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미용재벌-195화 (195/200)

195화. 노랑머리는 책임져야지(2)

“가서 약속을 받자고. 이은미의 아버지에게.” “저번에 업계 1위 했을 때도 지키지 않은 약속인데요.”

이은미의 아버지는 노랑머리가 이사로 있는 회사가 업계 1위를 찍으면 결혼을 허락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업계 1위를 찍었음에도 결혼하지 못했다. 이은미의 아이가 유산되어서 그랬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은미 씨에게 일이 생겨서 그런 것이지. 하지만 이번에는 꼭 지켜야 할 거야. 사실 아버님도 네가 아니면 은미 씨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알고 있을 거 아냐?”

“그죠, 그건 기정사실입니다.”

은미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통보하였다. 노랑머리가 아니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그럼 동기가 없는 거야. 아버님이 지금까지 그렇게 반대했는데, 갑자기 허락하겠어? 고집이 어마어마한 분이잖아.” “그렇죠. 거의 대발이 아빠급입니다.” “그니까 동기를 줘야지. 니가 뭔가를 해낼 거고, 그걸 이루면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이번엔 먹힐까요?”

“먹혀. 은미 씨 조금 있으면 노처녀라고.”

세월이 흐르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두 사람은 어느새 결혼 적령기를 채우고 있었다.

준수는 노랑머리를 데리고 은미의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 * * * *

은미의 아버지는 일을 안 해도 수십 년을 먹고 살 수 있는 재산이 있다. 그래서 매일 놀고먹는 중이다. 골프나 치러 다니면서.

준수와 노랑머리는 아버지가 있다는 골프장으로 향했다.

“당장 영화과에 입학하고, 공부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어.” “아니, 그러면 내 학비는 누가 대고 내 생활비는요?” “그 정도는 내가 충분히 해줄 수 있어. 당연한 걸 묻냐?”

준수는 자기 때문에 다시 어그러진 노랑머리의 인생을 복구해 줄 의무가 있었다. 자기가 책임지고 그의 인생을 원래 원하던 인생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너무 부담스러워요. 내가 형님한테 받은 게 얼마인데.”

노랑머리는 준수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받긴 했다. 사실상 친동생처럼 챙겨왔었다. 그러니 이런 투자가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너도 나한테 해준 거 많아. 서로서로 돕고 하는 거지. 우리가 남이냐?”

“후. 감사합니다, 정말.”

노랑머리는 너무 감사했다. 준수가 해준 일들도 감사하고 앞으로 해줄 일들은 더 감사하고.

두 사람은 골프장에 도착하자마자 은미의 아버지를 찾았다. 그는 노랑머리가 온다고 하니까 필드의 가장 끝자락에 가 있었다. 그만큼 보기 싫은 것이다.

준수도 노랑머리도 은미의 아버지가 그런 마음인 것을 알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둘 다 그런 걸로 포기할 사람들이 아니다.

두 사람이 필드에 들어서는 것을 본 은미의 아버지는 둘이서 자기를 찾지 못하게 숨어버렸다. 하지만 준수와 노랑머리가 양 사이드로 밀고 들어가자, 숨을 곳이 없던 은미의 아버지는 결국 나왔다. 인상을 구긴 채.

“여긴 왜 왔어?”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죠.”

“니 말은 다 필요 없는 말이야. 난 니 얼굴도 보기 싫다고.”

은미의 아버지는 냉정하게 노랑머리를 쳐다보았다. 노랑머리는 그의 눈빛에 기가 죽었다.

준수는 그 모습이 너무 속상해서 다짜고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님 저번에 이 친구 직업도 마음에 안 드신다고 그러셨죠?”

“그래, 회사는 어차피 준수군 꺼 아닌가? 쟤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

아버님은 노랑머리의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았다.

준수는 아버지의 그 모습이 너무 화가 났다. 꼭 약속을 받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님, 제가 아버님이 한 것 중 하나를 알고 있어요.” “뭐? 뭘?”

은미의 아버지는 당황하며 말했다. 그가 한 짓이 있긴 하니까.

준수는 은미의 아버지가 준수의 회사 제품의 비밀을 다른 회사에 팔아넘기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준수가 나중에 막긴 했지만, 그가 한 짓은 정말 나쁜 짓이었다. 준수는 노랑머리가 들리지 않는 수준으로 조용히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님 우리 회사 초창기 제품의 레시피를 다른 데에 팔아넘기려고 하셨잖아요.”

“어? 그걸 어찌?”

은미의 아버지는 준수가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데 놀랐고, 그걸 지금까지 비밀로 하고 있었다는데 더 놀랐다.

“아버님이 그런 걸 은미 씨가 알면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은미의 아버지는 준수의 말에 발끈했다. 준수가 은미에게 비밀을 알릴 거라는 반 협박조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니가 그걸로 나를 협박하는 거냐? 그런다고 내가 눈 하나 깜짝할 줄 알아?”

“그니까 제 말을 귀담아 들어주세요. 저는 그렇게만 해주시면 앞으로도 입을 다물 겁니다.”

사실 다 지난 마당에 그걸 이야기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걸 이야기하면 이간질에 지나지 않는다.

준수는 워낙 그런 걸 이야기할 성격이 되지 않는다.

은미의 아버지는 준수의 말에 의심 섞인 눈빛을 보냈지만, 그렇다고 안들을 수도 없었다.

“말해 봐. 그냥.”

은미의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준수의 말을 듣고 있었다.

준수는 조금 떨어져 있던 노랑머리를 다시 데리고 와서 은미의 아버지 앞에 세웠다.

“이 친구가 영화감독이 꿈입니다.”

“이거 봐. 하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네, 말이 됩니다. 저희 아직 인생 반도 안 살았어요. 뭐든 해낼 수 있는 나이에요.” “그래, 그렇다 쳐도 그걸로 먹고 살 수나 있겠어? 난 쟤가 저래서 싫어. 내 딸보다 돈도 못 벌고 능력도 없는데 무모하기까지 해. 그러니 내가 맡길 수 있겠냐고?”

은미의 아버지는 노랑머리가 뭘 해도 밑으로 볼 것이다. 아버지가 무시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제가 이 사장님과 함께 방송국을 꾸리고 있는 건 아시죠?” “그래, 알지.”

“거기 취직시켜 줄 겁니다. 무조건이요.” “취직 따위 뭐.”

은미의 아버지가 코웃음을 쳤다. 준수는 기분이 나빴지만 애써 누르고 다시 말했다.

“그래서 거기 이사를 시켜 줄 겁니다. 이 친구에게 맡길 거라구요.”

“형님?”

준수의 말에 노랑머리도 깜짝 놀랐고, 은미의 아버지도 조금 놀랐다.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회사를 맡겨? 그래서 회사가 돌아가겠어?” “그니까 영화과 대학교에 들어가야죠. 거기 합격하고 졸업하면 시켜주려고 합니다.”

“어, 대학교? 하하하하. 저 녀석 머리에 대학교가 가당키나 해?”

준수는 은미의 아버지를 당장 패주고 싶었지만 참고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하면 어쩔 겁니까?”

지금 은미의 아버지를 도발해야 한다. 이번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하니까 각서까지 제대로 받아서 공증을 마칠 생각이었다.

“하면 결혼시키면 되지?”

은미의 아버지는 노랑머리가 대학교에 갈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런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다.

“하면 결혼시켜요? 전에도 그러셨는데 그걸 어찌 믿죠? 사장님이 약속해놓고 안 지키셨는데요?”

“아니 그땐 이유가 있었잖아!”

“그래도 약속을 안 지킨 건 맞죠. 워낙 약속을 잘 안 지키시나보죠?”

준수는 한 대 맞을 각오를 하고 그를 도발했다.

은미의 아버지는 준수의 말에 발끈하더니 얼굴까지 벌개져서 소리 질렀다.

“각서라도 쓸까? 각서 써?”

준수는 이때다 싶어서 얼른 그 말을 낚아챘다.

“당장 쓰시죠.”

준수는 얼른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서 은미의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그는 조금 황당했지만 크게 의심하지 않고 바로 각서를 작성했다.

“뭐 대학교 합격하면 결혼 시킨다. 이렇게 쓰면 되는 거지?” “네, 그렇게만 쓰시고 안 지키면 재산을 준다? 뭐 그런 조건도 달으셔야죠.”

“나 이거 참네. 재산 다는 안 되고 반은 줄 수 있어.”

은미의 아버지는 투덜거리며 각서를 작성했다. 노랑머리가 대학교에 절대 가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짓이었다.

준수는 이때다 싶어서 얼른 문자를 보냈다.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변호사가 손살 같이 달려왔다.

“지금 공증하면 됩니다!”

“네!”

준수가 얼른 각서를 변호사에게 건넸다. 변호사는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로 바로 각서를 공증하였다. 은미의 아버지는 갑자기 벌어진 일에 황당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지?”

“감사합니다, 아버님.”

“지금 날 갖고 논거야? 이 새끼들이!”

“그게 아니고 약속만 지키면 되는 거죠!”

은미의 아버지가 골프채를 들고 준수와 노랑머리를 쫓아갔다.

“이놈들!”

“아버님 고정하세요!”

“그니까 약속만 지키세요!”

“당장 꺼져!”

준수는 각서를 흔들며 달려갔다.

은미의 아버지는 씩씩대며 쫓아가다가 멈췄다. 숨이 차서? 아니다. 사실은 그도 은미가 결혼하기를 바랬다. 그동안 반대한 것이 민망해서 어떤 계기가 있기를 바랬다. 지금이 그런 계기가 된 것 같아서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노랑머리가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것이 가장 걸렸는데, 스스로 대학을 나온다고 하니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노랑머리가 대학교에 갈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진심으로.

* * * * *

준수와 노랑머리는 각서를 들고 같이 기뻐했다. 변호사는 결혼 따위를 하는데 공증까지 받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여기는 중이었다.

“근데 이렇게까지 해서 결혼을 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말고.”

준수는 노랑머리의 말에 빈정상해서 각서를 빼앗았다. 그러자 노랑머리가 웃으며 그 각서를 가져왔다.

“형님 보면 꼭 해야 할 것 같긴 합니다. 하하.”

“넌 애처가가 될 거다. 내가 알아.”

노랑머리는 진짜 애처가가 된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근데 대학 수능시험 진짜 어렵다고 하던데, 제가 가능할까요?” “내가 강남의 유명 강사들을 다 붙여줄 테니까 걱정 말고.” “그래도 내 머리로 될지 모르겠어요.”

노랑머리는 자기의 머리가 좋지 않은 것을 안다. 그래서 은미의 아버지도 그가 대학교에 갈 거라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학교가 꼭 유명대학일 필요는 없으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무조건 포기하기엔 이르다.

“안되면 되게 하라!”

“넵!”

준수는 바로 노랑머리를 데리고 개인과외를 알선해주는 곳으로 향했다.

“과외비용은 얼마든지 낼 수 있습니다.”

“아, 네네.”

딱 봐도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에게 대학 입시를 시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 것이다. 게다가 그때는 대학교 가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는 시절이다. 학원 측에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 앞에서는 못 할 것이 없다.

그렇게 개인 과외 선생이 붙여지고 노랑머리의 대학가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서 선생님들이 하나 둘 떠나갔다.

“어휴 저는 못하겠습니다. 저분이 무슨 대학엘 가요?”

“차라리 제가 대신 수능을 볼게요. 요즘 그것도 가능하거든요.”

“네?”

그렇게 선생님들이 도망치듯 떠났다.

“제가 안 될 거라고 했잖아요.”

“아니, 나는 포기 못한다. 아직 쓰지 않은 카드가 있잖아.” “그게 뭔데요? 혹시?”

회귀해서 미용재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