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악연이었다(2)
이창민이 준수의 사건 담당인 것을 안 준희는 이대로 두면 준수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감옥에 갈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이창민은 일부러 더 수사하지 않게 해서 준수를 그냥 용의자로 집어넣을 계획을 짰다. 그는 참으로 악랄한 놈이었다. 그러니 회귀까지 해서 그를 막은 것이지만.
“검찰에 언제 넘어가나요?”
“내일 꼭 넘기랬어. 우리도 20대 초반의 창창한 애를 그렇게 넘기고 싶겠어? 위해서 하라고 하니까 하는 거지 뭐.”
검찰로 넘어가면 영락없이 준수가 용의자로 낙인 찍힌다. 무죄로 풀려난다고 해도 감옥에 있어야 한다. 그곳에 있으면 준수의 미래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대로 둘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진짜 용의자를 찾아주면 되는 거지요?”
“뭐? 니가? 니가 그걸 어떻게 해? 피해자도 박준수를 용의자로 지목했다니까?” “그 피해자가 어딨는데요?”
“가해자 가족에게 그걸 알려주는 경찰은 없어.”
“휴,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내일 다시 올게요. 최대한 늦게 검찰로 보내주시면 안되나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
준희는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며 안쓰러웠지만 티를 내지 않고 지켜보았다. 준희가 미래에 검사로 성장하는 모습을 혼자 상상하며 뿌듯하기까지 하였다.
“알겠다. 니가 올 때까지는 기다릴게. 대신 5시 전에는 와야 한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준희는 그 길로 태권도 경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문론 아버지는 뒤에서 몰래 쫓아갔다.
* * * * *
“어제 여기에서 태권도 경기가 있었죠? 그 대진표를 좀 보여주실래요?”
준희가 하도 당당하게 요구하자, 경기 담장자는 아무 의심 없이 대진표를 건네주었다. 준희는 대진표를 담장자에게 다시 보여주며 물었다.
“죄송하지만, 이 대진표에서 이긴 사람을 좀 체크해 주시겠어요?”
“이긴 사람? 그래 알았어.”
담당자는 아무 의심 없이 또 체크해 주었다. 준희는 대진표 아래에 있는 심판을 보여주며 다시 물었다.
“이 심판 아저씨 중 다친 사람이 있다면서요? 엄청 아프시겠다.”
“그래, 말마라. 김 씨 그 양반이 그렇게 당할 줄은 누가 알았겠어.”
준희는 대진표 아래에 심판 중 김 씨를 찾았다. 다른 사람은 최진철이라는 사람이었다.
“이 최진철 심판님이 맡으신 경기는 어떤 거지요?”
“그건 왜 묻지?”
담당자는 그제야 준희를 의심하며 말했다. 그러자 준희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리지만 예쁘고 상냥한 준희에게 막대하진 않을 거란 계산이었다.
담당자는 준희의 미소에 슬쩍 마음이 풀어져서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김 씨가 맡은 사람만 알려주지 말라고 했으니 괜찮겠지 뭐.”
김 씨가 지금 폭행을 당해서 병원에 있으니, 그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담당자는 김 씨가 아닌 최 씨에 대해 물으니 그걸 대답해줘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준희는 그래서 김 씨가 아닌 최 씨에 대해 물은 것이었다. 김 씨에 관해서는 알려주지 않을 거니까 최씨에 대해 물어야 대답을 들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최 씨가 맡은 대회는 여기, 여기, 여기야.”
담당자는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준희는 환하게 웃으며 담당자에게 애교를 떨었다.
“진짜 친절하세요. 이 경기장 사장님을 만나게 되면 꼭 아저씨에 대해 알려드려야겠어요.”
담당자는 준희의 말에 조금 놀랐다. 준희가 여기 사장님과 아는 사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준희는 여기 사장에 관해 전혀 모르지만, 담당자가 그렇게 받아들이길 원해서 그리 말했다.
“고마워라. 또 뭐가 궁금하지?”
“태권도 협회가 어디에 있죠?”
“어 그건 알려줄 수 있지.”
담당자는 친절하게 협회 위치를 알려주었다. 일단 이 심판은 태권도 심판이고, 태권도 협회에선 이 심판의 사고를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들에게 상관과도 같은 사람이니 뭔가를 보냈을 테지. 그래서 협회의 위치를 물어 본 것이었다. 준희는 담장자가 알려준 곳으로 바로 향했다.
* * * * *
태권도 협회에 간 준희는 협회장에게 바로 찾아갔다.
“박준수 도장에서 왔습니다. 협회장님께 긴히 전해드릴 것이 있습니다.”
협회장은 긴히 전할 것이 있다는 말을 알아듣고 만나주었다. 이 시국에 박준수 도장 측에서 긴히 전할 것은 돈밖에 없으니까.
협회장은 준희를 보자마자 봉투가 있는지 여부부터 살폈다.
준희는 일단 봉투를 가방에 넣어둔 상태였다.
“박준수라면 어제 그 사건의 범인이 아닌가?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거지?” “저는 그쪽 도장에서 왔습니다.”
준희는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건넸다.
협회장은 뭐냐고 묻지도 않고 봉투를 챙겨서는 안을 살펴보았다. 꽤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준희는 협회장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말을 이었다.
“그 심판이 계신 곳을 알고 싶습니다.”
“그분을 만나서 뭐하게요? 합의 해줄 양반이 아닌데?” “일단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과일 바구니도 건네주고요.” “그래, 그런데 내가 그쪽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는 것은 비밀로 해주었으면 해요.”
“네, 물론이죠. 당연히 비밀로 하겠습니다. 대신 하나만 협조해 주시겠어요?”
“그래요. 뭐.”
협회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메모를 적었다. 저런 놈에게 주는 돈이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준희는 협회장이 내민 메모를 보고 심판이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
준희는 과일 바구니를 들고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에 심판이 침대에 누워서 과자를 먹고 있었다. 전치 6주라더니 대체 어디가 아픈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상해 진단서도 조작이 된 듯 했다.
“누구십니까?”
심판은 경계를 하는 얼굴로 준희를 쳐다보았다. 준희는 살갑게 웃으면서 심판에게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어제 경기에 참여한 태권도장들을 대표하여 왔습니다.”
“아…….”
심판은 약간 귀찮은 얼굴이었다.
준희는 심판에게 과일 바구니를 내밀었다. 과일 바구니 중 가장 비싼 바구니였다. (그때는 바나나가 가장 환영받았다.) 바나나를 본 심판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뭐 이런 걸 다.”
“저 그리고 이건 그날 심판을 보신 도장들 중 몇 군데에서 병원비에 보태시라고…….”
준희는 가방에서 봉투 여섯 개를 꺼냈다. 다 그날 시합에서 진 도장이었다. 준희가 돈 봉투를 건네자 내심 좋아하는 심판.
“아유 괜찮은데 난.”
“얼른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고마워요.”
심판은 준희가 내민 봉투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중 준수가 속한 도장의 봉투를 본 심판이 인상을 찌푸렸다.
준희는 그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다시 봉투를 확인하던 심판이 한 봉투를 보고는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 봉투에는 햇빛 태권도라고 쓰여 있었다. 그 도장의 시합에서 편파 판정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자기가 편파 판정을 한 도장에서 돈이 왔으니 앞서 준수의 도장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즉, 그날 편파 판정을 한 도장이 햇빛 태권도이고, 그 도장의 선수가 진짜 범인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저 몇 가지 여쭤볼 것이 있는데 답변을 해주시겠습니까?”
준희는 친절한 표정으로 심판을 쳐다보았다. 심판은 앞서 받은 과일 바구니와 돈 봉투 때문에 준희를 아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래요. 물어봐요.”
준희는 은밀하게 가방 속 녹음기를 켰다.
“그날 경찰에서 조사를 나왔는데, 어떤 걸 질문하던가요?” “경찰? 그냥 범인을 제대로 봤냐? 뭐 그런 것과 인상착의 같은 거? 박준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거든. 도복 입혀놓으면 다 비슷하니까.”
“그럼 범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 하신 거네요?”
“그렇죠. 그랬다고 말 했는데 그냥 박준수를 범인이라고 단정 짓더라고요? 난 뭐 맞은 것만 보상해주면 되니까. 사실 박준수랑 합의할 생각도 있습니다. 근데 그쪽에서 연락이 안 오네?” “아, 근데 워낙 경찰이 합의를 이끄는 것이 정석인데, 이번에는 그런걸 아예 안한다는 말씀이시죠?”
“맞아요. 폭행 사건은 무조건 합의부터 하는 게 맞잖아요? 근데 그게 없어. 나한테 선처해주지 말라고 하데? 상대가 아주 악질이라고?”
“악질이요?”
“복수를 한 놈이니 악질이지. 난 편파 판정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아, 그렇군요.”
“아무튼 나는 합의를 해 줄 용의가 있다고 하세요.”
심판은 그런 말을 하면서 돈 봉투를 슬쩍 쳐다보았다. 돈을 아주 많이 주면 합의를 해준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합의를 하면 검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박준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합의는 다른 선수가 해야 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심판은 전치 6주가 나왔으니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있을 것이다. 준희는 햇빛 태권도를 향해 움직였다.
* * * * *
햇빛 태권도는 늦은 시각에도 불이 밝게 켜져 있었다. 안에는 태권도 복을 입은 청년 두 명이서 대련을 하고 있었다.
준희는 심호흡을 하고서 안에 들어갔다.
청년 두 명이 준희를 보고 대련을 멈췄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청년 두 명은 학생이지만 예쁜 준희에게 호감어린 눈빛을 보이며 다가왔다. 준희는 두 사람에게 방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어제 시합에 출전하신 분이 누구시죠?” “전데요? 왜 그러시죠?”
남자는 갑자기 인상이 확 바뀌었다. 준희에게 경계를 하는 것이다. 준희는 그 남자가 범인임을 직감했다.
“어제 경기에서 편파판정을 한 심판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움찔했다. 그가 당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준희는 남자의 표정을 보고 그가 범인이 맞다는 것을 확신했다.
“녹음을 해왔습니다.”
준희는 가방 속에 있는 녹음기를 켰다. 남자와 다른 남자도 준희의 녹음에 귀를 기울였다.
“상대가 아주 악질이라고?”
“악질이요?”
“복수를 한 놈이니 악질이지. 난 편파 판정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러자 남자가 주먹으로 땅을 쳤다. 많이 흥분한 표정이었다. 준희는 녹음을 끄고 준비한 다른 녹음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개새끼 지가 편파판정을 해놓고!! 좀 더 때려줄 걸!”
“편파 판정이 맞는 것 같습니다. 박준수에게 그러했고, 또 당신에게도 그랬죠?”
“분명 내가 이기는 게임이었는데 그새끼 때문에 진거예요. 개새끼를 죽도록 패줬어야 했는데 얼마 못 때렸어.”
“누굴 때려요? 당신이 심판을 때렸다는 말인가요?”
그러자 옆의 남자가 그 남자의 입을 막았다.
다른 남자가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그만해. 누구신데 이런 걸 묻죠?”
“심판을 혼내줘야죠. 이런 짓을 또 할 건데.” “그럴 수 있어요? 우리도 원하는 겁니다.”
그러자 범인 남자가 입을 막은 손을 떼며 말했다.
“내가 때렸어요. 언제든 또 때려줄 겁니다. 벌을 줘야 해요 그 개자식은.”
“야!”
준희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