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무전유죄 유전무죄
나는 이 차장의 비리를 차곡차곡 모아서 양 기자에게 가져갔다.
“우와, 이걸 언제 이렇게 다 모았수?”
양 기자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2년 동안 오늘을 위해 칼을 간 보람이 있었다.
“힘들게 모았죠. 아니 죽자 살자 모았습니다.”
“대단해. 기자해도 되겠어, 칭찬해!”
“암튼 이거면 이 차장 그 자식 손, 발 묶어둘 수 있겠죠?”
양 기자는 자료를 보며 놀랐지만, 이 차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에는 회의적이었다. 워낙 잘 빠져나가는 놈이고, 그를 잡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전부 역으로 잡혀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놈을 잡으려고 한 사람이 없었던 것 같수?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시도 했지만 늘 막혔어. 놈은 세상을 주무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그 있잖아? 반지의 제왕의 절대 반지 같은 그런 힘을 지닌 느낌이 드는 거유. 내 혼자만의 착각인거겠지?”
양 기자의 촉은 여전히 대단했다. 이 차장에게 절대 반지가 있는 것이 맞으니까.
“그런 비슷한 힘을 가진 것 같다는 데는 저도 동의합니다. 놈은 꺾을 수 없는 무언가를 지녔어요.”
“후, 그렇지? 나만 느낀 게 아니었수. 그래서 걱정이란 말이지. 이렇게 자료를 준비했지만, 이게 소용없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수? 경찰에 고발하더라도, 경찰 서장이 커트하면 아무 소용없으니까. 강철수 그놈도 그렇게 했는데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겠수?”
강철수, 그가 그렇게 하긴 했었다. 그 강직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그리 변하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멀쩡할까? 하는 걱정이 들긴 했다. 하지만 강철수는 내게 빚이 있다. 무조건 한 번은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지 않았던가?
“한번은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강철수가요.”
“에이, 그래도 난 안 믿기는데?”
“그 양반 워낙 좋은 사람이었잖아요.”
“그럼 한 번 넣어보든가. 못미더우니 자료는 복사 본으로 가져가고.”
“네, 그렇게 하지요.”
그렇게 우리는 이 차장을 잡을 자료를 들고서 강철수가 있는 경찰서로 향했다.
* * * * *
경찰서에는 강철수가 없었다. 이미 퇴근하고 난 뒤였다.
“아, 계급이 높으면 퇴근을 맘대로 한다니까?”
양 기자가 투덜대며 말했다. 사실 양 기자도 회사 내에서는 직급이 높은 편이다. 그걸 티내지 않고 한결같이 열심인 양 기자가 이상한 것이지. 사실 초심을 지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대로 돌아가면 하루 더 연장되는 건데, 조만간 동생부부의 사고가 터지는 날이니 빨리 진행해야 했다.
“어디로 가면 그 양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누구십니까? 누구인지 말씀해주시면 연락 후 알려드리도록 하죠.”
강철수의 부하로 보이는 자가 우리를 경계하며 말했다.
“난 양 기자유.”
“전 박준수라고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남자는 곧 우리에게 와서 무례를 사과한다며 강철수의 집을 알려주었다.
사실 강철수가 결혼한다고 해서 거기 갔다가 한 번도 강철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꼴 보기 싫어서. 그건 양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 다 강철수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다.
멀리서 강철수가 유치원 차에서 내린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얼른 강철수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유?”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 준수 씨.”
“네, 잘 지내고 계시네요.”
어색한 인사 뒤, 양 기자가 급히 본론부터 꺼냈다. 아파트 앞 공원 벤치에 앉은 세 사람.
“이창민이라고 알쥬? 얼마 전에 서울시장 나온 양반?”
“네, 알죠.”
“그 양반을 좀 잡아야 하는데, 협조가 필요해.”
“흠, 그 대단한 양반을 잡아요? 무슨 수로?”
역시나 강철수는 이번 일에 손을 대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잘못하면 직장에서 잘리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이 무너질지도 모를 일이니까.
“전처럼 준비는 이미 다 끝난 상태입니다. 아니 전보다 더 많은 물증을 확보했어요. 숟가락만 얹으시면 됩니다.”
“숟가락만 얹었다가 목구멍이 막히면 어쩝니까?”
“거봐, 내가 이놈 안 된다고 했잖아.”
양 기자는 화를 내며 돌아섰다. 양 기자를 보고 강철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둘이 한때는 막역한 사이였는데, 서로에게 적대적인 사이가 되어버렸다.
“잡아서 재판까지 안가도 됩니다.” “뭐?”
“야 인마, 그건 아니지.”
“제가 뭔가를 하는 일이 있는데, 그거를 막지만 못하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 이 차장을 손봐줄 수 있거든요.”
“대체 그게 뭔 소린지?”
“나도 뭔 소린지 모르겄슈.”
나는 일단 동생 부부를 살릴 것이다. 하지만, 곧 놈이 회귀의 반지를 사용해서 동생 부부를 죽이려 할 것이다. 그러니 그걸 못하게 막으려면 놈을 잠시라도 묶어두어야 했다. 거기다. 내가 회귀의 반지를 사용한 것을 안다면 이 차장이 또 사람을 시켜서 나의 반지를 빼앗으려 할 것이다. 그게 그렇게 되게 놔둘 수 없었다.
이 차장은 반지를 직접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면 나처럼 누군가가 반지를 가지고 있고, 원할 때마다 빼서 쓸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를 감옥에 넣어두면 반지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우리가 이 차장의 집을 수색해서 반지를 가져오면 된다. 이 차장의 손과 발을 묶어둔 상태에서 그의 반지를 빼앗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반지를 빼앗고 오재훈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면, 이 차장은 힘을 잃을 것이다. 그때, 놈을 혼내주면 된다. 지금은 아무리 해도 이 차장을 잡을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아무튼 놈을 잠시라도 감옥에 넣어두면 일이 쉽게 풀린다는 이야기에요.”
“말이 쉽지. 단 며칠 잡아둔다고 그놈의 손발을 묶을 수 있슈?”
“네, 일단 해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너는 그 며칠 잡아두겠다고 2년을 고생한 거유? 그걸 알고도?”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놈이 우리 동생을 노리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뭐? 진짜 돌아이가 따로 없슈. 그놈이 정권을 잡아봐! 세상이 어찌 돌아가겄슈?”
“그니까 우리가 미리 막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놈이 세상을 미쳐 날뛰게 하기 전에 말이에요.”
그러자 강철수가 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시간이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허락해야 그것도 가능한 거 아닌가? 나는 앞서 말했듯이 여기 끼어들 상황이 아닌데?”
그러자 양 기자가 강철수의 멱살을 쥐었다. 내가 겨우 뜯어말렸다.
“니놈 그러다가 큰코다쳐! 내가 가만있을 것 같수?”
“어허, 이러지 마시죠.”
“약속 지키셔야죠. 저랑 한 약속이요.”
“뭐?”
강철수가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한번은 내 부탁 들어준다고 했잖습니까? 그걸 지금 지키라는 말이에요.” “난 곤란한데?”
양 기자가 급기야 주먹을 날렸다.
다행히 가뿐하게 피하는 강철수. “이거 봐!”
“내가 곤란하다고 했으니 다른 경찰에게 부탁해두면 되는 거 아닙니까? 경찰서에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정말이죠?”
“휴, 최소한의 양심은 있군.”
강철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애를 키워보니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그동안 미안했어요. 앞으로 좀 더 착하게 살 테니 그간의 일들은 잊어주세요.”
“반쯤 걸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양 기자는 강철수의 의중을 대번에 알아챘다. 강철수는 승진은 하고 싶지만 착하게는 살고 싶은 그런 상태였다. 언제든지 배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네네, 그냥 이번에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 “가만히만 계슈. 나도 그걸로 족하우.”
“쳇, 그러시죠. 암튼 미리 말해둘 테니 가보세요.”
그렇게 강철수의 주선(?)으로 경찰서에 다시 갔다.
문제는 검찰의 승인이었다.
* * * * *
다행히 준희가 아직 검사로 있어서 담당검사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이거 이러면 곤란합니다. 박준희 씨 부탁으로 만나긴 하지만, 사적으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는 그러면서도 뒤로 받을 건 다 받아 처먹는 비리검사다. 준희도 그놈이 그런 놈이라고 미리 말해주었다. 사실 너무 강직한 사람이라면 더 힘든 상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장 승인 해주시죠. 딱 봐도 이창민이가 잘못한 거잖아요.”
“근데 우리도 예의라는 게 있거든요. 이 차장님 여기 나갔어도 우리 선배잖아요. 우리가 이런 식으로 은혜를 갚으면 안 되지. 거기다 준희는 이 차장님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잖아요. 이거 하극상 아닙니까? 박 검사가 어떻게 이럽니까?”
“그니까 잠깐만 허락하시면 됩니다. 잡아서 압수수색 영장만 받고 수색하고, 잡아넣을지 말지는 그쪽에서 결정하세요. 우리는 이 증거들이 사실인 것만 밝혀내면 됩니다.”
“잡았다가 금방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지요.”
그렇게 겨우겨우 경찰과 검사를 설득해서 이 차장에게 영장이 발부되었다. 누가 봐도 잘못을 한 사람인데, 잡아넣는데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돈과 빽이 있는 사람은 뭔 짓을 해도 용서가 되는 이런 세상이 참 역겹게 느껴졌다. 아울러 나도 돈이 있고 빽이 있을지라도 절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살려고 이 먼 길을 오진 않았으니까.”
쓰레기로 살려고 회귀를 한 것이 아니니, 나만큼은 사람답게 살아야겠다. 그래서 꼭 이 차장을 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 * * *
디데이, 이 차장에 압수수색 영장이 떨어지고 그의 사무실과 집에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이 차장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랐지만, 태연하게 대처했다.
나는 저들의 뒤에 숨어서 몰래 이 차장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가 당장에 반지를 사용하면 그를 막아야하니까.
이 차장은 의외로 조용히 따라나섰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중에 안 이야기인데, 그 검사가 미리 언질을 해주었다고 했다. 이틀만 넣고 바로 빼준다는 말과 함께.
이 차장이 끌려가는 것을 보며, 시원한 냉수를 마시는 듯 머릿속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 차장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사람들 사이로 몰래 들어가서 같이 집을 수색했다. 아 물론 경찰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 상태였다.
이 차장의 집과 그의 사무실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반지만.
이 차장의 집을 수색하자 꽤 많은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간 이 차장이 저지른 비리 같은 것들이 집에 다 있는 것이다. 그의 사건은 생각보다 훨씬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야말로 난리가 난 것이다. 서울시장까지 하려던 이 차장의 비리는 급기야 이창민 게이트로 불려지며 정치와 경제계에 피바람을 몰고 왔다.
이 차장이 그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것은 그가 반지로 다시 돌려놓을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막을 것이다. 이제 놈은 독안에 든 쥐다. 하지만 당장 반지가 없다. 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때였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강철수였다.
“아주 대형 사고를 치셨어?”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창민 측에서 변호사를 신청했는데, 그에게 뭔가를 가져오라고 시켰다는데? 그때 뭔가를 가져오라고 시키면 연락하라고 했잖아.”
“그랬죠. 놈은 지금 어디로 갔습니까?”
“어, 그 있잖아. 우양 고아원인가? 거기 원장에게 갔다는데?”
“앗! 네 알겠습니다.”
고아원이라?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