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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53화 (53/300)

#   53-희망을 위한 찬가 - 암영(暗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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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기원은 넘쳐나지만,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제나 그러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평화는 하나의 이념이다. 은결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도, 굳이 이런 방식으로 다시 알고 싶진 않았다. 어제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그 지속을 기원했더니, 오늘 밤은 어제처럼 평화롭지 않았다.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머피의 법칙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녀석, 어디서 나온거지?’

인적이 드문 공터에서, 은결은 자신을 향해 육박해 들어오는 검은 기체의 무리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검은 기체덩어리가 사념체라는 것은 명백했지만, 보통 사념체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매우 거대했다. 일반 사념체의 서너 배는 족히 될 것 같은 크기다. 그간 나오지 않은 분량은 몽땅 몰아서 상대하는 것 같았다. 이상했다. 이런 크기가 될 때까지 사념체가 설치고 다닐 수 있는 지역은 도천시 주변에 없었다. 그렇다고 도천시에서 이런 크기의 사념체가 발생했다고 치기에, 은결은 매우 성실하게 도천시를 체크하고 있었다.

하지만 팔자 좋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때 검은 기체가 넓게 펼쳐지며 은결의 퇴로를 향해 돌아가며 그를 감싸듯 포위하려 했다. 그에 맞춰 은결은 그 자리에서 정지하며 손을 내뻗었다. 그의 손앞에서 둥그런 마법진이 등장했고, 파앙, 빛을 냈다. 빛을 받은 사념체의 몸체가 뒤틀어지며 흩어졌다. 은결을 포위하기 위해 뒤로 쭉 뻗어나가던 기체의 무리가 다시 본체로 돌아갔다.

그러나 은결은 그 틈을 타 뒤로 빠지지 않고 앞으로 돌진하며 허리를 돌리며 발을 내뻗었다. 강맹한 힘이 모여 파괴의 으르렁거림을 선보였고, 전채(前菜)삼아 대기를 박살냈다. 그리고 선연한 힘을 머금은 은결의 발끝이 사념체의 정중앙을 찍었다. 회오리 같은 구멍이 뻥 뚫리며 그곳으로부터 사념체의 육체구성이 분쇄됐다.

-꾸르릉!

이어 사념체의 거대한 몸이 고슴도치같이 삐쭉삐죽 솟아오르는 형상을 보이며 은결에게 덥쳐 들었다. 해파리의 촉수같은 기체의 줄기가 그를 감싸들었고, 찔렀다. 마법진이 전신으로 나타나며 그 공격을 방어했다. 은결은 그대로 돌격했다. 기세를 얻기 위해 발판으로 사용한 역장이 단번에 박살났다. 퍼억! 소리가 나며 마법진과 사념체가 충돌했다. 충격에 사념체가 뒤로 날아갔다. 그 와중에, 은결의 전신으로 광대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촉수 같은 사념체의 몸이 은결의 전신에 펼쳐진 마법진과 마찰하며 피어오른 불꽃이다.

“크윽...!”

은결은 전신으로 저릿저릿하게 퍼져오는 격통을 견디며 눈앞으로 노려봤다. 마법진으로 방어했지만 모든 충격을 흡수할 수는 없었다. 전신의 곳곳을 회초리로 맞은 것처럼 아팠다. 크기에 걸맞게 강력한 사념체였다. 과거라면 별 것 아닌 상대였겠지만, 카미의 힘에 의해 기맥이 장악당한 지금의 은결로서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이기는 것 까지는 어렵지 않겠지만, 소멸시키기에는 조금... 버거울지도.’

은결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전투력 자체라면 비록 기맥이 장악 당했다고는 해도 현재의 은결이 훨씬 더 위였다. 다만, 도주를 막고 소멸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힘의 우위라는 면에서는 상당한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일단은, 최선을 다할 뿐.’

은결은 몸을 달렸다. 쿠앙! 충격파가 전신을 훑었고, 주변을 뒤흔들었다. 그의 동체는 순식간에 사념체에게 접근했다. 은결은 기세를 죽이지 않고 몸을 띄워 양 발로 사념체를 걷어찼다. 콰앙! 폭탄 터지는 소리에 가까운 타격음이 나며 사념체가 다시 허공으로 날았다. 아래에서 위로 걷어차 올리든 날린 것이라 사념체는 허공 높은 곳 까지 상승했다. 은결은 역장을 생성해 그를 발판삼아 걷어찼다. 그의 몸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은결은 쉬지 않고 그대로 중력에 역행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 주변으로 복잡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에너지와 에너지가 연결되며 강맹한 폭발력을 생성했다. 사념체가 그를 인지하고 몸을 겹쳐 각진 구성으로 만들어 마주 짖쳐 들어갔다.

-쿠웅!

허공 가운데 에너지의 파장이 반투명한 색체를 띄고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그리고 사념체의 거대한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펑! 터지며 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해치웠다!’

은결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대지로 내려섰다. 대지로 점점이 핏방울이 떨어졌다. 손등에서 팔꿈치까지 상당히 큰 상처가 나 있었다. 벌어진 피부 사이로 스며든 달빛이 피에 젖은 근육의 모습을 드러냈다. 은결은 한 손으로 상처를 감싸며 꾹꾹 눌렀다. 갈라진 피부를 억지로 붙이고, 피를 멈춰 세웠다. 이 정도 상처라면 완치까지 그다지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이라면 이 정도 사념체에게 상처를 입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금 답답했다. 은결은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젠장!”

그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방금 전 격렬한 에너지의 충돌이 있었던 허공에서, 소멸된 줄 알았던 사념체가 자신의 형체를 다시 유지한 채 박동치듯 움직이고 있었다. 은결은 서둘러 다시 역장을 밟고 사념체에게 다가갔다. 사념체가 몸의 일부를 고체화시키며 은결을 향해 바늘처럼 내뻗었다. 화살 같은 공격이었다.

은결은 그 공격을 서둘러 피했다. 하지만 공중에서 행동은 자유롭지 않았다. 그는 엄밀히 말해 나는 게 아니라 허공에 발판을 자유로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겨드랑이 밑으로 공격이 스치며 옷과 피부가 쩍 갈라졌다. 핏방울이 흘렀다. 마법진은 발생했지만 방금 사념체의 공격은 높은 에너지의 집중을 이룬 탓에, 현재 은결의 반응 마법 방어진식으로는 완전히 방어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은결은 자신의 상처를 무시하고 손을 떨쳤다. 등 뒤로 역장을 발생했다. 그는 몸을 돌려 그 진을 걷어찼다. 진이 깨어지며 거대한 반탄력이 은결의 몸으로 전달됐다. 그는 로켓처럼 사념체를 향해 돌진했다.

-우르릉!

주변이 진동하며 그 돌진이 품고 있는 거대한 힘을 설명했다. 사념체가 갑자기 모습을 바꿨다. 넓은 공간에 퍼져 있던 몸 전체가 얇게 뭄치며 은결을 맞이했다. 공책의 종이 한 장보다도 얇은 것 같았다. 은결의 몸이 사념체와 부딪혔다. 그의 동체가 사념체를 길게 늘렸다. 고무처럼 끈질겼다. 은견은 이를 악물고, 기세가 죽기 전에 다시 발을 한 번 더 박찼다. 은결의 몸이 한층 깊게 사념체의 몸을 파고들었다.

-콰아앙!!

그런데 갑자기 격렬한 충격이 은결의 전신을 습격했다.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무언가 단단한 것을 파고 들어간 느낌이었다. ‘땅!’ 자신이 파고들어간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은결은 겨우 알 수 있었다. 전신이 격통에 저려왔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사념체는 몸의 변형을 풀지도 않았고, 관통되지도 않았다. 놀라운 신축력이다. 이런 일이 없도록 은결이 돌진할 때 하늘로 향하도록 조정했는데, 땅과 박치기를 한 것을 보면 이 녀석이 은결의 몸을 감싸고 그를 조정해 아래로 향하게 했던 모양이다. 전략적이다.

‘젠장 그간 길바닥 부셔먹은 일이 없어 좋아했더니-’

사람이 쓰지 않는 헐벗은 땅이라 다행이긴 해도, 지금 주변은 자주포 포탄이라도 떨어진 형국일 것이다. 공터로 이 녀석을 유인한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최면 결계를 통해 사람을 접근시키지 않는다 해도 사람이 밀집한 주거지인 경우에는 한계가 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은결은 이를 갈며 얼른 몸을 일으켰다. 위협이 될 만큼 강한 상대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둘둘 뭉쳐진 상태는 곤란했다. 그것을 눈치챈 듯, 은결의 전신으로 사념체가 자신의 몸을 칭칭 감으며 밀착해 왔다.

‘읏!’

전신으로 따끔함이 느껴졌다. 밀착한 상태에서 사념체가 몸을 경질화 하며 바늘처럼 바꿔 은결을 찌르기 시작한 것이다. 마법진이 발생해 막아내고는 있지만, 현재 은결이 운용할 수 있는 마법진으로는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바닥을 쫙 펴 손칼을 만들었다. 그곳으로 에너지가 모여들었다. 은결은 그것을 가공해 날카로운 역장을 생성해 사념체의 몸을 푹, 찔렀다. 신축성에 기대 그 공격에 조금 저항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손칼에 모여든 에너지가 톱날처럼 회전하며 사념체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내자 더는 버티지 못했다. 사념체는 요동치며 은결에게서 멀어져 갔다.

“후-!”

은결은 이를 갈며 다시 전투태세를 정비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망치같이 한 덩어리로 모여 사념체가 은결에게 쇄도했다. 그는 피하지 못하고 그 공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꾸앙!

“크윽!”

그 충격에 발끝이 뒤로 길게 밀리며 땅을 파고들더니 무릎까지 대지를 파고들었다. 결국 은결은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가 서둘러 다시 일어났을 때, 사념체는 이미 어둠 가운데 스며들듯 사라지고 없었다. 은결의 전투능력이 자신을 상회한다고 판단하고 도망간 것이다. 은결이 감각을 총동원해도 사념체의 기색도 읽히지 않았다. 낮은 수준이긴 해도 자신의 기색을 감추는 능력도 있는 듯 했다.

“빌어먹을!”

은결은 육두문자를 지껄이며 하늘로 올라섰다. 그리고 한동안 도천시 전역을 순항했다. 하지만 역시 그 사념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전까지 만난 대부분의 사념체와 비교하기 힘든 강한 힘과 지능을 갖춘 녀석이었다. 이런 녀석이 갑자기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기색을 감출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저만한 크기의 괴물이 되기까지 은결의 감각에 걸리지 않을 리는 없다. 그런 건 단정하고 불가능하다.

은결은 얼굴을 찌푸리며 한 동안 도천시를 바라보다 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녀석이 숨어 있는다고 치면, 이제 은결에게 그 사념체를 발견해낼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어있지는 않을 것이다. 반드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다시 몸을 나타낼 것이고, 그때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은결의 감각에 걸릴 것이다.

“그렇지만, 소멸 시킬 수 있을까?”

은결은 낮게 중얼거렸다. 글자 하나하나마다 우려가 감겨들어 있었다. 이기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소멸시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 이 사념체를 자신이 소멸 시킬 수 있을지, 은결은 조금 자신이 없었다. 전신은 격통으로 고통스럽고, 팔과 겨드랑이는 큰 상처로 화끈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역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지.”

지금의 자신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무력(無力)은 가슴 아팠다.

*수행의 글이 이 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독립적이고, 불가결한 것입니다. 수행이란 캐릭터가 없었다면 다른 방식으로도 집어넣었어야 할 글이라는 거죠. 그리고 두 번 밖에 안 나온 사설을 ‘너무 자주’라고 하시면 매우 곤란. 정보 밀도가 너무 높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지만, 쉽진 않네요. 리듬을 생각하고 글을 짜르려니 논리성이 희생당하는 것 같고, 반대로 하려니 글이 너무 무거워 질 것 같고. 음, 앞으로도 쑤셔 넣어야할 정보가 많은데. 그것도 그냥 쑤셔넣기만 해선 곤란하고 잘 꿰어야하니 고민거립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쓰고 있는 것은 소설, 그것도 상당한 장편 소설이지 꽁트가 아닙니다. 그러니 한화가 어떻다기보다는,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며 적어야겠죠. 하여간 불필요한 이야기는 되도록 배제합니다. 그게 제가 글을 쓰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입니다. 모든 정보는 목적론적으로 배열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쓸데없는 철학 나부랭이’ 따위는 취급하지 않으니 이 점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안 그래도 쑤셔넣야할 내용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입니다. 근데, ‘희망을 위한 찬가’는 철학보다 사회학에 더 친근 관계를 가진 글이 아닐지? 철학은 따지고 보면 별로 없었던 거 같은데.

*성원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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