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이차장의 반격(1)
“나 나왔다는 소식 못 들었어?”
이 차장이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해리였다. 해리는 이 차장이 감옥에 간 이후 우울증에 걸려서 밖에 나오지도 않고 있었다. 해리의 뒤를 봐주던 사람이 이 차장이라서 해리가 겪은 고초가 많았다.
하고 있던 CF에서 갑자기 잘리기도 하고, 대본 리딩까지 했던 드라마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이미 다 찍어놓은 영화가 갑자기 개봉 불가 판정을 받았다. 우울증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래서 해리는 TV도 보지 않고 살았다. 재준은 그런 해리가 너무 불안해서 사람을 여럿 붙여놓았었다.
“어쩔 거야? 나 죽고 싶다고!”
“죽다니, 니가 죽으면 나 어찌 살라고.”
해리는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 차장의 얼굴을 보니 우울증이 조금 가시는 듯 했다. 해리가 태어나서 가장 사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언코 이 차장이라고 할 것이다. 그동안은 전부 거짓 사랑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 차장을 깊이 사랑한 해리.
“내가 다 돌려놓을 테니 걱정 마. 우리 애기 얼굴이 많이 상했네.”
이 차장도 해리를 사랑하지만, 욕심을 접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떻게 돌려놓을 거야? 반지?” “응, 박준수가 지금 반지를 갖고 있을 거야. 놈이 스스로 반지를 가져오게 만들어야지.”
앞서 이 차장은 박준수의 반지를 찾으려고 그리 애를 썼지만 실패했었다. 박준수가 반지를 어디에 숨겼는지는 몰라도 분명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회귀할 때 느끼는 두통을 겪었으니까.
“어떻게?”
“니가 사람 좀 구해봐. 아이를 납치해야 하거든.”
아이를 납치하면 박준수가 순순히 반지를 가져올 것이다. 이 차장도 아이가 있는 몸이니 애비라면 분명 그럴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다.
“뭐? 아으 그걸 어떻게 해?”
“그니까 사람만 나한테 보내라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응, 알겠어. 꼭 해결해야 해? 나 정말 힘들었어.” “걱정 말고 가봐.”
해리는 알았다고 하고 돌아갔다. 다음날, 해리가 구한 업자가 이 차장을 찾아왔다. 사실 재준이 구해준 사람이었다.
“이 아이들 중 놈의 친애를 납치해야 해. 얘 말이야.”
이 차장은 사진 속 박준수의 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박준수가 요즘 아주 바쁘다고 하니까 쉽게 납치할 수 있을 거야. 납치해서 잘 데리고 있다가 내가 말하면 데려다 주면 돼.”
“그게 끝인가요? 애를 돌봐주라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뭐 그런 셈이지. 암튼 당장 시행했으면 좋겠는데?” “그러죠. 돈을 꽤 많이 지불하셔서 신속하게 진행하겠습니다.”
재준은 순전히 해리의 부탁인 줄 알고 돈을 아주 많이 지불했다. 덕분에 놈은 신속하게 박준수의 아이를 납치하였다. 아주 빠르고 정확하고 치밀한 놈이었다.
* * * * *
“어떻게 해! 우리 아이를 데리고 갔어요! 우리 아이를!”
김설아가 울며불며 내게 달려왔다. 납치범은 경찰에 알리면 아이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편지를 남기고 갔다. 김설아는 편지를 들고 고민하다가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울지 마요. 그만 진정해요. 편지를 좀 줘 봐요.”
나는 이 차장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뭔 일을 꾸밀 거라고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각별히 조심하려는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마도 이 일은 뒤에 이 차장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고, 편지에는 그 관련된 글이 써져있을 것이다.
“대체 누가 이런 거예요?”
“걱정 말아요. 아이는 무사할 거예요.”
편지에는 경찰에 알리지 말라는 말만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뒷장에 이 차장의 글이 적혀있었다.
(아이는 무사하다. 반지를 들고 오면 바로 보내줄 것. 반지를 이용해서 막아도 또 시도할 것.)
이 차장이 시킨 일이 맞았다. 목적은 내가 직접 반지를 들고 오는 것이다. 하긴 그래야 놈이 반지를 사용할 수 있겠지. 내가 강아지의 발목에 반지를 숨기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이 차장이 내 반지를 찾아내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오늘 중으로 보내준다니까 울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요.”
“정말이에요? 여기 그런 내용이 적혀 있어요?”
김설아가 뒤늦게 편지를 살펴보려고 했지만, 내가 그걸 막았다. 반지 따위에 아이를 납치한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을 테니까. 이 일은 나만 알고 있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가서 기다리고 있어요. 걱정 말고.”
“알았어요. 경찰에 알리지 않는 게 맞는 거겠죠?”
김설아는 경찰에 알리려고 수없이 생각했지만, 우선 내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럼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가서 좀 쉬어요.”
김설아는 계속 가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겨우 돌아갔다. 나는 김설아에게 자스민차까지 먹여가며 겨우 달랬다. 평소 같으면 그녀의 해안이 도움 될 것이지만, 이번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차장이 왜 이러는지 모를 테니까.
나는 김설아를 바래다주고는 장군이에게 향했다.
장군이는 최근 매우 외로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 아주 어여쁜 암컷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그 이후 장군이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었다. 암컷 강아지랑 집안을 구석구석으로 숨어들어가는 것이다. 대체 뭔 짓거리를 하는지……
김설아는 아이가 없어진 마당에 장군이를 찾아 헤매는 나를 보고 화가 나서 소리쳤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애를 찾아야지 강아지를 찾아다니는 건가요?” “아, 그게 강아지가 중요한 것을 물고 가서 그래요. 범인을 만나려면 필요한 거요.”
“휴, 정말이에요? 그럼 기다려요.”
김설아는 눈물을 닦고서 장군이를 찾아왔다. 아무래도 나보다 김설아가 장군이의 행적을 잘 알고 있어서 더 빠르게 찾아올 수 있었다.
“여기 뭔가 물고 있긴 하네요. 자요. 빨리 좀 가라구요.”
김설아가 장군이를 내밀자 장군이가 뭔가 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다. 하지만 그걸 반갑게 가져와야 김설아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고 니가 이걸 왜 물고 있어? 일단 우리 가자.”
“어딜 가요? 개를 데리고?” “네. 얘가 필요합니다.”
장군이를 데리고 서둘러 나가는데, 그 애인인 공주가 따라 나와서 낑낑대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급히 나섰다. 김설아는 여유 있는 내 태도에 매우 화가 났지만 딱히 티를 내진 않았다.
“자, 반지를…….”
나는 장군이의 반지를 들고 가려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반지를 빼앗기면 이 차장이 다시 독주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곤란하다. 놈을 어떻게 망하게 했는데, 이대로 포기하는 것은 이르다.
나는 장군이의 반지를 손에 끼고 하나 더 복사했다. 그걸 공주에게 끼우면 복제가 완료된다. 그리고 이 차장에게 반지를 그냥 가져가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내 계산에 따르면 이 차장의 목숨값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감옥에 갇히기 전으로 돌아가려면 꽤 많이 앞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때 목숨값이 꽤나 깎일 것이다.
“이 차장도 김주원처럼 될 거야. 아니 김주원은 현재 멈추었지만, 이 차장은 자기가 멈춰야 할 타이밍도 모를 테지.”
내가 아무리 그를 잡아 족쳐도 스스로 망하는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이 차장이 모르는 사실 한 가지. 회귀 버스를 이용하면 버스를 태운자의 목숨만큼 사라진다는 것. 그걸 모르는 이 차장은 반드시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반지를 주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
* * * * *
“으흐흐, 반지 이리 줘.”
이 차장이 반지를 보자마자 입맛을 다셨다. 마치 반지의 제왕 골룸을 보는 듯 했다. 반지는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이 차장이 내 손가락을 만지려고 하자 얼른 손을 치웠다.
“먼저 전화를 해. 전화해서 아이를 바래다주는 걸 확인하고 가져가라고.”
“반지 스스로 사라지거나 그러진 않겠지?”
앞서 유모가 가져왔던 반지가 사라진 것을 목도했던 이 차장이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때는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내 손가락에 끼워진 상태잖아. 바로 전달하면 아무 문제없어.”
“그래, 그럼 바로 전화하지.”
이 차장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 차장의 전화를 받은 남자는 아이를 무사히 집에 바래다주었다. 꼬박 한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한 시간 뒤, 곧바로 김설아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아이가 돌아왔어요!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
“그래요. 내가 잘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요. 이제 아무 일 없을 테니 걱정 말고 내가 돌아갈 때까지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고.”
“알았어요. 빨리 와요.”
전화를 끊자마자 이 차장이 내 손가락을 잡아끌었다. 그는 내 손가락에 낀 반지를 휙 빼앗아 들었다.
“너 나 따라서 회귀하지 마. 너 이제 나가!”
“알았습니다. 혼자 계시던지요.”
이 차장은 내가 자길 따라서 회귀 버스에 탈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사실 그럴까도 생각했는데 놈이 눈치가 빨라서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 차장은 다시 회귀를 하게 된다.
내가 회귀 버스를 탔더라면 이 차장의 목숨이 사라졌을 텐데, 아쉽게도 이번에 그를 없애는 것은 불발이었다.
* * * * *
이 차장이 회귀하고, 감옥에 갔던 일은 없던 일이 되었다. 놈이 좀 더 쓴맛을 보길 바랬지만 할 수 없었다.
나는 장군이 애인에게 끼워줬던 반지를 다시 장군이에게 끼워놓았다. 내게 반지가 하나 있고, 이 차장에게도 반지가 있는 상황이다. 그도 아이를 이용해서 반지를 보관할 테니 그와 내가 동일하게 힘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 차장은 회귀 후 또 회귀를 하지 않은 듯 했다. 그저 자기가 차기 서울시장이 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조만간 치러질 선거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많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사장과 함께 방송국을 성공적으로 개설했다. 역시 처음부터 주목을 받는 일은 불가능했다. 저질 방송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하고, 한 피디는 조작방송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 사장은 벽을 붙잡고 서서 소리 질렀다.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내가 그때 그냥 죽는 게 나았을 뻔했어.” “그러지 마세요. 앞으로 잘 될 거라니까요?”
“돈만 버리고 있잖아. 너 아니면 어쩔 뻔했어? 나는 진짜 돌아가실 것 같다. 흰머리 좀 봐봐. 곧 백발이 되겠어.” “좀만 더 버텨봐요. 우리 이제 시작했잖아요.” “응, 어쨌든 난 너만 믿는다.”
“네, 걱정 마세요.”
나는 이렇게 꼬박 2년 동안 이 사장의 징징거림을 들어야 할 줄은 몰랐다. 아주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 * * * *
선거를 앞둔 어느 날, 이 차장이 소리 질렀다.
“대체 왜 오재훈이를 못 넘는 거냐고!”
이 차장은 선거를 앞두고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자기가 오재훈보다 한 수 아래인 것을 보고 화가 났다. 아무리 애를 써도 오재훈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렇게까지는 안하려고 했지만.”
이 차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 차장이 지금까지 한 악독한 짓보다 더한 짓을 결심한 순간이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