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가자 1988! (1)
“재훈 씨에게 준다면서. 그 반지가 뭐야? 회귀라는 것이 정말 내가 생각한 그것이야? 과거로 가는 거야?”
준희는 그때까지도 반신반의했다. 회귀라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하지만 오재훈이 가겠다고 한 이상 본인도 믿어야 했다. 오재훈이 가면 김설아와 결혼할지도 모르니까. 가서 지켜야만 했다.
“어, 그래.” “그럼 나도 가야해. 그 사람에게만 기회를 주면 안 되지. 내게도 기회를 줘.”
준희는 오재훈에게 진심이었다. 그를 사랑하는 준희의 마음은 어느 일반적인 사랑과 달랐다. 사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김설아를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 진심이었지만, 그녀를 놓아주어야만 했다.
준희가 같이 회귀를 한다면, 어쩌면 김설아를 놓아주지 않아도 될까? 그렇다면 이건 내게도 좋은 기회다.
“반지는 하나 뿐이야. 니가 갈 수 있는 방법은 오재훈이 갈 때 같이 가는 것뿐이야.”
“그럼 그렇게라도 해줘. 난 꼭 가야 해. 우리 애기 살려야 해.”
준희가 회귀를 하려는 것은 꼭 오재훈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의 아이, 그 아이가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을 가장 원했다. 사실상 그것 때문에 가는 것이었다.
“그래, 가서 니가 꼭 오재훈을 만나고, 나도 설아 씨를 만나게 해줘.”
“알았어. 걱정 말고. 그럼 언제로 가면 되는 거야?” “어, 88년도로 가야 할 거야. 그때로 가게 될 거야.” “그럼 나 9살이네? 그때로 가도 딱히 할 일은 없겠어.” “왜? 생각보다 할 일이 많을 거야. 그때부터 지금까지 벌어질 사건들과 경제 상황들을 파악하고 가면, 니가 지금의 너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되었을지 모르지.” “그래, 근데 너무 오래 걸린다.” “뭐가?” “우리 아기 다시 만나려고 가는 건데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해.”
준희는 지갑 속 아이의 사진을 꺼내서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를 향한 준희의 사랑을 봐서는 절재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다행이다. 김설아와 헤어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준희와 나는 가서 해야 할 일들을 의논하였다.
* * * * *
오재훈을 만날 시간이 되었다.
오재훈은 나름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 스스로 정치자금을 마련할 비법까지 준비해 두었다.
준희는 오재훈이 온다는 장소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오재훈이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
꿀꺽.
“준비는 다 마친 거야?” “네, 이제 가면 됩니다.”
“가면 어찌할 생각이야? 미리 의논하고 가면 좋을 것 같은데.”
“일단 이 차장이 맡은 사건들을 제가 가로채야 하는데.”
“재훈 씨 그때는 사법고시 합격하지 않은 때 아닌가?”
“그렇죠. 사실 그때는 대학생 신분이었죠.”
“그럼 좀 힘들지도 모르겠는데? 우선 가자마자 사법고시를 보는 것이 어때?” “그래야겠네요. 이 차장에게 뭔가 보여주려면 나도 동등한 위치에 가야 할 것 같네요.”
“그래, 그렇게 하고, 이 차장의 어머니가 암에 걸리는 것을 막아야 해. 그래야 나와 인연이 없거든.”
“네, 그건 이 차장 어머니에게 그런 조언을 해줄 연기자를 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미리 건강 검진을 하게 해둔다면 그렇게까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날에 맞추어서 건강 검진을 하게 유도하면 된다.
“그래, 그리고 이 차장을 막을 방법은 또 없을까?”
“제가 이 차장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어서요.”
오재훈이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자, 숨어있던 준희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사법고시를 보면 끝나!”
“어? 준희야!”
“야! 너!”
“나도 당신이 우리 아기를 살리려고 회귀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응원하려고 왔어요.”
오재훈은 준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둘은 아직도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았다.
“고마워.”
“이 차장이 사법고시를 붙긴 했는데, 그게 맨 꼴찌로 붙었거든.”
준희는 이 차장과 같이 지내면서 그의 과거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사법고시에서 꼴찌로 붙은 것은 준희와 몇 명만 아는 사실이었다. “오호, 그래?” “그래서 재훈 씨가 그때 같이 시험을 본다면 한방에 놈을 끌어내릴 수가 있어요. 89년도에 사법고시를 보니까, 88년도로 가서 미리 시험 준비를 해놓고 같이 보는 거죠. 재훈 씨는 당연히 붙을 거니까, 그때 이 차장이 떨어지겠죠. 간발의 차이로.”
“그렇겠네.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겠어.”
“그럼 다음연도에 붙을지도 모르잖아.” “그래, 그치만 그때는 이 차장이 재훈 씨 아래야. 그만큼 다루기 쉬운 상대가 되는 거지.”
사법고시에는 기수가 있어서 한해라도 윗기수면 선배가 되는 거다. 즉 오재훈이 이차장의 선배가 되는 것이다.
“그렇구만. 그치만 이 차장이 어떻게든 박준수와 아는 사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 차장과 나는 꼭 만나야 하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이토록 질긴 인연을 이어왔으니 어쩌면.
“그니까 미리 박준수에게 가서 경고를 하는 거야. 이 차장에 관해서 미리 알려줘야지.”
나에게 미리 이 차장에 관해 말해주고 경계해야 하는 사람인걸 알려주면 최소한 그를 만나진 않을 것이다. 그때 당시 어린 상태겠지만 말귀는 알아들을 테지.
“그럼 반지를 건네는 일은 하지 않겠지.”
“그렇게 있다가 이 차장을 계속 갈구어서 지방으로 발령 보내면 끝이야.”
오재훈이 1년이라는 시간동안 열심히 올라간다면 승산이 있다. 그 당시 사건을 잘 알고 있을 테니 더 잘해낼 것이다.
“하긴 이 차장이 원래 검사에서 잘려. 그래서 그렇게 운건데 나는 엄마 때문에 운거라고 생각해서 그를 좋게 봤었거든.”
이 차장은 엄마가 암에 걸렸을 때, 지극정성으로 돌봤었다. 엄마를 살려내고 싶다고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그가 검사에서 잘리고 그것 때문에 엄마를 더 돌본 것은 몰랐다. 그래서 엄마와 지내느라고 정이 들어서 더 그런 것은 진정 몰랐던 일이었다.
“그래, 결국 이 차장은 사법고시를 늦게 패스하게 되는 거고, 그러면 재훈 씨보다 기수부터 딸리기 때문에 활개를 치지 못할 거야. 거기다 엄마는 아프지 않게 될 거고, 그래서 오빠랑 만나지 못할 거고, 만약 만난다고 해도 오빠가 그 자식을 싫어하도록 만들면 끝인 거야. 놈은 절대 회귀의 반지를 얻을 수 없게 되는 거지.”
“그래, 그렇게 되겠어.”
“그럼 그때 사법고시 정보를 얻어 와야 할 텐데. 내가 통과 못하면 곤란하니까.”
그러자 준희가 가져온 가방에서 종이뭉치를 꺼내서 건넸다. 그 당시 사법고시에서 나온 문제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거 마스터를 하고 가던지, 아님 답안지를 만들어서 손에 써서 가던지.”
“고마워 준희야.”
오재훈이 준희를 사랑스럽게 보자, 준희도 재훈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우리 아기 살리려는 거잖아. 우리 아기 꼭 살려야 하잖아.”
그러자 오재훈이 슬쩍 당황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준희는 그가 왜 그러는지 알았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았다. 오재훈은 원래 운명주의자로 김설아가 자기 운명인 것을 안 이상 그녀를 선택할 확률이 높았다. 그걸 알기에 준희가 따라 나서려는 것이다.
“그래, 우리 아기 꼭 살려야지.”
준희는 오재훈이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던지, 준희는 그를 만나서 설득하고 그를 자신의 남자로 다시 만들 것이다. 그래야 아기를 또 만나니까.
“꼭 살려줘. 부탁할게.”
“응.”
그렇게 두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나는 둘이 그러는 동안 장군이의 반지를 가져왔다.
“이제 이걸로 가. 반지는 가자마자 화장실 변기에 버려버려.” “네? 그건 가지고 있어야 나중에 써먹는 거 아닌가요?” “아니, 이 차장 같은 쓰레기의 손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이게 나아. 그냥 사라지는 것이 나아.”
“맞아. 그런 놈의 손에 들어가면 세상이 또 망가질 거야.”
“알겠습니다. 가자마자 변기에 버리도록 하지요.”
오재훈이 변기에 버리면 48시간 후 반지가 스스로 사라질 것이다. 변기 속에 있으니 누가 만질 염려도 없겠지.
“자 이제 가. 준희야 이 사람 갈 때까지 손 꼭 잡아주고.”
“응.”
오재훈이 회귀할 때 손을 잡고 있으면 같이, 같은 시간대로 회귀할 것이다. 물론 오재훈은 그걸 모르겠지만, 준희는 이미 알고 가는 것이다.
“이제 반지를 끼겠습니다.”
“그래, 잘 부탁해. 꼭 성공해줘.”
“걱정 마세요.”
“걱정 마 오빠.”
그렇게 두 사람이 같이 회귀하였다.
* * * * *
회귀의 통로를 지난 오재훈은 학교 캠퍼스에서 눈을 떴다.
“재훈 씨, 빨리 가자. 시험 늦겠어.”
그녀, 민주는 오재훈과 한참 썸을 타던 여자로, 조만간 사귀게 되는데 얼마 안가서 헤어진다. 그 일이 있고 오재훈이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공부까지 망쳐서 유급을 당하게 된다. 여러모로 좋지 않은 인연이었다.
“그래, 가자.”
재훈은 민주가 따라오던지 말던지 열심히 뛰어갔다. 민주는 자기랑 썸을 타던 남자가 갑자기 혼자 막 뛰어가는 것에 놀라 멍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뭐야? 같이 안가?”
재훈은 민주가 뭐라고 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정신없이 뛰어갔다. 시험에 늦으면 안 되니까.
시험 내용은 현 시점의 법이 나아가야 할 것들, 즉 지금 법이 가지고 있는 단점과 미래에 보완되었으면 하는 것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재훈은 다행히 그에 관한 여러 가지 방안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적을 수 있었다.
반면 민주는 아주 힘들게 써내려갔다. 평소 재훈이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그를 흘끔흘끔 쳐다보았지만, 재훈은 민주 쪽은 1초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시험을 마치고 나온 민주는 재훈에게 잔뜩 화가나 있었다.
재훈은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강의실을 나왔다.
“운명 어쩌고 하면서 나를 꼬드기더니, 이제 지겨웠나보지?”
민주는 재훈을 쏘아보면서 말했다. 재훈이 앞서 민주에게 운명이라고 이야기 했던 것들이 전부 거짓처럼 느껴진 모양이었다.
재훈은 자기가 운명을 그런 식으로 가볍게 치부한 것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민주가 삐지든 말든, 그게 더 신경 쓰인 것이다.
“내가 너한테 운명이라고 했다고? 와, 미안하다. 정말 실수였어.”
“뭐?”
민주는 너무 기분이 나빠서 재훈의 따귀를 갈겼다.
짝.
재훈은 민주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이것으로 민주를 정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화를 내지 않았다.
“뭐하는 거지?”
“너야말로 뭐하는 거지? 내가 그렇게 우숩니?” “아니, 그냥 미안하다고. 내가 실수한거니까. 이해해 달라는 거야.”
민주는 그 말에 더 상처받아서 뛰어갔다. 재훈의 친구인 정식이가 다가와서 재훈의 등짝을 때렸다.
짝.
“아!”
“너 민주 끝낸 거냐? 정말 후회하지 않겠어?”
“그래, 내 운명은 따로 있으니까.” “아이고, 어련하시겠어.”
재훈은 이런 곳에 정신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빨리 사법고시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조만간 신청 마감이 있어서 서둘러야했다.
“나 바빠서 먼저 가볼게.”
재훈은 서둘러서 서류를 작성하러 갔다. 그리고 얼마 뒤 신청을 하러 간 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만났다.
“어? 설마?”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