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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198화 (198/200)

198화. 죄의 값(1)

해리는 앞서 김설아가 보여준 연기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하지만 해리에게는 깊이가 없었다. 엄마가 되지 못한 탓이라고 하겠다.

해리와 김설아의 연기는 대서특필되었고, 김설아는 당대 최고의 연기라는 극찬을 받고, 해리는 가식적인 연기라는 혹평을 받았다. 오디션에는 당연히 김설아가 되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그러게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

해리는 그 후에도 많은 오디션에 도전했지만, 늘 그때의 오디션이 발목을 잡았다. 가식적인 연기…… 그 타이틀이 해리의 목을 조여 왔다. 해리를 가장 유명하게 해준 것이 그따위 기사들이라니…… 해리는 점점 죽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나마 자기는 연기력이 되는데 운이 없다며 스스로를 위안했는데, 이제는 연기마저 가식적이라는 판단을 받게 되었다. 더 이상 세상에 살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해리는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삶을 포기하였다. 재준이 말릴 새도 없었다.

* * * * *

“야!!!!!!!! 너 정말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재준은 해리의 영정사진 앞에서 그렇게 울부짖었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사랑한 여자가 스스로 그렇게 생을 마감하다니, 미칠 것 같았다.

해리는 유서에다 재준에 대한 미안함을 내비쳤다. 재준에게 매번 받기만 하고 가서 미안하다고 했다. 재준은 해리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음을 한탄했다.

그때, 해리의 장례식장에 마담이 나타났다. 해리의 과거를 까발렸던 그 마담이 말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가냐.”

마담도 허무했다. 자기가 그렇게 밟았어도 잡초처럼 살아나간 해리가 그렇게 허무하게 간 것이 너무 황당했다. 그래서 마담은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해리에 관한 건 전부 찾아서 조금이라도 그녀에 대한 미안함을 덜고 싶었다.

마담은 해리의 물건이나 사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걸 재준에게 갖다 주고 나면 미안한 마음이 조금 풀릴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그 물건들을 다 가지고 왔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었지만, 아주 핵심적인 물건이 하나 들어있었다.

“생전에는 그렇게 하시더니, 여긴 왜 오셨습니까?”

재준은 마담 때문에 고생을 꽤 했기에, 마담이 달갑지 않았다. 마담이 해리의 뒤통수를 쳤기 때문에 그걸 수습하느라고 꽤 많은 돈을 허비했고, 많은 정신력을 허비했었다.

마담은 사실 재준에게 미안한 것이 아니고, 해리에게 미안하기 때문에 재준의 홀대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자기의 남은 부채감을 털고 싶을 뿐이었다.

“전해줄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 물건들 해리 물건들인데 화장할 때 같이 태워주시겠습니까?”

마담이 물건들을 내밀었다. 종이 상자에 해리의 물건이 작게 쌓여 있었다. 그 속에는 일회용 카메라도 있었다. 재준이 카메라를 쳐다보자 마담이 말했다.

“그건 해리를 찍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뭐가 찍혔는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그렇군요.”

재준은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재준도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물건이 범상치 않은 물건임은 느낌으로 알 것 같았다.

“무슨 사진이 들었을까? 궁금하네.”

재준은 일단 사진기를 따로 챙겼다. 그리고 그날, 해리의 물건들은 해리와 함께 화장되었다. 해리의 모든 인생은 불꽃 속에서 사라졌다. 이제 회귀의 반지도 없으니 그녀는 영원히 잠들 것이다. 어쩌면 그게 그녀 인생에 가장 좋은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의 사랑이 그녀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또 다른 남자의 사랑이 그녀를 몇 번이고 살려내고, 또 다른 남자의 사랑이 그녀의 인생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희생양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사진을 뽑아봐야 알겠네.”

재준은 일회용 사진기를 들고 사진관을 찾았다. 그리고 며칠 후 사진을 찾으러 다시 사진관을 갔다.

“이거 전달해드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관의 사장님은 사진 뭉치를 들고 망설이고 있었다. 재준이 해리와 부부 사이이고, 얼마 전에 해리가 죽었다는 것을 알기에 더 망설였다.

재준은 그럴수록 더 사진이 궁금해졌다.

“그냥 주시죠.”

“아니, 그게…….”

사장님은 끝까지 사진을 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재준은 힘으로 사진을 빼앗았다.

사진은 해리와 이 차장이 키스를 나누는 사진이었다. 앞서 이 차장이 해리와 몇 번이고 회귀를 반복하면서 키스한 바로 그 사진이 일회용 사진기에 담겨서 보관되어 있었다.

“이게 대체 뭐지?”

마담도 자기가 그걸 왜 찍었는지 몰랐지만, 그곳에 해리의 모습이 담긴 것만 기억했다. 그것이 준희와 오재훈의 회귀 전에 있던 사건인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기억조차 다 사라졌을 테니까. 그저 거기에 해리의 사진이 찍힌 것만 기억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걸 전달하고 마음의 부채를 거둘 생각이었는데, 그게 결국 부채를 더 키운 셈이 되었다. 마담은 그걸 모를 테지만.

재준은 해리의 사진을 들고 마담을 찾아갔다.

* * * * *

“이게 뭡니까?”

재준이 마담을 찾아가서 다짜고짜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이네요?”

마담은 재준의 사나운 표정을 보고 당황하였지만, 사진을 보고 곧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당신이 갖다 준 일회용 사진기 사진을 뽑았더니 이런 게 나왔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죠? 이건 해리를 모욕한 것이에요! 혹시 과거 사진을 찍은 겁니까? 당신네 가게에서 일한 사진을 내게 왜 전달 한거죠? 죽은 사람까지 모독하고 싶은 겁니까?”

재준은 조금도 쉬지 않고 떠들었다. 너무 화가 난 탓이었다.

마담은 재준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기에 왜 그런 사진이 찍혔는지요.”

“장난해요? 지금 사람 죽을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그딴 말로 넘기는 거예요?”

마담은 재준이 흥분을 가라앉히기를 기다리며 사진을 살펴보았다. 재준은 조금씩 숨을 가라앉혔다.

마담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내가 찍긴 찍은 것 같아요. 근데 이것 좀 보세요. 남자는 계속해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해리는 옷이 같아요. 거기다 이것 좀 보세요. 이 사진을 찍은 날짜를요.”

해리의 사진이 찍힌 날짜는, 재준과 해리가 결혼을 한 다음이다. 즉 해리가 마담의 가게에서 일을 하지 않을 때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해리가 우리 가게에 온 적이 없어요. 근데 왜 이런 사진이 찍혔을까요?”

“장난해요? 내가 그걸 어찌 압니까? 그리고 이곳은 당신 가게가 맞잖아요!”

해리의 사진 속 배경은 분명 마담이 일하고 있는 그 가게였다. 마담은 그것도 너무 황당했다.

“아니 해리가 우리 가게에 왔다는 것이 황당하지 않아요? 내게 그렇게 당했는데 왜 오냐고? 나한테 걔가 얼마나 욕을 하고 그랬는데?”

맞는 말이다. 해리는 마담에게 갖은 욕을 다 하고 갔다. 마담 입장에서는 해리가 가게에서 일한다고 해도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해리와 마담은 앙숙이었다. 그래서 마담이 해리에게 미안했던 것이다. 둘이 화해하지 않고 그렇게 되었으니 마음의 부채감이 심했던 것이다.

“그래도 여기 날짜랑 장소랑 다 당신네 가게잖아!”

“아니, 걔가 온 적이 없다니까요? 왔어도 걔를 써줬을 것 같아요? 당신이 나한테 한 짓 잊었어?”

재준은 마담에게 앞으로 눈에 띄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거기다 해리에게 나쁜 짓을 하면 죽여버리겠다고도 했다. 그러니 마담이 해리를 받아주었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근데 왜 사진이?”

“나도 몰라! 이 사진 속 남자는 알지 않겠어요? 나는 모르니까 이 남자는 왜 이런 사진이 찍혔는지 알 것 같은데? 이 남자가 사진을 조작한 건가?”

“그럼 이 사진이 합성이라는 건가?” “몰라요. 사진이 합성인지도 이 남자가 알겠지. 좀 봐봐요. 같은 날짜인데 해리는 계속 같은 옷을 입고 있고 남자는 옷을 계속 바꿔 입고 있어요. 이 남자가 뭔가 더 주도적인 것 같지 않냐고?”

이 차장이 주도한 것이 맞다. 이 차장이 계속 회귀를 거듭하며 해리를 유린하였으니, 이 사진의 주인공은 해리가 아닌 이 차장이라고 해야 하겠다.

“이 남자가 누군데? 당신은 이 남자를 압니까? 여기 단골입니까?”

“하, 그게 더 미스테리야. 이 남자는 우리 가게에 온 적이 없으니까.”

“아니 그게 무슨! 한 번도 없습니까? 단 한 번도?”

“한 번도 없어요! 이 옷을 좀 봐요. 다 명품이야. 이런 명품을 입고 온 남자라면 내가 기억하지 않을까? 난 사람 얼굴은 기억 못해도 옷이 뭔지는 기억하거든? 명품은 태가 다르니까. 헌데 이 남자는 전부 명품이에요. 옷이며 시계도 다! 거기다 매번 다른 옷과 시계야. 돈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인 거죠. 근데 내가 모를까? 나는 돈 냄새를 맡고 사는 사람인데?”

“그럼 대체 이 사진은 뭐냐고!”

“그니까 사진 속 남자를 찾으시죠. 나는 하나도 모르겠으니까요.”

재준은 시뻘건 눈으로 마담을 노려보았다.

마담은 재준의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떳떳하게 재준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참을 째려본 끝에 재준이 일어섰다.

재준은 여기서는 어떤 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다시 오죠.”

재준은 마담을 끝까지 노려보고 가게를 나갔다.

마담은 사진 속 남자가 누구인지 한참을 생각했지만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는 단란주점에 사진을 돌렸다. 남자가 명품을 돌려 입을 정도로 잘난 남자라면 분명 어느 단란주점에 한 번이라도 갔을 것 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 * * * *

재준은 그 길로 박준수를 찾아갔다.

준수는 재준이 찾아 온 것이 오랜만이라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둘은 경쟁자 입장이지만, 과거 동창생이기 때문에 친분을 이어오고 있었다.

“어쩐 일이야?”

재준은 준수를 보고 한참 생각했다. 과거 재준과 해리가 결혼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준수가 다시 생각해보라고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준수는 해리의 정체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친구로서 한 충고였다. 재준이 지금 준수를 찾아 온 것도 그때 한 말 때문이었다.

“장례식장에 와줘서 고맙다.”

준수는 해리의 장례식장에 찾아가 재준을 위로했다. 해리의 원래 인생대로 된 것 같아서 씁쓸해 하면서.

“아니야. 당연히 가야지.”

“내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왔다.”

“뭔데?”

“너 내가 해리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말렸지?”

“그랬지.”

“왜 그랬어? 혹시 너도 해리가 룸싸롱에 있을 때 손님이었나?”

재준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재준의 말에 준수는 당황하였지만, 대답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손님은 아니었지만, 알고는 있었어. 룸싸롱에서 일한 것을.”

그러자 재준은 품안에 있던 사진을 꺼내 들었다.

“내가 마담에게 이런 이상한 사진을 받았거든, 너는 혹시 알까해서 왔다.”

“뭔데?”

준수는 재준이 내민 사진을 보고 매우 당황했다. 이 차장의 흔적이 어찌 이렇게 남아있을 수 있지?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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