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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115화 (115/300)

#   116-희망을 위한 찬가 - 변신시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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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뜬 검은 그림자 둘이 백열하는 공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검토는 끝났나?”

“예. 빙의의 일종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소 독특한 빙의이긴 합니다만 관찰 결과에 기초한다면 이 빙의를 막는 결계를 작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역시 영락(零落)한 신의 빙의인가. 하여간 운이 좋군. 생각보다 빨리 결과를 얻어냈으니.”

“그런데, 정말로 ‘아담의 언어’를 사용할 것입니까?”

“왜, 걱정인가?”

“조금은 그렇습니다. 만일 아담의 언어의 기본 구조가 ‘전설’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그 결과는 좌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의 기호이론은 일반에 공개되어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추리해 본다면, 어쨌거나 기본적으로 언어의 틀을 가진 아담의 언어가 그에 의해 해체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긴 힘듭니다. 그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천재입니다.”

“무의미한 이야기군. 보고에 따르면 지난 빙의 때 이미 저 소년은 특정한 술식을 사용했고, 내 추리가 맞다면 그것은 결코 아담의 언어에 밀리지 않는 것이지. 확실히 그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천재다. ‘아담의 언어’조차 눈 아래 둘 정도로. 사실 우리가 그의 존재를 인지했을 때, 그는 이미 그에 근접한 경지에 까지 가 있지 않았나? 그러니 내 추측이 맞다면 ‘전설’에게 그 술식이 들어갔다던가 들어가지 않았다던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겠지. 걱정된다면 그것을 통해 우리의 정체가 들킬지 모른다는 정도일까? 하지만 그 마저도 실은 지난 계획이 실패했으니 사실은 무의미하겠지.”

“그건...”

“그나저나 지난번 시도를 생각하면 아쉽군. 그것이 성공했다면 구세(救世)의 영웅을 이을 자를 타락시켜 도리어 세계를 부정하도록 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을 것을. 그러한 디오니소스적 비극이야 말로 세상의 본질이니, 그는 이어질 신시대를 위한 적합한 종극의 배우였을 텐데. 쿡쿡.”

“......”

“이제 가자. 영락한 신의 장난질을 보는 것도 재밌지만, 지금 그의 힘을 생각하면 우리의 기척을 계속 숨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지. 어쨌거나 신은 신이고, 그가 들어선 현세의 집은 가히 크라크 데 슈발리에(기사들의 성)를 방불케 하니.”

“예.”

두 그림자는 기척 없이 사라졌다.

쿠로사카는 검을 휘둘렀다. 전격과 검격이 충돌했다. 빛과 소리가 주변의 모든 것을 잠식했다. 쿠로사카는 얼굴을 찌푸리며 검격에 힘을 더했다. 핫! 하는 기합성과 동시에, 키리야미가 종으로 공간을 갈랐다. 전격도 동시에 베이며 그녀를 압박하던 힘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 앞에는 킬킬대며 웃는 소년의 모습이 있었다. 그의 모습은 영준했지만 지나칠 정도로 오만하고 위험했다. 푸른 이빨에 빙의당한 은결이다.

“아, 역시 좋군.”

그는 자신의 공격을 받아넘긴 쿠로사카의 모습에 만족하며 다음 순간 공간을 박찼다. 우르릉, 주변이 뒤흔들리며 그는 사라졌고, 쿠로사카는 간신히 그의 동작을 알아보며 검을 세웠다. 금세 그는 쿠로사카의 앞에 나타다며 발을 높이 들어올렸다. 들어올린 신발 끝에는 응축된 전류가 머물러 그 끝에 걸리는 모든 것을 파괴하길 고대하고 있었다. 푸른 이빨이 발을 내렸다. 그것만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괴할 듯한 힘의 총체가 긴 전격의 꼬리를 남기며 날았다. 그것은 마치 허공에 갑자기 한줄기 선이 그려진 것 같았다. 쿠로사카는 날을 세워 그것을 받았다.

다시 빛이 주변을 잡아먹었고, 쿠아앙!! 미사일이라도 터진 듯한 소리가 이어졌다. 결계와 역장이 이 지역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빛이 사그라든 공간에서는 양 손으로 키리야미의 양 극을 받치며 푸른 이빨의 발끝을 막아내고 있는 쿠로사카의 모습이 있었다. 키리야미의 정중앙에 내려꽂힌 그의 발끝에서는 지속적인 지직거림이 일고 있었다. 공격을 버티고 있는 쿠로사카의 표정은 이미 좋지 않았다. 다시, 푸른 이빨이 키득대며 웃었다.

“쿡, 이건 어떨까?”

그리고 푸른 이빨은 발끝에 힘을 주어 키리야미를 받침대 삼아 쿠로사카의 머리 위로 순식간에 올라섰다. “큭!”하고 쿠로사카가 이를 악물고 위를 향해 검을 내질렀지만, 키아아앙-!! 하는 쇳소리만 낼뿐 검 끝은 역장을 꿰뚫지 못했다. 해방된 키리야미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역장이라니! 평상시의 은결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강도였다. 그리고 푸른 이빨은 대지를 향해 내리 치듯 주먹을 쿠로사카를 향해 움직였다. 주먹 주변으로는 겔겔 거리며 웃는 듯한 전격이 머물러 있었다.

쿠로사카는 이를 악물고 거기서 비켜나갔다. 다음 순간 그 일대를 전격이 잡아먹었다. 채 빠져나오지 못한 그녀의 발목 이하 일부가 심한 화상을 입었고, 왼쪽 다리 무릎 부근까지 신경이 교란당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피한 그 장소에 이미 푸른 이빨이 대기하고서는 오만한 미소를 선보이고 있었다.

“자, 그럼 이건 어때!”

그리고 푸른 이빨은 쿠로사카를 향해 긁듯이 손을 내뻗었다. 손가락 하나하나에 전격이 휘어 감기며 긴 선을 공간에 그렸다. 쿠로사카는 순식간에 자세를 굳히며 그 공격을 받았다. 사실상, 푸른 이빨의 공격의 틈을 만들고 있는 것은 놀이처럼 그가 외치고 있는 말들뿐이었다. 공격 하나하나가 소리의 네다섯 배는 더 빠르기 때문이다.

“웃!”

쿠로사카는 다시금 키리야미의 날을 세워 그 공격을 받았다. 강대한 힘이 검끝을 통해 그녀의 전신으로 퍼졌다. 전신의 뼈와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 처럼 아팠다. 이제 슬슬 한계라고 쿠로사카는 느꼈다. 키리야미의 힘을 받아들인다는 것만 해도 상당한 부담인데, 이런 강력한 힘을 연속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 그녀의 역량에 벅찼다. 이 신은 천박하지만 강력했다. 비록 키리야미를 해방해도 어쩌기 힘들만큼.

“하악하악...”

쿠로사카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나풀거렸고, 상의와 하의는 이미 많은 부분이 검게 타 구멍을 내어 놓고 있었다. 그 구멍 사이로 비치는 흰 살결이 위태롭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굴강했고, 천박한 신을 향해 꺾임없는 적의를 드러냈다. 푸른 이빨은 감탄했다. 힘을 조절하면서 싸웠지만 아직도 이 인간의 계집애가 버틴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좋아. 정말 좋아. 그래야 그 재수 없는 검을 이을 자격이 있고, 종래 내 손톱에 찢겨질 자격이 있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딜 감히 그 검을 잇겠다고 할까.”

푸른 이빨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장래 이 계집을 제 손톱으로 찢어발길 생각을 하면 유쾌했다. 수백 년 묵은 원한의 부채는, 그 상대가 자격있는 상속인이라야만 진정으로 갚을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푸른 이빨은 허공을 밟듯이 올라가며 쿠로사카와 멀어졌고, 한 점처럼 쿠로사카가 작게 보이는 지점에 서서 양 손을 크게 벌렸다. 그의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전하가 모여들었다. 이 일격에 담긴 힘이라면 한국 전체가 석달은 사용할 수 있을 않을까 싶은, 정녕 아득한 수준의 에너지였다. 우르르르릉! 그의 주변에서 대기가 폭발했다. 쿠로사카의 발이 약하게 떨렸다.

“시간도 없고, 이 일격으로 끝내자. 안심해도 좋아. 견디지 못해도 너는 죽지 않는다. 그냥 좀 많이 아프겠지. 끅끅끅.”

조롱어린 표정으로 푸른 이빨은 그렇게 말했고, 펼쳐졌던 팔을 모았다. 존재를 집어삼키는 에너지의 대하가 아우성을 치며 쿠로사카를 향해 항거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았다. 그녀는 키리야미의 힘을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검 끝으로 그것을 받는 동시에 뒤로 흘려보냈다. 여분의 직격되는 에너지는 등뒤로 열에너지로 변환시켜 해소할 작정이었다.

-우르르르릉! 꾸릉!!

빛이 그녀를 삼켰다. 아득한 소리가 공간도 삼켰다. 결계와 역장이 한참 흔들렸고, 이내 조용하게 잦아들더니 사라졌다. 격리되어있던 공간이 풀려났다. 쿠로사카는 비 맞은 나비처럼 힘없이 근처 건물의 옥상으로 내려가 이내 검을 잡고 주저앉았다. 한계였다. 앞으로 공격이 이어진다면 아무리 약한 것이라도 그녀에게는 쓰러지는 것 외에 선택이 남아 있지 않았다. 푸른 이빨이 이어 빌딩 위에 올라섰다.

“잘했어. 좋은 수련이 됐지? 나도 덕분에 불쾌했던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큭큭, 그럼 다음에 보자. 계집!”

그리고 은결의 발이 쓰러질 것 처럼 휘청, 흔들렸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그는 어지러운 것 처럼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보고 쿠로사카가 분노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성큼 그 앞으로 다가가 은결의 멱살을 잡아 쥐었다. 힘없는 인형처럼 은결의 몸이 움직였다.

“너 대체-!”

쿠로사카는 노성을 내질렀다가 이내 그 목소리를 죽였다. 쿠로사카의 표정이 마땅치 않아졌다. 그녀는 불편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울지?”

은결이 울고 있었다. 쿠로사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바퀴를 해체하던 기억이 은결에게도 어떤 정신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가능한 것이긴 했다. 그 바퀴가 품고 있던 혐오감의 아우라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그렇지만 쿠로사카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은결은 매우 슬프게, 하지만 진실하게 울고 있었다. 그는 허망에 물든 눈길로 쿠로사카를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투명한 눈물방울에 달빛이 작게 내려앉았다.

“네가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 아파트의 이름이 ‘안성 아파트’가 맞아?”

대답 대신에 은결은 질문을 돌렸다. 쿠로사카는 화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을 보고 은결은 후- 하고 깊은 한숨을 땅으로 내쉬었다. 쿠로사카는 은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진정되고 나면 이야기 해 줄게. 지금은, 조금 혼자 있게 해 줬으면 해.”

은결은 그렇게 말했다. 쿠로사카는 분하다고 생각했다. 쿠로사카는 이를 악물었다. 으득, 하고 작게 이 갈리는 소리가 그녀의 입 안에서 퍼졌다. 그녀는 새파랗게 날이 선 말을 은결에게 던졌다.

“...나는 이번 일을 그냥 넘길 생각이 없어.”

“물론이야.”

은결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 대답을 듣고, 쿠로사카는 날듯이 은결에게서 멀어졌다. 그녀는 은결에게서 멀어지며 한층 더 분하다고 생각했다. 은결은, 지난번에 그렇게 말해놓은 주제에, 다시 자신과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았다.

혼자서, 오직 혼자서. 이해할 수 없는 그 논리의 체계를 껴안고 혼자서. 분노에 힘입은 쿠로사카는 전신이 아팠지만 평소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가 멀어지고, 은결은 바지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코를 풀었다. 그리고 하아- 하고 가슴 깊은 곳의 열기를 토해내듯 숨을 쉬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빛은 죽었고, 혼탁에 젖은 달만이 보였다.

한동안, 은결은 우울하게 그 달을 바라봤다. 확인하듯, 도시의 밤하늘을 은결은 몇 번이고 훑었다. 달만이 보였다. 별빛은 죽어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서, 멀리서 드물게 보이는 빛만이 별들을 증거하고 있었다. 빛이 충만해 별이 사라진 하늘은, 어째선지 빛이 없어 별들이 명확했던 때 보다 쓸쓸했다. 그 하늘을 눈에 담으며, 은결은 아아, 칸트 따위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이라고 죽어가는 말로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별빛이 없어 쓸쓸한 하늘을 눈에 담으며 말이다.

*추천해 주신 천유마님과 아다마스님, 다시보기님께 감사의 마음을. 그리고 직접적인 추천은 아니었지만 호평해 주신 아론다이트님과 연필님께도 감사를. 어렵다는 의견이 아직 많아서 약간 좌절감도 느낍니다만, 그래도 친절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은 포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 이런저런 인문학쪽 서적을 읽어보신 분들은 제 노력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음, 어쨌거나 이 글이 읽으신 분들에게 어떤 방향이든 긍정적으로 작동한다면 글 쓰는 이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겠습니다. 앞으로도 노력해서 쓰겠습니다.

*이공계 분들이 이 글에 거부감(혹은 생경함)을 느끼시는 것도 좀 유감. 사실 이 글의 액션장면은 작용과 반작용에 충실하고자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아, 핑계가 안 됩니까?;;; ㅈㅅ

*지난 화 오타 정액질(...)은 저도 쇼크.

*자매품 서브라임에도 각종 의견 받습니다~(풀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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