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희망을 위한 찬가 - 아오이키바(い牙)(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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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후우-”
은결의 숨결이 거칠다. 눈빛은 여전한 의지로 강렬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지만 이미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눈앞의 세계는 조금씩 흐트러졌다. 어둠으로 물든 세계 가운데에서, 역장을 딛고 있는 발아래 도시의 불빛은 그저 명멸하는 부유물에 불과하다. 중력만이 올바른 세계의 위치를 설명한다. 성역에서 벗어나자마자, 카미의 공격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이 되었다. 신으로서의 권능이 방해받지 않은 덕분이다. 은결은 그 공격에 대항할 수 없었다. 그저 방어하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벌써 이 꼴이 되었다.
-꽈릉!
다시, 번개가 은결을 향해 내뻗어 왔다. 은결의 몸 위로 마법진이 반사적으로 떠오르며 그 공격을 받았다. 전격은 수십 줄기로 흩어지며 은결의 등 뒤로 분산됐다. 다시 번개가 은결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번에도 진이 떠올라 그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다시 번개가 이어졌다. 다시 이어졌다. 다시, 이어졌다.
공격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카미의 공격 하나하나를 막는 것만으로도 은결은 정신의 끈을 놓아버리게 될 것만 같은 아득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카미가 다시 거대한 전격을 품었을 때, 은결은 아버지를 카미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로서 카미를 성역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도록 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 다음에 대한 대비가 은결에게는 없었다.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은결은 그저 버틸 뿐이었다. 다시 만개산으로 돌아가기도 여의치 않았다. 자신이 형성할 수 있는 역장으로는 이곳으로 올라왔을 때 만큼의 힘을 얻을 수 없으나, 그만한 속도를 얻지 못한다면 카미의 전면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위험이 너무 큰 도박이다.
다행이라면, 카미는 고양이가 쥐를 데리고 놀듯 은결을 상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버티기에도, 시간을 벌기에도 좋았다. 어차피, 시간을 버는 것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감히 단신으로 카미를 상대해, 승리하고자 한단 말인가? 은결은 아스칼론을 쥔 성 조지를 꿈꾼 적이 없다.
‘세상의 소금 정도는 꿈꾸어 봤지만.’
은결은 쓰게 웃었다. 만일 그러려고 한다면 여기서 버티기라도 잘 해내야 할 텐데, 아무래도 자신이 없던 탓이다. 눈앞에서 카미는 자신의 몸을 여러 가지로 변형시키며 은결의 주변을 노리고 있다. 사냥감을 탐색하는 사냥꾼의 모습. 무의미한 짓이다. 성역에서 벗어난 카미의 전력이라면 은결이 버틸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때 카미가 번쩍였다. 번개가 은결을 향해 뻗었다. 마법진이 그의 몸을 보호했다. 내장이 우주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공허감이 은결을 급습했다. 기도 이제 바닥이라는 증거다. 그러나 은결의 사정과 무관하게 카미의 공격은 이어졌다. 그의 몸이 번쩍였고, 강대한 전하가 은결을 향해 뻗었다.
카미의 번뜩임을 눈앞에 두는 순간, 은결의 뇌리로는 이제 마지막일지도,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순결한 절망의 양태였다. 한 줄기 문장이 떠올랐다.
‘나의 지성은 비관주의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주의적이란다.’
그람시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글귀다. 하지만 은결에게 절망은 그저 절망이고, 희망은 그저 희망이라고 여겨졌다. 방법이 없는 곳에서 방법은 단지 없을 뿐이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닌가? 주변의 모든 상황이 아니라, 고 이야기 하는데, 자신도 실은 거기 동조하는데, 종국적으로는 그 ‘아니오’에 대해 반대할 수 있는 그람시의 고결함을 은결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어떻게, 비관 가운데서, 전진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가 지금의 자신이라면, 그는 여전히 낙관을 말할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빛이 번쩍였다. 그러나 거대한 전하는 은결을 삼키지 않았다. 대신 은결의 앞으로 한 사람의 등이 떠올랐다. 익숙한 등이다. 할아버지의 등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은결에게 말했다.
“늦진 않았구나.”
“예.”
많은 감정을 억누른 “예.” 였다. 은결의 할아버지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 다음 말했다.
“내려가서 잠깐 쉬거라. 나도 곧 내려가마.”
그리고 할아버지가 움직였다. 은결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현란한 움직임이었다. 강력한 진이나 역장을 형성할 필요는 없었다. 은결의 할아버지는 짧은 순간, 자신의 몸을 지탱시킬 수 있을 만큼의 역장만을 형성에 이리저리 움직이며 카미를 농락했다. 땅위 보다, 이렇게 허공을 오다니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카미는 움틀거리며 은결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할아버지에게로 신경을 집중했다. 은결은 발 밑의 역장을 거두어 중력의 힘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꽈르릉! 꽈르릉! 꽈릉!
카미가 번개를 쏘았다. 은결은 위를 올려다봤다. 할아버지는 진을 펼쳐 공격을 부드럽게 받아 넘기고 있었다. 힘을 힘으로 상대하던 은결과는 전혀 다르다. 물론,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단점이라면 할아버지 쪽도 카미에게 공격을 하지는 못하고, 해보아야 거의 효과가 없다는 점이었지만 은결을 아래로 도피시킬 시간을 벌기에는 최적이었다. 은결은 자신의 미숙함이 뼈저렸다.
은결은 곧 만개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의 효과 덕분인지 싱숭생숭하던 마음은 간단히 정리됐다. 주변을 살피니 최초 이곳에 서 있던 사람들의 절반 정도만이 멀쩡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고통스런 표정으로 숲의 한 쪽에 누워 있었다. 진경이 은결을 맞이했다.
“괜찮아?”
“예. 그럭저럭...”
“다행이군. 곧 네 아버지의 진이 완성된다. 그렇게 되면 카미가 미쳐 날뛸 거야. 하지만 그릇이 파괴되고 난 뒤라면 제아무리 카미라 해도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떠날거야. 그때를 대비해 운기라도 해 둬.”
은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릇이 파괴되고 나서도 이곳에 남아 전투하는 것은 아무런 이득도 없다. 분노에 미쳐 끝까지 전투하고자 할 수도 있지만 일행이 한 일은 그 정도로 카미의 분노를 사는 일은 아니었고, 이런 이국의 땅에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카미라 해도 무모한 짓이다.
은결은 운기했다. 바닥났던 기가 점차 체내에 축적됐다. 편안했다. 긴장에 긴장이 축적되어 숭고함과 편안함에 덧씌워진, 기이한 운기였다. 영원 같이 긴, 짧은 시간이 흘렀다. 은결이 눈을 뜬 것은 수행의 “끝났다.”는 말에서였다. 그는 얼른 아버지에게로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수행의 주변으로 모였다. 속옷만 입은 아름다운 세연의 몸 위로 검은 매직이 복잡한 기호의 건축이 그려져 있었다. 은결은 그 진의 의미를 읽을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기가 가장 효율적일 것임은 분명했다. 진경의 표정이 어쩐지 못마땅했다.
“기를 넣을까요?”
은결이 물었다. 수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결은 세연의 배 아래에 손을 대고 기를 주입했다. 다시, 뱃속으로 아득한 허공이 느껴지며, 자신의 기가 세연의 속으로 들어갔다. 어마어마한 진의 기호들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그 의미가 어렴풋하게 읽혀졌다. 은결의 기는 진을 따라 신의 존재구성의 기원을 역산해 파괴해 나갔다. 동시에 진경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른 사람들도 시선을 옮겨 하늘을 봤다.
“온다.”
진경은 품에서 수백장은 되어 보이는 부적을 꺼내들었다. 도원 선사는 진중한 표정으로 목탁을 쥐었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신의 무기를 들고 카미의 공격에 대비했다. 하늘이 번뜩였다. 우르릉- 하고 먼 울림이 들려왔다. 거대한 벼락이 일행의 한 가운데로 떨어졌다. 그것은 카미였다. 이어서, 털썩 하고, 한 사람의 몸이 떨어져 내렸다. 은결의 할아버지였다. 주변의 안색이 변했다. 다행이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너, 그냥 인간이 아니, 었, 구나!
까마득한 분노를 담은 카미의 목소리가 좌중을 강타했다. 그 분노는 오롯하게 은결의 아버지인 수행을 향하고 있었다. 수행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신의 분노를 담담히 받았다.
-죽-어!
카미가 움직였다. 엄청난 전격이 주변을 감쌌다. “막아!” 진경이 새되게 외쳤다. 목탁소리와 기를 운행하는 소리, 주문 소리가 복잡하게 뒤얽혔다. 전력 대 전력. 카미는 다른 모든 것은 무시하고, 단지 수행만을 노리고 내달렸다. 한 톨 만큼의 기도 느껴지지 않기에 무시했던 존재에게 도리어 당해버렸다는 것이 못 견디게 분했던 모양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행만은 죽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읽어졌다. 반면,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수행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크으으-!”
힘의 실랑이 가운데 신음소리는 사람에게서 먼저 나왔다. 그들은 신의 공세를 완전히 방어할 수 없었다. 신성한 공간을 형성하고, 역장을 펼치고, 목탁을 두드리고, 공격을 퍼부었지만, 분노한 신의 맹공은 그 모든 것을 무효화했다. 신은 수행을 향해, 건방진 인간을 향해 계속해서 접근했다. 수행은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마법진을 가지고 있지만 분노한 신의 전력 앞에서 큰 효과는 기대할 수 없을 터였다.
그때, 세연의 배에 손을 대고 있던 은결이 한쪽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으로 진이 떠올랐다. 신의 본질을 물질화하는 마법진이다. 그리고 은결은 그대로 카미를 잡았다. 엄청난 전하가 은결과 세연의 몸으로 흘러들었다.
“끄으으으-”
은결은 이를 악물었다. 어마어마한 고통 가운데서, 그는 잡았던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본 모두의 뇌리로는 미친 짓이라는 표현 외에, 지금 은결의 행동을 설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카미는 은결의 손아귀에 잡힌 채 어쩔 줄을 모르며 우왕좌왕 거렸다. 은결의 손을 대지에 붙박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카미는 잡히지 않은 자신의 몸을 늘리고 펼치며 어떻게든 은결을 쫒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은결을 돕고자 사람들은 술법을 펼치거나 게송을 부르거나 부적을 뿌렸다. 좁은 공간 가운데, 믿을 수 없을 만큼 진한 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은결아! 놓아라!”
수행이 새파란 얼굴이 되어 외쳤다.
“끄으으으-”
은결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앙다운 이사이로 피가 흘렀다.
“끄아아아아아-”
결국, 은결은 어마어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던 카미의 몸이, 은결에게로 흡수되는 것처럼 점차 작아져 갔다.
“끄아아아-!”
은결의 비명은 더욱 커졌다. 눈은 이미 흰자위 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 당장 죽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광경이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카미의 몸체는 점점 더 눈에 띄게 작아져 나갔다. 수행은 참혹한 표정으로 그 장면을 바라봤다.
“끄으....”
결국, 은결의 손아귀에서 카미의 모습이 사라졌다. 동시에 은결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만개산의 정상은 한 순간, 고요를 되찾았다. 차분한 빗소리가 주변을 채웠다.
*다음 화면 이번 챕터도 끝이군요.
*작의 처음 부분에 은결이 기로 대기를 고착시키는 장면이 있습니다. 충격파도 안 나도록 하는데 옷이야 뭐. 그리고 너무 물리법칙 따지며 전투장면 보시면 골룸. 대충 그럴듯하면 넘어갑시다.(...)
*쩝. 뭐 쓰다보면 좋은 일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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