너무 아파.”

“어? 알았어요.”

“저기 가방에 준비 다 해두었으니 들고 가기만 하면 돼요.”

김설아는 출산 준비도 완벽하게 해 두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서둘러 김설아를 병원으로 옮겼다.

“아아아악!”

김설아가 소리 지르는 게 아니다. 내가 소리 지르는 것이다. 김설아가 내 머리털을 어찌나 세게 잡고 흔드는지 머리털이 한주먹 뜯겼다. 두피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머리털을 뽑다가 결국 아이가 나왔다. 아들이다.

“응애!”

아들, 내게도 자녀가 생기다니……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선정이와는 아이가 생긴 적이 있었지만, 그녀가 가서 아기를 지웠었다. 내 집도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정말 냉정하고 무서운 여자였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아이가 내 아이인지 그놈의 아이인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지금 아기가 태어났다.

“아, 정말 꼬물거려.”

그 작은 몸에 있을 건 다 있는 내 아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안고 있는 더 사랑스러운 아내. 내 삶은 회귀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삶이다. 행복함 그 자체였다. 지금 이 순간 전으로는 회귀의 반지를 돌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저들의 손에 반지가 들어가고 나서, 그다지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재훈 측에 사람을 붙여놓았는데,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하다. 오재훈도 나도 지금 너무 행복하기 때문에 더욱 불안했다.

* * * * *

해리는 김설아의 출산 소식을 보며 짜증이 솟구쳤다. 너무 예쁘게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니 질투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매니저를 부른 해리.

“김설아가 지금 출연료 얼마나 받지?”

“누님보다 조금 더 받을 걸요?” “그럼 나도 그만큼 안주면 출연 안 한다고 해.”

“네? 아니 그러면 안 됩니다. 지금 누님은 신인급이고, 김설아는 이미 히트작이 여러 개잖아요.” “내가 김설아보다 못한 게 뭐야? 연기로는 깔게 없다면서?” “아니, 그래도 김설아는 지금 탑 쓰리에 드는 연기자에요. 누님은 탑 텐에도…….”

매니저가 말을 하자마자 따귀를 때리는 해리.

짝.

매니저가 황당해서 보면, 또 다른 쪽 따귀를 때리려는 해리.

“지금 말 다했어? 너 죽고 싶구나?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잊었어?”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아무튼 김설아와 같은 출연료를 달라고 해. 아니면 어떤 작품도 출연하지 않겠다고 해.”

“네, 알겠습니다.”

매니저는 뺨을 부여잡고 집을 나섰다.

해리는 김설아가 나오는 장면을 다시 보면서 얼음을 부득부득 씹어댔다.

“내가 못할 것 같지? 너보다 더 잘 나갈 거야. 두고 봐.”

해리는 그 후 몇 작품에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김설아와 같은 돈을 달라고 하는 바람에 출연이 무산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독립영화에 출연 제안이 왔다.

“독립영화 따위가 나를 캐스팅해?”

“아니 거기 김설아가 나온대요. 출연료 안 받고.”

“뭐? 돈을 왜 안 받아? 아주 잘나셨어.”

“누님이 주인공이고, 김설아가 조연이에요.”

“진짜? 내가 주인공이고 김설아가 조연 맞아? 정말이지?” “네, 김설아가 출산한지 얼마 안돼서 짧게 출연한데요. 감독이랑 친해서 우정출연 격인데, 분량이 좀 되더라고요.”

“그니까, 내가 주인공이고 김설아가 조연인데다가, 내 출연료가 더 많다는 거지?” “네, 그렇다니까요? 어때요? 할거죠?” “당연하지. 이제 역전되는 거잖아?”

역전은 아니지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 매니저. 그걸 말했다가는 또 따귀를 때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해리가 권력 실세의 애인이라는 사실은 회사 내에 알려진 비밀이다. 그런 해리에게 밉보였다가는 나중에 큰 화를 입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매니저는 너무 화가 나지만 애써 그걸 참는 중이었다. 회사 내에서 (양해리를 견뎌내면 모든 연예인을 견딜 수 있다)라는 어록까지 생겨나는 중이었다. 그만큼 해리의 안하무인이 도를 넘어선 상태였다.

“이제 누님이 탑 쓰리에 들어가시는 거죠.”

매니저는 목구멍으로 차마 나오지 않았던 말을 겨우 끄집어내었다. 매일 아첨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마음에도 없는 말이 어려운 매니저였다. 그래서일까? 그의 성격 덕분에 해리가 깊은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해리가 뿌린 대로 거두게 된다.

그렇게 해리는 김설아를 만나러 영화 촬영장으로 향했다. 샤워 두 시간, 메이크업 세 시간, 머리 세 시간을 들여서 투머치하게 꾸미고서 말이다.

* * * * *

“어서 오세요, 양해리 씨.”

김설아는 먼저 나와서 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설아는 출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거의 처녀 적 몸매를 하고 있었다. 피부나 얼굴은 얼마나 고운지 손대면 미끄러질 정도였다. 거기에 반해 해리는 너무 과하게 꾸미고 나온 티가 팍팍 났다. 누가 봐도 그러했다. 해리는 거만하게 김설아를 쳐다보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김설아 씨.”

해리는 김설아를 의식하며 행동했지만, 김설아는 해리를 의식하지 않았다.

“김설아 씨가 해리 씨의 언니로, 트라우마를 심어주는 인물이에요. 해리 씨가 잘 소화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감독은 해리를 아주 많이 칭찬해 주었다. 앞서 해리의 소속사 사장이 김설아보다 해리를 더 낫다고 해줘야 잘 할 거라고 신신당부하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감독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소속사 사장이 제작비까지 준다고 해서 겨우겨우 참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촬영이 이어지고 있는데, 웬 차량이 촬영지로 들어왔다. 차를 본 김설아가 반갑게 웃었다.

“왔네.”

* * * * *

응애. 응애.

아기가 운다. 보모 아주머니가 아기를 봐주긴 하지만, 아기가 너무 운다. 아기는 잘 때가 가장 예쁘다.

“애가 젖병을 안 물어요. 엄마젖을 먹던 습관 때문에 젖병을 아예 안 물려고 하네요.”

엄마 젖만 물던 아기들은 인공 젖병을 잘 물지 않는다. 젖을 떼는 과정이 이래서 더욱 어렵게 되곤 한다.

“어떡하죠? 애가 밥을 안 먹은 지 꽤 되었죠?”

아기는 3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어야 하는데, 지금 3시간은 족히 넘은 상태였다. “네, 엄마가 와서 젖을 먹이고 가셨으면 좋겠는데.”

“아, 지금 영화 촬영 중이라서요.”

“촬영 중이라도 젖이 불었을 거예요. 그것도 빼주긴 해야 하거든요.”

“아, 젖이 부는군요. 그럼 애를 데리고 가야하나?”

“네, 애를 좀 데리고 가서 젖을 먹이고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촬영이 얼마나 있죠?”

“일주일?”

“그동안 회장님이 데리고 젖을 먹이고 3시간은 제가 돌보고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제가 아기 케어는 정말 잘할 수 있는데, 엄마 젖 먹는 애들은 좀 힘들어요. 거기다 이 애는 다른 애보다 더 엄마를 찾네요.”

우리 아기는 엄마를 너무 좋아한다. 애가 사생팬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엄마 손을 잡을 새도 없다. 어쩔 때는 서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같이 가시죠. 캠핑카를 구해서 가면 아기가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겁니다. 거기서 애 보고 3시간에 한 번씩 젖만 먹이면 되니까요.”

“오호, 돈 많으신 회장님이라 클래스가 다르네요. 그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아기를 데리고 캠핑카까지 구입해 버렸다. 김설아가 촬영장에 가고 5시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촬영장에 도착하기 전, 김설아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가긴 했지만, 모두에게 폐가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다들 우리의 상황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단 한 명만 빼고 말이다.

김설아는 아기를 받자마자 능숙하게 젖을 물렸다. 아기는 너무 배가 고팠던지 허겁지겁 젖을 먹었다. 그렇게 3시간 촬영하고 젖을 먹이고 하는 동안 하루해가 다 갔다. 나는 이미 일주일 휴가를 내어 논 상태였다.

촬영장에서 서로 아이를 돌보며 알콩달콩 지내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질투를 자아냈다. 특히나 양해리에게 가장 큰 질투를 불러일으켰다.

* * * * *

해리는 박준수가 아이를 안고 캠핑카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착각했다. 마치 자기에게 오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런 비슷한 장면을 꿈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 박준수가 웃고 떠들고,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모든 장면들이 꿈에서 이어지기도 했다. 그게 진짜 꿈인지, 아니면 회귀의 기억인지 모른다. 그냥 계속해서 꿈에 박준수가 나왔다.

나중에는 박준수의 아기까지 안고 있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회귀의 기억이 망상과 겹쳐지고 있는 것이다. 해리는 그 망상까지도 자신의 기억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박준수와 아기를 낳고 살면서 배우로 성공하는 김설아의 모습을 자신의 모습이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내 삶이었어. 원래 내 것이었어.”

해리는 김설아를 보면서 질투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아이를 낳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날 저녁, 이 차장을 만난 해리는 그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기를 낳고 싶어. 당신의 아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네가 내 아이를 낳으면 나는 대통령이 되질 못해. 너와 나의 사이는 한낮 스캔들에서 기정사실로 되는 거야. 아이가 증거가 되어서 나를 얽매일 거라고!”

“하…… 그렇긴 하겠네.”

“그냥 지금처럼 살자. 너는 왜 만족을 모르니?” “아무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니까.”

“그건 박준수도 못한 일이야.” “아니, 박준수는 나를 만족시켰었어.”

“그런데 너는 왜 그를 버리고 고재준을 만난거지?”

“내가? 내가 그랬대?”

“그래, 네가 박준수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서 회귀했다고 했어. 그런데 그가 고재준을 원수라고 한다. 그게 무슨 뜻이야? 니가 고재준이랑 바람을 피운 거겠지. 그래서 니들 둘을 박준수가 싫어하는 거고.”

“그럼 결국 모든 게 고재준 때문이네?” “뭐? 그게 뭘 또 그런 식으로 튀냐?”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해리가 그렇게 말하며 나갔다. 고재준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면서.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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