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희망을 위한 찬가 - 이 곳에는 타자가 없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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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과 여우, 두 사람은 간단히 윗옷을 입고 가까운 할인매장으로(15분 거리) 음료수를 사러 나갔다. 해변에서 매장 까지는 꽤 거리가 있어서, 더운 여름의 아스팔트를 걸어야 한다는 게 꽤 고역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아아- 근처에 파는 곳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윗옷의 목 근처를 잡고 팔락거리면서, 더위에 지친 개처럼 여우가 중얼거렸다.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민성도 헥헥거리며 답했다.
“아서라. 근처에 있어 봐야 틀림없이 바가지야. 하나 두 개 사는 것도 아니고, 수십 캔은 사야 하는데, 이렇게 사러 나오는 쪽이 더 낫지. 예산이 흘러넘치는 것도 아닌데 회계는 은결이 담당하고 있으니.”
“쩝. 그것도 그런가. 바가지 같은 거 없으면 좋을텐데.”
“바가지가 사라지겠냐? 우리같이 여름 한철 놀러오는 사람들 대상으로 장사하는 건데 물건 좀 나쁘고, 가격 좀 비싸도 상관없잖아. 그 때 끝나면 이제 안 볼 얼굴들이니까. 뭐 듣자하니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외국 관광지에서도 비슷하다더라.”
지친 얼굴로, 민성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후, 그렇긴 해도 바가지가 심해지면 사람들이 미리 먹을 거 마실 거 다 준비해 갈 거 아냐. 아예 다음 여름에는 다른 데로 가버릴 수도 있고. 그럼 그치들도 장사하기 어려울테고, 그런 걸 왜 모르는지 몰라.”
“바로 눈앞에 있는 게 한참 뒤 것보다 중요하단 거겠지. 다들 하는데 자기 혼자 안 하면 손해일 테고.”
여우의 투덜거림에 민성은 다시 시니컬하게 응대했다. 여우가 생각하기에도 민성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멀리까지 생각하고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도 눈앞에서 바삐 돌아가는 걸 보면 그 대세에 휩쓸리기 십상인 것 같았다.
“큼, 그렇겠지.”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지친 얼굴로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걸었다. 앞으로 슈퍼까지 5분 쯤 남았을 때, 여우가 문득 깨달았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헤죽헤죽 웃는 얼굴로 민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우리가 한 얘기, 어제 은결이 해준 얘기랑 비슷하지 않냐?”
“그 천국이니 지옥이니 했던 얘기?”
민성이 반문했다.
“그래. 비슷하잖아.”
여우가 열이 오른 태도로 민성을 채근했다. 여우의 기세에 못 이겨 민성도 어제 은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방금 한 이야기를 생각했다. 확실히,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특히 바가지에 대해 여우가 했던 이야기는 은결이 이야기한 천국과 지옥의 전회에 대한 전개와 기묘한 동질성을 품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음... 그러고보니, 비슷한 것도 같네.”
결국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우의 이야기를 긍정했다. 여우는 기쁜 낯으로 즐거워했다.
“그렇지? 뭐 우연이겠지만 말야.”
“그러게.”
그러던 차에 두 사람은 할인마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맞이하게 된 에어컨 바람의 시원함에 천국에라도 도착한 것 같은 쾌감을 맛보며 ‘에어컨은 인류의 승리!’ 따위의 은결이 들었다면 30분짜리 반론이 펼쳐질 감탄사를 연달아 외치며 주문받은 음료수를 부지런히 사 들였고, 적당히 개수가 채워졌다 싶은 시점에서 계산을 하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나가자마자 열풍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은 그 열풍에 불쾌하게 찌그러지기 보다 경탄에 정지되어 있었다. 그리고 꽤 큰 가방을 든 소녀가 조금 낑낑거리는 모습으로 그들에게서 점차 멀어져 갔다.
“...봤냐?”
멍한 목소리로, 민성이 물었다.
“...응.”
멍한 목소리로, 여우가 답했다.
“음, 이런데서 쿠로사카에 비할만한 미소녀를 만나다니, 운이 좋군.”
“그러게나.”
두 사람은 공통된 감상을 다른 표현을 통해 교환했다. 두 사람이 감탄한 소녀, 그녀는 물론 방금 그들 앞을 지나간 그 소녀를 말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가냘픈 체격에 걸맞지 않게 좀 큰 가방을 끌고 가는 그녀의 용모는 확실히 놀라운 것이었다. 쿠로사카의 전체적으로 상냥하면서도 어딘가 날카로운 기색과는 달리, 대놓고 선량한 인상을 하고 있던 소녀는, 가방을 끄느라 조금 지친 안색이었지만, 지친 얼굴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닦아내는 장면에서도 기품이 느껴질 정도였다. 뭐랄까, 조금 과장을 더해 표현하자면 동화 속 공주님을 연상하게 한다고 할까.
“아- 좋은 구경 했다.”
“그래.”
그리고 두 사람은 유쾌한 기분에 씩씩한 걸음걸이로 큰 봉지를 들고 일행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꾸준히 걷고 있는 소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뒤에서 봐도 보기 좋았다. 옷의 맵시도 뛰어났지만, 그 옷을 감추고 있는 몸의 선이 무척 아름다웠다. 어쩌면 가는 방향이 같은 지도 몰랐다. 그에 두 사람이 어쩌면 피서 기간 중에 그녀와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쓸데없는 망상을 하던 가운데, 골목에서 불쑥 튀어나온 장정 두 명이 소녀의 가방을 빼앗고자 했다. “앗!”하고 비명 같은 소리를 울린 소녀는 가방의 손잡이를 잡고 빼앗기지 않으려 저항했다.
“이게 죽으려고!”
둘 중 한 명이 소녀를 위협하며 손을 높이 올렸다. 그것을 보고, 기이하게도 이제까지와 달리 소녀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려고 했다. 소녀와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손을 높이 들었던 청년이 소녀를 내려쳤다. 붕- 하고 팔이 폭력적으로 허공을 갈랐다.
-탁.
그의 손은 소녀를 때리지 못하고 간단히 막혔다. 난입한 민성의 손에 막혔기 때문이다. 그는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씹새끼가-” 난입한 소년에게 거친 분노를 터뜨리며, 옆에 잇던 다른 청년이 민성을 공격하려 했다. 민성이 생각하기에 이런 놈들은 말이 필요 없었다. 그는 발을 들었다.
-퍼억!
“...꺼억.”
사람 같지도 않은 소리를 내며 금세 한 명이 무너졌다. 양 손이 사타구니를 깊게 감싸고 있었다. 방금 민성의 발차기가 어디를 목표로 했고, 얼마나 깨끗하게 먹혀들었던가 하는 것을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이 개-” 다른 한 명이 다급하니 욕설을 지껄이며 민성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민성은 그가 말을 다 잇기도 전에 품으로 파고들며 주먹을 날렸다. 빠각! 시원한 소리가 나며 그는 뒤로 물러났고, 자세를 정비하기도 전에 민성이 다리를 날려 방금 쓰러진 녀석과 같은 부분을 공격했다.
“꺼억...”
비슷한 소리를 내며 그도 대지로 풀썩 무너졌다. 민성은 오연한 표정으로 손을 탁탁 털며 둘을 향해 설교했다.
“흥. 너희 같은 것들은 그거 달고 살 자격이 없어. 확 떼버리지 그러냐.”
물론 아파서 정신이 없는 판국인데 두 사람에게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보다는, 뒤에서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던 여우가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과 더불어 저절로 사타구니로 손을 가져갔었다. 괜히 거기가 저릿저릿했다. 민성이 강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강했다. 어쩌면 고릴라보다 조금 더 센 것 같기도 했다.
“가, 감사합니다.”
사태가 적당히 진정되고 나서, 소녀가 민성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미소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는다는 것이 기분 나쁠 리 없다. 민성은 싱글벙글하는 표정으로 어울리지 않는 겸양을 떨었다.
“뭘요. 남자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인데요!”
“후후. 그러신가요.”
소녀는 귀엽게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모습에 민성은 다시금 기분이 황홀해 지는 것을 느꼈다. 스쳐 지나가면서도 알았지만 가까이서 보자니 한결 더 아름다운 소녀였다. 미모로 유명한 여자 연예인을 눈앞에서 본다면 비슷한 감상일까? 뒤따라 음료수를 들고 온 여우도 민성과 같은 감상 대열에 끼었다. 표정을 보니 민성과 감상의 내용 자체도 비슷한 거 같았다.
“그런데, 어느 쪽으로 가세요? 괜찮다면 가는 길까지 안내해 드릴까 하는데.”
이어 민성이 제안했다. 흑심이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친절한 마음에서 한 제안이었다. 여우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역시 방금 당했던 일이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걱정스레 되물어 왔다. 민성이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이죠! 미녀를 돕는 것은 남자의 의무!”
“쿡쿡...”
민성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발언에 작게 웃어보이던 소녀는 점차 웃음을 죽이며 종래 우울한 얼굴을 했다. 그 갑작스런 변화에 두 사람이 기이함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답게 민성이 쿡, 찔러들듯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실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그런 게 전혀 안 통하는 사람이 한 명 있거든요. 친절 안 하다는 게 아니라... 도무지 거리를 좁혀 주려고 안 하는 사람이요.”
소녀가 우울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그 말을 들으며 그녀가 말하는 그 사람이 남자라면 틀림없이 고자 내지는 게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좀 많이 맞아야 교정될 성격파탄자이거나. 이내 초대면의 사람에게 못할 얘기를 했다고 깨닫기라도 한 듯, 소녀는 황급히 얼굴빛을 바꾸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물었다.
“통성명이 아직이네요. 저는 세연이라고 해요. 두 분은요?”
*제가 하렘물이니 깽판물이니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것은 독자분들이 그렇게 보아도 크게 상관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렘물이라던가 깽판물을 혐오하거나 경멸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이 때때로 그런 것들을 즐기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글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지 그런 장르나 범주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글이 반복적으로 드러내던 생각이기도 하지요.
*다에님께 은결의 그림을 받았습니다.^^ 다시 감사드리며, 다른 분들도 그려 주시면 감사히 받아먹겠습니다. 응원응원응원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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