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시간이 더디게 가지만
김설아는 박준수에게 발탁되기 전까지 치아 교정기를 차고 있었다. 눈썹은 너무 짙어서 임꺽정을 방불케 했다. 거기다 눈에는 커다란 안경까지 쓰고 있었다. 못생겨 보이는 3가지를 전부 장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오재훈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보이는 사람이 정말 김설아가 맞는지 재차 확인했지만, 교복에 붙은 명찰은 분명 김설아였다.
“저게 김설아란 말이야? 성형한 거였어?”
오재훈은 김설아가 성형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얼굴로 봐서는 후에 김설아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으니, 성형으로 보는 것이 타당했다. 성형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오재훈은 그때까지 성형에 관해 매우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긴 그 당시 모든 남성들이 성형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쌍꺼풀 수술을 하면 죄인 취급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2000년대와 1990년대의 차이는 실로 엄청났다. 오재훈은 김설아에게 엄청난 실망을 하였다.
“후, 난 감당 못하겠다.”
오재훈은 김설아에 관한 마음을 싹 비웠다. 김설아에게 이제 1도 관심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고 지금 준희와 만나는 것도 어려웠다. 준희는 아직도 어리기 때문이다.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거야?”
오재훈은 앞으로 몇 년을 독수공방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슬프지 않았다. 준희에 대한 마음을 정한 상태니까 오히려 홀가분했다. 사실 김설아가 운명이고, 그녀가 현재 아름답다고 해도 고민했을 것이다. 그만큼 같이 지낸 세월이 있으니까.
“울 아기도 보고 싶고…….”
오재훈도 아기가 보고 싶다. 준희 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도 아기가 몹시 그리웠다. 지나가는 아기만 봐도 눈물이 날 때가 있었다. 준희에게 아기를 꼭 다시 살리겠다고 약속한 것도 생각났다. 아기를 살리려면 아기를 낳아야 하니, 준희와 꼭 결혼해야 한다. 그렇게 결론이 났다.
오재훈은 준희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 그녀의 집을 찾았다. 준희의 집 앞에 차를 세웠는데, 집안에서 준수가 나왔다. 머리를 빡빡 밀고 있는 상태였다. 준희도 따라 나왔다. 준수는 매우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갔다 올게. 너도 유학 잘 다녀오고.”
“군대 갔다 오면 오빠도 뭔가 달라질 거야. 인생이 확.”
“글쎄다.”
곧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오고 다 같이 준수를 마중 가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오재훈은 준수가 군대에 가는 것을 깨닫고 발길을 돌렸다. 아직도 많은 시간을 보내야 준희와 준수를 만날 수 있겠구나 하면서.
그리고 준희는 아직도 너무 어리다. 지금 준희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은 범죄이다. 아무튼 그래서 오재훈은 준희의 집 근처에도 오지 않기로 작정했다. 준수가 군대에 갔다 올 때까지, 그저 열심히 커리어를 쌓으며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준희는 오재훈이 집 앞에 온 것을 보았다. 오재훈의 마음이 바로 김설아에게 갈 줄 알고 내심 마음 졸였는데, 그가 집 앞에 왔다. 너무 기뻤다.
“빨리 시간을 보내야겠어.”
* * * * *
준희는 오재훈과 만나기 위해서, 빨리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바로 유학길에 올랐다.
오재훈도 준희가 더 클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서 열심히 일에 집중했다. 물론 이 차장도 꾸준히 괴롭혀주면서 알차게 보냈다.
준수는 군대에 가서 깍새를 하며 미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1997년이 되었다.
준희는 서울로 돌아와서 수능 시험을 볼 준비를 하였다. 그동안 공부를 놓고 요리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조금 일찍 돌아와서 2년가량을 준비하려 하는 것이다.
사실 요리는 준희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거기에 간 것은 어학연수 겸이기 때문에 그걸 중점적으로 배우고 익혔다.
오재훈은 그 사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사건을 해결하였다. 이미 범인 등을 다 알고 덤볐기 때문에 엄청난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덕분에 차장 승진은 따놓은 일이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준희는 회귀한 준수가 과외를 해준다던지, 뭔가를 도와준다고 하는 것을 전부 받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돈도 많고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게 준수의 도움과 이 차장의 과외 없이 대학에 들어가고,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원래 회귀 전에 했던 것보다 더 좋은 성적이 나왔지만, 딱히 달라질 것은 없었다.
준희가 사법고시에 합격하자마자, 오재훈이 접근해왔다. 원래는 이 차장이 둘을 붙여주는 것인데, 오재훈이 직접 준희에게 접근한 것이다. 준희는 오재훈이 먼저 다가온 것이 너무 기뻤다. 그가 김설아를 택하지 않고 자신을 택해준 것이 기뻤다.
두 사람은 원래보다 좀 더 빨리 연인이 되었다. 모든 것이 그렇게 순조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준수도 회귀 후 예정대로 살아갔다.
“오빠, 그거 회귀의 반지지?”
준희는 준수가 차고 있는 반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직 김주원에게 주기 전이었다.
준수는 매우 놀라서 준희를 쳐다보았다. 준희가 대체 어찌 알고 있을까?
“너 어떻게 그걸 알아? 너도 혹시 회귀한거야?”
준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준희는 가족이다. 준희에게 굳이 비밀로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자 준희도 쿨하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어, 나도 회귀했어. 오빠 태권도 배운 것도 나 때문이잖아. 원래는 그거 안 배우고 한량으로 살았지.”
“야, 그건 아니지. 재수생이지.”
“암튼 반지는 바로 버리는 게 좋아. 그래야 다른 욕심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을 거야.”
준수는 아직까지 그런 상황을 모르고 있으니, 준희가 하는 말이 의아했다.
그러자 준희가 준수의 등짝을 때리며 말했다.
“우리도 회귀 후 반지를 변기통에 넣고 버렸어. 반지 스스로 사라지게끔.”
“반지가 사라진다고? 스스로?”
준수는 그때까지 그 법칙을 모르고 있었다. 뒤로 가야 반지의 모든 법칙들을 차례로 알게 되니까.
“어, 아무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그만 둬. 오빠가 스스로 나를 보낸 거야. 잘못된 미래를 돌리기 위해서.”
“아, 정말이야? 미래가 어떻게 되는데?”
지금의 준수는 아마 상상도 못할 것이다. 인간의 욕심이 가져오는 절망의 상황을.
“오빠는 상상도 못하게 망가져. 반지 때문에 사람도 죽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되지.” “후, 그렇구나. 그럼 나도 반지를 버려야겠네.”
준수는 원래부터 반지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준수가 만약 욕심이 있었다면 일이 또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빠 사업자금은 내가 대줄 수 있어. 내가 지하철 주변에 땅이 엄청 많거든.”
“어쩐지 아빠가 우리 집 부자 되었다고 그러더니.”
“아무튼 반지는 꼭 없애. 내가 보는 데서!”
준수는 준희의 말대로 바로 반지를 변기통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누구도 반지를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다 제자리로 돌아갈 거야. 모든 것이 끝났어.”
“그래,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내 인생 살면 되는 것이고.”
“그래, 오빠는 살던 대로 살면 돼. 그리고 내가 회귀한 것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내 신랑에게도 말이야.”
“너는 아직 어린데 무슨 신랑이야?”
“아무튼 우리 서로 비밀을 지키자고, 회귀한 것을.”
“알았어.”
준수가 반지를 버리면서, 김주원은 딸을 살리지 못했고, 이 차장도 회귀자가 되지 못한다. 그레이스도 회귀자가 되지 못하고, 재준은 원래 아내랑 결혼할 것이다. 대신 이 차장의 엄마는 암에 걸리지 않고, 이 차장은 순조롭게 검사 생활을 이어갔다. 오재훈이 이 차장이 잘리지 않게 도와주었다. 그래야 그가 사고를 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다.
그렇게 모든 미래가 바뀌었다. 회귀의 반지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조선 시대로, 고려 시대로 그렇게 쭉 내려가게 될 것이다.
* * * * *
“우리 진지하게 만났으면 좋겠다.”
오재훈은 준희에게 프러포즈했다. 원래 프러포즈보다 좀 더 빠르게.
준희는 내심 좋아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정말 잘 된 일이었다.
“좋아요. 난 당신이 첫 남자거든요? 첫사랑.”
오재훈은 준희의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원래 준희는 그런 말이 없었는데, 어찌된 일일까? 하면서.
준희는 오재훈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나려 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기를 볼 수 있으니까. 그것도 원래 계획보다 좀 더 빨리 보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죽을 때까지 너만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죽어서도 당신만 사랑할건데?”
이렇게 둘은 닭살스러운 연애 행각을 이어갔다. 누가 봐도 부럽다는 말이 나올 만큼 둘은 뜨거운 사이로 발전했다.
그리고 드디어 준희가 임신을 하고 둘은 속도위반 결혼을 감행하였다.
준희도, 오재훈도 아기를 만날 생각에 매일매일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태클이 걸리게 된다.
* * * * *
그날은 아기의 탄생을 앞두고 둘이서 아주 좋은 레스토랑에 갔다. 사실 준희는 본인 스스로 모든 요리를 다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오재훈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오재훈에게는 조금씩 실력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확장시키려고 하였다. 그래야 자기가 회귀한 것을 그도 모를 테니까.
“다 사줄 테니까 막 시켜. 우리 아기도 같이 먹는 거니까 많이 먹어야 해.”
오재훈이 준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준희는 사실 이곳에 오는 게 싫었다. 프랑스 요리는 종류별로 다 지겹게 먹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걸 티낼 수는 없었다. 오재훈이 그걸 안다면 계획이 틀어지니까.
“응, 알았어요. 나는 요기 요리 다 좋아하니까 뭐든 다 사줘요.”
준희는 평소 대화 목소리랑 오재훈과의 대화 목소리가 판이하게 달랐다. 두 사람은 사실 서로를 갈망하면서 오랜 기간 참았다가 만났기 때문에, 사랑의 깊이도 남달랐다. 그러니 목소리 변조는 당연한 것이겠지.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프랑스 요리사가 다가와 준희를 보고 웃었다. 그는 프랑스말로 준희를 불렀다. 그는 프랑스에서 준희와 함께 요리를 배웠던 요리사인데, 준희 때문에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곳에 취직하였다. 준희는 그걸 몰랐었다.
“준희? 여긴 왜 왔어? 프랑스 요리는 입도 대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어?”
준희는 프랑스 요리사가 자기에게 말을 거는 것에 조금 놀랐지만, 그가 프랑스어로 말했기 때문에 안심했다. 오재훈은 프랑스어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는 척하지 말고 좀 가줘. 우리 신랑은 내가 프랑스에 간 것을 모르거든?” “오? 그게 왜 숨길 일이지? 준희는 너무 미스테리한 여자야.” “좀 가주라. 나중에 내가 연락할게.”
“그래, 연락 좀 해줘. 우리 요리스쿨 동기들이 준희를 너무 그리워해.”
“알았어. 좀 닥치라고!”
“으하하, 준희가 맞구나!”
프랑스 요리사는 준희가 욕설을 하려고 하자 까르르 웃으며 도망쳤다. 두 사람이 계속해서 프랑스어로 대화를 하는 것을 지켜보던 오재훈이 입을 열었다.
“너 프랑스에 요리스쿨 다녔니?”
“네?”
오재훈이 프랑스어를 다 알아들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