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67화 (67/300)

#   67-희망을 위한 찬가 - 역사의 끝에 선 영웅(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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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밝은 학교 옥상에서 글을 읽는 다는 기괴한 취미를 가진 고등학생은 한국을 다 뒤져도 그렇게 쉽게 발견하기 힘들다. 도천시라면 아마 은결 한 명에 한정되지 않을까? 그는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뜨거운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흰색의 프린트지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수행의 이번 주 글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세계 질서는 재편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타국이 넘볼 수 없는 헤게모니를 획득한다. 당시 세계 경제는 금본위제를 통해 편성되어 있었는데,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서유럽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던 금 가운데 막대한 양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결과 2차 대전 종결 당시 미국의 금 보유량은 세계의 육할에 달하게 되고, 달러는 다른 어떤 화폐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안정성을 가지게 되는 반면 다른 화폐의 가치는 매우 불안정하게 된다. 금본위제의 경제 체제에서 금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의 화폐는 사실상 무가치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1944년에 설립된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기축통화로서 금과 함께 달러가 등극하게 된다. 기존 국가들은 반발했지만 현실적으로 힘이 없었기 때문에 무시되었다. 환율은 35달러당 금 1온스였고, 이 기준을 지키기 위해 회의에서는 IMF와 세계은행, GATT를 함께 설립하게로 결의한다. 이후 이 35달러 금 1 온스의 고정 환율을 통해 운행되어나가는 세계 체제를 브레튼우즈 체제라 부르게 된다.

그런데 미국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당시 세계 자본주의 상황은 매우 위험했다.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서구 유럽 사회는 줄곧 완전고용 시기가 지속되었고, 그로 인해 노동조합의 힘이 매우 강해졌다. 업친데 겹친 격으로 대전이 끝난 이후 식민국가들이 차례차례 독립해 나가게 된다. 이로서 서유럽의 자본가들은 노동세력에 대해 회유책도, 강압책도 사용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 상황에 무관심하던 미국도 결국 이를 좌시할 수 없게 된다. 서유럽과 근접해 있는 소련을 생각할때 서유럽에서 좌파세력이 계속적으로 득세하는 것은 자본주의 그 자체의 위기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마셜 플랜을 발동한다. 이 계획은 자본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를 통해 미국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는 미국이 마셜플랜을 통해 미국 자본을 위한 서유럽 시장을 보호, 확대 하게 되고, 서유럽 좌파 세력을 약화시켜 궁극적으로는 미국 자본가의 지위를 보호하는 것, 또한 이 계획을 통해 유럽 경제를 부흥시킴으로서 미국식 경제체제(포드주의+케인즈주의)를 이식하고 헤게모니를 완전장악하게 됨을 통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50년대 이후 세계 경제는 장기적인 호황을 맞이하게 된다. 서유럽을 비롯한 일본 등의 자본주의 국가는 미국이라는 시장을 수출 대상으로 삼음으로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전쟁을 기준으로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되면서 공산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군사력이 진출한 덕분으로 자국의 군사비를 줄여 복지에 돌림으로서 자국 노동자 계급의 불만을 무마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이들 국가는 58년(일본은 64년) 경에는 자국 화폐의 교환가치를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된다. 미국 역시 이 관계에서 자국의 군산복합체를 가동시킴으로서 지속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의 전략에 있어 미국의 계획은 오산이 있었다. 그들은 일본에게 그 지역의 경제적,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도록 하고, 자신들이 일본의 헤게모니를 장악함으로서 그 지역 전체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했으나, 차관을 통한 지배로 아시아 지역의 경제 가운데 태반이 일본에 종속되는 것 까지는 성공했으나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 정치적 헤게모니의 장악은 어렵다는 것이 판명된다. 미국은 중국과 소련에 대항하기 위한, 자기내 헤게모니 권역에 있는, 일본외 다른,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 국가가 필요하게 된다.

60년 당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우던 신흥공업국의 발전은 이와 같은 사정 가운데 가능했던 것으로, 미국은 그들 국가에게 일본이 그러했던 것 처럼 관세를 낮춰 미국 시장을 개방하고 자국 시장을 보호하도록 배려해준다. 결국 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적 도약은 일본을 모델로한 국가 자본주의라는 선택이 주요했음은 물론이지만 본질적으로 미국의 세계전략 가운데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성립 역시 미국의 세계 전략과 깊은 연관을 가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국의 헤게모니 장악을 기준으로한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호황은, 그러나 71년 8월 15일, 미국의 금태환조치 중지발표를 통해 중대한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금본위제 - 화폐가치를 금으로 보장하는 제도

*금태환조치 - 35 달러당 금 1 온스로 바꿔주는 제도

'흠...'

은결은 종이를 접었다. 그리 먼 과거의 이야기도 아닌데 세계관이 완전히 변화했다. 한때 케인즈 주의는 공황을 극복한 자본주의의 완전한 정답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거대한 국가를 주장하는 낡은 이론일 뿐이다. 야경국가의 이상이 추구되는, 역사가 종결된 지금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론이다. 여전히 케인즈의 정신이 살아있다손 친다면 자본의 회전율이 빠를 수록 가치는 증가한다는 그의 승수이론을 기반해 이루어진 자본주의의 이념, '소비가 미덕이다.' 정도가 아닐까.

-끼익,

철문이 열리며 평소처럼 허리에 칼을 찬 소녀가 들어섰다. 그녀는 자신보다 먼저 은결이 옥상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했다. 그는 평소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자신보다 약간 늦게 여기 올라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응? 점심 안 먹었어?"

"아ㅡ 이가 좀."

"흐응. 이는 조심하는게 좋아. 사지에 비해 주의가 소흘하기 쉬워서 부서지진 쉬운데, 그렇게 되면 처리가 골치아프니까. 기를 돌려도 재생도 안 되고."

쿠로사카는 간결하게 충고하고는 은결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장중하게 섰다. 은결은 자기 어금니는 이미 다 박살이 났는데도 다시 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카미에 얽혀있는 일은 그녀에게 말하는 것은 되도록 피하는게 좋았다. 필연적으로 그녀의 기분이 나빠지고, 덕분에 욕을 얻어먹게 된다. 이내 그녀의 입이 조그맣게 몇번 움직이고, 주변의 공기가 바뀌었다. 은결은 그녀가 검을 뽑기에 한 발 앞서 말했다.

"저기 말야,"

"응?"

"이번에 아버지가 결계의 방해와 무관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송수신기를 만들거든, 너도 하나 줄까?"

"너와 자유로운 소통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라고 딱 잘라 말하려던 쿠로사카의 말이 멎었다. 그 기구를 만드는 것이 수행이란 말이 걸렸기 때문이다. '박 수행'의 이름 석자는 이세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크기와 울림을 가진다. 좀 심하게 오만하던 미즈하라 같은 사람조차 이세 전체를 합쳐봐야 그 한명에게 미치지 못할 거라고 절찬하며 이야기하곤 했다. 안 그래도 성격이 더럽다고 말이 많았는데, 외부인사를 높이사고 자기가 소속된 집단을 되게 깐 덕에 왕따가 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박수행이 만드는 물건이라면 틀림없이 고절한 수법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쿠로사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이 곳에 있는 동안은 너와 종종 같이 일할 수도 있는거고, 감사히 받지."

"응. 그럼 아버지께 그렇게 전할께. 한 일주일 정도 걸릴 거야."

"알겠어."

"그리고-"

검을 뽑으려던 쿠로사카는 다시 시선을 은결에게 줬다. 아직도 뭔가 할 말이 남아있는 것일까?

"영화 보러 같이 가지 않을래?"

"여, 영화?"

너무나 돌연한 말에 쿠로사카의 말이 삐었다.

"응. 이번 금요일에 친구들하고 '돌아온 슈퍼맨' 보러 가기로 했는데, 그때 너도 같이 가자고. 아, 네 표값은 민성이 낸대. 나도 네게는 신세를 많이 졌으니 저녁 식대 정도는 낼께."

쿠로사카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그것을 보고 은결은 심호흡을 했다. 당연히 저 까칠한 성격에 거절할 것이고, 어떻게든 그때부터 설득에 돌입해 봐야 한다. 민성에게 표 한장을 받고 설득하기로 했다.

"좋아."

곧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니까-"로 시작되려던 은결의 동작이 딱 멎었다. 이는 전혀 기대하지 않던 대답이다. 은결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얼결에 되물었다.

"에?"

"좋다고."

"지, 진짜?"

"그래."

약간 불쾌한 표정으로 그녀는 대답을 반복했다.

"고, 고마워."

은결의 입에서 말이 흘렀다. 쿠로사카는 피식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공짜로 영화보면서 고맙다는 말을 듣다니. 재밌는 경험이군."

그리고 쿠로사카는 칼을 꺼내 검식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러하듯 아름답고, 완벽한 검초다. 모든 불가능한 사태를 인정치 않고, 그 검날에 담긴 예리함을 통해 그 사태를 부정하려는 듯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대하는 알렉산더의 검 같은 태도.

'으음, 하기야 평소에는 착한척 하고 지내니 이런 제안을 거절하는게 되려 이상하겠지. 내가 제안했다면 절대 안 받아들였겠지만, 민성 그 자식이 초대한 거니까. 쩝.'

그녀는 그 검의 예리함만큼 확고하게 자신의 세계와 이 세계를 분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같은 세계에 있는자신과 다른 세계에 있는 학우들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선명한 차이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 아닐까? 그 작은 소년을 대하던 그녀의 부드러운 표정은 묽은 슬픔에 젖어 있었다. 명료한 타자는 명료한 구분으로 탄생되는 것이다.

'...남말할 처지가 아니지만.'

은결은 한숨을 쉬고 자신의 작업에 돌아갔다.

*akaris님이 추천해 주셨군요.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이 글은 호흡이 괸장히 긴 편이지만, 반대로 장면 전환은 빨라서 읽기는 별로 안 힘들겁니다. 다만 단지 플롯을 따라오는게 아니라 행간읽기를 해보시려는 분들께는 다소 난이도가 있겠지요.

*컴퓨터가 초장부터 말썽이라서 되게 우울합니다. 하아아~ 만일 수리하게 되면 한 일주일간은 컴퓨터 손도 못 대겠군요. 그 동안은 책이나 보고 살아야겠습니다. 하아아... 아, 의기소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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