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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110화 (110/300)

#   110-희망을 위한 찬가 - 변신시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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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벨 소리가 울리고, 세연이 은결네 집에 왔다. 학교에서 바로 집에 돌아와 있던 은결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소파에 앉아있던 수행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꼭 뭔가 사고라도 터져주길 바라는 눈빛이다. 은결은 나이를 생각해 자중하셔야죠! 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 안녕하세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세연이 서둘러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은결은 머쓱한 표정으로 “예 예...” 하고 그 인사를 받았다. 그 광경을 뒤에서 바라보던 수행은 꽤 흐뭇한 기분이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어서 들어와요. 세연양 부모님께서는 건강하시고?”

“예. 아직 정정하세요.”

“다행이군. 나도 언제 한번 만나러 가봐야 할텐데.”

그렇게 대화가 교환되며 세연이 집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수행은 그녀를 떠밀다 시피 은결의 방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은결은 한숨을 길게 쉬며 부엌으로 갔다. 그녀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간단히 간식거리를 사둔게 있는데, 그걸 가지러 간 것이다. 쟁반에 음료수와 과자, 과일을 담아 돌아오는 은결을 보며 수행이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즐겁게 보내라. 뭣 하면 밖으로 나가줄까? 미래가 독서실에 갔으니 그렇게만 하면 집엔 너희 두 사람만 남게 되니 편하겠지?”

미래는 수행이 억지로 시험 공부하라고 등을 떠밀어 쫓아 보냈다.

“아버지...”

은결은 그저 원망어린 눈길로 수행을 바라봤다. 그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수행은 그 눈빛을 받으면서도 흐뭇한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따스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사람을 피곤하게 여기지 말거라.”

마음이 흔들렸다. 몸이 흔들렸다. 쟁반위에 담은 음료수와 음식이 흔들렸다. 세상이 흔들렸다. 은결은 서둘러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무, 물론이죠.”

“그래.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거라.”

그리고 수행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은결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니 의자에 앉아 문 쪽을 바로보고 있는 세연이 있었다. 그녀는 은결과 눈이 마주치자 당황해 고개를 숙였다. 은결은 표정을 굳히고 방문을 닫았다. 결계는 자동적으로 펼쳐졌다. 그러자 세연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방안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환히 웃는 선량한 표정의 세연은 정말로 예뻤다.

“씹새끼야, 잘 처먹고 잘 살았니?”

그리고 세연은 그런 얼굴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했다. 더구나 평안하고 아름다운 어조로 말이다. 너무 언밸런스해서 세계의 현실성을 단번에 붕괴시켜 버리는 듯한 말이었다. 은결은 속으로 ‘역시...’하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는 쟁반을 침대 위에 올리고는 그 옆에 앉았다.

“무슨 일로 오셨나?”

“쳐 발라버릴 개잡종 새끼야. 네가 이 계집의 의식에 심어둔 게송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시거든. 조용히 있으면 제거해 준다면서 이주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연락이 없으니 내가 직접 찾아야지 안 그래? 이 좆같은 새끼야.”

“...큼.”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면서, 세연은 말했다. 은결은 그러고보니 그런 약속을 했던다는 걸 생각하고 시선을 피했다. 솔직히 저 카미 꼴보기 싫어서 가만히 놔둔 것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반동이 돌아온 모양이다. 세연은 으르렁 거리며, 그러나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눈까리 쳐 돌리지 말고, 얼른 그 빌어먹을 게송이나 지워!”

은결은 어울리지 않게 머리를 벅벅 긁으며 푸른 이빨을 바라봤다. 이빨하고 턱만 튼튼했으면 벌써 자근자근 씹어먹었을 거란 살기를 진하게 풍기면서, 그러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답고 선량한 미소를 보이면서 푸른 이빨을 은결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알았어. 지워 줄게. 그 전에-”

은결이 말하던 도중에, 책상 뒤에서 ‘크고 검은’ 것이 불쑥 튀어나왔다. 은결은 ‘헉!’ 했다. 저런 초대형이 자신의 방에 있으리라곤! 은결이 반응하기도 전에 푸른 이빨의 손이 움직였다. 그리고 퍼석! 소리가 나며 푸른 이빨의 손바닥 아래 크고 검은 것은 피떡이 되고 말았다. 푸른 이빨은 손을 들어 자신의 손바닥에서 이뤄진 참상을 무감동하게 바라봤다. 조각난 다리가 부서진 각질과 내장에 뒤섞여 체액에 젖은 채 책상위에 늘어붙어 있는 장면만 봐도 그녀의 손바닥에서는 어떤 장면이 펼쳐져 있을지 뻔했다. 은결은 몸서리를 쳤다.

“어이, 휴지.”

“아, 응.”

은결은 얼른 침대 머리맡에 있는 티슈를 꺼내 떨리는 손으로 넘겼다. 맨손으로 저렇게나 크고 검은 것을 때려잡다니,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은결의 무의식이 ‘맨손이야!’ ‘맨손으로 잡았어!’ ‘저놈의 자아는 괴물인가!’라는 경외에 찬 비명을 계속해서 울렸다. 그런 은결의 감상은 모른 채, 푸른 이빨은 슥슥 손을 닦아 참상을 정리하고 핵상 위도 닦았다. 그리고 크고 검은 것의 사체를 담은 티슈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럼 하던 얘기나 계속할까.”

세연은 의자의 등걸이에 거만하게 어깨를 걸쳐 가슴을 내밀었다. 자연히 은결을 깔아보는 듯한 자세가 되었다. 은결은 위압감을 느끼며 “으, 응.”하고 답했다. 푸른 이빨이 두배로 크게 보였다. 크고 검은 것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자 앞에서 그렇지 못한 자는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다시 입을 열었던 은결의 말문이 막혔다. 순식간에 굉장한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기뻐하며 푸른 이빨에게 경외어린 어조로 말했다.

“-제거해 줄게.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이 새끼가 어른 데리고 장난하나.”

푸른 이빨이 버럭 화를 냈다. 그럴 만도 했다. 은결은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뒷말을 이었다.

“아니 들어봐. 너한테도 괜찮은 거니까. 내 몸을 잠시 빌려줄 테니 내 대신 사념체를 하나 퇴치해 주지 않겠냐는 거야. 너도 잠시긴 해도 네 본래 힘을 회복할 수 있고, 좋지 않아?”

“무슨 꿍꿍이지?”

은결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너무 매력적임으로 도리어 의심스러웠다. 푸른 이빨은 상대를 해부하는 예리한 눈빛으로 물었다. 은결은 솔직하게 답했다.

“꿍꿍이라기보다... 네 자아는 구속됨 없이 강대하니까, 정신공격 같은 건 거의 안 통하잖아. 지금 그것 때문에 상대하기 껄끄러운 녀석이 설치고 있어서.”

“아아. 아레껜가 네가 느꼈던 그 감각 말이군.”

그 말을 듣고 푸른 이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푸른 이빨도 알고 있었다. 은결이 겪는 어지간한 사건에 대한 정보는 그에게도 전송된다. 푸른 이빨이 자신의 말을 알고 있는 듯 하자 은결은 반가웠다.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좋았다.

“음, 역시 알고 있군. 그럼 내가 뭔가를 꾸미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겠지. 정말로 네 도움이 필요해. 싸워 이기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만 그 녀석에게 공격 가능한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는 거의 없을 거야. 하지만 너라면 아무 문제 없겠지.”

“껄껄. 하긴 내가 정신력이 좀 강하긴 하지.”

푸른 이빨은 은결의 칭찬에 우쭐해져 말했다. 이런 종류의 신 역시 관념을 통해 탄생된 존재이니 만큼 칭찬에, 정확히는 자신에 대한 숭배에 약한 편이었다. 은결은 이제 거의 다 넘어왔구나 싶어 기뻐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때?”

“뭐, 좋겠지.”

푸른 이빨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도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여차하면 이 녀석의 몸을 먹어버릴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굉장히 중요한 지식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런 푸른 이빨의 내심을 읽고, 은결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신호하면 들어와. 그리고 30분 안에 처리해 줘야해. 몸에 자폭용 진을 설치해 셋트 해 놓을 텐데, 처리하려면 10분은 필요하거든. 30분 안에 처리 못하면 그냥 나가도록 하고. 나가면서 네 힘을 팽겨가려고 하면 안 돼. 그러면 폭발한다. 그리고 내 자아나 기억도 격리상태로 보호해 놓을 텐데 건드리지 마. 그것도 건드리면 다 같이 죽는 수가 있으니까.”

은결은 진지하게 말했다. 푸른 이빨은 직감적으로 자폭이란 게 그 무시무시한, 휘황한, 경이로운 진일 거란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따르는 게 좋았다. 그 힘은 전성기의 자신이라도 견딜 수 없다. 휘말리면 그냥 소멸되는 수밖에 없다. 푸른 이빨은 혀를 찼다.

“큼. 뭐 좋아. 그런데 여러 번 느끼는 사실이지만 넌 정말 웃긴 녀석이군. 자기 목숨 가지고 그렇게 간단히 제안을 하다니. 뇌 한 구석이 맛이 간 새끼 같다니까.”

은결은 푸른 이빨의 말을 부정했다.

“아냐. 이건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지. 네 목숨도 아깝고 내 목숨도 아까워. 그리고 내 몸에 네가 들어온다면 짧은 순간이나마 본래의 힘을 회복할 수 있지. 신으로서의 위엄을 되찾는 거야. 즐거울 거잖아. 네가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배신하면 같이 죽을 테니까. 이것은 논리적이지.”

푸른 이빨은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안다. 자기도 죽기 싶지 않으니 은결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은결의 판단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푸른 이빨이 생각하기에 옳은 것이 모두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논리적이라도 이런 일에 자기 목숨 걸고 장난치진 않는 법이지. 그깟 괴물 별거 사실은 별거 아니잖아?”

“정말로 논리적이라면 거기 무엇이 걸려도 상관없잖아. 결과적으로 나는 위험하지 않아. 너도 위험하지 않고. 목숨이 걸렸다고 해서 망설일 이유가 없잖아. 사실은 위험하지 않으니까. 일 년안에 자동차 사고로 죽을 가능성은 1/4000이지만 누구도 차타기를 거부하지 않아. 내가 보기엔 그쪽이 훨씬 더 위험한데도 말야.”

은결은 간단히 답했다. 푸른 이빨은 이맛살을 작게 찡그렸다. 이 녀석은 역시 어딘가 이상했다. 하기야, 그건 지난번에 이 녀석 머릿속에 들어가 봤을 때부터 알았던 사실이긴 해도 말이다.

*지난 화에 바퀴를 때려잡지 않을까? 라고 하신 분의 통찰력에는 감탄!

*확실히 은결은 지난화의 소년에게 별 도움이 안 되겠군요. 은결이는 그 또래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모르죠. 그것보다 어릴때 칸트를 읽으며 수행과 토론을 했으니.(...)

*이 글과 서브라임에 사랑과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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