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복수는 나의 것(1)
“안녕하세요? 오재훈 씨?”
선을 보러나온 여자는 꽤 예쁘고 괜찮은 여자였다. 그 여자가 이 차장의 아내가 되는 여자라는 것이 문제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오재훈은 일단 선배와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그저 즐겁게 보내고 갈 생각이었다.
자리에 앉은 여인은 오재훈을 호감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재훈은 머리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기 때문이다. 첫인상으로 점수를 매기자면 거의 만점에 가까운 얼굴이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더욱.
“전 유옥희라고 합니다. 제 프로필에 대해선 이미 들으셨죠?”
여인, 유옥희는 이미 이런 자리에 익숙한 듯 말했다.
오재훈은 옥희에게 조금 호감이 생겼다. 지금 시대에 조금 앞서있는 느낌이 드는 패션부터, 자신감 있는 말투까지 모두 괜찮았다.
“오재훈입니다. 반갑습니다.”
“사법고시 수석 합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유옥희는 오재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왔다. 오재훈이 나온 기사들도 챙겨보았고, 그가 인터뷰한 사진들을 이미 많이 접하고 왔다. 사실 오재훈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 네. 그렇게 되었네요.”
오재훈이 수석 합격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마담뚜들에게 엄청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오재훈이 수석 합격하였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가 인터뷰한 사진이 돌면서 여자들은 물론 그 부모까지 난리가 난 것이다. 머리도 좋고 잘생기기까지 한 사위를 마다할 사람은 없으니까. 사실 사법고시 합격자 중 가장 잘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다들 난리가 난 것이다.
“인터뷰한 거 보고 꼭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유옥희는 지금까지 의무적으로 선 자리에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오재훈을 보고는 마음이 바뀌었다. 자기가 스스로 미용실에 가서 손질을 하고 올 정도였다.
사실 유옥희는 이 차장을 만났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이 차장이 그녀에게 엄청난 대쉬와 노력을 해서 두 사람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오재훈은 노력하나 하지 않고 여자가 달라붙는다. 이 차장이 이 사실을 안다면 참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알릴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아, 그거 사진이 너무 거만하게 나오지 않았나요? 저희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오재훈은 부모님도 중산층에 속한다. 사실상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다.
“부모님도 공무원이시라 저희 부모님이 아주 좋아하셔요. 오늘 당장 집에 데리고 오라고 성화에요.”
“네? 아유 무슨.”
오재훈은 사실 회귀 전에도 이런 대접을 받긴 했다. 그런데 이번 수석 합격으로 그 대접이 몇 배로 뛴 것이다. 인생이 약간 더 상승했다고 해야 하나? 요즘 그런 미묘한 상승을 많이 느끼는 중이었다.
“저는 아직 너무 어려서 당장 결혼할 마음이 없습니다.”
“저도 그건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서른 되면 노처녀라고 하도 그래서 나오긴 했지만, 여자가 서른 된다고 노처녀라는 것은 너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옥희는 사실 이 차장의 옆에서도 빛나는 사람이었다. 이 차장이 말하길, 자기보다 더 청와대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 대화를 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맞는 말씀입니다. 생각보다 저랑 코드가 맞으실 것 같네요.”
오재훈은 유옥희에게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이성적인 감정이 아닌, 친구 같은 호감이었다. 이 여자랑 대화를 나누면 뭔가 통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드네요. 호호.”
유옥희는 오재훈의 말에 얼굴이 발개졌다. 오재훈에게 한눈에 반한데다, 그가 호감이 있다는 뜻을 내비치자 너무 좋은 탓이었다. 사실 오재훈은 그런 이성적인 호감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걸 호감의 시그널로 받아들였다.
“우리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거죠?”
오재훈은 그렇게 선을 그었지만, 유혹희는 그걸 또 시그널로 받아들였다.
“그럼요. 자주 만나고 이야기 하면 좋죠.”
“와우, 좋은 친구를 만났어요. 말이 통하는 친구는 흔치 않거든요.”
그렇게 두 사람은 저녁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쪽은 완벽한 친구로, 한쪽은 완벽한 배우자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 * * * *
준희는 이 차장의 부모님 집에서 가져온 주소를 토대로 이 차장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이 차장은 고시원과 학원, 아르바이트를 오가며 철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노력은 가상하네.”
준희는 사실 이 차장을 좋아했었다. 자기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니 나쁜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자기 가족을 건드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그는 아이를 죽게 하지 않았던가? 그를 죽일 수는 없지만, 반지는 앗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그가 권력을 쥐게 하지만 않으면, 그게 복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토록 열심히 하는 이 차장을 망하게 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준희에게는 일말의 동정심이 있었다. 그래서 오빠인 박준수가 그를 싫어하게 만드는 것이 1차 목표였다.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거지.”
준희는 이 차장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치킨집을 알아내고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뒤, 아버지에게 치킨을 사달라고 졸랐다. 학원에서 본 시험 성적표를 보여주며 꼬셨다. 아버지는 준희가 뜻밖에 너무 좋은 성적을 받은 것을 알고 준희에게 마음을 열었다. 준희가 어쩌면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준희가 가자고 하는 그 치킨집에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여기가 그렇게 맛있는 집이라고?”
“네, 여기 치킨에서 향기가 엄청 나요. 이곳보다 맛있는 데는 없다니까요.”
아버지는 준희의 말을 이미 거의 믿는 눈치였다. 엄마도 준희에게 이미 마음을 다 열었다. 그 집에는 박준수만이 골칫거리였다. 그때는 그랬다. 사실 아버지는 치킨집도 셋이서만 오고 싶어 했다. 요새 박준수가 공부를 너무 안 해서 미운 까닭이었다. 박준수는 그것도 모르고 신이 나서 치킨냄새를 맡아댔다.
“우와 KFC냄새보다 더 맛난 냄새가 나.”
“쪽팔리게 떠들지 마.”
준희는 그 당시 박준수보다 나이가 많은(?)셈이니 그가 말하는 것이 너무 유치하게 들렸다. 그러니 초등학생들 떠드는 소리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뭐 시키시겠어요?”
이 차장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준희는 준수를 일부러 바깥쪽에 앉혔다. 그와 이 차장이 트러블이 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치킨 한 마리 주세요.”
그 당시는 치킨을 사먹는 것 자체가 굉장한 사치였다. 계란 하나도 먹기 어려운 시기이니 치킨을 먹는 것은 2021년의 랍스타를 먹는 것과 같다고 봐야 하겠다.
“한 마리 너무 적은 거 아닌가?” “됐어. 난 맥주나 먹지 뭐.”
그리고 잠시 뒤, 이 차장이 치킨을 들고 오고 있었다.
준희는 일부러 준수에게 시비를 걸었다.
“옆으로 좀 가. 쫍아.”
“니가 가. 니 살이나 좀 빼.”
“저리 안가?”
준희가 갑자기 준수를 밀었다. 둘 다 어린 나이이니 싸우는 것은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곳이 치킨집이고, 이 차장이 치킨을 가지고 오고 있는 순간이라는 것이 가장 핵심이었다.
“어??”
“아아악.”
준수가 준희에게 떠밀려 넘어졌고, 이 차장이 가지고 오던 치킨이 직격타를 맞았다.
치킨은 준수의 팔에 정통으로 맞고 하늘로 솟구쳤다. 사람들 저마다 치킨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다들 손에 하나씩만 잡았을 뿐이었다. 나머지 치킨들은 처참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아악! 내 치킨.”
“너 때문이잖아!”
“야, 이것들아!”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이차장도 어쩔 줄 몰라 하였다.
그때, 가게주인이 빠르게 다가와서 사과하였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이거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이 차장이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이 남자애가 밀쳤다구요!”
그들이 그러는 사이, 준희가 준수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 아저씨 치킨 한손으로 들었어. 저 아저씨도 잘못한 거야.”
“어? 그래?”
준수는 냅다 달려가서 아빠에게 말했다.
“저 아저씨가 한손으로 치킨을 들고 와서 그런 거라구요.”
“뭐? 너 정말 그랬어?”
주인이 이 차장을 다그쳤다.
이 차장은 정말 황당하다는 듯 준수를 보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손을 두 개 다 쓰는데 당연하죠! 이 아르바이트를 1년도 넘게 했는데 제가 실수한 적 있습니까?”
이 차장은 억울하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준수는 이대로 그가 빠져나간다면, 모든 덤탱이는 자기가 다 쓸 것을 염려하며 대꾸했다.
“그래도 아저씨가 실수한 거잖아요!”
“박준수! 너도 잘못한 거야!”
엄마가 준수를 다그치고, 아빠도 준수를 말렸다.
준희는 뒤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며 이 차장의 표정을 살폈다. 이 차장은 분명 준수에게 엄청 화가 난 상태였다.
“치킨 하나 더 해드릴 테니 참으시죠.”
주인이 우리와 이 차장을 말리고 나섰고, 일이 잘 해결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차장이 문제였다. 어린놈이 따박따박 말대꾸하고 자기를 몰아세운 일에 화가 난 것이다.
그건 준수도 마찬가지였다. 준희 말대로 아르바이트생이 잘못했으면 자기에게 화를 내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아빠가 매우 화가 나 있었다. 요즘 자기가 공부 못한다고 부쩍이나 화를 내던 아버지가 아닌가? 이렇게 사고를 친 채로 집에 간다면 분명 혼이 날 것이다. 그게 다 저 아르바이트생 때문인 것 같았다.
둘이 불꽃을 튀기며 서로를 흘겨보는 것을 본 준희는 일이 잘 된 것에 기뻐하며 아까 받아둔 치킨을 뜯고 있었다. 이제 노량진에서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한다면 분명 철천지원수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 * * * *
노량진, 사법고시생들의 개미지옥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진짜 여왕개미가 나오기도 하지만, 나머지는 계속해서 같은 일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 사이에 이 차장이 있다. 그는 원래 이번에 합격하는 것인데 오재훈의 개입으로 합격이 물 건너갔다. 하필이면 그날 물건을 떨어트리는 바람에 평소보다 훨씬 긴장하였다. 덕분에 합격은커녕 꼴찌를 할 뻔 한다. 그날부터 일이 꼬였는지, 얼마 전 사건으로 아르바이트도 잘렸다. 이번에 합격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엉망이 된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공부했고, 그 덕에 그는 예민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준희는 준수를 꼬셔서 노량진역에 도착했다.
“노량진에 아주 맛있는 닭꼬치를 팔잖아. 내가 사줄 테니까 한번만 가자.”
이렇게 말하며 겨우 준수를 데리고 온 준희.
준수와 준희는 사이좋게 닭꼬치를 나누어 먹고 집에 가려던 참이었다.
그 앞에 이 차장이 섰다. 아 물론 준희가 이 동선 (이 차장과 준수가 마주치는 동선)을 예상했었다. 그렇게 두 번째 만나게 된 이 차장과 박준수.
준수를 먼저 알아본 것은 이 차장이었다.
“어? 너 꼬맹이?” “앗, 저 아저씨는?”
두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서로를 째려보고 있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