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희망을 위한 찬가 - 열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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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해 주실까.”
물리적으로는 개방되어 있지만 인식론적인 측면에서는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서, 세연의 껍질을 뒤집어쓴 카미와 독대하며, 은결은 냉담하고 예리한 눈길로 요구했다. 푸른 이빨은 뒷머리를 벅벅 긁다가 내던지듯이 답했다.
“쳇, 애새끼 눈깔 하고는. 뭐, 간단히 말해 이 계집애 몸이 더러워지고 있다.”
“몸이... 더러워진다고?”
은결이 다소 당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언제부턴진 정확히 모르겠다만, 몸이 더러워지기 시작했지. 모른다고 해봐야 들어온 것 자체가 최근의 일이다만.”
은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푸른 이빨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등허리를 펴곤 팔짱을 꼈다. 다리도 따라서 자연스레 꼬였다. 허공에 뜬 운동화 끝이 진자의 운동처럼 건들거렸다. 지독하게, 오연한 자세였다.
“네 말은 알겠어. 하지만 그게 그녀가 네게 오염되고 있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오염이라니, 개새끼, 아가리를 찢어버릴까.”
미간을 좁히며 푸른 이빨이 말했다. 은결도 마주 얼굴을 찌푸렸다. 세연의 얼굴로, 세연의 목소리로, 푸른 이빨이 거칠게 지껄이는 꼴을 보는 것은 결코 유쾌한 체험이 아니었다. 푸른 이빨에게 몸을 주기 전의 그녀는 보기 드물 정도로 착하고 얌전한 성품의 소유자다.
“...차라리 일본어로 말하지? 일본어를 사용했을 때는 그나마 품위라는 게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아주 가관이니. 세연 양의 몸으로 이 짓을 하는 꼴은 도무지 못 봐주겠어. 양아치보다 입이 험하니.”
도무지 저 꼴을 못 보겠다 싶었던 은결이 제안했다. 하지만 은결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푸른 이빨은 도리어 크게 기뻐하며 은결의 등을 팡팡 쳤다.
“그렇지? 낄낄. 아, 나도 이 말 진짜 마음에 들어. 일본애들 말은 짜증나거든. 뭐 욕다운 욕이 있어야지. 그래서 한국어는 졸라 맘에 들어. 화끈하잖아. 이거 하나만으로도 그 동네 떠나 여기로 오길 잘했다 싶을 정도라니까. 아, 씨발, 이쯤 되면 진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이지. 달.”
한 사람의 한국어 사용자로서, 기뻐해도 좋은가 싶은 칭찬이다.
“...본제로 돌아가지.”
깔깔대는 푸른 이빨의 태도에 비해, 은결의 태도는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차갑다. 푸른 이빨은 어개를 으쓱이며 은결의 말을 따랐다.
“크흠, 하여간 몸이 더러워지면서 기름과 물 사이에 세제를 섞은 것처럼 됐지. 나와 이 계집애 사이의 경계가 분명했는데 그게 무너진거야. 뭐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 달리 들어갈 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이 계집애가 망가지는 건 피해야 하니 억지로 막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몸이 계속 더러워지면 그것도 한계가 있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나한테 두 번이나 도망쳤던 네놈이니 잘 알겠지.”
물론이다. 이미 은결의 얼굴은 심각하다. 그는 일전 두 번 푸른 이빨에게 자아를 융합당할 뻔 했던 적이 있다. 그 압도적인 질과 양을 가진 기억의 대해에 대한 감각은 지금도 선명하다. 20년간 인간이 체험한 기억 따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 속에 뒤섞여 자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특별한 수련을 거친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평범한 소녀라면 더 이상의 이야기는 무의미하다.
“몸이, 더러워졌다...”
은결은 오른쪽 엄지를 깨물며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은결과 같이 특별한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의 몸은 그들이 흡입하는 대기와 음식으로 인해 더렵혀지는 것이 순리다. 특히 현대의 도시는 이전 시대에는 없던 각종, 때로는 위험한 화학물질이 대기와 음식을 메우고 있다. 아토피가 가장 대중적인 질병의 하나인 세상에 살면서 특별한 처치 없이 인간의 몸이 깨끗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세연의 경우는 너무 독특했다. 그녀는 평범하게 더렵혀져 있던 소녀였다가, 다시 태어난 것 처럼 깨끗해져 있었다. 그 현상이 너무 기이했기에, 더럽혀질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가능성을 잊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그렇게 깨끗해진 이후 몸이 더럽혀지고 있다 볼만한 현상을 보이지 않았던 탓도 있다.
‘혹시...’
은결은 엄지를 물던 것을 멈추고 푸른 이빨을 바라봤다. 뭘 꼴아보냐는 듯이 껄렁한 눈빛이 되돌아왔다. 은결은 다시 시선을 숙이고, 고개를 저었다.
“...아냐,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카미가 몸에 들어갔기 때문에 더렵혀진 것일까 의심해 보았지만 그럴 리는 없다. 평범한 인간의 육체는 신적 본질을 담기에는 불충분할 만큼 더럽기 마련이다. 비교하자면 무균실에서 살던 사람의 거처를 한 30년 정도 청소하지 않은 구식 화장실로 옮기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신이 들어가서 인간의 몸이 더럽혀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신적인 것은, 그 신적 존재가 어떠한 것이든, 설령 음악(淫惡)한 신이라고 해도 인간에 비할 수 없이 정갈한 존재다. 선, 혹은 악의 문제가 아무리 치열한 쟁투가 되어도 결국 관념의 대결일 뿐, 실체적인 물질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어이.”
그렇다면, 갑자기 그녀의 몸이 ‘평범하게’ 더러워지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그것은 틀림없이 그녀의 갑작스런 순결함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고, 그 순결함의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지금, 고민한다고 해서 은결이 파악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님에 틀림없다. 다행이라면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는 것 정도였다. 이것이 그녀의 육체에 일어난 이변의 시작과 연관된 문제라면 그것에 대한 대처와 동시에 이 현상에 대한 대처도 가능해질 것이고, 이미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녀의 몸이 계속해서 더럽혀지고 있고, 대처가 마련될 때까지 침식을 방치한다는 것은 안될 말이다. 그러기엔 푸른 이빨의 자아가 너무나도 강대하지 않은-
“씨발, 귓구녕에 좆을 처박아놨나!”
“뭐지?”
그제서야 은결은 시선을 다시 푸른 이빨에게로 돌렸다. 그의 눈길은 생각을 방해받은 탓에 다소 불쾌했다. 그러나 은결의 그런 눈길 따위에 반응을 보일 푸른 이빨이 아니다. 그는 콧방귀를 귀며 입을 열었다.
“이 새끼가 신을 앞에 놔두고 딴 세상으로 가있긴! 하여간에, 그런 사정이니, 니가 이 계집애 몸 좀 청소 좀 해 줘라.”
“---”
은결은 무언가 말하려다 억지로 그 말을 막았다. 자칫 말이 헛나올뻔 했다. 해야 하는 일은 맞지만, 푸른 이빨이 자신에게 요구해오니 목구멍에 “내가 왜!”라는 말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탓이다. 그 모양을 보고 푸른 이빨이 유쾌한 듯 웃기 시작했다.
“깔깔. 사람 구하는 일이라니까 할 말도 못하고 아가리 닫는 거 보게. 진짜 되게 웃기는 새끼라니까. 사람이나 좋아하면 그러려니 하지. 딱 까놓고 말해서-”
은결의 눈동자가 열렸다. 피부로 느껴질 것 같은 살기와 더불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외쳤다.
“닥쳐!”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음절 하나하나에서 감정이 흘러내릴 것 처럼 진하게 느껴지는 외침이었다. 나와야 할 것들이 아우성을 치며 막혀버린 그런 외침. 실제 은결은 자칫 감정이 격해질 뻔 했다. 그랬다면 그들 앞의 탁자가 박살나는 것을 넘어 이 일대의 길바닥이 모조리 파괴되었을 것이다.
“낄낄낄낄... 하여간 웃기는 새끼.”
그러나 푸른 이빨은 단지 은결의 그 격한 태도를 재밌다는 것이 배를 잡고 웃어대며 감상했을 뿐이다. 은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설명하기 힘든, 무수히 많은 것들이 뒤섞여진 감정의 응어리를 두 눈동자에 담고, 푸른 이빨을 쳐다봤다. 이내 푸른 이빨은 피식, 웃음을 흘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끈적끈적하고 요염한 태도로 은결의 오른쪽 볼을 손끝으로 톡톡 쳤다.
“난 이만 물러 갈테니, 얘하고 잘 해봐라.”
그리고 세연의 몸 뚱아리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무너졌다. 은결이 얼른 그녀의 몸을 받았다. 곧, 세연이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며 맨 처음 느낀 것은 자신의 상체를 감싸안고 있는 듬직한 손길이었고, 눈을 뜨자마자 본 것은 부드러운 표정의 은결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한 순간에 붉어지며 심장 박동수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에, 이게...”
이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오늘 겪은 참혹한 체험 때문에 그에게 상담을 하게 된 것 까지는 기억났지만 거기서 이 상황까지의 전개가 기억나지 않았다. 많이 창피했고, 쬐끔 기뻤다.
“저, 혹시 내일 시간 있으세요?”
은결이 물었다.
“에, 예!"
뜨거운 식기에 닿은 손바닥이 반사적으로 펼쳐지듯, 그녀의 대답은 즉각 이어졌다. 은결은 지어낸 듯이 부드러운 웃음을 그녀에게 선보이며 물었다.
“그럼 내일 댁에 찾아 뵈도 될까요?”
“무, 물론이죠!”
세연은 그 순간 새옹지마의 뜻을 진실로 체험할 수 있었다.
*아, 글쓸만한 시간이 잘 안 나네요. 밥 먹고 글만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공부도 하고 책도 봐야죠. 고로, 앞으로 연재가 느려질 가능성이 높게 있습니다. ㅋ~
*이 글의 다소 어려운 이야기들을 모두 이해해야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가능하다면 그때야 말로 저는 독자를 가르치려 한다는 혐의를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가르치려 이 글을 쓴 게 아닙니다.(물론 아주 아니라곤 못하죠. 제 의견을 위한 글이기도 하니. 그래도 이차적인 문제랄까.) 아는 분들은 한결 즐겁게 즐길 수 있고, 모르는 분들은 그래도 상관없도록 하는 게 기본적인 목표입니다. 그래서 작내의 많은 언급은 일부러 일체의 설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령 벤야민을 언급했을 때 처럼요.
예를 들자면 이번에 여신님33권이 나왔는데, 거기 보면 스쿨드가 접히는 자전거를 만들죠. 그건 북구신화에 나오는 드워프가 만드는 접히는 배의 패러디입니다. 그 만화의 세계관을 생각하면 꽤 즐거운 패러디죠. 하지만 몰라도 만화 보는 덴 별 무리가 없죠. 기본적으로는 그런 구조를 글 전체를 통해 실행해 이면구조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여신님의 저것보다는 글의 내용과 훨씬 밀접한 관련을 가질 테지만...
그리고 그런 학적 언급이 어떤 맥락에 나오는 것인지 순차적으로 금세 이해될 수 있다면 그 역시 너무 단순한 구조의 소설이 되겠죠. 소재의 사용이 12345가 아니라 24351정도는 되도록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우애앵’이 평판이 안 좋은 건 좀 의외입니다. 만화적 문법을 도입해 글을 좀 편하게 만들고자 하고 있는건 사실이지만 ‘우애앵’이나 미래의 말투 같은 건 그 이전에 저 자신은 별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사용한 거라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저는 여러분보다 스트라이크존이 좀 더 넓은 모양입니다. 다소 고려할 필요가 있겠군요. 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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